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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산에는 오래된 금기가 하나 있었다.
달이 둥글게 차오르는 밤에는 계곡으로 내려가지 말 것. 물 위에 떠 있는 비단을 발견하더라도 손대지 말 것. 그리고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옷을 발견한다면, 절대로 집으로 가져오지 말 것. 윤해온은 그 세 가지 금기를 한꺼번에 어겼다. “아니, 이렇게 좋은 비단을 물에 떠내려 보내라고?” 그녀는 젖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린 채 계곡 한복판에 서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차오른 물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해온의 시선은 물가의 바위에 걸린 옷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은백색 비단이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옷감에는 금실인지 은실인지 모를 가느다란 선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소맷자락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물결처럼 흔들렸다. 평생 바느질로 먹고살아 온 해온이었지만 이런 옷감은 처음이었다. “대체 어떤 부잣집 도련님이 옷을 이렇게 험하게 입고 다니신담.” 해온은 한숨을 쉬며 옷을 건져 올렸다. 오른쪽 어깨에서 등판까지 길게 찢어져 있었고, 옷깃 안쪽에는 붉은 얼룩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손끝으로 천을 살피던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얼룩은 물에 씻기지 않은 피처럼 보였다. 그 순간, 계곡 위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이상한 바람이었다.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데 해온의 손에 들린 비단만 허공으로 부풀어 올랐다. 마치 누군가 옷 안에 들어가 팔을 펼치는 것 같았다. “……뭐야?” 해온이 놀라 손을 놓으려는 순간, 옷자락 안쪽에서 은은한 금빛이 번졌다. 빛은 그녀의 손목을 한 차례 휘감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온은 한참 동안 멍하니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비단이 비싸서 그런가.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옷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날 밤, 청운산 정상에서는 천 년 동안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던 봉인석에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사흘 뒤. 달실방에는 낯선 사내가 찾아왔다. 바느질을 하던 해온은 문밖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문턱 너머에는 눈을 의심할 만큼 아름다운 남자가 서 있었다. 은백색 머리카락은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검푸른 비단 도포에는 구름을 닮은 문양이 은은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그의 눈이었다. 푸른빛과 금빛이 한데 섞인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맑게 빛났다. “여기가 달실방인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예, 그런데요.” “내 옷을 가지고 있다 들었다.” 해온은 눈을 깜빡였다. “아, 그 계곡에서 주운 옷이요?” 남자의 눈매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렇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해온은 안쪽 방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수선한 날개옷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찢어진 비단옷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느질을 시작하자마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늘이 닿을 때마다 옷감이 희미하게 빛났고, 실을 당길 때마다 창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그래도 해온은 끝까지 수선을 마쳤다. 그것이 바느질방 주인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어깨 부분이 많이 찢어졌더라고요. 안쪽은 덧대고 바깥쪽은 최대한 티 나지 않게 꿰맸어요.” 서령은 내밀어진 옷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것을 네가 고쳤느냐?” “예.” “혼자서?” “그럼 누가 도와주나요? 혼자 운영하는 가게인데.”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천 년이었다. 그의 날개옷은 천 년 전 천계에서 내려진 금제에 의해 훼손되었고,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신물이 되었다. 수선하려던 신선들은 모두 손끝이 타들어 갔고, 가장 뛰어난 직녀조차 바늘 하나 꽂지 못했다. 그런데 인간 여인이 고쳤다.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윤해온이요.” “윤해온.” 그는 낯선 이름을 천천히 입안에서 굴렸다. “내 이름은 서령이다.” “예, 서령 나리.” “나리는 아니다.” “그럼 도련님?” “그것도 아니다.” 해온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신선.” “……예?” “나는 신선이다.” 해온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옷을 찾으시는 동안 머리라도 부딪히셨어요?” 서령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니까 정말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거죠?” “그렇다.” “구름도 타고 다니시고요?” “필요하다면.” “도술도 쓰시고요?” “물론이다.” 해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서령은 그녀가 마침내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럼 수선비는 금덩이로 주셔도 됩니다.” “…….” “신선이시면 금덩이 정도는 만드실 수 있지 않아요?” 서령은 태어나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천계에서는 그의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수많은 신선이 고개를 숙였다. 바람길을 관장하는 상선이자 천제의 명령조차 쉽게 따르지 않는 존재. 그가 한 번 눈을 내리깔면 구름이 갈라지고, 손가락을 움직이면 인간계의 계절이 바뀌었다. 그런 그에게 인간 여인이 수선비를 요구하고 있었다. “돈이 필요하느냐?” “그럼요. 바느질방을 운영하는데 돈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원하는 만큼 주마.” “정말요?” “대신 한 가지 묻겠다.” 서령이 날개옷을 펼쳤다. 은백색 옷감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출렁였다. “이 옷을 꿰맬 때 이상한 일을 겪지 않았느냐?” 해온은 잠시 고민했다. “창문이 자꾸 열리기는 했어요.” “그뿐이냐?”서령은 다시 웃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나왔다. 천 년 동안 이렇게 자주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윤해온.” “예?” “너는 참 이상한 인간이구나.” “신선님도 만만치 않으세요.” 그녀가 대꾸하자 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해온은 손끝으로 겉옷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신선님.” “말해라.” “아까 저를 지켜 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 약속, 정말 지키실 수 있어요?” 서령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는다.” 해온은 잠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눈은 아니었다.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럼 믿어 볼게요.” 그 말에 서령의 표정이 달라졌다. 믿는다.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다. 천계의 신선들은 그의 힘을 두려워했고, 인간들은 그의 존재를 숭배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가볍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믿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서령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해온의 뺨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가닥을 조심스럽게 넘겨 주었다. 손끝이 귀 아래를 스쳤다. 해온의 숨이 잠시 멎었다. “……신선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갈 것 같아서.” “그건 제가 해도 되는데요.” “그렇군.” 서령은 손을 거두려 했다. 그런데 해온이 무심코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해온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황급히 손을 놓았다. “아, 아니…….” 서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청금색 눈동자가 달빛 아래 깊어졌다. “해온아.” 처음으로 성을 빼고 부른 이름이었다. 그 짧은 부름에 해온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왜요?” “내가 가까이 있는 것이 불편하냐?” 해온은 대답을 망설였다.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가까이 있으면 평소와 달리 숨을 쉬는 일조
그가 손을 펼치자 허공에서 은백색 비단이 나타났다. 날개옷은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와 그의 팔 위에 걸렸다. 해온은 여전히 그 광경이 신기했다. “몇 번을 봐도 놀랍네요.”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럴까요?” “내 곁에 오래 있으면.” 해온은 고개를 들었다. 서령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일단 옷부터 볼게요.” 해온은 날개옷을 작업대 위에 펼쳤다. 손끝으로 어깨 부분을 살피던 그녀는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네.” “무엇이?” “제가 꿰맨 실이 아니에요.” 서령이 가까이 다가왔다. 해온은 옷감 안쪽을 가리켰다. “여기 보세요. 이 금빛 실이요.” 서령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그 실을 알고 있었다. 천계의 귀천인. 신선이 천제의 명령을 거역할 경우 강제로 천계로 소환하는 봉인의 일부였다. 그런데 해온이 가리킨 곳에는 원래 있어야 할 문양이 없었다. 대신 누군가 금빛 실을 다시 엮어 놓은 듯한 작은 매듭이 있었다. “……네가 이것을 건드렸느냐?” 목소리가 낮아졌다. 해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찢어진 부분만 꿰맸어요.” “확실하냐?” “제 손으로 한 일인데 모르겠어요?”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온은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서령은 잠시 침묵하다가 날개옷을 내려다보았다. 천 년 동안 그를 속박해 온 봉인이 약해지고 있었다. 인간 여인의 바느질 때문에. 그 사실을 천계가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서령은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해온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 이 옷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지 마라.” “……예?” “누가 묻더라도 네가 수선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고.” 해온의 표정이 굳었다. “왜요?” “위험해질 수 있다.” “무엇 때문에요?” 서령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명
문제는 식사가 끝난 뒤였다. “신선님, 그릇은 저쪽에 놓아 주세요.” “알겠다.” “아니, 거기 말고요. 물통 옆이요.” “여기?” “예. 그리고 씻어 주세요.” 서령이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그럼 제가 씻어요?” “보통 인간들은 손님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 않는다고 들었다.” “손님이 아니라 하숙인이시잖아요.” “하숙인.” “숙박비 내고 머무는 사람이요.” 서령은 그 말을 잠시 곱씹었다. 그리고 조용히 소매를 걷었다. 해온은 그 모습을 보다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천하를 내려다볼 것처럼 고고한 신선이 나무 대야 앞에 앉아 그릇을 씻고 있었다. 길게 흘러내린 은백색 머리카락이 물에 닿을까 봐 조심하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눈길을 끌었다. “머리카락 묶어 드릴까요?” 그 말에 서령이 고개를 들었다. “묶어 준다고?” “계속 흘러내리잖아요.” 서령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마.” 해온은 바느질함에서 남색 끈 하나를 꺼냈다. 그의 뒤로 다가가자 서늘한 매화 향이 희미하게 풍겼다. 인간의 머리카락과 달리 서령의 은발은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감촉에 해온은 잠시 감탄했다. “머릿결이 정말 좋으시네요.” “그런가.” “비단보다 부드러워요.” “네가 좋아하는 것이냐?” “좋은 비단을 싫어하는 바느질꾼이 어디 있겠어요?”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온은 그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모아 끈으로 묶었다. 그 과정에서 손끝이 그의 목덜미를 가볍게 스쳤다. 순간 서령의 어깨가 굳었다. 해온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 됐어요.” 그녀가 손을 떼려는 순간, 서령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다. “윤해온.” “예?” “인간들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쉽게 손을 대느냐?” 해온은 눈을 깜빡였다. “머리 묶어 준 게 뭐 어때서요?” “그렇군.” 서령
천 년을 살아온 신선에게도 처음 겪는 일이 있었다. 이를테면 인간 여인에게 숙박비를 내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든가,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라든가, 남의 집에 머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말이다. 서령은 지금 그 모든 일을 한꺼번에 겪고 있었다. “첫째, 허락 없이 제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둘째, 바느질방에 있는 물건은 함부로 만지지 마시고요. 셋째,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만 드립니다. 넷째, 손님이 오시면 괜히 이상한 말씀 하지 마세요.” 해온은 작은 목판에 붓으로 글씨를 적으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서령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청운산의 바람을 다스리는 상선이 인간 여인의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지만, 정작 그는 조금도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다섯째, 밤에는 조용히 해 주세요. 저는 새벽까지 바느질하는 날이 많거든요.” “밤에는 무엇을 하면 안 되느냐?” “시끄럽게 굴지 마시라고요.” “시끄럽게 굴 생각은 없다.” “어제는 바람으로 창문을 전부 열어 놓으셨잖아요.” “답답해 보여서 그랬다.” “그 바람 때문에 제가 정리해 놓은 실타래가 전부 엉켰어요.” 서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미안하군.” 해온은 붓을 멈췄다. 이 신선은 참 이상했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사람처럼 굴더니, 막상 잘못을 지적하면 생각보다 쉽게 인정했다. 다만 사과한 뒤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은 얼굴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온이 목판을 내려놓았다. “숙박비는 선불입니다.” 서령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어제 금을 주지 않았느냐?” “그건 날개옷 수선비고요.” “그렇군.” “숙박비는 별도예요.” “얼마를 원하느냐?” 해온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낯선 남자를 집에 들이는 일 자체가 마음
“바람이 불 때마다 실이 엉키기도 했고요.” “…….” “아, 바늘이 부러진 적도 없어요. 그건 좀 신기했네요.” 서령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신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손가락 끝에는 바늘에 찔린 흔적이 여럿 남아 있었고, 손등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해온의 오른손이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어?” 손바닥에 닿은 온기가 낯설었다. 서령은 수많은 인간을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손을 잡은 적은 드물었다. 인간의 체온은 쉽게 식었고, 그들의 생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짧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여인의 손은 놓기가 싫었다. “신선님?” 해온이 눈을 깜빡였다. “제 손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니다.” “그럼 놓아주셔야죠.” 서령은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 짧은 순간이 어쩐지 아쉬웠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 밤, 서령은 마침내 날개옷을 되찾았다. 그는 바느질방 앞에 서서 은백색 옷을 어깨에 걸쳤다. 달빛 아래 비단이 길게 펼쳐졌고, 잔잔하던 공기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해온은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정말 신선이셨네요.” “이제 믿겠느냐?” “예.” 해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신선님.” “말해라.” “수선비는요?” 서령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내일 가져오마.” “정말이죠?” “신선은 거짓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럼 내일 기다릴게요.” 그 말에 서령의 웃음이 멎었다. 기다린다. 누군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말을 듣는 것이 얼마 만이던가. 천계에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를 두려워하거나, 필요로 하거나,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고작 수선비 때문에 내일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청운산에는 오래된 금기가 하나 있었다. 달이 둥글게 차오르는 밤에는 계곡으로 내려가지 말 것. 물 위에 떠 있는 비단을 발견하더라도 손대지 말 것. 그리고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옷을 발견한다면, 절대로 집으로 가져오지 말 것. 윤해온은 그 세 가지 금기를 한꺼번에 어겼다. “아니, 이렇게 좋은 비단을 물에 떠내려 보내라고?” 그녀는 젖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린 채 계곡 한복판에 서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차오른 물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해온의 시선은 물가의 바위에 걸린 옷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은백색 비단이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옷감에는 금실인지 은실인지 모를 가느다란 선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소맷자락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물결처럼 흔들렸다. 평생 바느질로 먹고살아 온 해온이었지만 이런 옷감은 처음이었다. “대체 어떤 부잣집 도련님이 옷을 이렇게 험하게 입고 다니신담.” 해온은 한숨을 쉬며 옷을 건져 올렸다. 오른쪽 어깨에서 등판까지 길게 찢어져 있었고, 옷깃 안쪽에는 붉은 얼룩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손끝으로 천을 살피던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얼룩은 물에 씻기지 않은 피처럼 보였다. 그 순간, 계곡 위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이상한 바람이었다.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데 해온의 손에 들린 비단만 허공으로 부풀어 올랐다. 마치 누군가 옷 안에 들어가 팔을 펼치는 것 같았다. “……뭐야?” 해온이 놀라 손을 놓으려는 순간, 옷자락 안쪽에서 은은한 금빛이 번졌다. 빛은 그녀의 손목을 한 차례 휘감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온은 한참 동안 멍하니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비단이 비싸서 그런가.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옷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날 밤, 청운산 정상에서는 천 년 동안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던 봉인석에 가느다란 금이 생겼다. 사흘 뒤. 달실방에는 낯선 사내가 찾아왔다. 바느질을 하던 해온은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