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토요일 오전 9시 30분.“여보, 나 준비 끝났어.”은소예가 침실에서 나왔다.베이지색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낮은 굽의 구두를 신은 그녀는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신시안은 현관에서 자동차 열쇠를 챙기고 있었다.“오늘 많이 걸어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응.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건데?”“옛날 방직공장을 복원한 곳이야. 일부는 전시장으로 쓰고 있고, 지금도 보존 작업이 진행 중이래.”소예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건물이 아직 남아 있어?”“응. 건물을 전부 철거하는 대신 원래 구조를 살렸대.”“재미있겠다.”시안이 웃었다.“당신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나도 건축물 구경 좋아해. 당신처럼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그럼 오늘은 내가 설명해 줄게.”소예는 남편을 바라봤다.“단, 한 시간짜리 강의는 사양할게.”“30분은?”“10분.”“너무 짧은데?”“핵심만 설명하는 것도 능력이야, 대표님.”오전 10시 40분.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방직공장이었다.높은 굴뚝과 커다란 창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건물 외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소예는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와, 생각보다 크다.”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이 일대에서 규모가 꽤 큰 공장이었대.”견학 안내자는 참가자들에게 안전모를 나눠줬다.“오늘은 보존 작업이 완료된 구역과 일부 복원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작업 중인 구역에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소예는 안전모를 착용했다.시안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잘 어울리네.”“뭐가?”“안전모.”소예는 눈을 가늘게 떴다.“신시안, 지금 놀리는 거지?”“아니. 진심인데.”“그럼 사진 찍어줘.”시안은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오전 11시 10분.견학팀은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높은 천장 아래에는 오래된 철제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바닥 일부에는 당시 사용했던 기계의 설치 흔적이 남아 있었다.안내자
토요일 오후 2시 15분.은소예는 지하주차장에 내려왔다.오랜만에 오토바이를 타고 근교를 다녀올 생각이었다.검은색 라이딩 재킷에 청바지, 발목을 덮는 부츠까지 착용한 그녀는 헬멧을 들고 주차 구역으로 향했다.그런데 걸음이 멈췄다.“……어?”분명 이곳에 있어야 할 진주빛 흰색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았다.소예는 주변을 둘러봤다.옆자리에는 검은색 승용차가 주차돼 있었다.“내 오토바이 어디 갔어?”그녀는 주차 구역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B2-47.틀림없었다.소예는 곧바로 신시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왜?“당신 혹시 내 오토바이 옮겼어?”— 아니. 왜?“없어.”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잠깐만. 지금 내려갈게.5분 뒤.시안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여기 세워뒀던 거 맞아?”“응. 지난주에도 여기 있었어.”시안은 바닥을 살펴봤다.주차 구역에는 오토바이를 세워뒀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관리실부터 확인하자.”소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설마 도난당한 건 아니겠지?”“아직 모르잖아. 먼저 확인해 보자.”두 사람은 관리사무소로 향했다.관리 직원은 주차 구역을 확인하더니 말했다.“아, 그 오토바이요?”소예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어디 있는지 아세요?”“어제 지하주차장 배수관 점검 때문에 일부 이륜차를 임시 이동시켰습니다.”“네?”“안내문을 붙였는데 못 보셨나 봅니다.”소예의 표정이 굳었다.“제 연락처도 등록돼 있는데 별도 연락은 없었어요?”직원은 확인하겠다며 관리 기록을 열었다.잠시 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문자 발송 대상에서 누락됐네요. 죄송합니다.”소예는 차분하게 물었다.“그럼 지금 제 오토바이는 어디 있나요?”“지상 임시 주차 구역에 있습니다.”오후 2시 40분.소예는 지상 주차장 한쪽에서 자신의 오토바이를 발견했다.“아, 여기 있었네.”그녀는 곧바로 차체를 확인했다.왼쪽 사이드커버에 작은 긁힘이 있었다.“여보, 이거 봐.”시안이 몸을 숙였다.“원래 있었어?”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여보, 이거 입어도 돼?”은소예가 검은색 슬랙스에 흰색 셔츠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신시안은 그녀를 위아래로 살폈다.“오늘은 자동차 정비 체험이니까 셔츠보다 편한 티셔츠가 낫겠는데?”“왜?”“기름 묻을 수도 있고, 팔도 많이 움직여야 하니까.”소예는 잠시 생각하더니 침실로 돌아갔다.5분 뒤.그녀는 몸에 적당히 붙는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다시 나타났다.“이 정도면 됐지?”“완벽해.”“그런데 신시안.”“응?”“오늘 내가 당신보다 잘하면 인정하기로 했지?”시안이 웃었다.“벌써 이길 생각부터 해?”“당연하지. 참가하는 이상 제대로 해야지.”“정비는 속도보다 정확성이 중요해.”소예는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으며 대답했다.“그럼 정확하게 이길게.”오전 10시 30분.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클래식 자동차 복원 공방이었다.작업장 안에는 오래된 자동차 세 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그중 한 대는 짙은 녹색의 1970년대 영국산 스포츠카였다.소예가 차를 둘러봤다.“예쁘다. 요즘 차랑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시안의 눈이 반짝였다.“저 모델은 차체가 가볍고 구조가 비교적 단순해서 복원하는 재미가 있어.”“벌써 신났네?”“조금.”“조금 아닌 것 같은데?”시안은 웃었다.정비사가 두 사람에게 보호장갑과 작업복을 건넸다.“오늘은 실제 차량의 안전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분리해 둔 부품을 이용해 기본 구조와 관리 방법을 배워보겠습니다.”소예는 작업복을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첫 번째 과제는 오래된 기화기의 외부 부품을 분해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다시 조립하는 것이었다.정비사가 말했다.“두 분이 각각 하나씩 해보시면 됩니다. 작은 부품의 위치를 잘 기억하셔야 해요.”시안은 자신 있게 공구를 집었다.소예는 설명서를 먼저 펼쳤다.“여보, 뭐 해?”“분해하려고.”“설명서 안 봐?”“대략 구조는 알아.”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난 읽고 할게.”20분
월요일 오전 9시 15분.NEXT ONE 본부장실.은소예는 출근하자마자 공차연이 가져온 서류를 살펴봤다.“이건 뭐예요?”“지난주 시범 사업에 참여했던 업체에서 보낸 의견서입니다.”소예는 첫 장을 넘겼다.홍보 효과에 대한 만족도와 개선 요청이 정리돼 있었다.그런데 마지막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소규모 사업자들은 홍보보다 고객 응대와 재고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소예는 펜으로 문장에 표시했다.“차연 씨, 이 의견을 보낸 업체에 연락해 주세요.”“추가 인터뷰를 진행할까요?”“네. 홍보 지원을 늘리기 전에 실제로 어떤 업무가 가장 부담스러운지 확인하고 싶어요.”공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대표실이었다.“네, 은소예입니다.”— 본부장님, 대표님께서 오전 10시에 잠깐 뵙자고 하십니다.“무슨 안건인가요?”— 외부 협력 제안이라고 전달받았습니다.소예는 시계를 확인했다.“알겠습니다.”오전 10시.대표실에 들어선 소예는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제안서를 발견했다.신시안이 말했다.“앉아.”“무슨 일이야?”시안은 제안서를 그녀 앞으로 밀었다.“지역 창업지원기관에서 연락이 왔어. NEXT ONE이 운영하는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을 보고 공동 행사를 제안했어.”소예는 자료를 펼쳤다.행사명은 《작은 가게의 다음 계절》.소상공인들의 실제 운영 경험을 공유하고, 참여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였다.“취지는 괜찮네.”“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뭔데?”시안이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특별 대담: NEXT ONE 신시안 대표·은소예 본부장 부부소예는 눈썹을 올렸다.“우리 둘이?”“응.”“사업 이야기를 하자는 거야,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자는 거야?”“둘 다 원하는 모양이야.”소예는 제안서를 덮었다.“그건 구분해야겠는데.”시안이 웃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우리 부부 이야기가 소상공인 행사에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그래서 아직 답변 안
화요일 오후 6시 30분.은소예는 도서관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기 전, 가방 속 노트를 다시 확인했다.이번 과제는 '누군가에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소예는 전날 밤까지 세 번이나 글을 고쳤다.처음에는 신시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적었다. 다음에는 오래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을 썼다.하지만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결국 마지막으로 선택한 대상은 과거의 자기 자신이었다.“은소예 씨, 준비되셨어요?”진행자의 말에 소예는 고개를 들었다.“네.”“그럼 이번에는 먼저 읽어보시겠어요?”소예는 노트를 펼쳤다.“제목은 《그때의 나에게》입니다.”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읽기 시작했다.“나는 네가 조금 덜 참았으면 좋겠다.”강의실이 조용해졌다.“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실망을 전부 네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소예는 잠시 문장을 내려다봤다.“그리고 무엇보다,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약해지는 일은 아니라고.”마지막 문장을 읽고 노트를 덮었다.진행자가 물었다.“과거의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인가요?”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때는 제가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지금은 달라지셨나요?”“조금은요.”소예는 웃었다.“여전히 잘하고 싶지만, 못하는 날이 있다고 해서 제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알게 됐어요.”오후 8시 20분.수업을 마친 소예는 도서관 앞에서 시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났어?“응. 당신 어디야?”— 집. 저녁 준비하고 있어.“뭐 만들었는데?”— 닭고기덮밥.소예가 웃었다.“신시안, 요즘 요리 실력이 너무 좋아지는 거 아니야?”— 당신이 평가를 잘해주니까.“오늘은 별 다섯 개 받을 준비해.”전화를 끊은 소예는 가방을 고쳐 멨다.그때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저기요.”같은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던 여성이었다.“오늘 읽으신 글 좋았어요.”“감사합니다.”“특히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는 부분이요.”
월요일 오후 7시 30분.은소예는 개인 작업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노트 위에는 글쓰기 모임의 첫 번째 과제가 적혀 있었다.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는 하루를 500자 이내로 써오기.소예는 펜을 들었다.그리고 날짜 하나를 적었다.혼자 처음으로 바다를 보러 갔던 날.그날은 이혼 직후도, 재혼을 결심했던 날도 아니었다.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마친 뒤였다.성과는 좋았고 주변에서는 축하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예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누군가를 만나기도 싫었고, 다음 목표를 세우기도 싫었다.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기차표를 샀다.소예는 그날의 기억을 천천히 적기 시작했다.바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발을 벗는 것이었다.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들어왔고,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엉망이 됐다.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그날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소예는 마지막 문장을 적고 펜을 내려놓았다.“이 정도면 됐나?”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왜 하필 그날 바다에 갔는지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다.소예는 문장을 하나 더 적었다.나는 그날 처음으로, 잘하고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화요일 오후 6시 40분.도서관 글쓰기 모임 첫 수업.소예는 작은 강의실에 들어섰다.참가자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진행자는 각자 가져온 글을 읽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자고 했다.“문장을 잘 쓰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찾는 게 중요합니다.”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차례가 돌아오자 그녀는 노트를 펼쳤다.“제 글 제목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바다》입니다.”소예는 천천히 글을 읽었다.짧은 낭독이 끝나자 진행자가 물었다.“그날 바다에서 무엇을 하고 돌아오셨나요?”소예는 잠시 생각했다.“별거 안 했어요. 걷다가 밥 먹고, 카페에 앉아 있다가 돌아왔어요.”“그런데 왜 오래 기억에 남았을까요?”소예는 대답하려다가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