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방 안에는 짙은 정염의 밤꽃 냄새와 가쁜 숨소리만이 고요히 감돌았다. 도진은 연화의 무릎에 이마를 파묻은 채,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떨고 있었다. 백옥 같던 뺨은 눈물과 침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단정하던 상투는 풀려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하아…… 하…… 으흑……."
사대부의 긍지도, 종이품 참판의 위엄도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진 처참한 꼴이었다. 연화는 제 무릎 위에서 흐느끼는 도진의 등을, 마치 젖먹이 아이를 어르듯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그 능숙하면서도 은근히 조롱하는 듯한 손길에 도진은 소름이 돋으면서도, 그녀의 온기에 기대고 있는 제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비참했다.
연화는 물수건으로 손가락과 소매에 묻은 끈적한 정액을 닦아내며 낮게 입을 열었다.
"나으리, 이 짓도 오늘로 끝입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요."
도진이 붉게 짓무른 눈을 들어 연화를 올려다보았다. 그 서늘하던 눈매에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 차 있었다.
"무, 무엇이 끝이란 말이냐…… 설마 나를 버리겠다는 게냐?"
"버리는 게 아니라 상황을 보십시오. 오늘 대궐 집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요?"도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연화는 도진의 반응을 보며 피식 헛웃음을 쳤다.
"환부를 만져보면 압니다. 이미 낮에 한 번 격렬하게 발작해서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꼴이더군요. 관복을 입은 채 억지로 짓누르고 계셨지요?"
"그, 그것은……." "저녁마다 사당동 뒷골목으로 숨어드는 것도 하루이틀입니다. 도성 야간 통금 순라군에게 덜미라도 잡히는 날엔, 예조참판이 밤마다 기방도 아닌 암의원 문을 긁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삽시간에 대궐까지 퍼질 겁니다."도진의 목구멍이 타는 듯 바싹 말라붙었다. 평생 갈고닦은 학문과 청렴한 명망이 단 하룻밤의 추문으로 진흙탕에 처박힐 위기였다.
"그것은…… 절대 아니 된다. 가문의 명예와 내 목숨이……."
"명예 이전에 목숨이 문제입니다. 낮에 집무를 보시다가 갑자기 발작하면 어찌하시렵니까? 어전 회의에서 전하와 삼정승 육판서가 다 모인 자리에서 관복을 뚫고 흉물이 솟구치면 어쩌실 겁니까?"연화의 매서운 질타에 도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바싹 말라붙는 끔찍한 파멸의 광경이었다. 임금 앞에서 도포를 뚫고 마물의 양물이 날뛰는 순간, 대간들의 탄핵은 물론 불경죄와 음란죄로 능지처참을 면치 못할 터였다.
"그렇다면…… 내게 어찌하란 말이냐? 침술도 듣지 않고, 오직 네 손길만이 통한다 하지 않았느냐!"
도진이 흐느끼며 연화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울보가 다 된 고결한 참판 나으리를 내려다보는 연화의 동그란 눈동자 속에 영악한 빛이 스쳤다.
"제가 나으리 곁에 늘 붙어 있어야지요."
"뭐, 뭣이라……?" "언제 어디서 발작할지 모르는 흉물입니다. 위급할 때마다 은밀한 곳으로 모셔 즉시 양기를 빼낼 사람이 지척에 상주해야 대낮의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네가…… 내 곁에 늘 있겠다고? 과년한 처자가 사대부의 저택에 대체 무슨 명분으로 들어온단 말이냐!"연화는 말을 멈추고 도진이 생각할 틈을 주었다. 막아야 할 것은 소문만이 아니었다. 도진 역시 그 점을 알아들은 듯 문밖을 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면 낮에도 부르면 올 수 있느냐?"
"그러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연화가 턱을 치켜들며 당돌하게 미소를 지었다.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이지요. 종이품 참판 댁에 침술과 수기 치료에 능한 '전속 침모' 하나 들이는 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늙으신 노마님의 기력을 보양한다는 핑계도 있고요."
도진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천한 침모를 제 집안에 들이는 것은 가문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나, 살기 위해서는 이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연화의 처분을 기다리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사대부의 체면보다 생존이 먼저였다.
창덕궁 인정전의 독주 음모가 수포로 돌아간 후, 좌참찬의 비밀 사가 사랑방에는 음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좌참찬은 탁자 위에 놓인 백자 찻잔을 마루 바닥에 사정없이 내던져 산산조각을 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사기 조각이 사방으로 튀며 서늘한 파열음을 냈고, 찻물이 검게 번져 나갔다."내 십수 년간 공들여 준비한 거사가 고작 일개 참판 놈에게 발목이 잡혀 어그러질 순 없다!""말도 안 된다! 환양술에 극양의 독주까지 먹였거늘, 어찌 어전 회의에서 털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단 말이냐!"그의 맞은편에 앉은 검은 도포 차림의 도사가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감, 배도진의 몸속에 있는 마계의 양기를 누군가 완벽하게 정화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보통의 침술로는 불가능하니, 범상치 않은 특이 체질을 지닌 자가 지척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지척에 숨은 자라니?""배도진의 사가를 샅샅이 감시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 뒤에 숨은 치료자가 있을 터입니다."좌참찬의 눈빛이 북극의 한기보다 차가운 살의로 번뜩였다."배도진 이놈이 내 손에 파멸하지 않는다면, 이번엔 내가 어전에서 역모로 몰려 사약을 받을 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배후를 밝혀내라!"좌참찬이 명령을 내리자 사설 자객들과 밀정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즉시 가회동 참판 댁에 사설 밀정을 붙여라.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드는 것까지 낱낱이 보고하라!"명령이 끝나자 자객들과 밀정들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그 시각, 북촌 가회동 참판 댁 서쪽 별채. 별채 툇마루 위로 밤안개가 낮게 깔리며 서늘한 바람이 대나무 숲을 스산하게 흔들고 있었다. 궁궐에서의 거대한 위기를 넘긴 도진은, 연화의 안위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나으리, 별채 군불이 식어서 장작을 좀 패 와야겠는데요."
도진의 서슬 퍼런 일갈에 좌참찬의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졌다. 기대했던 '음란한 마물에 씐 미치광이'의 꼴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진의 안색은 창백하리만치 차분했고, 관복 앞섶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그렇다면 아까 부를 때 한마디라도 하셨어야지."좌참찬이 혀를 차며 미심쩍게 물러서려 하자, 도진이 펼쳐 든 서책을 내려놓고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대감께서 권하신 서역 보양주가 체질에 맞지 않아 잠시 냉수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던 중이었습니다. 어전 회의가 시작되었으니 어서 편전으로 드시지요. 대감의 무례는 전하 앞에서 친히 시비를 가리겠습니다."도진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서늘한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편전으로 성큼 걸어 나가자, 백관들과 사신들은 도진의 위풍당당한 기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좌참찬과 군사들은 기가 질려 쥐구멍이라도 찾듯 꽁무니를 뺐다. 어전 회의가 진행되는 2시진 동안, 도진은 완벽한 논리로 외교 공문을 보고하며 좌참찬의 숨통을 조였다. 정적으로부터 가문과 목숨을 완벽히 지켜낸 압도적인 승리였다.***회의가 파하고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도진은 다시 서책 보관각으로 숨어들었다. 어둑한 서가 구석, 연화가 피곤에 겨워 책더미에 기댄 채 곤히 졸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가에는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하얀 정액의 흔적이 말라붙어 있었다.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궐 한복판에서 그 끔찍한 양기를 목구멍으로 다 받아내 준 여인. 만약 연화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전에서 피를 토하고 능지처참을 당했을 터였다. 도진은 연화의 작은 손을 제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며, 가슴 벅찬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도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뜨겁고 저릿한 감정이 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다. 신분의 벽도, 유교적 명분도, 사대부의 체통도 이 여인의 희생과 헌신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도진은 잠든 연화 옆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쿵-! 쿵-!서책각 목문이 거칠게 덜컹거리며 천장의 먼지가 부옇게 쏟아져 내렸다."군사들은 무얼 하느냐! 즉시 그 도끼로 저 빗장을 찍어 넘겨라!"문풍지 너머로 들려오는 좌참찬의 서슬 퍼런 호통에, 도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발각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서너 숨. 그러나 도진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은 연화는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도진의 골반을 제 양손으로 꽉 부여잡았다.연화의 가느다란 목구멍이 거대한 흉물의 기둥을 남김없이 삼켜내며 격렬하게 조여들었다. 코가 밑동에 닿을 만큼 밀어 넣자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났다.꾸륵, 츄릅, 흡-!극음의 냉기와 마계의 화마가 여인의 목구멍 안에서 맹렬히 회오리치며, 도진의 단전에 갇혀 있던 양기를 무자비하게 쥐어짰다. 연화는 두 손으로 도진의 엉덩이를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켰다.여인의 목구멍 안쪽 따스하고 젖은 압박이 굵직한 기둥을 쥐어짜듯 삼켜낼 때마다, 도진의 등줄기로 수만 마리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전율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삼키는 동작마다 볼이 홀쭉해졌다."읍…… 하아…… 연화야…… 제발……!"도진은 제 비단 도포를 찢을 듯 움켜쥐며 턱을 뒤로 꺾었다."으, 으읍……! 하윽…… 연화야……!"도진은 눈앞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환각 속에서 연화의 어깨를 바스러져라 움켜쥐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차오른 쾌락의 파도가 남자의 등뼈를 부러뜨릴 듯 휘몰아쳤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짓이기며 피를 철철 흘리던 도진의 허리가 마침내 통제를 잃고 허공을 향해 튕겨 올랐다.푸슈욱-! 콰아아-!용암처럼 끓어오르던 뜨거운 백탁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서책 보관각 구석. 천장 높이 솟아오른 웅장한 서가들이 미로처럼 얽힌 어두컴컴한 틈새로, 묵직한 고서 냄새와 함께 지독하게 농밀한 단내가 진동했다.쾅, 쾅-!"배 참판! 안에 계시오? 전하께서 편전에 입어하시어 어전 회의가 곧 개회될 시간이오!"서책각의 육중한 목문 너머로 좌참찬의 재촉하는 서슬 퍼런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며 문밖의 호위 군사들과 관원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어서 문을 여시오! 의례 주무관이 어전 회의에 불참하는 것은 대역죄요!"그러나 도진은 대답은커녕 제 입술조차 떼지 못하고 서가 기둥을 손톱이 부서져라 쥐어뜯고 있었다.문 쪽으로 돌린 도진의 고개가 굳었다. 밖에서 부르는 관직명은 또렷했지만, 대답할 말을 고르는 동안에도 숨이 끊겼다. 그는 서가에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떨려 책등을 건드릴 때마다 문밖에서 그 소리를 듣지 않았는지 귀를 세웠다.도진의 넓은 관복 도포 자락 아래, 연화가 무릎을 꿇은 채 남자의 하반신 깊숙이 머리를 푹 묻고 있었다. 연화의 붉고 작은 입술이, 서역의 극양 독주로 인해 펄펄 끓어오르는 거대한 귀두를 망설임 없이 한입에 집어삼켰다. 턱이 한계까지 벌어지고, 입술이 테두리를 넘자 침이 줄줄 흘렀다.읍, 츄릅-.서늘하고 매끄러운 여인의 구강 안쪽 여린 살결이, 팽창한 대물의 굵직하고 시퍼런 핏줄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혀가 밑에서 기둥을 쓸고, 윗입술이 귀두 홈을 문질렀다. 한 번에 삼켜지지 않는 길이를 손으로 받쳐 짜냈다."흐아…… 으읍……!"도진의 등줄기가 활처럼 꺾이며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혔다. 신음을 내지르면 문밖의 관리들과 군사들에게 즉시 발각되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을 당할 절체절명의 상황. 도진은 제 비단 관복 소맷자락과 손등을 피
어전 회의의 소집을 알리는 묵직한 징 소리가 대궐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백관들이 일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왕이 계신 편전을 향해 줄지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진은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궁궐 회랑의 붉은 기둥을 붙잡고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관복 도포 앞자락이 마치 거대한 창끝처럼 허공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올라 부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폭주하는 흉물의 지독한 고열에 비단 바지가 타들어 갈 듯 뜨거웠고, 귀두 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액이 버선목을 타고 흘러내려 신발 안쪽을 적셨다.이 몰골로 편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전하와 삼정승 육판서 앞에서 음란한 마물임이 만천하에 폭로되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을 당할 터였다."배 참판! 어찌 그리 지체하시오? 어전 회의에 불참했다간 당장 삭탈관직이오!"저 멀리서 좌참찬이 조롱 섞인 목소리로 도진을 재촉했다. 도진은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는 절망 속에서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끝이다…… 배씨 가문 백 년의 명망이 오늘 내 가랑이 사이에서 끝장나는구나."단전이 터질 듯 팽창하며 하복부를 칼로 후벼 파는 고통에 굵은 식은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도포가 찢겨 나갈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궁궐 담장 모퉁이 그늘 뒤편에서, 눈에 익은 옥색 무명 치맛자락이 스치듯 시야에 들어왔다. 연화였다. 참판 댁 노마님의 명을 받아 궁중 내의원에 약재를 전하러 입궐했던 연화가, 기둥 뒤에서 비틀거리는 도진의 심상치 않은 꼴을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었다.도진은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씨를 쥐어짜듯, 다가온 연화의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챘다."읍……?! 나으리?!"연화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도진은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고 편전 옆 외딴 서책 보관각(書冊保管閣)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끌어안는 동작에 도포 안의 기둥이 연화의 아랫배에 묵직하게 닿았다.쾅-!먼지가 뽀얗게 쌓인 육중한 목문이 닫히고, 도진은 떨리는 손으로 빗장을 걸어 잠
닷새 후, 창덕궁 인정전 넓은 앞마당에서는 명나라 황실 사신단을 환영하는 성대한 궁중 연회가 베풀어졌다. 궁중 악사들의 드높은 아악 소리가 가을 하늘을 찌르고, 당상관과 당하관 백관들이 품계에 맞추어 도열하여 어주를 나누고 있었다.예조참판 배도진은 외교 의례와 연회 절차를 총괄하는 주무관으로서, 화려한 흉배가 수놓인 청색 관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상석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창백하리만치 서늘한 미모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의전 거동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명나라 사신들조차 연신 감탄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도진의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좌참찬의 눈빛은 독사처럼 음침하게 번뜩이고 있었다.'배도진 이놈…… 환양술에 걸려 진작에 발정 난 미치광이가 되어 하옥되었어야 할 놈이, 어찌 저리도 멀쩡하단 말인가.'자신의 은밀한 사술이 실패했음을 직감한 좌참찬은 비열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곁에 선 심복 관원에게 은밀한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좌참찬이 묵직한 백옥 주병과 은잔을 들고 도진의 자리 앞에 성큼 걸어왔다."배 참판! 사신단의 영접 의례를 이토록 훌륭하게 완수하였으니, 내 특별히 서역에서 진상된 귀한 양기 보양주를 한잔 권하겠소."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술잔을 가로막았다."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대감. 허나 소관은 본래 주량이 얕고, 아직 연회가 끝나지 않아 처리해야 할 의전 공문이 산더미라 술을 사양하고자 합니다.""허허! 대명국 사신들이 지켜보고 전하께서 친히 윤허하신 연회 자리요! 이 사람의 축하주를 박대하는 것은 사신들에 대한 결례이자 어전에 대한 불경이오!"좌참찬이 목청을 돋우자, 주변 정승들과 명나라 사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진에게 쏠렸다. 도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백관이 보는 앞에서 거절할 명분이 완전히 차단된 외통수였다.도진은 주병을 든 손보다 주변의 시선을 먼저 살폈다. 좌참찬은 사양할 말이 나오기도 전에 잔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웃는 낯을 하고 있었지만 물러설 기색은 없었다.도진은 연회석 한가운데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