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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향

Autor: moominkiller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5-23 23:37:36

살구꽃 향이 났다.

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희미했다.

오래 닫혀 있던 창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

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

"아가씨!"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손끝에 닿은 목은 멀쩡했다. 상처도, 쇠사슬이 쓸고 간 자국도, 죄패가 눌렀던 흔적도 없었다.

월령은 천천히 눈을 떴다.

붉은 황궁의 담이 아니었다.

차가운 돌계단도 아니었다.

머리 위에는 옅은 청색 비단 천장이 드리워져 있었고, 창 너머로 살구나무 가지가 흔들렸다. 가지마다 연분홍 꽃잎이 다닥다닥 붙어, 바람이 지날 때마다 몇 장씩 창살에 닿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 방을 알고 있었다.

심가의 동쪽 별채.

황후의 금관을 쓰기 전, 그녀가 열여섯 해를 살았던 방이었다. 창가 낮은 서안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이 남아 있었다.

절반쯤 펼쳐진 병법서, 아버지의 군보를 따라 그리던 산맥과 강줄기, 아란에게 가르쳐 주다 만 바둑판. 흑돌 셋과 백돌 다섯이 끝내기 자리에서 묘하게 맞물린 채 멈춰 있었다.

이 방은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꾸며지던 곳이 아니라, 가장 오래 생각하던 곳이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의원을 부를까요?"

월령은 고개를 돌렸다.

침상 곁에 어린 시녀 청아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직 양 볼에 젖살이 남은, 눈이 크고 손이 빠른 아이.

훗날 황궁 깊은 곳까지 따라와 끝까지 곁을 지키다, 누구도 제대로 이름을 불러 주지 않은 채 사라졌던 아이. 그 아이가 눈앞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월령의 손끝이 떨렸다.

"청아."

목소리가 낯설었다.

갈라지고 쉬어 버린 목소리가 아니라, 아직 한 번도 오래 울부짖느라 망가지지 않은, 어린 자신의 목소리였다.

"예, 아가씨."

"오늘이 며칠이냐."

청아가 눈을 깜빡였다.

"삼월 초엿새입니다. 아가씨께서 낮잠을 너무 오래 주무셔서, 소인이 깨우려던 참이었어요."

삼월 초엿새.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월령의 숨이 접혔다.

경화 칠년, 삼월 초엿새.

황후 간택의 이름이 아직 심가 문턱을 넘기 전. 서원당에 흰 천이 걸리기 전.

어머니의 기침이 병으로 불리기 시작한, 바로 그날. 월령은 화장대 위 동경을 끌어다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열여섯의 심월령이 있었다. 뺨에는 핏기가 돌았고, 눈가에는 황궁에서 배운 미소의 흔적이 없었다.

손등에는 흉터 하나 없었다. 다만 눈동자만이 달랐다 — 아직 세상을 믿던 얼굴 위에, 너무 먼 밤을 건너온 눈이 얹혀 있었다.

봄이 다시 문을 열었다.

검은 우산 아래의 높은 단.

위명서의 차가운 눈.

위지헌의 피 젖은 손.

그리고 빗소리 사이로 낮게 떨어지던 말.

내가 되돌릴 거야.

다시 봄이 오게 할게.

그는 왔다.

황제가 버린 자리로, 모두가 역적이라 부른 자리로. 그 뒤의 일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 그녀는 두 해를 거슬러,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가씨, 정말 의원을…"

"어머니는."

청아가 멈칫했다.

"마님이요? 서원당에 계세요. 아침부터 기침이 심하셔서, 둘째 부인께서 몸에 좋은 탕약을 올리겠다고…"

"탕약."

월령이 낮게 되뇌었다.

부드럽던 살구꽃 향 밑에서, 아주 오래된 쓴맛이 고개를 들었다. 그날 어머니 유씨는 둘째 부인 한씨가 보낸 탕약을 마셨다.

처음엔 감기가 깊어진 줄 알았다. 다음 날부터 피를 토했고, 보름 뒤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한 달 뒤 서원당 문에는 흰 천이 걸렸다. 그 흰 천이, 심가의 첫 균열이었다.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월령은 침상에서 내려왔다.

"옷을 다오. 푸른 비단 말고 흰 장삼으로. 머리는 단정하게만 묶어 다오."

청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다.

그 아이는 언제나 월령의 표정만 보고 움직였다. 그래서 끝내, 아무것도 모른 채 너무 먼 곳까지 따라왔다.

주인을 믿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번에는 잃지 않는다.

흰 장삼으로 갈아입는 동안, 월령은 당장 울고 싶었다.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를 보고, 오라비의 이름을 부르고, 어린 아란을 품에 안아 살아 있느냐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은 눈물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살리는 것.

그리고 독을 가져온 손목을 잡는 것.

"청아. 오늘 서원당에 누가 드나들었는지 기억하느냐?"

청아가 빗질하던 손을 멈췄다.

"아침에 둘째 부인과 서윤 아가씨가 함께 오셨고요, 그 뒤로 주방의 은매가 탕약을 달인다고 몇 번 왔다 갔어요."

은매.

그 이름을 듣자 월령은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장례 사흘째, 은매는 우물에서 건져졌다.

사람들은 젖은 돌을 잘못 밟았다 했다.

너무 쉽게, 너무 조용히.

이제 와 생각하면 입막음이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곧장 어머니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울며 탕약을 빼앗고, 둘째 부인을 의심한다는 티를 냈을 것이다.

그러면 손은 숨어 버린다.

증거는 사라지고, 은매는 그날 밤 안에 우물가로 끌려갈 것이다. 다시 열린 봄은 자비가 아니었다.

손잡이가 이쪽으로 돌아온 칼이었다.

"약방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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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50. 다 세지 못한 봄

    출정은, 닷새 뒤로 정해졌다.경화제는 끝내 군량 결재를 내렸다. 다만, 절목의 끝에 한 줄을 덧붙였다. 북변의 군권은 섭정왕에게 주되, 도성 순검은 그가 없는 동안 다시 예부와 나누어 둔다는 줄이었다.한 손으로 군량을 내리고, 다른 손으로 순검을 반쯤 거둔 셈이었다.위지헌은 그 줄을 읽고, 더 청하지 않았다. 황제가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는지, 그는 오래 아는 형의 속을 읽었다.*떠나기 전날, 두 사람은 왕부의 살구나무 아래에 섰다.꽃이 진 자리에, 이제 푸른 열매가 맺혀 있었다. 지난봄에 핀 꽃이, 여름을 향해 익어 가고 있었다.지난겨울, 이 나무는 헐벗은 가지였다. 봄에 꽃을 피웠고, 그 꽃이 지고 이제 열매를 맺었다. 한 나무가 한 해에 세 얼굴을 지나는 동안, 두 사람도 이별과 재회와 혼례를 지났다."지난겨울에는, 제가 봄을 셌어요."월령이 말했다."이번에는요?""이번에는, 봄을 세는 대신 다른 걸 해요."월령이 소매 안에서 검은 바둑돌 하나를 꺼냈다. 지난겨울, 그가 흰 돌을 가져가고 그녀에게 남긴 돌이었다."이 돌을, 이번에는 제가 쥐고 있을게요. 문밖에서 기다리는 대신, 문 안에서 셈을 할게요. 연이라는 이름이 누구인지, 왕야가 북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 손으로 알아낼게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혼자 세우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지난겨울에 이미 보았다."위험한 셈이다.""알아요."월령이 낮게 웃었다."그래서 왕야가 돌아올 자리를, 제가 지켜 둘게요."*닷새 뒤, 북문에 다시 북경군이 도열했다.지난겨울과 같은 아침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월령이 심가의 딸이 아니라 왕부의 안주인으로 그 자리에 섰다.위지헌이 말에 올랐다. 그의 품속에는, 지난겨울과 같은 흰 바둑돌이 들어 있었다.다만 이번의 두 돌은, 지난겨울과 짝이 달랐다. 지난겨울 검은 돌은 심가의 딸이 소매에 넣었고, 이번 검은 돌은 왕부의 안주인이 방첩 장부 곁에 놓았다. 같은 두 돌이, 다른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49. 북에서 온 파발

    봄이 반쯤 깊었을 때, 북에서 두 번째 파발이 들었다.첫 파발은 첩보였다. 두 번째는,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흑령이 삭원 너머 골짜기 둘을 넘었다. 겨울에 잃은 자리를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국경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심도윤의 북문군이 얇게 막고 있었으나, 오래 버틸 셈은 아니었다.지난겨울 흑령을 하루로 끝낸 것은, 눈이 저들의 방패가 되어 준 살구골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봄에는, 그 방패가 저들에게 없었다. 그러나 국경 안쪽은 지형이 달랐다. 저들이 안으로 들수록, 이번에는 지형이 저들의 편이 되었다.첫 파발과 두 번째 파발 사이가, 짧았다. 저들의 발이 빠르다는 뜻이었다.*위지헌은 그 파발을 어전으로 가지고 들었다.경화제 앞에, 북변의 군량 절목이 다시 올랐다. 지난달 비워 둔 결재 칸이, 아직 그대로 비어 있었다."폐하."위지헌이 말했다."흑령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군량 결재를 내려 주십시오."경화제는 그 절목을 오래 보았다.돌려준 순검패와, 비워 둔 결재 칸이, 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황제는 섭정왕에게 자리를 돌려주었으나, 그 자리의 군량은 아직 제 손에 쥐고 있었다."북에 다시 나가려느냐."경화제가 물었다."제가 아니면, 흑령을 아는 장수가 없습니다.""가례를 올린 지, 한 달이다."황제의 목소리에, 국사 아닌 것이 잠깐 스쳤다.경화제는 정치에서는 절제된 성군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만은, 형의 목소리가 잠깐 앞섰다. 늦둥이 아우가 오래 혼자였던 것을 아는 형이었다. 이제 겨우 곁에 사람을 둔 아우를, 한 달 만에 다시 북으로 보내는 자리였다.위지헌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제가 아니면'이라는 말을, 그 자신도 무겁게 알았다. 흑령을 아는 장수가 그뿐이라는 것은, 이 집을 또 비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날 밤, 위지헌은 안채로 늦게 들었다.월령은 그가 무슨 말을 가지고 왔는지, 얼굴을 보고 먼저 알았다."북에, 다시 가시는군요.""…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48. 제발로

    봄이 얕게 오는 동안, 자녕궁의 그늘도 조금씩 옮겨 갔다.숙비는 지난겨울 순검권이 섭정왕에게 돌아간 뒤로, 예전처럼 판을 크게 벌리지 못했다. 내명부의 문 하나는 아직 그 손안에 있었으나, 그 문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향을 사르지 않는 정갈함으로 내명부를 오래 쥐었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문 하나와 줄어든 발길뿐이었다. 숙비는 그것을 소리 내어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만, 옥반지를 다시 끼지 않은 손을 소매 안에 자주 넣었다.설련은 그 조용해진 자녕궁을 떠나 있었다.지난겨울, 숙비의 손을 놓겠다 한 뒤였다. 숙비는 붙잡지도, 내치지도 않았다. 넘어지거든 다시 오라고만 했다.설련은 아직, 넘어지지 않았다.*자녕궁을 나온 뒤, 설련이 제 발로 한 일은 죽은 군졸의 마지막 명패를 그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었다.지난겨울부터 미뤄 온 일이었다. 자녕궁의 향안 위에 오래 놓여 있던 패. 작은 새가 새겨진 패였다.설련은 그 패를 들고, 임가의 낡은 집을 찾아갔다.죽은 군졸의 누이가 문을 열었다. 설련은 그 앞에서 잠깐 말을 잃었다.고모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누군가의 문 앞에 서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지난겨울 한 번, 죽은 군졸의 집에 새 명패를 전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집 아이가 '누나는 안 무서워요' 했다. 오늘은, 그 걸음의 두 번째였다.무서웠다. 그러나 두 번째 걸음은, 첫 걸음보다 반 뼘 덜 무서웠다."…이 패를, 돌려드리러 왔습니다."설련이 낮게 말했다.누이는 그 패를 두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 울지 않고, 설련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설련은 그 숙임 앞에서, 제가 한 일의 무게를 처음으로 온전히 느꼈다.*같은 봄, 삼황자부에서는 위명서가 늦도록 등잔을 켰다.책상 위에는, 월령의 이름이 적힌 봉서 사본이 더는 놓여 있지 않았다. 지난겨울, 주란이 그 종이를 대신 태운 뒤였다.위명서는 이제, 그 이름을 밤마다 보지 않았다.다만 그 자리에, 빈 데가 남았다. 그 빈 데를 무엇으로 채울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47. 연이라는 이름

    칠복의 빚은, 하루 만에 왕부의 손으로 옮겨졌다.허도겸이 짠 셈은 깔끔했다. 독고가 셈방은 빚 하나가 남에게 넘어간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노름꾼의 빚 한 줄이었다. 그것이 왕부의 것이 되었다는 것까지는, 저들도 아직 몰랐다.마 어멈은 이제, 월령이 고른 밤을 통에 넣어 보냈다.가짜 밤이었다. 불이 꺼지는 자리도, 섭정왕이 드나드는 문도, 왕부가 보이고 싶은 대로 그려졌다.밤마다, 왕부는 저들에게 보여 줄 그림을 지었다. 실제로 불이 꺼지는 자리와, 종이에 점으로 찍히는 자리가 달랐다. 저들이 사 가는 것은, 이제 왕부가 파는 가짜 밤이었다.마 어멈은 그 종이를 넣을 때마다 손이 떨렸으나, 월령은 재촉하지 않았다. 늘 떨며 넣던 사람이 갑자기 떨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티가 났다.*그 가짜 밤을 사 가는 자를 따라, 강무진이 그림자로 붙었다.며칠 뒤, 강무진이 낮게 보고했다."통은 저잣거리 셈방을 지나, 도성 밖으로 나갑니다. 성 밖 옛 역참 자리에서, 한 사람이 그것을 거둡니다.""이름은."위지헌이 물었다.강무진이 잠깐 말을 골랐다."거두는 자들이, 그 사람을 '연 어른'이라 부릅니다."연.형부의 장부에 이름 없이 남았던 글자였다. 가례를 흠집 내려다 물러난 손. 도성 밖으로 나갔던 그 이름이, 왕부의 가짜 밤을 거두고 있었다.물러난 척, 눈 하나를 심어 두고 간 것이었다. 도성 밖에서 그 눈이 보내오는 밤을 받아 읽으며 다음 수를 고르는 손. 쫓기지 않으려고 성을 나갔으되, 성 안을 계속 들여다보는 자리였다."쫓을까요."강무진이 물었다."쫓지 마라."위지헌이 말했다."쫓으면, 저쪽이 눈을 하나 잃은 것을 안다. 우리가 그린 밤을, 계속 사 가게 두어라."*그날 밤, 월령은 그 이름을 위지헌에게서 들었다.연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녀의 손끝이 잠깐 식었다."아는 이름이냐."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전생에,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폐위된 뒤였다. 냉궁의 문밖에서, 누군가 낮게 그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46. 덫에 걸린 사람

    "서방의 빚이, 독고가 상단에 잡혔구나."월령이 낮게 말했다.마 어멈의 눈이 커졌다. 제 입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안주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그 빚을 못 갚으면 서방의 목숨이 위태롭고, 그래서 이 집의 밤을 그려 저 통에 넣어 보냈고.""…죽을죄를 지었습니다."마 어멈이 무릎을 꺾었다. 열아홉 해 이 집의 문을 지킨 손이, 마당 흙 위에 짚였다.마 어멈의 등이 떨렸다. 벌을 기다리는 떨림이었다. 왕부의 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열아홉 해 이 집의 문을 지킨 사람이 모를 리 없었다.월령은 그 떨리는 등을 잠깐 보았다. 벌을 주려고 그 통을 연 것은 아니었다.월령은 그 어깨를 내려다보았다.벌하기는 쉬웠다. 이 종이 한 장이면, 마 어멈은 왕부의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죄인 하나를 내치는 것으로는, 그 종이를 사 간 손까지 닿지 못했다.*월령은 마 어멈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을 물었다."통을 돌려받는 사람은, 늘 같은 장사치니.""…아닙니다. 기름 장사치는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통은 저잣거리 어느 셈방으로 들어간다고만 들었습니다.""그 셈방이, 독고가의 것이고."마 어멈이 고개를 숙였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빚에 잡힌 사람을 벌하면, 빚을 놓은 손은 다음 사람을 잡을 뿐이었다. 이미 이 집에 든 눈 하나를 뽑아 내는 것으로는, 저들이 새 눈을 심는 것을 막지 못했다.*그날 밤, 월령은 위지헌에게 마 어멈의 이름을 말했다.이번에는, 다 풀어 말했다. 빚과, 통과, 바늘로 눌러 그린 밤까지.위지헌의 눈이 한 번 서늘해졌다. 제 집의 밤이 담 밖으로 팔려 나갔다는 것에, 그의 턱이 잠깐 굳었다.그러나 그 서늘함은, 마 어멈에게로 가지 않았다. 가난한 자의 빚을 사서, 그 빚으로 사람의 눈과 손을 사는 자에게로 갔다. 위지헌은 그 자를 아직 보지 못했으나, 그 수법은 알았다."그 사람을 내치겠느냐.""아니요."월령이 말했다."내치면, 저들은 왕부 안에 새 사람을 심으면 그만이에요. 이미 든 눈 하나를,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45. 담 밖으로 가는 것

    엿새가 다시 돌아왔다.이번에는, 월령이 먼저 행랑 마당으로 내려갔다.안주인이 아침에 집을 도는 것은 흔한 일이라, 마 어멈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월령이 기름 드는 문 곁에 선 것을 보고, 그 야무진 손이 한 박자 굳었다.행랑 마당에는 아침 냄새가 가득했다. 물 뿌린 흙과 갓 지핀 아궁이 연기, 지고 온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은 냄새였다.다만 오늘은, 그 냄새 속에 안주인이 서 있었다.기름 장사치가 통을 부렸다.넷이 들어왔다.마 어멈이 빈 통 하나를 집었다. 늘 하던 대로, 그 안에 접은 종이를 넣으려 손이 움직였다."마 어멈."월령이 불렀다.마 어멈의 손이 통 위에서 멎었다."그 통, 내가 보아도 되겠니."*마 어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손에 든 빈 통을 내려놓지도, 건네지도 못한 채 마 어멈이 그 자리에 굳었다. 기름 장사치가 눈치를 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행랑 사람 몇이 마당 가장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주인이 문지기를 세워 통을 청하는 아침은, 열아홉 해에 없던 아침이었다.마 어멈의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 무슨 말을 고르려다, 그 말을 삼켰다. 삼킨 자리에서, 목울대가 한 번 힘겹게 움직였다."마마님, 이것은…""내려놓아라."월령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행랑 마당의 아침 소리가 그 한마디에 잠깐 멎었다.높이지 않아도, 안주인의 한마디는 마당을 멎게 했다. 마 어멈은 그 조용한 무게 앞에서 더 버티지 못했다.마 어멈이 빈 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열아홉 해, 이 집의 문을 여닫던 사람이었다. 제가 넣은 것을 도로 꺼내지도 못한 채, 통만 내려놓았다.월령은 그 통 안으로 손을 넣었다. 기름내가 밴 통 바닥에,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여러 번 접어 손톱만 하게 만든 종이였다.월령은 그 종이를 폈다.*종이에는, 먹으로 쓴 글자가 없었다.다만, 바늘로 눌러 만든 자국이 몇 개 찍혀 있었다. 빛에 비추어야만 보이는 자국이었다.글자를 쓰지 않은 것은, 글을 읽을 줄 아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6. 그늘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5. 뼘

    그 말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그대가 내 곁에 있다면.이 황궁도 외롭지 않을 것 같군요.위명서의 목소리는 살구꽃잎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너무 가벼워서, 처음 듣는 사람은 그것이 칼집에 숨은 소리라는 것을 모를 터였다.한때의 월령도 몰랐다.그녀는 그 말을 오래 품었다. 황궁의 붉은 담 안에 한 사람의 온기를 들이면, 그 외로움이 조금은 녹을 줄 알았다.높은 처마와 긴 회랑과 밤마다 닫히는 문들 사이에 자신이 봄을 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이제는 안다.황궁의 외로움은 사람 하나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사람 하나를 삼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 틈

    "월령 언니, 여기 계셨어요?"문밖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부드러웠다.심서윤은 늘 저렇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그때의 월령은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촌이라 믿었고, 어머니의 방 앞에 흰 천이 걸린 뒤에는 서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운 적도 있었다. 등을 토닥이던 작은 손의 감촉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그리고 황후전의 어느 밤, 비녀함 안쪽에서 밀서를 꺼내던 그 손도.그 손등에 비치던 차가운 등불도.그래도 월령은 그 손을 기억할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 향

    살구꽃 향이 났다.빗물에 젖은 진흙 냄새도, 목 안쪽을 태우던 비린 독향도 아니었다. 부드럽고 희미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틈으로 먼 봄이 숨을 죽이고 들어오는 듯했다.심월령은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곧바로 기침을 토했다."아가씨!"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월령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칼날이 닿기도 전부터 속을 태우던 열기가 아직 목 안쪽에 남은 것 같았다. 피와 비가 뒤섞이던 형장의 냄새가 혀끝에 되살아났다.아니.칼이 아니었다.그녀를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던 것은 칼날보다 조용한 것이었다. 탕약의 밑바닥에 가라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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