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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스프링 가든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린 신나경은 급히 손을 뻗어 팔찌를 가렸고 눈동자에 당황함이 스치며 무의식적으로 양주원 뒤에 숨었다.

양주원은 그녀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서유정을 내려다보았다.

“왜 나경이를 그렇게 쳐다봐?”

서유정의 눈동자가 살짝 붉어졌다.

“양주원, 왜 신나경에게 똑같은 팔찌를 줬어? 네가 분명 그건 내 거라고 했잖아.”

“나경이가 네가 착용한 걸 보고 마음에 든다는데 그럼 네 걸 가져다줄까? 게다가 고작 팔찌 하나로 왜 그렇게 속 좁게 구는 거야?”

양주원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미간에 짜증을 가득 드러냈고 서유정의 눈동자에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스쳤다.

“하지만 그때 나한테 줄 때는 분명...”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양주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서유정, 계속 과거만 붙잡고 사는 게 재밌어? 너도 말했다시피 그건 그때잖아.”

그는 서유정이 과거를 언급하는 게 제일 싫었다. 당시 창업 과정에서 반복된 실패에 시달리던 어두운 시절이 떠올랐으니까.

서유정은 그와 함께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그가 밑바닥까지 무너지고 절망하는 모습까지 봤기에 창업에 성공한 후 그는 그 힘든 날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레 서유정에 대한 감정도 점차 식어갔다.

그를 바라보는 서유정의 눈동자는 슬픔을 가득 담은 채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로운 유리처럼 보였다.

“그럼 네가 했던 약속은 전부 잊고 쉽게 깨버릴 수 있다는 거네?”

양주원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네가 결혼하자고 할 때 동의했잖아. 뭘 더 원하는데? 서유정, 내가 너에게 미안한 건 딱 하나,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난 누굴 마음대로 사랑하지도 못해?”

서유정이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남자의 마음이 변하면 과거의 약속도 모래성처럼 바람에 따라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그는 제멋대로 마음을 정리해 버렸지만 그녀는 어떡하나.

과거 사랑했던 시절을 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이 변했다는 걸, 그를 놓아줘야 이 고통에서 자신도 해방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서유정이 창백한 입술을 깨물며 말없이 서 있자 양주원은 신나경을 감싼 채 곧장 자리를 떠나며 이내 코너 뒤로 사라져 버렸다.

서유정은 눈물을 머금은 눈을 깜빡이며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뒤돌아 룸으로 돌아갔다.

밤이 깊어서야 식사 자리가 끝나고 서유정은 식당 문 앞에서 마지막 동료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 차를 몰고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자 방 안은 어둡기만 했고 양주원은 예상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가 신나경을 세면대에 밀어붙인 채 키스하던 장면이 떠오르자 가슴에 미세한 통증이 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눈물을 삭히려 했다.

화장대 앞으로 걸어가서 보석함을 열고 안에 있던 튤립 금팔찌를 꺼냈다.

과거에는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팔찌였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세한 통증으로 따끔거렸다.

그녀만의 것이 아니면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입꼬리를 올려 쓴웃음을 지으며 서유정이 손을 놓자 팔찌가 허공에서 미끄러져 밑에 있던 쓰레기통에 떨어졌다.

챙그랑.

요란한 소리가 신나경이 그 팔찌를 차고 있던 걸 봤을 때 내려앉던 심장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 양주원은 돌아오지 않았고 서유정은 매일 그에게 토요일 웨딩드레스 피팅이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답장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서유정은 일어나서 씻고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을 때 양주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웨딩숍이야.]

서둘러 웨딩숍에 도착했을 때 양주원의 팔짱을 끼고 그에게 기대어 있는 신나경의 모습을 보자 서유정은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양주원, 오늘은 우리 웨딩드레스 입어보는 날인데 저 여자는 왜 데려왔어?”

양주원은 태연하게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드레스 입어보고 미팅하러 가야 해. 이런 작은 일로 문제 삼을 거야?”

“작은 일? 이게 너한테는 정말 작은 일이야?”

그들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날에도 애인을 데려와 역겹게 구는데 결혼식 당일에도 신나경을 데려오지는 않을까.

신나경은 양주원의 팔을 놓으며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제가 안 오겠다고 했잖아요... 먼저 회사로 갈 테니까 드레스 피팅 끝나면 다시...”

“그럴 필요 없어.”

그는 서유정을 돌아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입을 거야, 말 거야? 나 바빠. 여기서 시간 낭비할 여유 없어.”

서유정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썹이 아래로 향하며 일그러질 때는 극도로 짜증이 난 상태라는 뜻이었다.

만약 지금 입어보지 않겠다고 말하면 그는 즉시 돌아서서 떠날 것이다.

서유정은 더 말하지 않고 뒤돌아 웨딩숍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이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서유정 뒤에 있는 양주원과 양주원 옆에 있는 신나경을 본 그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쳤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었다.

“양 대표님, 서유정 씨, 안녕하세요. 전에 주문하신 웨딩드레스가 도착했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과거 디자인을 조금 배웠던 서유정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의 가르침을 받아 반년 가까이 열과 성을 다해 웨딩드레스 디자인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기대는 신나경을 보는 순간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지금은 그저 임무를 수행하는 듯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직원을 따라 웨딩드레스 구역으로 가자 서유정은 자신의 웨딩드레스가 홀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튜브 톱으로 된 웨딩드레스 상반신은 망사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튤립을 프릴 자수로 수놓아 마치 레이스 위에 튤립이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했다.

허리에는 별처럼 한 줄로 나란히 박힌 작은 진주들이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다. 치마의 앞쪽은 실크 소재였고 뒤쪽은 실크와 레이스로 세 겹을 쌓은 레이어드 디자인으로 가벼우면서도 단정했다. 서유정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유정 씨, 웨딩드레스는 오늘 아침에 막 가져왔어요. 여러 고객님이 입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유정 씨가 입으면 분명 무척 아름다울 거예요.”

신나경도 그 웨딩드레스를 보고 놀라움과 질투가 섞인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네, 정말 아름답네요! 전에 서유정 씨가 웨딩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재능이 있어요. 그렇죠, 대표님?”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지자 서유정은 마치 파리를 씹어서 삼킨 것처럼 역겨움이 밀려왔다.

고개를 돌려 말하려는 순간 양주원이 신나경을 내려다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보였다.

“너도 뛰어나. 안 그럼 내 비서가 되지도 못했을 거야.”

신나경이 그를 슬쩍 흘겨보았다.

“매번 놀리기만 하고.”

그 순간 서유정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을 더 하겠어.’

신나경이 여기까지 와서 역겹게 구는 것도 양주원이 그러도록 내버려뒀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직원도 이런 어색한 상황을 처음 겪은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유정 씨... 웨딩드레스 입어보시겠어요?”

서유정은 돌아보며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어볼게요.”

직원은 조심스럽게 웨딩드레스를 내려서 서유정을 피팅룸으로 안내했다.

웨딩드레스 뒤쪽에 레이스와 끈이 있어 워낙 입기 힘든 탓에 십여 분이나 걸려서야 제대로 착용할 수 있었다.

워낙 타고난 미모와 눈처럼 흰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는 마치 만개한 연꽃처럼 우아하고 매혹적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양주원도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진 않았을 것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더욱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직원이 그녀의 치마를 정리하며 말했다.

“서유정 씨, 제가 남자였다면 분명 한눈에 반했을 거예요.”

서유정은 시선을 내린 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직원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피팅룸의 커튼이 열릴 때 양주원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으로 클라이언트 메시지에 답장 중이었고 신나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직원이 귀띔했다.

“양 대표님, 서유정 씨 웨딩드레스 다 입으셨어요.”

양주원이 무심하게 고개를 들어 가볍게 서유정을 훑어보았다.

“별로인데.”

이젠 서유정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기에 진심으로 별로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녀가 다 벗고 알몸으로 나타나도 별 흥미가 들지 않았다.

서유정의 마음속에 실망의 그림자가 스쳤다. 그들이 만난 지 1주년이 됐을 때 나중에 결혼하면 어떤 웨딩드레스를 입을지 논의한 적이 있었다.

양주원은 그녀가 무엇을 입어도 가장 예쁠 거라고 말했고,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어볼 때 그는 감동으로 눈물을 흘릴 거라고 했다. 마침내 그녀와 결혼할 수 있으니까.

그런 사소한 일은 아마 진작 잊어버렸을 거다.

8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돌리기도, 한 사람을 서서히 마음속에서 지우기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직원이 분위기를 풀려던 순간 갑자기 맞은편 피팅룸 커튼이 열리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나경이 미소를 지은 채 당당하게 양주원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이 고른 웨딩드레스가 놀랍게도 딱 맞아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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