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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카피바라 1호
장재경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심은하를 대충 내쫓았다.

그는 심은하가 질투 때문에 그러는 거로 생각했다. 심은하는 장재경이 자신을 위해 라서윤을 포기할 거로 생각했던 것일까?

심은하는 결국 그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를 제외하고 누가 무능력한 심현수에게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심은하가 룸을 나서기도 전에 장재경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가 깨어났을 때 룸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예전에는 심은하가 늘 취한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오늘은 오지 않은 것일까?

어젯밤 마셨던 술이 별로였던 것인지 장재경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심은하에게 어디에 있는 거냐며 따져 묻기도 귀찮아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심은하는 짐이 많지 않았기에 일찌감치 짐 정리를 마치고 집에서 나온 상태였고 장재경도 집의 물건이 줄어들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 대신 거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교복이 눈에 띄었다.

교복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수놓여 있었는데 교복을 펼쳐본 장재경은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건 그의 고등학교 때 교복이었다.

교복은 오래전 잃어버렸다.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 뒤로는 겉옷을 입고 다닐 수가 없었고 그 탓에 담임 선생님께 몇 번이나 꾸중을 들었었다. 그런데 잃어버렸던 교복이 왜 갑자기 그의 집에 나타난 것일까?

그러나 장재경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머리가 너무 아파 위층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소파에 누운 채 잠이 들었다. 어젯밤 그는 라서윤을 마중 나가려 했지만 집안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공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그를 막았다.

또 장재경은 집에 돌아와 심은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친구들을 불러 같이 술을 마셨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라서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늘 밤 만나야겠어.’

그는 라서윤을 꼭 만날 생각이었다. 심은하가 어디로 가는지는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그들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죽어도 상관없었다.

거울 앞에서 심은하는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다. 옷이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꽤 마음에 드는 붉은색 치마를 보았고 결국엔 입지 않았다. 장재경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깊이 박힌 탓이었다.

“어떤 남자가 너처럼 싸구려 같은 여자를 좋아하겠어?”

장재경이 일부러 독설을 날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심은하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주재원과 장재경은 비록 앙숙이긴 하지만 동일한 계층의 사람이니 어쩌면 주재원 또한 장재경처럼 그녀를 싸구려 같다고 생각할지 몰랐다.

결국 한참을 망설이던 심은하는 자신의 붉은 치마를 깊숙이 넣어두고 장재경이 직접 골라주었던 흰 원피스를 입었다.

주재원과의 약속 시간은 한 시간 뒤였기에 뭘 입고 나갈지 빨리 결정해야 했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뒤 심은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고 입술이 창백한데도 투명한 립글로스만 발랐다.

심은하는 장재경에게서 벗어났는데 또 다른 남자에게서 싸구려 같다고 비난받을까 봐 진심으로 두려웠다. 그런 일을 당할 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청순한 스타일로 나가는 게 좋을 듯했다.

정리를 마친 뒤 심은하는 택시를 타고 주씨 가문에서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룸 앞에 도착한 심은하는 심호흡을 한 뒤 노크했고 3초 동안 기다린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심은하는 라서윤을 발견하고 눈에 띄게 당황했다.

주재원과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는가? 왜 라서윤이 이곳에 있는 것일까?

라서윤은 심은하를 잠시 훑어보다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경이 만나러 온 거예요? 재경이 화장실 갔어요. 금방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몇 년이나 흘렀음에도 라서윤의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흰옷을 입은 그녀는 여전히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에 입술 색도 아주 자연스럽게 살짝 붉은빛이 감돌았다.

청순한 스타일이 오로지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심은하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스타일의 심은하를 본 라서윤은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 있는 동안 라서윤은 장재경이 자신의 대체품을 찾아서 곁에 두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대체품이 아마 눈앞의 여자일 것이다.

“아뇨. 잘못 들어왔어요.”

심은하는 서둘러 부인했다.

조금 전 그녀는 자신이 실수로 6번을 9번으로 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장재경도 마침 이 레스토랑에 있을 줄은 몰랐다.

심은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혹시라도 장재경과 마주쳐서 자신의 기분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심은하가 떠나려 하자 라서윤은 조금 불쾌했다. 이때 장재경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보게 된 그녀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재경아, 네 친구가 널 찾아왔어.”

“심은하?”

빨리 걷긴 했지만 그럼에도 심은하는 장재경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재경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심은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장재경의 경멸 가득한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잖아. 그런데 벌써 후회하는 거야?”

그는 마치 오랫동안 보살펴 왔던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심은하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장재경에게 심은하는 애완동물과 다름없었다.

오늘 술에서 깬 장재경은 많은 일들을 잊었지만 심은하가 룸 안에서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하던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났다.

헤어지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라서윤이 아니라면 누구와 결혼하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심은하의 눈이 라서윤의 눈과 똑같게 생겨 심은하와 결혼하면 결혼 생활이 너무 무료할 것 같지 않았을 뿐이다.

장재경은 참을성 있게 여자를 달래주는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어찌 됐든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잘못 들어온 거야.”

심은하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운 나쁜 일은 왜 그녀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잘못 들어왔다고?”

장재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핑계를 댈 생각이라면 조금 더 그럴싸한 핑계를 대. 여긴 VIP 전용 룸이야. 심씨 가문이 어떻게 이곳의 VIP가 될 수 있어? 날 찾아온 거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그 옷을 입고 왔으면서 날 찾아온 게 아니라고?”

장재경은 심은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심은하는 청순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고 안색이 좋지 않음에도 그가 룸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진한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다. 심은하는 그의 말이라면 껌뻑 죽으면서 왜 같잖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마음대로 생각해.”

심은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였어도 이런 우연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니 장재경이 오해하는 것도 정상이었다.

심은하의 말을 들은 장재경은 그녀가 묵인했다고 여겼다.

“풉... 역시 후회되나 보네. 네가 헤어지자고 했으니 우리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꺼져.”

장재경은 라서윤의 옆에 앉으면서 긴 팔로 라서윤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눈빛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비록 심은하를 보내주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옆에 라서윤이 있으니 표현을 좀 해야 했다.

심은하가 앞으로 생각을 바꾸고 그를 찾아와 진심으로 애원한다면 그녀와의 결혼을 재고할 것이다. 라서윤과 결혼할 수 없는 장재경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혼 상대는 심은하이니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네.”

말을 마친 뒤 심은하는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라서윤을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았다.

예전에는 라서윤의 물건을 전부 찾아내서 그녀와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는데 이젠 라서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라서윤의 앞에 서 있으려니 죽을 만큼 창피했다.

“재경아, 너 너무 차갑게 구는 거 아냐? 너 앞으로 저 여자랑 결혼해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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