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몇 시간이 흐른 뒤.출산을 끝내고 필요한 회복과 관찰을 마친 시아가 1인 병실로 옮겨졌다.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을 지경이었다.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아랫배가 묵직하게 당겼다.그래도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는 사실에 마음만큼은 한없이 가벼웠다.가족들 모두가 와 있었다.그녀의 삼촌은 결혼 이후로 한 번 더 눈물을 흘렸다.“시아야. 잘했다. 널 닮은 예쁜 딸이야.”삼촌이 시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 주었다.“삼촌, 왜 또 울어요.”“안 운다.”안 운다면서 눈가를 훔치는 손등이 벌써 축축했다.시아가 작게 웃었다.“나 잘했죠?”“그래. 잘했다.”삼촌이 시아의 손을 잡고 한참을 놓지 않았다.그 옆에서는 할아버지가 껄껄대며 증손주 자랑을 시작했다.눈이 어떤지, 코가 어떤지, 그 귀엽고 작은 입은 어떤지 아주 구구절절했다.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아이를 두고 누구를 닮았느니, 벌써부터 미인이니 하며 한참을 떠들었다.이태가 그들을 막아서며 아이나 보러 가라고 했다.“시아 씨가 쉬어야 합니다. 아이는 신생아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그 말에 가족들이 하나둘 병실을 나섰다.마지막까지 시아를 돌아보던 삼촌도 이태에게 눈짓을 건네고는 문을 닫았다.병실이 조용해졌다.이태는 시아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뻐근한 어깨를 조심스럽게 주물러 주었다.시아가 침대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이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시아가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시선이 따라왔다.“왜 그렇게 봐요?”“그냥요.”“저 여기 있어요.”이태가 작게 웃었다.“압니다.”그러면서도 시아의 손은 놓지 않았다.“둘째는 없습니다. 제가 못 버티겠습니다.”이태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할 만... 아냐, 둘째는 없어도 될 것 같아요.”시아가 말을 꺼냈다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까지 온몸이 찢어질 것 같던 고통이
“같이 가자.”머뭇거리던 악녀 0번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작은 손끝이 시아의 손바닥에 닿았다.움찔.아이의 손이 멈췄다.시아도 움직이지 않았다.손끝에 닿은 미약한 감촉만이 남아 있었다.잠시 후, 작은 손가락이 하나씩 움직였다.그리고 마침내 시아의 손을 꼭 잡았다.흐릿한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아 보였다.시아가 아이의 손을 마주 쥐었다.따뜻했다.끝없이 하얗기만 하던 공간에서 아이의 온기만은 선명했다.시아가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가자.”문이 더욱 작아졌다.시아가 이를 악물고 악녀를 데리고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삑. 삑.귓가에 규칙적인 기계음이 들려왔다.“산모님! 정신 드세요!”시아가 눈을 번쩍 떴다.눈앞에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산모님, 제 말 들리세요?”시아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의료진이 재빨리 시아의 의식과 상태를 확인했다. 몇 마디가 오가고, 곁에 있던 의사가 다시 시아를 불렀다.“좋아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다시 거대한 통증이 밀려왔다.“끄아아아악!”아니, 또?끝난 게 아니었어?시아가 이를 악물었다.조금 전까지 잡고 있던 작은 손의 감촉이 아직도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시아가 손가락을 움켜쥐었다.분명 잡았어.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고.“좋아요! 조금만 더 힘주세요!”시아가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온몸의 힘이 빠져 손끝까지 덜덜 떨렸다.그런데 조금 전 하얀 공간에서 함께 뛰쳐나왔던 아이가 떠올랐다.같이 가자고 했잖아.시아가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배에 힘을 주었다.“끄아아아악!”그녀의 단말마 같은 비명 끝에 쑤욱 아이가 나왔다.순간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풀렸다.시아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끝났나?진짜 끝났나?잠시 후 아이가 시끄러운 울음을 터트리며 건강한 목소리를 뽐냈다.“응애, 응애!”시아가 고개를 돌렸다.작고 붉은 아이가 팔다리를 움직이며 울고 있었다.저렇게 작다고?뱃속에서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아와 이태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한 번 아이를 잃었던 이태가 조심스럽게 시아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손바닥 아래로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혹여 힘이라도 들어갈까 손끝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까?”만삭으로 불러온 배 위로 아기가 뻥 하고 발을 차자 시아의 살 위로 아기의 발 모양이 보였다.불쑥 튀어나온 작은 발에 이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방금…….”놀라우면서도 감탄이 나오는 그 광경에 시아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어떻게 알았는지 한 번 더 뻥 하고 발로 찬 아이가 시아의 뱃속에서 다시 조용해졌다.이태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시아가 웃음을 터트렸다.“인사하나 봐요.”이태가 천천히 배를 내려다보았다.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것만 같았다.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이태는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그냥 이제 빨리 낳고 싶어요. 숨쉬기가 힘들어.”시아가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고, 누워 있어도 편한 자세를 찾기 어려웠다.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한참이 걸렸다.“내일이 유도분만하는 날이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무서워 죽겠습니다.”정작 배가 아픈 사람은 시아인데 이태가 더 공포에 질려 있었다.시아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아니, 내가 낳는다니까?이태가 베개를 가져다 시아의 등 뒤에 받쳐 주었다.시아가 편하게 기대자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했다.시아는 다시 배를 쓰다듬었다.내일이면 드디어 이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병원에는 산모들의 신음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복도에서 비명이 들릴 때마다 이태의 어깨가 움찔거렸다.시아가 그의 손을 잡자 이태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얽어 왔다.손바닥이 축축했다.시아가 피식 웃었다.정말 누가 보면 본인이 출산하는 줄 알겠네.“이태 씨, 제가 만약 아이를 낳다가 의식을 잃어도 아이만은 꼭 지켜 주세요. 그것만 약속해 줘요.
이태와 시아가 도윤의 결혼식을 마치고 드레스를 맞추러 먼저 나갔다.순백의 반짝거리는 드레스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고, 시아의 화장은 완벽했다.커다란 거울 앞에 선 시아가 드레스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평소에는 입어 볼 일도 없는 옷들이라 무엇부터 골라야 할지 고민이었다.시아가 제일 처음 어깨가 시원하게 드러난 웨딩드레스 한 벌을 골랐다.쇄골에 잔뜩 힘을 주고 커튼을 걷자 이태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그의 시선이 드러난 어깨에서 가슴께로 내려갔다가 다시 시아의 얼굴로 올라왔다.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딩.’[퀘스트 : 드레스 트집 잡기성공 시 : 이태의 결혼 준비 만족도 +1 / 실패 시 : 이태의 결혼 준비 만족도 -1]엥?어떤 트집을 잡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아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내뱉었다.“가슴이 너무 조이네요. 다른 거 보여 주세요.”이태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엔 쇄골 라인을 따라 어깨에 걸쳐진 드레스를 입었다.이태의 표정 또한 한결 밝아졌다.이번에도 시아가 트집을 잡았다.“어깨가 너무 불편해요.”불평이 늘 때마다 원단의 부피는 점점 늘어났다.어깨를 가리자 이태의 입가가 풀렸고, 가슴께를 덮자 고개를 끄덕였다.결국 시아의 목까지 덮은 하얗고 담백한 드레스가 되었을 때, 이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시아 씨, 너무 잘 어울립니다!”아….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거울에 비친 자신을 살펴보았다.단정하고 우아했다. 그런데 아까 처음 입었던 드레스가 자꾸 눈에 밟혔다.입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그 드레스.시아가 고개를 돌렸다.“처음 드레스로 할게요.”‘딩.’[퀘스트 실패 : 이태의 결혼 준비 만족도 -1]이태의 표정이 순식간에 잿빛이 되었다.“면사포. 면사포를 아주 풍성한 걸로 부탁드립니다.”이태의 다급한 외침이 커튼 뒤로 울려 퍼졌다.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시아를 쳐다봤다.“그렇게라도 해 주세요.”반쯤 포기한 시아가 한발 물러났다.드레스 하나 고르는데 이렇게까지
시간이 흘러 따뜻한 봄이 되고, 도윤의 결혼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시아가 식장에 입고 갈 옷을 고르며 거울 앞에서 패션쇼를 했다.부케를 받아야 하니 얌전하면서도, 사진을 찍어야 하니 화려한 옷으로.“이태 씨, 이거 어때요?”“예쁩니다.”입는 것마다 예쁘다고만 말하는 저 AI 같은 인간 때문에 패션쇼가 계속되고 있었다.결국 우아한 검은색 플레어 원피스를 고른 시아가 머리를 틀어 올리고 고풍스러운 진주 귀걸이를 선택했다.이태는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했지만 시아의 귀에는 진실되게 들리지 않았다.이태는 신기한 듯 올려 묶은 시아의 머리카락을 만졌다.“진짜 예쁩니다.”드러난 목덜미를 따라 손을 쓸어내려 진주 귀걸이도 만져 보고, 더 내려가 잘록한 허리에도 손을 올렸다.움찔거린 시아가 선을 그었다.“이태 씨, 내일 저 부케 받아야 돼요. 팩 하고 잘 거예요.”이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본인 결혼식도 아닌데 보통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나?이태가 볼에 입맞춤을 하고 시아에게서 떨어졌다.분주히 팩을 붙이는 시아를 보며 이태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시아 씨, 내일은 저희 드레스도 맞추러 가야 합니다.”“그게 더 기대됩니다.”이태가 웃으며 눈을 감았다.무언가 부산히 움직이던 시아도 이태의 옆에 누웠다.“저도요. 잘 자요.”시아가 조금 설레서 잠을 설쳤지만 다음 날 완벽한 피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그 어느 날보다 집중해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올려 묶었다.대충 정장을 입어도 모델 같은 이태가 아무거나 입고 나왔다.시아가 위기감을 느끼며 거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시아 씨, 가야 합니다.”2퍼센트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계속 앞뒤를 살피던 시아가 이태를 향해 말했다.“조금 더 파인 옷을 입을걸 그랬나?”이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시아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분주히 나갈 준비를 했다.웨딩홀에는 떡하니 지훈이 축의금 봉투를 받고 있었다.아….시아가 과거의 시아를 욕했다.“지훈 씨, 오랜만이에요.”시아가
한 달이 조금 넘어서 시아는 드디어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오랜만에 병원복 대신 자신의 옷을 입었다.시아가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살폈다.여전히 야윈 얼굴이었다.그래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퇴원 수속을 마친 이태가 짐을 챙겨 들었다.시아는 당당히 걸어서 병실 밖으로 나왔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 병원 정문을 향했다.자동문이 열리자 바깥의 상쾌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모두가 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멀리서 도윤이 손을 번쩍 들었다.주여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삼촌은 두 사람 옆에 서서 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시아가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마음은 벌써 저만치 앞서갔다.그러나 다리는 아직 따라주지 않았다.한 번 크게 휘청이자 이태가 재빨리 허리를 잡았다.“시아 씨! 뛰지 마십시오!”“안 뛰었어요!”“방금 뛰셨습니다!”“뛰려고만 했거든요!”이태가 잔소리를 내뱉었다.시아가 입을 삐죽이며 다시 발을 내디뎠다.삼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시아가 그 손을 잡았다.“잘했다.”“당연하지!”시아가 환하게 웃었다.도윤과 주여도 달려와 그녀를 둘러쌌다.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갇혀 버린 시아가 행복한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봤다.푸르른 하늘에 상쾌한 공기.정말 퇴원하기 좋은 날이었다.‘딩.’[퀘스트 성공 : 시아가 부케받음!]남은 할부도 있었고, 일도 너무 오래 쉬었다.시아는 바로 복귀하고 싶어 했다.물론 이태는 적극 반대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시계 할부가 안 끝났는데요.”“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심지어 이태의 집이었다.어느새 시아의 집안 물건은 이태의 집에 옮겨져 있었다.“어쩌다 집을 합치게 된 거죠? 제 집은 어떻게 했어요?”“보증금으로 삼촌 집 마련해 드렸습니다.”시아의 입이 다물어졌다.“혹시… 내 통장도 봤어요?”이태가 대답하지 않았다.으아아악!다 들켜버렸다.시아가 내적 절규를 내뱉었다.“그럼 내가 왜 일하려는지도 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