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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작가: 한엘리
last update 게시일: 2026-07-02 11:00:04

촬영은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어느새 창밖은 어두움이 내렸다.

현민호의 화보 컨셉은 남자다운 섹시함이었다.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은, 왕의 무사 역할의 이미지를 이어 가는 촬영이었다.

감독은 회사와 논의한 사진 방향이 못내 아쉬워 추가 컷을 더하기로 했다.

“마스크가 컨셉에도 잘 어울리고 사진도 잘 나왔는데, 실물이 더 좋네.”

감독의 의견에 스태프도 동의했다.

“실물은 청량미, 소년미가 넘치네요. 저도 드라마하고 실물 이미지가 많이 달라 건의를 해볼까 했어요.”

“그럼, 이번에는 청순 소년미로 가보자. 옷은 새깅 스타일로 입혀.”

스태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새깅스타일이라고? 청량한 컨셉 아니었나.’

“자, 이번에는 청량하게 가자. 나이답게.”

감독의 요구에 현민호는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옷을 이렇게 입혀 놓고 뭐라는 거야.’

하지만 프로답게 촬영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연기를 시작했다.

민호는 머릿속에 그 날을 떠 올렸다.

‘처음 고등학교 시절 다니와 자전거를 타던 날처럼.등뒤에서 기대 우는 너를 어색하게 안아 주려 했던 날처럼.’

눈은 편안히 뜨고. 엷은 미소로 벌어진 입술이 아름다웠다.

입대를 앞둔 것 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눈이 젖어왔다. 연기인지 아닌지 그의 무해한 슬픈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딱 2년만, 너와 나의 긴 시간 중에 2년만’

젖은 눈을 간직한 채 먼 곳을 응시하는 표정도 훌륭했다.

촬영을 드디어 마치고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피디와 매니저 그리고 스태프들이 작품을 같이 보았다.

“어우야, 재능, 외모 다 있네.”

“아깝네. 너무 일찍 루머가.”

감독이 안타까운 듯 다가와 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군대 갔다고 끝 아니야. 재능 있으니까 잘 견뎌.”

“네. 감사합니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이전과는 달랐다. 악수하며 마주치는 시선들이 동정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었다.

스물세 살, 만으로는 이제 스물한 살 어린 모델은 감독 스태프들에게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와요.”

“수고하셨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인사를 하고 나오는 어린 모델에게, 기어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박혔다.

복도를 채우고 그를 보러 온 사람들 사이에 여러 말들이 들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자들하고 소문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바람둥이겠어.”

“어우, 아까 촬영할 때 봤지. 부럽네.”

“그래도 소문이 좀, 그게 다가 아냐. 김지욱 알아. 걔가 재랑 술 마시러 가는 거 봤다고 해.”

“저 다리를 보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덤볐겠지.”

자신의 속마음이 얼굴로 나오지 않도록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민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자, 매니저가 나섰다.

“우리 민호 순하고 착한 애예요. 이상한 글 다 고소했어요.”

민호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시선을 돌려 창을 보았다.

다니말고는 여자라고는 없었다. 친구들도 사내들뿐이었다. 일주일 전까지 동정이었던 자신이 들을 소리는 아니었다.

매니저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민호는 집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지하를 눌렀다. 집은 애초에 들를 계획이 없었다.

고급 아파트 단지였고 이 단지의 몇 안 되는 펜트하우스가 민호의 집이었다. 현성화학의 대표 집으로는 과하지는 않았다.

중견 기업으로 탄탄한 재무를 가지고 있어 현금이 많은 알짜 회사였다.

민호는 어머니가 40세에 겨우 낳은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기에 모델 일도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고, 아들을 위해 회사를 차려줄 계획도 있었다.

바람은 가업에서 일을 배우길 원했지만, 태어나는 것도 지금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현민호는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 명의는 이미 다니 앞으로 돌려놓았다.

연인의 집까지 30분, 내비게이션을 보며 보험증 그리고 조수석 아래의 쇼핑백을 가방에 넣었다. 현금과 보석 케이스였다.

민호는 건강미가 넘치며 멋있는 다리를 가진 운동 마니아 모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데뷔한 지 1년 6개월, 문제의 드라마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왕의 무사로 조연이고 대사도 많지 않았다.

무사에 잘 어울리는 콧대와 얼굴선이 찬사받았고, 그가 심문 후 구출되어 물을 삼키는 장면이 SNS 퍼지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국내 기사까지 점령하던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갑자기 루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민호의 차가 미끄러지듯 다니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아. 기분 정말 나쁘다.’

다시 한번 촬영 생각에 욕하며 차에서 내렸다.

‘삐빅’ 

20층을 누르고 다니의 집이 가까워지니 여자 친구가 더 보고 싶었다.

2002호, 민호는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자신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해 놓은 다니가 귀여워 웃음이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다니가 달려와 안겼다,

“민호야, 왔어.”

자신의 품에 안긴 다니의 밝은 머리칼과 커다란 갈색 눈동자를 천천히 바라봤다.

뛰어오른 다니를 안아 올리며, 힘들게 마음을 얻은 이 여자를 힘주어 안았다. 자기 가슴에 닿는 풍만한 가슴과 향긋한 꽃 내음이 어지러웠다.

민호는 다니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니야, 사랑해.”

사랑하는 연인의 붉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러고는 뺨을 맞대고 속삭였다.

“예쁘다.”

현민호는 감탄하며  귓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다니는 민호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그의 체취를 맡으며 심호흡했다. 기억하고 싶었다. 

‘너무 사랑해. 너 없이 견딜 수 있을까?’

“오늘 어땠어? 촬영 잘했어?”

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민호의 얼굴이 어둡자, 걱정이 밀려왔다. 루머 속에서 촬영했을 그가 걱정이 되었다.

대답 없이 그는 입술을 내려 다니의 입술에 가까이 가져갔다. 

사랑스러운 연인을 조심히 안은 채 다시 입술을 포갰다. 

민호의 도톰한 분홍 입술에 자기 숨을 불어 넣으며 다니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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