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러니, 지금의 만남은 따지자면 에이든의 입장에서는 10년만에 만나는 두번째 만남이자, 의식이 있는 루시와는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였다.
"안녕하십니까, 공작 부인."
루시아는 눈을 뜨자 저를 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의 놀랐다. 공작부인이 잠든 걸 지켜보는 외국인 대공?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그녀가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사람들은 물렸습니다."
그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전한 조심스러운 성격이 반가웠다.
"그렇군요,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하우젠 대공 전하."
그와 거리를 두려는 듯 강조하는 대공 전하라는 호칭이 가슴 아팠다. 그걸 모른 척 하면서 태연하게 에이든이 말을 이었다.
"눈 앞에서 쓰러지셨잖습니까, 너무 걱정이 되어서요."
대공이 누구에게나 다정한 성품이라고는 들었으나 그것이 저에게도 해당될지는 몰랐던지라 루시아가 느리게 눈을 껌뻑였다.
"걱정이요?"
그녀가 낯선 외국어를 들은 것처럼 한번 더 발음했다. 공작가에 들어온 이후로 셀레나 이외의 누군가가 저를 걱정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후사를 못낳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루시아라는 여자의 몸이 걱정되는 것같은 눈이었다. 분명한 호의가 담겨있었다. 왜지? 처음본 사람인데.
"공작부인의 명성은 나스에도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건 비꼬는 것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루시아가 푸른 눈동자를 곧게 마주해왔다.
"제 잇속도 못차리는 바보같은 여자라고요?"
에이든이 말을 정정했다.
"모지리 남편을 품어주는 다정한 여성이라고요."
모지리. 누가봐도 데미안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루시아는 잠시 인지부조화를 겪었다. 지금 누구더러 모자라다고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들여다보니 그가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농담인 모양이었다.
"놀랐습니다. 그런 장난은 하지 말아주세요."
사실 에이든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여성 인권이 몇년 사이 부쩍 높아진 나스에서는 짝사랑에 눈이 멀어 아내를 방치하는 남편 벨루아 공작과 그럼에도 그의 곁을 지키는 공작부인의 이야기에서, 대부분 국민들이 루시아의 편을 들었다.
왜냐하면 왕정일 시대에는 그들 나라의 귀족들도 정부를 들이는 일이 잦았기에. 이제와서 인식이 높아지고 나서는 많은 여성들이 신분에 무관한 연애결혼을 택하면서 대개 남편에게 존중받는 삶을 살았다. 일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니, 많은 위정자들이 여성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나스는 그런 곳입니다."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루시.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을 생각하며 에이든이 그녀에게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제 머리카락을 한번만 만져주세요. 부인."
루시아가 귀를 의심했다. 그가 제법 간절한 어투로 말했다.
"......"
어차피 보는 이들도 없었다. 애끓는 푸른 눈을 보자면 어쩐지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어졌다.
"알겠어요, 대공 전하."
그녀가 이제는 조약돌보다 큰, 그러나 여전히 갸냘픈 손을 들어 그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비볐다. 사락사락 소리가 났다. 햇빛이 비치고, 금빛으로 물든 그의 머릿결은 아주 오래된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디디.
잊을 수 없는 루시의 소년. 떠나버린 그녀의 푸른 눈. 디디가 자라 어른이 되었다면 꼭 대공처럼 자랐을 것같았다. 다부지고, 그러나 다정한. 제가 못생겨도 상관없다고 말하던 확신에 찬 모습이 생각났다. 자주 디디의 머리카락을 비비며 놀았다. 레이루나에게 사소한 실수로 혼나고 오더라도 그러고 있노라면 가느다란 금빛 실이 전부 제 손에 들어온 것같아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
에이든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때 루시아가 천천히 물었다.
"디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환청이 들렸다고 애써 제 기대를 불식시켰는데, 루시가 다시 한번 성급하게 그를 불렀다.
"디디야?"
에이든이 고개를 쳐들었다. 어느새 그의 눈가가 붉었다. 처연했다. 루시가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입을 막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맞구나."
루시. 그의 루시였다. 차마 손대지 못한 그가 겨우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 루시."
그가 돌아왔다. 루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마리아는 요즘들어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같다고 느꼈다. 시녀들에게 물어도, 카이사르에게 재촉해도 아무런 일도 없고 그녀는 완전하게 안전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이 세상은 항상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렇다고 믿었다.자신이 ‘예언서’를 받고 거기에 적힌대로 그대로 실행해왔을 때, 결국 황제인 카이사르를 택하고, 데미안의 사랑을 저버리긴 했지만 원래 ‘남자주인공’이라는 카이사르가 데미안을 이기는 게 맞는 결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사실 루시아 벨루아는 여름에 죽은 아이를 낳고 절망하여 자진 시도를 하고 질투를 하다 미쳐간다. 결국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다가 데미안의 손에 살해당하는 것이 마지막 결말이었다. 그런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겨울의 왕’이 등장한 무렵부터였다. 그 남자는 마치 마리아 지젤이라는 인물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처럼 오직 루시아 벨루아를 위해서만 움직였고,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향해 매혹되던 것에도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벨루아 전 공작부인을 데려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기까지 했다.그렇게 루시아가 제국을 탈출하듯 도망치고 나서부터 마리아의 주변에 기묘한 일이 생겼다. 밤이면 그녀의 황궁에 그녀를 질투하다가 카이사르의 손에 죽었던 옛 후궁들의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고, 실제로 그런 환청을 마리아도 몇 번 들었다.정확하게‘마리아 지젤’이라고 연신 부르는 것을 시녀마저 듣고 그 다음날에 자신마저 들었을 때에는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공포스러워 카이사르에게 몇 번이나 경비를 강화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질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실제로 무언가를 해주지는 않았다. 마리아는 복도에서 데미안을 만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그런 사정을 눈물 흘리며 이야기하곤 했는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원래 해왔던 일임에도 데미안은 갑자기 얼굴을 굳히고는 공작이라고 칭해달라며 자리에서 급하게 물러났다. 마치 무언가 떠오르고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어떤 과오들에서
데미안 벨루아는 ‘그’ 결혼식 이후의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미쳐가고 있었다. 루시아 아르테미스가 제 곁에 없다는 것 하나만이 유일한 변화였음에도.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번도 이 저택에서 존재감을 찾을 수 없던 여자의 부재가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점점 더 긁어내리고 있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았고, 아주 소량의 음식도 먹지 않은 채 술에만 의존했다. 자신조차 왜 스스로가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공작가의 의무만을 가주로서 이행하는 것 빼고 데미안 벨루아라는 인간은 철저하게 점점 더 메말라가고 황폐해져 갔다. 친우의 모습에 놀란 카이사르가 직접 그를 한밤중에 변복을 하고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황제는 그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리아에게, 자신도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황후에게 여전히 마음을 빼앗긴 이가 아니었던가. 보잘것없는 백작가의 여식 하나가 제국의 벨루아를 상징하는 남자를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녀가 전혀 의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이제 와 사랑이라도 하는 것같이 굴지마.”카이사르도 차마 지금껏 루시아에게 저질러 온 짓이 있어 이제와 데미안의 마음을 응원해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외국에 갔으니 그렇게 보내주고 데미안이 마음을 내려놓는 게 맞아 보였다.“사랑이 아니야.”데미안은 그것마저도 부정했다. 애초에 자신이 그런 하찮은 여자를 사랑할 리가 없었다. 그가 했던 사랑은 고귀한 마리아 지젤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 느끼는, 이 광증같은 것은 제 아래에 있던 소유물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불쾌함이다.“감히, 아르테미스 따위가 내 뒤통수를 친 데에 대한 분노일 따름이지.”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여자를, 그가 내내 부서지도록 망가뜨린 여자를 사랑이라도 한다고 한다면 그를 향한 저열한 혐오감이 치밀까봐 그게 싫어서 방어적으로 굴었다.그래서 남자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 루시아는 한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불공평한 게임이라고 생각
에이든은 마차에 오를 때조차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평소처럼 다정했다. 마치 그들이 아무런 일을 겪지 않은 것처럼. 그것이 루시아에게는 어쩐지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남자는 더없이 외로워보였다.“다 왔어. 루시.”그가 그녀를 내려준 곳은 넓고 투명한 호숫가였는데 그 옆에 자그마한 비석이 놓여있었다. 오래된 듯 희미하게 바랜 글씨로 에드윈 나스 하우젠이라고 적혀있었다.“에드윈 하우젠. 이게 진짜 디디의 이름이구나......”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혹시라도 황족인 게 들킬까봐 내내 입을 다물던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형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 하던 그녀의 소년은 이제 이곳에 묻혀 바람이 머물다 가는 호수의 풍경을 매일 감상할 것이었다.“나스라는 중간 이름 조차 받지 못했지. 두 번째 황후였던 어머니의 태에서 났지만 황태자인 티베리우스가 반대했다는 이유로.”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황족인데 반쪽짜리 취급을 받았다는 것 아닌가?“어째서요?”에이든이 쓸쓸하게 웃었다.“내가 그 애를 아꼈거든.”그건 일종의 인질이었다. 자주 앓고 유난히 건강이 안좋았던 에드윈의 약을 제조해주는 대신 이러저러한 전투에 그를 내보내는 일이 잦았고, 그러한 공은 결국 황태자인 티베리우스에게 돌아갔다.에드윈이 국경 바깥으로 납치되어 아르테미스 가에 갔을 때 에드윈을 찾기 위해 하우젠 령에 직접 가기로 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기적적으로 돌아온 에드윈의 상기된 뺨이 생각난다. 아직도 그 어린 아이의 몸집이 품에 안길 것처럼 생생하다.“루시아, 네 덕에 나는 내 동생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어.”돌아오고 나서 다시 가을을 맞지는 못했다. 병석에 누워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가족들의 곁에 돌아와 있던 시기가 너무나 좋았다고 했다. 에드윈이 열에 들떠 새벽 내내 지새우더라도 꼭 아침 식사는 다 함께 하자며 고집을 부려대는 통에 다같이 아침 식사를 했었다.그러면 에드윈이 대개 루시아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루시아의 검은 머리가 밤하늘처럼 탐스러웠다. 그녀를 안고 밤새 나스로 향하는 국경을 달리고 싶어 전후처리도 하지 않고 왔지만 이미 그녀의 손에는 벨루아의 반지가 껴진 후였다.루시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애초에 레이루나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분명 자신에게 구혼을 한 남자는 데미안 벨루아 뿐이라고.“하지만, 어머니는 벨루아 공작 밖에는 구혼을 하지 않았다고......”에드윈의 존재를 알고도 루시아의 명예에 흠이 갈까 일부러 침묵했던 당시의 레이루나가 그들의 계획에 방해가 될 에이든의 존재를 루시아에게 알렸을 리 없다.“네가 여름에, 사경을 헤맸다고 했을 때 차라리 내가 목을 매달테니 살려달라고 신께 빌었다면 믿어줄거니?”그는 비가 내리는 호우를 뚫고 벨루아 저택을 갔었다. 벨루아 저택의 앞까지 가서도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지내며 다만 신문에 루시아가 쾌차했다는 소식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스로 돌아왔다.그 모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했다.“나는 에드윈이 아니지. 너의 디디가 아니야. 네 소년은 될 수 없었어. 그럴 기회도 없었고, 그럴 운명도 아니지. 하지만 루시아. 그 애만큼이나 오랫동안, 나도 너를 바라왔다면 두 번째 기회를 줄 순 없을까?”그가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그녀의 손등에 다시 조용히 이마를 갖다댔다. 아주 성스러운 무언가를 만지듯이.“에드윈의 묘에, 가고싶어요.......”그는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가슴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난 것같았다.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것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상황은 달라진 게 없이 다만 그저 눈앞의 여자가 저에게 자신의 곁을 허락했을 뿐인데 말이다.“날이 밝으면, 함께 가자. 호수에 있어.”루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이든과 똑같이 꿇어앉아 시선을 맞추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어느새 에이든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루시아.”“잘자요, 디디.”그는 그녀가 정말로 저를 죽
루시아가 진실을 알게 되고서 이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혼인이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벨루아에서 저를 빼오고 싶어했던 에이든을 위해서도. 그곳에서 시들어가던 자신을 위해서도. 이제 막 야간대학의 꿈을 키우는 셀레나를 위해서도그래서 루시아는 다음날 새벽에 침실로 오지 않는 에이든을 찾아갔다. 요즘 며칠째 집무실에서 엎드려 자며 그녀가 머무는 대공부부의 침실에는 오지 않는 그를 찾아.“에이든.”그녀는 더이상 그를 디디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어쩐지 차라리 속이 시원해진 에이든은 눈을 감은 척 하면서 계속 엎드려 있었다.“눈 뜬 거 알아요. 일어나요.”에이든은 조용히 팔로 기지개를 펴며 그녀에게 능청스럽게 굴었다.“무슨 일이야, 루시?”“당신하고 할 얘기가 있어요.”그라고 해서 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걸 티 냈다가는 정말로 루시아에게 조금의 여지라도 줄까봐. 그는 확신이 있는 척 꾸며내었다. 그녀가 그의 곁에 남아야 이득이 있을 테니 절대 떠날 리 없는 것처럼. 사실은 서슬퍼런 안색으로 겁에 질려 떨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나 애를 쓰면서.그녀가 더이상은 이런 연극은 못하겠다고 할 까봐, 처절하게 붙잡고 싶은 주제에.“에이든, 계약서를 썼으면 해요.”에이든은 귀를 의심했다. 계약서?루시아가 제법 비장해보이는 표정으로 서 있어서 그는 그녀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혼인계약서를 말하는 건가?”그가 미세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루시아는 그걸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당신하고의 혼인을 무르겠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무엇을?그는 감히 물어보고 싶었다.그럴 주제가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마음 속을 파헤치고 싶었다.“에드윈의 존재에 대해 묵인했던 걸 사과받고 싶은 거라면....”그는 언제든 그것에 대해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녀의 손에 쥐어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루시아로 인해 하우젠 령의 가정 방문 조사는 내일로 미뤄졌다.“무슨 일일까.”윌에게 에이든이 문득 중얼거렸다. 루시아는 괜찮다는 듯 하지만 쓸쓸한 표정으로 그에게 손을 내저었다. 한순간에 느껴지는 거리감에 저절로 섭섭함이 밀려왔다.“부인께서 무언가 바쁘신 일이라도 생각나셨나 봅니다.”윌은 으레 그렇듯 별거 아닐 거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답변이 되지 않을 정도의 무신경한 대답이었다. 그에 에이든이 미세하게 눈을 찌푸렸지만, 윌은 역시 개의치 않았다.에이든은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실은 그는 에드윈으로부터 루시아에 대해 전해듣고 환상을 가지고 사랑에 빠졌을 따름이지 기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는 두 사람은 열렬히 서로를 향한 자신의 감정에 취해있어서 에이든은 다만 한숨을 삼키고 저녁에 루시아를 한번 더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할 밖이었다.***어둑어둑한 새벽, 루시아는 에이든에게 침실을 오늘만큼은 따로 쓰자고 말해두었다. 그마저도 에이든에게 셀레나가 찾아와 대신 전달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는 어디가 아픈 거라면 의사를 부르겠다고 했지만, 루시아는 그저 됐다고 하며 저녁도 물렀다. 친구의 얼굴에 미세하게 그늘이 졌다. 루시아는 그걸 알고도 그저 슬프게 웃었다.낮에는 도서관에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3황자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러니까 루시아가 추측하건대 아마도 진짜 그녀의 ‘디디’일 그 아이에 대해서.족보는 멀지 않은 칸에 있었다. 티베리우스가 첫째, 에이든이 둘째. 그리고 막내, 에드윈 하우젠.살아있었던 연도가 적혀있었다. 세상을 떠난 지 겨우 10년 안팍이었다.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책은 적어도 그렇게 말했다. 루시아는 족보를 책상 위에 소리나지 않게 놓아두고 숨죽여 울었다.안쓰러운 그 애를 생각하며. 그리고 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생각하며.그리고 새벽, 복도에 가려진 천을 힘껏 거둬 내린 루시아가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