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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스프링 가든
양주원의 목구멍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부턴 조심할게. 이따가 내가 약 사갈게.”

남자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갔고 서유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든 부러진 립스틱을 내려다보았다.

부러진 립스틱을 쓰레기통에 던진 서유정이 보석함의 두 번째 층을 열자 그 안에는 몇 가지 보석만 남아 있었다.

전부 양주원이 예전에 준 것들인데 한때는 수백개나 되어 공간이 꽉 찼다. 양주원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이후로 그에게 실망할 때마다 하나씩 버렸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나씩 버리다가 나중에는 그 속도가 빨라져 이젠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꼭 양주원에 대한 그녀의 사랑 같았다. 처음에는 파도처럼 넘쳐날 정도로 가득 찼다가 이젠 점차 식어간 마음이 닳아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유정은 그중 가장 가는 금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건 3주년 기념일에 양주원이 선물한 것이었다.

목걸이의 펜던트는 고양이 발 모양이었는데 당시 서유정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어 했고 자주 인터넷에서 고양이 영상을 보곤 했다.

목걸이를 받았을 때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그 작은 고양이 발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두 사람은 졸업 후 집을 마련하면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약속했고 이름도 미리 ‘츄츄’라고 지었다.

하지만 결국 키우지 못했다. 양주원은 처음부터 창업에 집중했고 창업에 성공한 후로는 점점 더 바빠져서 고양이 키우는 건 고사하고 그녀를 챙겨줄 시간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의 관계는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양주원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서유정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금목걸이를 바라보다가 쓰레기통에 던지고 보석 상자를 천천히 닫았다.

상자 안에는 이제 다섯 개의 보석만 남아 있었다.

일어나 외투를 챙겨입은 서유정은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섰다.

로펌에 도착하자마자 동료들이 다가와 그녀가 또 한 번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축하해주었다.

“서 변호사님, 축하해요!”

“서 변호사님, 이번 달 여섯 번째 소송이죠? 역시 명불허전 우리 로펌 에이스 변호사네요!”

“실연당하면 커리어가 승승장구한다던데, 서 변호사님 갈수록 커리어 하이를 찍으시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이 서둘러 당사자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눈짓을 보냈다. 원래 활기찼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감히 서유정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로펌 사람들 전부 그녀와 양주원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소식이 빠른 사람들은 양주원이 사적으로 그의 비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결코 서유정 앞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방금 말을 꺼낸 동료도 말실수를 깨닫고 서둘러 서유정에게 사과했다.

“서 변호사님, 죄송해요. 제가 아무 말이나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서유정은 다소 창백해진 얼굴로 서류 가방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저녁엔 제가 천향루에서 한턱 낼 테니까 다들 시간 내서 오세요!”

모두가 서둘러 대답하며 웃고 넘기자 작은 해프닝은 그렇게 지나갔다.

서유정은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를 켜고 사건 자료를 정리한 다음 사건 요약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나도록 겨우 몇 줄밖에 쓰지 못했고 생각은 진작 다른 곳에 팔린 상태였다.

저녁이 되자 서유정은 로펌 동료 십여 명과 함께 천향루로 향했다.

창가에 앉은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을 돌아보는 순간 서유정은 양주원의 무심한 눈빛과 마주했다.

숨이 턱 멎은 그녀와 달리 상대는 진작 시선을 거두고 웃으며 계속해서 신나경에게 디저트를 먹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동료들 앞에서도 남자는 그녀의 체면 따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서유정과 친한 동료 중 한 명은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그녀 대신 앞장서 따지려 들었다.

서유정은 그녀를 붙잡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니까 룸으로 가요.”

동료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뭐라고 하려다가 우는 것보다 더 일그러진 서유정의 미소를 보고는 멈칫했다.

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유정의 손에 이끌려 룸으로 향했다.

감정 문제는 사적인 영역이라 서유정이 덤덤한 척하는 이상 그들이 구태여 나서서 말할 자격은 없었다.

주문을 마친 후 서유정은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문을 닫는 순간 안쪽에서 동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서 변호사님 남자 친구가 서 변호사님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디저트를 먹여줬어요. 진짜 쓰레기 같은 놈!”

“나도 봤어요. 대체 그런 쓰레기를 서 변호사님은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예쁘니까 헤어져도 금방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을 텐데.”

“어휴, 한 명은 너무 나쁘고 한 명은 너무 착해서 문제죠. 서 변호사님 평소 사건 처리할 때는 그렇게 냉정하고 단호한데 왜 감정 문제는 이렇게 어리석은지...”

서유정은 이어지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의 말이 맞지만 매번 양주원이 없는 미래를 생각할 때면 심장에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전해졌다.

점점 그녀도 익숙해졌다.

차가운 양주원의 태도, 그의 몸에서 나는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 그리고 갈라진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는 과정까지.

이제 막 화장실 문 앞에 다다른 그녀의 발걸음이 뚝 멈추더니 온몸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차마 눈 뜨고 봐주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신나경이 세면대 위에 앉아 있고 양주원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힘껏 움켜쥔 채 서유정을 등지고 주변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는 듯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밖을 나돌았어도 그녀 앞에서 다른 여자와 친밀하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였다.

양주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유정은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리고 차가운 바람이 계속해서 몰아치는 것 같았다.

‘양주원, 넌 왜 이렇게 잔인한 거야.’

너무 몰입한 탓인지 양주원은 근처에 서 있는 서유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설령 알아차렸더라도 그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가 슬퍼하든 말든 이젠 신경조차 쓰지 않을 테니까.

거울에는 뒤엉킨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서유정의 종잇장처럼 창백하고 비참한 얼굴도 같이 담겼다.

마치 광대 같았다.

신나경이 먼저 서유정을 발견하고 서둘러 양주원을 밀어냈다.

“대표님... 서유정 씨...”

그녀의 볼은 붉게 달아올랐고 예쁘장한 눈동자에 당황스러움이 번지며 물기가 아른거렸다. 남자에게 물렸던 입술은 붉게 물들어 마치 잘 익은 달콤한 과일처럼 입에 물고 싶은 유혹을 자아냈다.

“신경 쓰지 마.”

“대표님... 읍...”

이어지는 말은 전부 양주원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양주원이 마침내 신나경을 놓아주고 그녀를 안아 세면대에서 내려준 뒤 치마까지 정리해 주고는 여자를 감싸며 밖으로 걸어갔다.

서유정의 곁을 지나치며 그는 조롱하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보고도 부족해? 오늘 밤 신나경 데려가서 실컷 보게 해줄까?”

서유정이 그를 돌아보자 흑백이 선명한 그의 눈동자엔 조롱만이 가득했고 과거의 다정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양주원, 사적으로 둘이 뭘 하든 상관없는데... 저 여자를 내 앞에 데려오진 마. 부탁이야.”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때 두 사람이 함께 약속했던 미래는 이제 그녀 혼자만 이루어질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양주원은 무심하게 웃으며 신나경의 턱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 정도도 못 참아? 못 참겠으면 언제든 파혼하고 헤어지든지.”

시선을 내린 채 말하려던 서유정의 두 눈이 그대로 차갑게 식었다.

신나경의 손목에 걸린 황금 팔찌의 디자인이나 제작 방식이 아무리 봐도 과거 양주원이 직접 디자인하고 맞춤 제작해 그녀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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