Share

7. 숨

Penulis: moominkiller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5-24 00:16:47

심가의 아침은 낮은 소리들로 가득했다.

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아직 누구의 입에서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물동이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회랑을 쓸던 하인의 빗자루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멈추고, 부엌의 계집종들이 죽 솥을 젓다 말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큰 집의 소문은 늘 사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쌀을 씻는 물소리,

말에게 여물을 붓는 소리,

행랑채 문고리가 바람도 없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 작은 것들이 밤사이 심가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먼저 알렸다.

안에서 잠긴 문.

끊어지지 않은 밧줄.

사라진 사내.

사건은 사라졌는데, 의심은 남았다.

월령은 그 의심이 어디로 번지는지 보았다. 호위들은 서로의 허리끈과 신발 밑창을 살폈고, 안채의 사람들은 둘째 부인의 처소 쪽으로 눈을 주었다가 황급히 거두었다. 한씨는 평소보다 늦게 문을 열었고, 심서윤의 하녀 금지는 새벽 물을 뜨러 가며 두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빈 방은 말을 오래 한다.

위지헌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는 기쁨보다 월령의 안쪽에는 다른 감정이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심가를 구했다.

동시에 심가를 속였다.

두 가지가 함께 성립한다는 사실이 월령을 오래 붙들었다. 선한 일과 옳은 일은 늘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높은 단 위의 그 사람은 악행을 왕조의 질서라 불렀고, 위지헌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진실을 감추었다.

월령은 아직 그 차이를 완전히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하나는 알았다.

위지헌은 자신을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의 손은 때로 더 믿기 어렵고,

더 놓기 어려웠다.

서원당 뒤 작은 창고에는 은매가 숨어 있었다. 청아가 아침 죽에 생강즙을 아주 조금 풀어 가져갔다. 병든 어미와 어린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은매는 그릇을 잡은 손을 떨었다고 했다. 월령은 보고를 듣고도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담장 안의 사람 하나를 숨기는 일과,

담장 밖의 삶 하나를 건지는 일은 전혀 달랐다.

경안의 장마는 아직 멀었으나 쌀값은 벌써 올랐다. 북문군으로 가는 군량 수레가 늦어지면, 먼저 굶는 것은 조정 대신들이 아니라 장터의 아이들이었다. 심가가 흔들리면 국경의 군량 장부도 흔들리고, 군량이 흔들리면 민심은 아주 조용히 썩는다.

황궁은 그런 조용한 썩음을 잘 이용했다.

월령은 손끝을 접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한 집의 균열이 되고,

한 집의 균열이 한 나라의 명분이 된다.

그 길을 너무 늦게 보았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아야 했다.

거울 앞에 앉은 월령의 얼굴은 일부러 조금 창백했다. 분을 덜 올리고, 입술의 연지도 아주 엷게 했다. 아픈 사람처럼 보일 만큼은 아니되, 밤새 잠을 설친 사람처럼.

청아가 머리를 빗으며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말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뜻이었다.

서윤 아가씨에게 왜 먼저 가야 하느냐고.

그 아이가 마님의 탕약에 닿아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까지 낮아져야 하느냐고.

청아는 결국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나무비녀를 골랐다. 옥비녀보다 수수하지만, 심가 장녀의 체면을 잃지 않을 만큼 결이 고운 것이었다. 월령은 거울 속의 청아를 보며 아주 작게 웃을 뻔했다.

이 아이도 배워 가고 있었다.

말보다 빠르게.

"청아."

"예, 아가씨."

"오늘은 내가 먼저 미안하다 할 거야."

청아의 빗살이 머리카락 끝에서 멈췄다.

"진심으로요?"

월령은 거울 속에서 청아를 보았다. 어린 시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젖어 있었으나, 입술은 제법 단단히 다물려 있었다.

"반은 진심으로."

"나머지 반은요?"

"기다리는 마음으로."

청아는 그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의 머리를 낮게 묶고, 비녀를 꽂고, 소매 안쪽 주름을 손끝으로 한 번 더 폈다.

어린 손이 야무졌다.

그 손을 다시는 피 묻은 궁문 안으로 끌고 가지 않으리라.

월령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심서윤이 안심할 얼굴.

큰어머니의 병세에 지쳤고, 어젯밤 소란에 겁을 먹었고, 결국 사촌 동생에게 미안해져 먼저 찾아온 심가의 장녀.

그 얼굴은 오래전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싫었다.

싫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

이제 그 얼굴은 월령 자신이 아니라 가면이었다.

심서윤의 처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연꽃 향이 났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향이었다. 연못의 꽃은 아직 멀었고, 봄의 공기는 살구꽃과 젖은 흙 냄새에 가까웠다. 그런데 서윤의 방 앞에서는 늘 여름의 연꽃이 먼저 피어 있었다.

깨끗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향을 많이 쓴다.

월령은 문턱 앞에서 그 생각을 했다.

금지가 문을 열었다. 어젯밤 남쪽 연못가에 서 있던 하녀는 고개를 깊이 숙였지만, 손끝은 숨기지 못했다. 손톱 가장자리가 거칠게 물려 있었다. 밤새 손톱을 물어뜯은 사람의 손이었다.

금지도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손을 문다.

월령은 일부러 부드럽게 웃었다.

"놀라지 마. 서윤이가 괜찮다면 잠시 기다릴게."

말은 길지 않았다.

긴 말은 의심을 남긴다.

오늘의 월령은 오히려 짧고 무른 쪽이 맞았다.

심서윤은 곧 직접 나왔다.

하얀 저고리, 옅은 분홍 치마, 진주비녀 하나. 꾸미지 않은 듯 보이기 위해 오래 꾸민 차림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어떤 표정일 때 가장 보호받기 쉬운지 알았다.

월령은 한때 그것을 천성이라 여겼다.

지금은 생존법으로 보였다.

심서윤은 늘 다음 자리였다. 월령이 심가의 장녀였고, 유씨가 안채의 주인이었으며, 심도윤의 이름은 늘 월령의 뒤를 비추었다. 서윤이 아무리 고와도 그녀에게 붙는 말은 중심을 뜻하지 않았다.

고운 사촌.

가련한 아이.

착한 동생.

그 말들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람을 자리 밖으로 밀어내는 말이기도 했다. 서윤은 그 자리를 오래 견디다, 어느 순간 자신이 중심이 되려면 누군가의 자리가 비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월령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용서할 수는 없었다.

"서윤아."

월령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심서윤의 눈이 커졌다.

"요 며칠 내가 예민했어. 어머니 병세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졌나 봐. 너와 숙모의 정성을 의심한 것처럼 보였다면..."

월령은 아주 조금 숨을 늦췄다.

"미안해."

그 말이 떨어지는 동안 월령은 심서윤의 얼굴을 보았다.

놀람이 먼저 왔다.

그다음 안도.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서, 다시 잡을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이 피어올랐다.

서윤은 눈물을 맺었다.

그 눈물의 절반은 연기였고, 절반은 진심이었다.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다.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월령이 자신을 미워하게 된 것이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군가를 해치려 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 모순이 심서윤을 더 사람답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언니가 그러시면 제가 더 송구하지요."

서윤은 어른 흉내를 내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끝마다 어머니가 좋아할 법한 단정함이 붙어 있었다.

"저는 그저 큰어머니께서 어서 나으시길 바랐을 뿐이에요."

"알아."

월령은 나긋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더 미안했어."

심서윤이 월령의 손을 잡았다. 손끝은 차가웠다. 두려움은 몸에서 가장 먼저 손으로 내려온다.

월령은 문득 위지헌이 자신의 맥을 눌렀던 감각을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순간에 손목이 뜨거워졌다.

월령은 그 감각을 밀어냈다.

"오후에 내 방에 와 줄래?"

서윤의 눈꺼풀이 아주 작게 떨렸다.

"언니 방에요?"

너무 빠른 반응이었다.

월령은 그 반응을 보고 알았다.

서윤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가까워질 틈.

다시 손을 뻗을 구실.

그리고 어쩌면, 월령이 무엇을 숨겼는지 살필 기회.

"응. 몸이 조금 가라앉아서. 네가 와서 얘기해 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그 말은 월령답게 부드러웠다.

그리고 미끼답게 약했다.

좋은 향을 가져가겠다는 말은 심서윤이 먼저 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향이라고 했다. 걱정스럽게 낮춘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다정함은 너무 잘 훈련되어 있어, 독보다 먼저 방 안에 퍼졌다.

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은 정말 사과 끝에서 피었다.

오후의 빛은 흐렸다.

부엌에서는 저녁 장국에 넣을 무가 얇게 썰리고 있었다. 행랑채 쪽에서는 북문군으로 보낼 마른 장작을 세는 소리가 났고, 마구간 아이는 검은 말의 앞발에 묻은 진흙을 긁어냈다. 심가의 하루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멈추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이상했다.

사람이 죽고 살아도,

국은 끓고,

말은 여물을 먹고,

장부에는 숫자가 적힌다.

월령은 방을 준비하며 자신이 빠뜨릴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세었다.

문은 열어 둔다.

창은 반쯤 열어 둔다.

향로는 비운다.

찻잔은 둘.

청아는 문과 탁자 사이.

화장대 서랍은 아주 조금 열어 두어 시선이 그쪽으로 흐르게 한다.

위지헌이라면 또 무엇을 보았을까.

그 질문이 계속 따라붙었다.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불안했다.

심서윤은 작은 향주머니를 들고 왔다. 연분홍 비단에 은실 연꽃. 너무 서윤다운 물건이었다. 그녀는 월령의 얼굴을 살폈고, 월령은 살펴지는 것을 허락했다.

오늘의 미끼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약한 곳이었다.

향주머니는 탁자 위에 놓였다.

백단, 난향, 감초의 희미한 단내.

겉으로는 진정향이었다.

죽이는 독이 아니라 잠을 깊게 만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향. 황궁에서는 그런 것들을 독이라 부르지 않았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죄도 흐려진다고 믿는 자들이 많았다.

몽혼향.

월령은 그 이름을 떠올렸다.

오래 피워야 효과가 나는 향이었다.

그래서 잠시 안심했다.

그 안심이 실수였다.

금지는 창가로 갔다. 바람이 차다는 말은 예의 바르게 나왔다. 심서윤은 월령의 손을 잡으며 손이 차다고 했다. 금지의 손은 이미 창문 문고리에 닿아 있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미리 맞춰 둔 것처럼 부드러웠다.

월령은 짧은 순간 망설였다.

너무 빨리 경계하면 서윤은 손을 거둔다.

조금 더 두면 무언가 드러난다.

그 계산이 늦었다.

창이 닫히는 작은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향주머니는 찻잔 가까이에 있었다. 더운 김이 향을 빠르게 풀어 올렸다. 난향 아래 거의 느껴지지 않는 쓴내가 뒤늦게 올라왔다.

등피향.

몽혼향의 문을 빨리 여는 궁중 향료.

이건 심서윤 혼자 짠 수가 아니었다.

궁의 처방이었다.

월령의 손끝이 무거워졌다.

머리는 또렷한데 몸이 늦었다.

바로 그 차이가 무서웠다. 알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몸. 비 내리던 형장에서 독이 속을 태울 때도 그랬다. 생각은 마지막까지 남았지만, 몸은 이미 남의 것이 되어 갔다.

청아가 찻잔을 떨어뜨렸다.

맑은 파열음이 방 안을 갈랐다.

그 소리는 구원의 종처럼 들리기보다, 월령의 실수를 세상에 알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미끼를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먼저 물렸다.

심서윤의 손이 월령의 팔을 잡았다.

걱정이 얼굴에 피었다. 그러나 손끝은 소매 안쪽을 향했다. 그 손은 누군가를 부축하는 손보다, 무언가를 찾는 손에 가까웠다.

서윤의 눈에는 흥분이 있었다.

다시 우위에 섰다는 안도.

언니가 결국 자신이 알던 그 언니로 돌아왔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주는 작은 잔혹함.

월령은 팔을 빼려 했다.

몸은 한 박자 늦었다.

그때 문가에 검은 그림자가 섰다.

위지헌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나타났다. 문턱을 넘기 전부터 방 안의 공기가 먼저 물러났다. 심서윤의 손은 월령의 소매 안쪽에서 멈췄고, 금지는 창가에서 굳었다.

위지헌은 여인의 처소에 함부로 들어온 무례한 남자가 아니었다. 열린 문, 닫힌 창, 향주머니, 찻잔의 위치를 한눈에 읽고서야 문턱을 넘는 사람이었다.

그의 시선은 심서윤을 향하지 않았다.

향주머니에 먼저 닿았다.

그다음 창.

그다음 월령의 손목.

마지막으로 심서윤의 손.

그 순서만으로 방 안의 모든 이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았다.

위지헌이 한마디 했다.

"창이 닫혔군."

그 말은 창문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숨길 것이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공기를 막는다는 뜻이었다.

심서윤은 예를 갖추었다. 놀람과 수치와 분노가 아주 빠르게 얼굴을 지나갔다. 그녀가 여인의 처소라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 위지헌은 이미 그보다 앞서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닫힌 것은 창이었다.

더 이상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월령 앞에 섰다.

가까웠다.

그러나 닿지는 않았다.

먼저 손을 뻗은 곳은 턱도 어깨도 아니었다.

손목이었다.

또 맥.

늘 가장 숨길 수 없는 곳.

위지헌의 엄지가 맥 위를 눌렀다.

월령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너무 얕게 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짧게 숨을 바꾸라는 신호를 주었다.

입으로,

천천히.

말로도 할 수 있었지만,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 손끝 하나로 충분했다.

몸이 먼저 그를 기억했다.

형장의 마지막 손.

측백나무 그림자 안의 손.

지금, 독향 사이에서 맥을 붙잡은 손.

심서윤의 눈이 그 손목에 오래 머물렀다.

그 시선에 월령은 이상한 통증을 느꼈다. 서윤은 단지 들킨 사람이 아니었다. 또다시 자신이 밀려나는 장면을 본 사람이었다. 월령이 아프고 약한 순간에도, 누군가는 월령의 맥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그 사실이 서윤을 찔렀을 것이다.

위지헌은 심서윤에게 손을 거두라고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이 그녀의 손으로 내려갔고, 심서윤은 천천히 손을 뗐다.

그 침묵이 명령보다 강했다.

향주머니는 탁자 위에 남았다. 금지가 그것을 챙기려는 순간, 위지헌의 눈이 움직였다. 금지는 그대로 손을 거두었다.

심서윤은 울고 싶어 하는 얼굴을 했다.

어쩌면 정말 울고 싶었을 것이다. 수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준비한 작은 승리가 눈앞에서 빼앗겼고, 그 빼앗는 손이 대연에서 가장 높은 그림자 중 하나였으니.

월령은 그 얼굴을 보며 아주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서윤은 악한 것이라서 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서 운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이유로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월령은 힘겹게 웃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서윤아."

그것은 심서윤을 용서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은 혼란을 심는 미끼였다.

서윤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물러났다.

문밖으로 발소리가 멀어지고, 청아와 금지도 물러난 뒤에야 방 안의 공기가 조금씩 움직였다.

위지헌은 창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향이 흩어지자 월령의 다리가 늦게 풀렸다.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위지헌의 팔이 등 뒤를 막았다.

안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쓰러질 곳을 모두 지웠다.

월령은 그의 팔과 자신의 등 사이에 아주 얇은 공기만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 거리는 훨씬 노골적인 접촉보다 위험했다. 닿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의식되었다.

물러날 수 있었다.

물러나면 된다.

그런데 물러나면 그가 정말 놓을 것 같았다.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월령은 겨우 숨을 고르며 자신이 또 늦었음을 인정했다. 말로는 길게 하지 않았다. 인정은 눈빛으로 충분했고, 위지헌은 그것을 읽었다.

그는 탁자 위의 향주머니를 보았다.

독은 사과 끝에서 피어났다.

그가 어제 한 말은 맞았다.

다만 월령은 독이 필 때 자신의 몸까지 그 꽃밭에 들여놓았다. 미끼를 던진 줄 알았으나, 미끼와 손을 함께 내민 셈이었다.

위지헌의 손이 다시 월령의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는 더 오래였다.

그가 맥을 살피는 동안 월령은 자신의 숨이 점점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손목의 열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도 느꼈다.

위지헌이 낮게 말했다.

"몸을 먼저 내놓지 마라."

월령은 고개를 들었다.

"향은 물건에 묻혀도 충분하다. 네 숨까지 걸 필요는 없었어."

그 말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더 깊이 닿았다.

그는 그녀의 실수를 꾸짖기보다, 그녀가 다치지 않아도 되는 길을 먼저 짚어 주었다. 황궁의 처방, 향의 수순, 심서윤의 손. 월령이 놓친 것들은 차갑게 보되, 그것을 월령의 상처로 돌려 말하지 않았다.

"제 몸입니다."

이 말은 입 밖으로 나왔다.

위지헌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월령의 몸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그래."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그러니 네가 먼저 지켜야지."

월령의 속눈썹이 내려앉았다.

위지헌은 가까이 섰다.

침상 기둥과 그의 사이에 월령이 있었다.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옆으로 비키면 된다. 그런데도 월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식은 차와 젖은 나무 같은 감송향이 열린 창의 바람 아래 낮게 남았다.

월령은 그 향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더 깊은 그늘 안으로 들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했고,

알 수 없어서 더 오래 숨을 골랐다.

위지헌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방금 열린 창으로 들어온 바람보다 가까웠다.

"네가 다치는 수는 내 쪽에서 받지 않는다."

월령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무거웠다.

아니,

사랑이라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되는 문장이었다.

그는 달콤하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책임처럼, 규칙처럼, 피할 수 없는 군령처럼 말했다. 네가 다치지 않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먼저 열겠다고.

그것은 보호였다.

동시에 정치였다.

심가를 지키기 위한 수인가.

위명서의 손을 막기 위한 견제인가.

아니면 아직 월령이 보지 못한 더 큰 판의 첫 줄인가.

월령은 묻지 못했다.

묻는 순간 답은 칼이 된다.

위지헌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답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켰다. 모른다고도, 안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죽지 않을 만큼의 진실만 남겨 두었다.

월령은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앉으라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손목을 놓고, 방 안의 향이 빠지고, 몸이 늦게 풀리자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위지헌은 곁에 앉지 않았다.

한쪽 무릎을 낮추어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 장면에 월령은 비 내리던 진흙탕을 떠올렸다.

자신 앞에 무릎을 낮추던 섭정왕.

지금의 그는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맥을 살피기 좋은 높이를 택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월령은 숨이 막혔다.

이 남자는 필요한 행동만 한다.

그래서 그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위지헌의 손이 손등 위에 잠시 머물렀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월령은 반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발보다 피로가 먼저 올라왔다.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져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수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주 희미하게 웃음이 새었다.

위지헌의 시선이 그 웃음에 머물렀다.

공기가 달라졌다.

차갑고 단단하던 것이 아주 미세하게 깊어졌다. 월령은 그 변화를 거의 본능으로 느꼈다.

위지헌이 말했다.

"그렇게 웃지 마라."

농담처럼 들렸다.

경고처럼도 들렸다.

그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

"오늘은 네가 쉬어야 할 날이다. 내 쪽을 흔들 날이 아니라."

한 박자 뒤에는 고백처럼 남았다.

월령은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마음을 보이는 듯하다가도, 다음 순간 그것을 군령과 규칙의 말투 안에 감추었다. 월령은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문밖에서 심도윤이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위지헌은 향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그것을 가져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서윤에게는 의심을 남기고, 황궁에는 회수하지 못한 패를 남기고, 월령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남기는 방식.

문가에서 그가 잠시 멈췄다.

월령은 묻지 말아야 할 말을 거의 묻고 말았다.

오늘 밤, 왕야께서도 제 방에 들지 못하십니까.

말로 나오기 전 스스로 삼켰다.

그런데 위지헌은 돌아보았다.

본 것이다.

입 밖에 나오지 않은 말까지.

그의 눈가에 희미한 변화가 스쳤다.

"거짓말이 빨라졌군."

무슨 말을 삼켰는지 안다는 뜻이었다.

월령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위지헌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아주 낮게 덧붙였다.

"배우고 있다."

칭찬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월령의 심장을 오래 흔들었다.

문밖에서는 낯선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왕부의 근시 윤백이었다.

"향은 봉하겠습니다. 심가 약방은 막을까요."

위지헌의 대답은 짧았다.

"오늘은 들이지 마라."

"그럼 꿀물을 올리겠습니다. 차지 않게."

잠깐의 침묵.

월령은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한 민망함을 느꼈다. 윤백의 목소리에는 처음부터 답을 알고 묻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마치 섭정왕이 월령의 방에서 향주머니를 들고 나오는 일쯤은 이미 왕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예정된 군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듯이.

"소란 없이."

"예. 밝은 것만 들이겠습니다."

강무진의 낮은 헛기침이 뒤따랐다. 윤백은 그 한마디가 지나쳤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들이 나간 뒤에도 방 안에는 그림자가 남아 있는 듯했다.

손목과 손등,

등 뒤를 막았던 팔의 거리,

닿지 않았기에 더 선명했던 체온.

월령은 한참 동안 열린 창을 바라보았다.

향은 이미 흩어졌는데,

위지헌이 남긴 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서윤은 처소로 돌아와 향로를 밀어 넘어뜨렸다.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에 금지가 몸을 떨었다.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분노만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수치, 질투, 두려움, 그리고 이상하게도 서러움이 섞여 있었다.

왜 늘 언니인가.

그 질문은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 이제는 목소리조차 필요 없었다.

삼전하도 월령을 보았다.

섭정왕도 월령을 보았다.

심가의 어른들도, 하인들도, 심지어 자신이 준비한 향에 쓰러질 뻔한 그 순간에도 모두 월령의 안색부터 살폈다.

서윤은 사랑받기 위해 늘 얼굴을 만들었다. 더 순하게, 더 가련하게, 더 해치지 못할 사람처럼. 그러나 월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중심에 있었다.

그 불공평함이 서윤의 마음을 조금씩 비틀었다.

그래도 서윤은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빼앗긴 것을 되찾고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사람을 가장 위험하게 만든다.

금지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서윤은 깨진 향로 조각을 내려다보다가, 마침내 궁에 전할 말을 정했다.

섭정왕이 월령의 방에 들었다.

향주머니는 회수당했다.

월령은 아직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서윤은 잠시 망설였다.

섭정왕이 월령의 손목을 잡았다.

그 문장을 넣을까 말까.

결국 넣지 않았다.

그건 보고가 아니라 상처였다.

상처는 남에게 쉽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아끼고 아껴, 가장 아픈 곳에 찔러 넣어야 한다.

그날 저녁, 위명서는 보고를 받았다.

심월령의 방에 섭정왕이 들었다.

향주머니는 회수되었다.

심서윤은 다시 접촉을 청했다.

문장들은 얌전했다. 글씨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명서는 줄 사이의 흔들림을 보았다.

숙부가 움직였다.

월령이 흔들렸다.

심서윤은 상처를 입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고, 나쁜 변수가 되기도 한다.

위명서는 보고서를 접었다.

그는 심서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찮게 여기지도 않았다. 질투는 잘 쓰면 칼보다 오래 간다. 다만 너무 오래 쥐게 두면 손잡이까지 썩는다.

심가도 마찬가지였다.

장군가의 문은 높았고, 북문군의 깃발은 백성들 마음속에서 아직 낡지 않았다. 경안 장터에서 심도윤의 이름은 군량값보다 오래 믿겼고, 심가의 여식과 손을 잡는 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민심의 문을 여는 일이었다.

위명서는 그 문을 원했다.

그리고 그 문 앞에, 월령이 있었다.

월령은 달라졌다.

그가 건넨 외로움의 문장을, 그녀는 더는 품에 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외로움을 누가 감당해야 하느냐는 듯 고요히 돌려보냈다.

위명서는 그 고요함이 불쾌했다.

그리고 흥미로웠다.

사람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것이 돌아서면, 상실보다 먼저 호기심을 느낀다. 왜 달라졌는지. 어디까지 달라졌는지. 다시 돌릴 수 있는지.

그는 촛불에 보고서를 가져갔다.

종이는 천천히 탔다.

위명서의 손은 깨끗했다.

언제나처럼.

"병문안을 준비하라."

내관이 고개를 숙였다.

위명서는 재가 되어 가는 보고서를 보며 생각했다.

청하지 않은 말은 거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청하면 된다.

병문안이라는 이름으로.

예물이라는 이름으로.

심가를 높이는 예의라는 이름으로.

위명서는 불길이 마지막 먹자국을 삼키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재가 손끝에 떨어지자 그는 천천히 털어 냈다.

검은 가루가 사라졌다.

손은 다시 깨끗해졌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022. 칼을 내놓는 밤

    방 안에는 오래도록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태후전의 붉은 봉서는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봉서의 가장자리는 아직 반듯했고, 압인은 선명했다. 마치 사람의 목숨을 요구하는 문서가 아니라, 흔한 혼례 절차를 적은 예부의 공문인 것처럼 단정했다.월령은 그 단정함이 싫었다.전생에서 그녀의 폐위 조서도 그랬다. 먹은 번지지 않았고, 글씨는 흠잡을 데 없이 바른 서체였다. 심가의 이름을 역적의 명단에 올린 문서도, 그녀의 처형일을 정한 문서도 모두 그랬다.사람은 피를 흘리는데 종이는 깨끗했다."북경군 호부라니요."청아가 숨을 죽인 채 중얼거렸다.그 말에 시종 하나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감히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물건이었다. 북경군 호부는 섭정왕부의 심장이었다. 호부가 있어야 북경군이 움직였고, 북경군이 있어야 황실은 위지헌을 함부로 치지 못했다.태후는 혼인을 거절하지 않았다.대신 혼인의 이름으로 칼을 요구했다.위지헌은 봉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시선이 문장 사이를 느리게 훑었다.월령은 그 얼굴에서 무엇을 읽으려 했다.분노.멸시.망설임.그러나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비어 보였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깊은 곳에 잠가 두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왕야."월령이 낮게 불렀다.위지헌은 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내놓으실 생각입니까."그제야 그의 시선이 올라왔다."내가 뭘 내놓는지 알고 묻습니까.""압니다.""모릅니다."짧은 부정이었다.월령의 입술이 다물렸다.위지헌은 봉서를 접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호부는 쇳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이 내 손에 있는 동안, 황실은 내게 칼을 겨누기 전에 세 번 계산합니다. 예부에 들어가는 순간 계산은 한 번으로 줄어듭니다.""그 한 번은요.""나를 죽일 수 있는가."청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월령은 고개를 들었다.그가 너무 평온해서, 그 말이 오히려 몸 안쪽을 베었다."그럼 안 됩니다."위지헌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021. 허락되지 않은 왕비

    전각 안의 침묵은 오래 갔다.위지헌이 무릎을 꿇은 채로 올린 혼서 한 장이, 옥좌 아래의 공기를 전부 바꾸어 놓았다.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대신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붉은 기둥 아래 늘어선 대신들의 소매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백단향은 숨 막힐 만큼 진했다.섭정왕이 무릎을 꿇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이했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무릎은 항복이 아니었다. 칼을 뽑지 않은 선전포고였다.심월령은 그 곁에 서 있었다.자신의 이름이 적힌 혼서가 황실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하얀 종이 위의 먹빛 세 글자는 낯설 만큼 또렷했다.심월령.전생에서는 폐후가 된 뒤에야 제 이름을 빼앗겼다. 사람들은 그녀를 폐후라 불렀고, 역모의 딸이라 불렀고, 죽어 마땅한 여인이라 불렀다. 이름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판결문에 찍힌 흔적일 뿐이었다.그런데 지금, 누군가 그 이름을 황궁의 입구에서 빼앗기 전에 먼저 감싸 쥐었다.아니.감싸 쥔 것만은 아니었다.위지헌은 그 이름을 들고 황실의 목구멍 앞에 세웠다.태후 독고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섭정왕."그 한마디에 대신들의 허리가 더 낮아졌다.태후는 웃지 않았다. 그러나 웃음보다 더 서늘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분노할 때조차 품위를 잃지 않았다. 품위란 그녀에게 예절이 아니라 무기였다."혼인은 가문과 가문의 일이다. 더구나 황실의 일이라면 더욱 절차가 무겁지. 오늘 이 자리에서 급히 논할 만한 사안은 아니네."위지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그래서 오늘 올렸습니다."짧은 대답이었다.태후의 눈빛이 조금 굳었다."무슨 뜻인가.""늦으면 절차가 아니라 포획이 될 테니까요."전각 안의 공기가 한 번 더 차가워졌다.어떤 대신이 숨을 삼켰다. 그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위명서는 옥좌 아래 한쪽에 서 있었다. 아직 황제가 아니었으나, 황실의 피를 이은 황자답게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손가락 하나가 느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020. 무릎 꿇은 반역자

    후궁 예비 명단.그 말이 동쪽 별채에 내려앉은 순간, 촛불이 한 번 낮게 흔들렸다.월령은 숨을 멈췄다.위명서는 하루를 내주었다.그리고 바로 그 하루의 값으로 그녀를 요구했다.곁에서 직접 보호하겠다.궁중으로 불러들이겠다.후궁 예비 명단에 올리는 일을 의논하라.말은 부드럽고 절차는 공손했다. 그러나 뜻은 명백했다. 섭정왕부에 있는 여자를 다시 황궁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 월령을 심가의 딸로도, 섭정왕의 동맹으로도 두지 않겠다는 것.황제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것.전생의 목줄을 다시 꺼낸 것이다.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젖은 소매에서 천천히 떨어졌다.그 움직임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방 안의 공기가 식었다.총관은 문밖에서 더는 읽지 못했다.월령은 위지헌을 보았다.그의 얼굴은 평온했다.너무 평온했다.그 평온함 아래서 무언가가 검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분노라고 부르기에는 차가웠고, 질투라고 부르기에는 깊었다. 오래 잠겨 있던 문이 안쪽에서 열리는 소리 같았다."조서를 들여라."위지헌이 말했다.총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감히 월령을 보지 못했다. 두 손으로 조서를 받쳐 올렸다.위지헌은 조서를 받아 들었다.읽지 않았다.찢지도 않았다.그는 촛불 가까이에 조서를 가져갔다. 붉은 인장이 빛을 받았다. 삼황자의 사인과 태후전의 부인이 함께 찍혀 있었다. 아직 황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황명으로 만들 준비는 끝나 있었다.위지헌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웃음은 아니었다."겁이 많군."그가 낮게 말했다.총관의 어깨가 굳었다.월령은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았다.위명서.태후.그리고 자신을 빼앗기 전에 먼저 이름으로 묶으려는 모든 사람들."왕야."월령이 입을 열었다.위지헌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아침에 입궁한다.""상처가 열렸습니다.""닫을 시간은 있다.""저 때문이라면."그제야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왔다.차가웠다.그런데 그 차가움은 그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너무 깊게 붙드는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019. 거짓 충성의 맹세

    위지헌은 새벽이 되어서야 열이 내렸다.월령은 그의 손목을 놓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잠든 사람의 손은 의외로 정직했다. 낮 동안의 명령도, 냉정한 계산도, 사람을 베듯 짧은 말도 없었다. 다만 손가락 끝이 때때로 그녀의 맥을 더듬었다.살아 있는지 확인하듯.월령은 그 손길을 밀어내지 않았다.비 맞게 두지 않겠다.그 말은 밤새 방 안에 남아 있었다.처형장의 비.전생의 마지막 품.그리고 지금, 동쪽 별채의 낮은 침상 위에서 상처를 안고 잠든 남자.그는 현생의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는 비 속에서 죽어 가던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늦었고, 놓쳤고, 그래서 이번에는 늦지 않으려 했다.월령은 그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이 사람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녀가 칼을 쥐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웃어도 되고, 단것을 좋아해도 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란과 마당을 뛰어다녀도 되는 삶.그런데 그런 삶을 돌려주려는 방식이 피와 감시와 계책뿐이다.그래서 더 슬펐다.청아가 조용히 들어와 찬 찜질 물을 갈았다. 그녀는 침상 위의 위지헌과 그 곁의 월령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가가 붉었다."아가씨, 장부는 숨겨 두었습니다."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사본은?""말씀하신 대로 한 장만 옮겨 적었습니다."청아가 품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독고가 서북 상단.흑수곡 보급 지연.심가 호송로 차용.그리고 작은 인장 하나.병부 부인.병부에서 정식으로 찍은 인장이 아니었다. 부인의 친정 쪽에서 쓰는 사인. 장부를 직접 움직이는 손은 독고가였지만, 병부 안쪽에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있었다.월령은 그 종이를 접었다.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독고가를 찌르기 전에, 심각의 출정 명부터 늦춰야 했다. 흑수곡에 병력이 움직이는 순간, 증거보다 부고가 먼저 도착할 것이다.월령은 위지헌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그를 깨울 수 없었다.그가 깨어 있다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018. 마지막 품을 닮은 밤

    문밖의 목소리는 낮았다."안에 계신 분들, 태후마마의 명입니다. 문을 여십시오."월령은 위지헌의 품 안에서 숨을 죽였다.품 안의 장부는 얇았다. 그러나 그 얇은 종이 몇 장이 지금 그녀의 목숨보다 뜨거웠다. 독고가 서북 상단. 흑수곡 보급. 심가 호송로 차용. 전생에서 오라비가 죽었던 길이, 누군가의 장부에는 이익과 손실로 적혀 있었다.그 사실만으로도 월령은 문을 열고 나가 모든 이름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허리 뒤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말보다 정확했다.월령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면 그의 턱선과 입술이 너무 가까웠다. 방금 전까지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가까웠던 거리였다. 그런데 거짓이어야 했던 그 열기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문을 열어라."밖이 잠시 조용해졌다.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이다.문이 열렸다.등불이 다시 밀려 들어왔다. 금위위 병사 넷, 태후전 상궁 하나, 그리고 검은 장부함을 든 내관 하나가 서 있었다. 상궁은 고개를 숙였지만, 눈은 숙이지 않았다. 늙은 여인의 눈빛은 침상과 떨어진 비녀, 흐트러진 옷깃을 빠르게 훑었다.그 눈빛이 월령의 품 앞에서 멈췄다.위지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월령은 그의 등 뒤로 가려졌다.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가 그녀의 자리였던 것처럼."왕야."상궁이 예를 올렸다."태후마마께서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 외서고를 봉하라 하셨습니다.""봉해라."위지헌의 대답은 짧았다.상궁의 눈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그 전에 안에 계신 분들을 확인하라 하셨습니다.""확인했겠지.""물건도 확인하라 하셨습니다."월령의 손이 장부 위에서 굳었다.상궁은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그 순간 위지헌의 손이 뒤로 와 월령의 손등을 덮었다. 남들이 보지 못할 만큼 낮게, 옷자락 속에서. 그는 장부를 빼앗지 않았다. 숨기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눌렀다.그 손의 열 때문에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017. 달빛 아래 훔친 밀서

    궁의 밤은 왕부의 밤과 달랐다.왕부의 밤은 차가웠다. 모든 그림자가 정해진 자리에 있었고, 발소리조차 명을 받은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궁의 밤은 달랐다. 낮 동안 웃음과 향과 비단으로 덮어 둔 욕망들이 밤이 되면 벽 틈으로 배어 나왔다.향 냄새.젖은 돌 냄새.멀리서 들리는 환관의 낮은 기침.그리고 아무도 없는 듯 보이는 회랑마다 숨어 있는 눈.월령은 검은 장막 아래에서 숨을 낮췄다.위지헌은 한 걸음 앞에 있었다. 검은 옷에 궁인용 외투를 걸친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그는 어디에 있어도 그곳의 주인처럼 보였다. 심지어 남의 궁에 몰래 들어온 밤에도.그 사실이 불쾌해야 했다.그런데 월령은 그의 오른손에 감긴 천부터 보았다.자신이 묶어 준 것이었다.밤바람에 천 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손을 소매 안에 숨기지 않았다. 보이게 둔 것은 아니겠지만, 숨기지도 않았다.그 작은 변화가 월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전날 밤 이후, 둘은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짧은 입맞춤.멈춘 숨.놓지 않았던 손목.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 때문에 모든 것이 더 선명했다."외서고는 저쪽입니다."월령이 낮게 말했다.위지헌은 대답 대신 시선으로 길을 재었다.그들은 회랑의 그늘을 따라 움직였다. 태후전 외서고는 궁의 북쪽에 있었다. 겉으로는 오래된 서책과 제례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었지만, 실제로는 태후 친정과 궁 안 사람들의 장부가 오가는 곳이었다.독고가 서북 상단.흑수곡.보급 지연.심가.피 묻은 군보 조각에 남은 글자들이 월령의 머릿속에서 하나씩 맞물렸다.외서고 문 앞에는 궁녀 둘이 서 있었다.위지헌은 멈추지 않았다.월령은 그가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을 보고, 한 박자 늦게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피하지 않는다. 지나간다. 피하는 사람이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궁녀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위지헌의 손이 월령의 허리 뒤 장막 자락을 잡아당겼다.강하지 않았다.그러나 월령의 몸은 자연스럽게 그의 곁으로 붙었다.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