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책상은 창가에 있었고, 서경은 문 쪽에 서 있었다.
“이쪽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봤습니다.”
태주가 말했다.
작은 방은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서경이 악보를 볼 책상과 의자, 파일을 둘 낮은 선반을 함께 골라둔 뒤였다. 오늘은 실제로 놓아보고 불편한 데를 바꾸러 왔다.
그녀가 먼저 창밖을 보았다. 햇빛은 좋았다. 그런데 의자에 앉으면 복도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등지게 됐다. 거실에서 통화하는 소리도 바로 들어왔다.
“책상을 반대로 놓아봐도 될까요?”
태주는 창을 한 번 보았다.
“그러면 빛을 등지게 되는데요.”
“지금은 문을 등지잖아요.”
서경이 의자에서 몸을 반쯤 돌리자 목이 당겼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 창가의 전선을 걷었다.
“이러면서 하루 종일 앉게 될 것 같아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놓아보죠.”
어머니가 먼저 울음을 참지 못한 것은 드레스를 볼 때가 아니었다.서경이 작은 거울을 들고 립스틱을 다시 바를 때였다. 손이 떨리자 왼손으로 바꿔 쥐고, 아랫입술에 묻은 자국을 손가락 끝으로 지웠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왜, 엄마?”“가만있어 봐. 입가에 아직 있어.”서경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휴지로 살짝 눌러 닦았다. 손이 급하지 않았다. 병실에서 딸에게 빗을 건네던 것과 반대가 된 아침이었다.“이상해?”“예뻐.”어머니가 답하고 웃었다.“네가 뭘 바르고 싶은지 말하니까 좋네.”서경은 입술을 누르다 말았다. 어머니가 휴지를 한 번 더 접었다.“너 오늘 울면 다시 발라줄게.”서경은 어머니 무릎에 이마를 댔다. 어머니가 딸의 머리를 천천히 쓸었다.“고개 들어봐. 벌써 지워졌겠다.”문밖에서 태주의 목소리가 들렸다.“들어가도 됩니까?”서경은 대답하기 전에 거울을 내려놓았다. 그가 문을 열었다. 밝은색 정장 재킷 아래의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그녀를 본 태주는 문손잡이에서 손도 떼지 못하고 서 있었다.“그렇게 봐요?”서경이 먼저 웃었다.“아직 좀 봐도 되겠습니까.”태주는 가까이 와서도 바로 만지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와 드레스 끝을 눈으로 따라가다 얼굴로 돌아왔다. 서경이 손을 내밀자 그제야 잡았다. 늘 조심스럽게 닿던 손이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단단히 감쌌다.어머니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사진 찍어. 나 나오기 전에 둘이.”태주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정작 손이 떨리는 쪽이 바뀌어 서경이 웃었다. 화면 속 세 사람의 얼굴이 한 번 흔들렸다. 어머니는 자기도 나왔다며 웃고, 태주는 그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
서경은 빈 벽에서 테이프 자국을 떼었다.처음에는 작은 자국인 줄 알았는데 끝을 들추니 길게 이어졌다. 거북이 스티커가 붙은 수첩은 이미 가방에 넣었다. 벽에 붙여두었던 달력만 남아 있었다.결혼식까지 한 주가 남았다.남은 짐은 식 뒤에 옮길 것이었지만, 쓰지 않는 것부터 정리하고 있었다. 처음 이 방을 골랐을 때는 혼자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곧 나가는데도 방이 너무 쉽게 비는 것 같아 서운했다.태주가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책은 여기에 넣으면 됩니까?”“그건 제가 들고 갈게요. 오늘 안 옮겨요.”그녀가 생각보다 빠르게 대답했다.태주가 상자를 내려놓자 서경은 달력을 떼던 손을 멈췄다.“미안해요. 아직 제가 쓰는 게 남아 있어서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어디까지 하면 됩니까?”서경은 작은 냄비와 컵 하나를 가리켰다. 당장 쓰지 않을 것들이었다. 태주는 종이로 싸서 상자 안에 놓았다. 냄비 뚜껑이 부딪칠 때마다 사이에 종이를 한 겹 더 넣었다.그 모습을 보다가 서경은 의자에 앉았다.“저 여기 되게 좋았어요.”태주의 손이 멈췄다.“압니다.”“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가는데, 여기가 없어지는 건 또 아쉬워요.”서경은 벽의 테이프 자국을 짚었다.“여기 처음 붙였던 달력에, 늦잠 자도 되는 날 표시했어요. 혼자 밥 먹는 날도. 그런 건 일정이 아닌 줄 알았는데.”태주가 포장하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손톱으로 마지막 테이프 조각을 들었다. 작은 자국 하나에도 그때의 아침이 붙어 있었다.그는 상자를 닫지 않고 기다렸다. 서경은 창문을 보았다. 폭이 모자랐던 커튼은 나중에 맞는 것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이 바닥에 상자를 뒤집
태주는 양파를 너무 반듯하게 썰었다.서경은 도마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눌렀다. 볶음밥에 넣을 양파였다. 크기를 조금씩 다르게 잘라도 되는 것인데 그는 모서리가 맞지 않는 조각을 다시 자르고 있었다.“회사 자료도 그렇게 정리해요?”그녀가 물었다.“덜 익은 양파가 나오면 싫어하실까 봐요.”“이렇게 하다가 밥이 먼저 내일이 되겠는데.”태주가 칼을 내려놓았다. 잘해보려고 한 사람의 얼굴이 되어 서경을 보았다. 그녀는 웃다가 미안하다고 했다. 장난을 걸었는데 그가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그는 소매를 한 번 더 걷었다.“그럼 어느 정도면 됩니까?”서경은 휴대전화의 시계를 켜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제 열다섯 분. 양파는 실격 직전이에요.”“심사위원이 상당히 엄격하군요.”“배고픈 심사위원이라서요.”그가 드디어 모서리가 조금 다른 양파 조각을 도마 밖으로 밀었다. 서경은 작은 조각 하나를 집었다.“이 정도면 됐어요. 제가 볶을게요.”“오늘은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태주가 도마를 당겼다. 서경은 빈 그릇을 그의 옆에 놓았다.“열다섯 분은 그대로예요.”태주가 팬에 재료를 넣었다. 기름이 조금 튀자 둘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서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태주는 불을 낮추며 같이 웃었다.거실 탁자의 청첩장 봉투는 그대로 두었다. 오늘은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태주가 밥을 넣었다. 한 덩어리가 잘 풀리지 않아 주걱으로 몇 번 눌렀다. 서경은 옆에서 그릇을 꺼냈다. 가장 예쁜 것을 찾다가 평소 쓰던 작은 그릇으로 바꾸었다. 아직 새 식기를 모두 들이지는 않았다.“새것으로 드셔도 됩니다.”그가 말했다.“이건 같이 사기 전에 못 쓰는 그릇이에요?”
책상은 창가에 있었고, 서경은 문 쪽에 서 있었다.“이쪽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봤습니다.”태주가 말했다.작은 방은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서경이 악보를 볼 책상과 의자, 파일을 둘 낮은 선반을 함께 골라둔 뒤였다. 오늘은 실제로 놓아보고 불편한 데를 바꾸러 왔다.그녀가 먼저 창밖을 보았다. 햇빛은 좋았다. 그런데 의자에 앉으면 복도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등지게 됐다. 거실에서 통화하는 소리도 바로 들어왔다.“책상을 반대로 놓아봐도 될까요?”태주는 창을 한 번 보았다.“그러면 빛을 등지게 되는데요.”“지금은 문을 등지잖아요.”서경이 의자에서 몸을 반쯤 돌리자 목이 당겼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 창가의 전선을 걷었다.“이러면서 하루 종일 앉게 될 것 같아요.”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반대로 놓아보죠.”태주는 책상 한쪽을 잡았다. 서경도 손을 대려 하자 그가 먼저 선반 위의 작은 물건들을 부탁했다. 두 사람이 옮기고 밀고 나니 방 가운데가 조금 좁아졌다.의자에 앉아보니 이번에는 선반 문이 안 열렸다.서경이 고개를 숙여 웃었다.“같이 사는 게 책상 하나부터 어렵네요.”“집이 좁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태주의 대꾸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넓은 집이었다. 그래도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물건이 한 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선반을 다른 벽으로 옮기고 케이스는 볕이 들지 않는 안쪽에 놓았다. 태주가 남은 자기 책도 치우려 했다.“그건 둬도 돼요.”서경이 말했다.“제가 읽어도 되는 거죠?”“물론입니다.”그녀는 겨울에 함께 산 소설책을 꺼냈다. 전에 보았던 영수증이 여전히 안에 있었다. 태주가 설명하려 하자 서경이 웃으며
6월 30일, 공방 주인은 서경이 가져온 케이스를 열었다.“점검부터 하겠습니다.”그녀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해외 공연을 마친 뒤에도 며칠 더 빌려 썼던 악기였다. 턱받침 가까이 남은 작은 얼룩은 그대로였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빌려왔고, 오랫동안 행방도 모르다가 다시 손에 들었던 바이올린.주인이 악기를 돌려보는 동안 서경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앞으로 기울였다.“특별한 문제는 없네요.”그가 말했다.대여를 늘릴 수는 있었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정해둔 날 돌려주겠다고 답했는데도, 서경은 열린 케이스를 오래 보았다.주인이 다른 케이스를 열었다.새로 빌려보기로 한 악기가 들어 있었다. 오래 사용한 연주용 바이올린이었다. 빛깔도 달랐고, 턱을 댔을 때 닿는 감각도 조금 달랐다. 서경은 활을 가져다 댔다. 먼저 내는 음에서 힘이 지나쳤다.“너무 서두르시네요.”주인이 말했다.그녀는 웃으며 다시 했다. 이번에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오래 알던 악기의 울림과 같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다. 그래도 손이 불편한 날에 어떻게 켤지 궁금해졌다.직접 켜보고 고른 악기를 1년 빌렸다. 대여비는 도쿄 공연료에서 냈다.반납 확인에 서명한 뒤 서경은 옛 악기의 턱받침을 보았다. 아버지가 닦아주고도 남았던 작은 얼룩이었다. 손가락을 뻗다가 케이스 가장자리만 만졌다.“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만요.”주인이 악기를 돌려주었다. 서경은 얼룩이 보이게 찍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얼룩이 담길 때까지 각도를 바꿨다.주인이 케이스를 닫았다. 서경은 새 악기를 메고 문을 나왔다. 끈의 폭이 달라 어깨에서 자꾸 고쳐 멨다.그날 저녁, 어머니에게 두 악기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드렸다.“아빠가 빌려온 거, 돌려줬어.”“그래. 오래 썼네.”
화요일 밤, 태주가 저녁을 늦추자고 했다.이번에는 서경이 식당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그녀는 태주가 몇 시까지 일해야 하는지 물었다. 정확히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그럼 저는 먼저 먹을게요. 끝나고 전화해줘요.”서경은 약속한 식당 대신 집에서 밥을 차렸다. 가을 워크숍 일정표가 옆에 있었다. 매일 이어지는 수업에 저녁 리허설까지 들어 있었다. 공연이 많다는 말에 들떴다가, 그 시간을 손가락으로 짚어보고는 오래 멈췄다.그녀는 참여 기간과 지도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 물었다. 일정표에서 지워지지 않는 저녁 리허설이 마음에 걸렸다.태주의 전화는 밤늦게 왔다.“식사는 했습니까?”“네. 태주 씨는요?”그가 잠깐 뜸을 들였다.“아직입니다.”“이리 오세요. 남은 거 있어요. 맛은 장담 못 해요.”태주가 도착했을 때 서경은 작은 냄비를 다시 데우고 있었다. 그는 신발을 벗다가 현관에 한동안 앉았다. 피곤하냐고 묻자 이제야 피곤한 것 같다고 했다.탁자 앞에 앉은 그는 밥을 두 숟갈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서경이 맛없느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오늘 투자안을 접었습니다. 몇 달 동안 검토하던 건데.”“안 좋은 데였어요?”“나쁜 회사는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한 시점에 수익이 나기 어려웠습니다.”태주는 수저 손잡이를 반듯하게 돌려놓았다. 숫자 몇 개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끝까지 될 거라고 생각한 직원도 있습니다. 왜 더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더군요.”“뭐라고 하셨어요?”“내가 결정을 늦췄다고 했습니다.”말을 끝낸 뒤에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서경이 식은 국을 덜고 새 국물을 부었다. 풀어놓은 커프스 한쪽이 그릇 가장자리에 닿았다.“태주 씨도 아까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