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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는 유부남

내 약혼자는 유부남

Por:  두유콩Completo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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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약혼자의 차 조수석에서 낯선 목걸이를 발견했던 날, 그의 어머니가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 해명했다. “수진아, 우리 도윤이 오해하지 마라. 그 목걸이는 내가 깜빡하고 차에 두고 내린 거란다.” 두 번째로 영화표 두 장이 차 바닥에 나뒹굴던 날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단톡방에서 나를 따로 불렀다. [형수님, 괜한 오해하지 마세요. 그 영화표는 제가 도윤 형한테 대신 예매해 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세 번째, 네 번째... 그 뒤로도 무슨 일만 생기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를 대신 변호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홉 번째였다. 나는 차 시트 틈에서 립스틱 하나를 집어 들어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 립스틱 누구 거야?” 운전대를 잡은 강도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더니 그는 너무도 익숙한 동작으로 전화를 걸었다. “차에 립스틱 두고 내린 사람 누구야?”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친동생과 절친한 친구였다. “매형? 아, 립스틱이 매형 차에 있었구나. 어쩐지 우리 세아가 한참을 찾더라고요. 그런데 누나도 진짜 너무하네. 또 의심병 도진 거야? 지난번 모임 때 다들 뭐라고 했어. 또 쓸데없이 꼬투리 잡고 늘어질 거면 두 사람 결혼이고 뭐고 그냥 엎어버리라고 했잖아.” 절친 역시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 수진아. 도윤 오빠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데 그걸 몰라? 너 요즘 진짜 선 세게 넘는다.” 통화가 끝나자 강도윤은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봤지? 이제 나 좀 믿어주면 안 될까? 벌써 아홉 번째야, 수진아. 다음에도 또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 결혼식은...” 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말을 끊었다. “결혼식 올리지 마. 그냥 취소하자.” 강도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립스틱은 상간녀의 것도, 내 절친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인간이 그의 추잡한 불륜을 덮어주기 위해 얼마나 조직적으로 거짓을 꾸며내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내가 직접 사서 차 안에 던져둔 가장 확실한 미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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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제1화

“예식장은 이미 취소했으니까 친척들이랑 친구들한테는 네가 알아서 연락해.”

이 말을 듣자 강도윤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수진, 너 지금 진짜 장난해? 뭐야, 이제는 네 친동생이랑 단짝 친구 말도 못 믿겠다는 거야?”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는 그의 얼굴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너 진짜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러지 않지. 친동생 말도 안 믿으면서 나더러 어떻게 결백을 증명하라는 건데? 우리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신뢰조차 없다면, 이 결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찍힌 이름을 확인한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나 급한 볼일 있으니까 넌 먼저 집에 가서 반성하고 있어. 오늘 일은 못 들은 거로 할 테니까.”

검은색 벤츠는 미련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듯 도로를 빠져나갔다.

분통이 터진 나는 즉시 택시를 잡아 그의 뒤를 쫓았다.

30분 뒤, 휴대폰 화면 속 위치 추적기 앱의 점이 멈춘 곳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변 레스토랑이었다.

통창 너머로 펼쳐진 안쪽 공간에서는 한 아이의 백일잔치가 왁자지껄하게 열리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이들은 전부 내게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목에는, 내가 처음 강도윤의 조수석에서 발견했던 그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묶은 끈은, 내가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세 번째로 꺼냈던 바로 그 머리끈이었다.

그 얼굴을 똑똑히 확인한 순간,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

설마, 조채원일 줄이야.

한 달 전, 나는 링거를 교체하다 실수로 환자의 피를 역류시켰고 조채원의 보호자들은 '환자 학대'라며 병원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녀의 경호원이 나를 힘껏 밀쳐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바람에 내 오른손은 골절되었고 결국 병원 일마저 손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내 억울한 송사를 해결해 주겠다며 온 사방을 발로 뛰던 남동생은 조채원의 흑기사를 자처하며 술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라면 병원 윗사람들에게 대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밤샘 탄원서까지 써 주던 절친은 조채원의 하객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중에서 제일 웃기는 건 조금 전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결백을 부르짖던 강도윤이었다.

“도윤 형, 늦었네? 우리 형수님 화 풀어주려면 뭐라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들의 짓궂은 야유 속에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채원을 품에 안고 입을 맞추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거대한 코미디 같아서 내 신경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그들이 바로 조채원의 ‘보호자’들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를 물고 늘어지며 판을 키우고, 끝내 나를 병원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들.

순간, 달궈진 철판으로 뺨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전해지며 화끈거리는 열감이 신경을 타고 뇌리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나를 원숭이 취급하며 비웃고 있었다니, 참으로 비참했다.

그때 휴대폰 진동과 함께 병원의 전근 발령 통지서가 화면에 떴다.

[이수진 선생님, 신청하신 전근 요청이 승인되었습니다. 사흘 뒤 통산병원으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실소가 터져 나왔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 도시에는 이제 미련을 둘 만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흘 뒤면, 강도윤과의 인연도 완전히 끝이 날 터였다.

구역질 나는 광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등 뒤에서 내 모습을 알아본 조채원이 쫓아 나왔다.

“이수진 선생님? 우리 아기 백일 축하해 주러 오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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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예식장은 이미 취소했으니까 친척들이랑 친구들한테는 네가 알아서 연락해.”이 말을 듣자 강도윤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이수진, 너 지금 진짜 장난해? 뭐야, 이제는 네 친동생이랑 단짝 친구 말도 못 믿겠다는 거야?”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는 그의 얼굴은 완전히 어두워졌다.“너 진짜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러지 않지. 친동생 말도 안 믿으면서 나더러 어떻게 결백을 증명하라는 건데? 우리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신뢰조차 없다면, 이 결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찍힌 이름을 확인한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나 급한 볼일 있으니까 넌 먼저 집에 가서 반성하고 있어. 오늘 일은 못 들은 거로 할 테니까.”검은색 벤츠는 미련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듯 도로를 빠져나갔다.분통이 터진 나는 즉시 택시를 잡아 그의 뒤를 쫓았다.30분 뒤, 휴대폰 화면 속 위치 추적기 앱의 점이 멈춘 곳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변 레스토랑이었다. 통창 너머로 펼쳐진 안쪽 공간에서는 한 아이의 백일잔치가 왁자지껄하게 열리고 있었다.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이들은 전부 내게 익숙한 얼굴들이었다.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목에는, 내가 처음 강도윤의 조수석에서 발견했던 그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묶은 끈은, 내가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세 번째로 꺼냈던 바로 그 머리끈이었다.그 얼굴을 똑똑히 확인한 순간,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버렸다.설마, 조채원일 줄이야.한 달 전, 나는 링거를 교체하다 실수로 환자의 피를 역류시켰고 조채원의 보호자들은 '환자 학대'라며 병원에 고소장을 접수했다.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녀의 경호원이 나를 힘껏 밀쳐 바닥에 내팽개쳤다.그 바람에 내 오른손은 골절되었고 결국 병원 일마저 손을 놓아야 했다.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내 억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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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직 화가 안 풀리셔서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저희 가족들 너무 원망하진 마세요. 저를 너무 걱정하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겼던 거니까요. 마침 잘됐네요. 이참에 인사시켜 드릴 테니까 오해 다 풀어요.”조채원은 다정하게 내 팔짱을 끼고는 사람들 앞으로 나를 이끌며 환하게 웃었다.“여러분, 여기 누가 왔는지 좀 보세요!”그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꽂혔다.강도윤을 비롯한 세 사람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순식간에 얼굴에서 웃음기가 굳어 버렸다.“이쪽은 제 절친 세아예요. 마침 그쪽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는데, 오며 가며 마주친 적 있으시죠?”한세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마치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지나치게 정중하고 거리감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조채원은 이 묘한 기류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다시 나를 이진혁 앞으로 이끌었다.“이쪽은 제 대학 동창인 이진혁이에요. 선생님 고소했던 그 바보 같은 변호사요. 제가 아주 단단히 혼내줬으니까, 이 선생님이 너그럽게 봐주세요.”이진혁은 복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누나...”하지만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묻혀, 그의 작은 목소리는 조채원의 귀에 닿지 않았다.그녀는 마지막으로 나를 강도윤 앞으로 이끌더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그리고 이쪽은 제 남편...”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강도윤, 이 레스토랑 사장님이죠.”조채원은 멈칫하더니 강도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어떻게 아셨어요? 두 분 원래 아는 사이예요?”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다물라고 경고하듯 나를 노려보는 남자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그야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니까요. 우리 사귄 지 7년째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이 레스토랑도 원래는 그이가 제게 선물했던 건데, 설마 이런 얘긴 하나도 안 하던가요?”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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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조채원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세아가 씩씩거리며 내 팔을 낚아챘다.그러고는 나를 2층 휴게실로 거칠게 끌고 올라갔다.이곳은 한때 나와 강도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병원과 가까워서 수술이 끝나고 지칠 때면, 그는 늘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숨을 돌리게 해주곤 했다.바쁘면 밥을 거르기 일쑤인 나를 위해 그는 직접 요리를 해서 보온 백에 정성스레 간식을 챙겨주었고 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나를 위해 거실 한편에 안마의자를 들여놓기도 했다.그런 세심한 다정함에 나는 한때 이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하지만 지금 이곳은 아기방으로 변해 있었다.사방에 널린 요람과 기저귀 교환대, 아기 장난감들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도윤 오빠가 사랑하는 건 채원이야. 너? 오빠는 그저 자기 심장병 고쳐준 너한테 느낀 고마움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것뿐이라고.”나는 순간 멍해졌다.“그게 무슨 소리야?”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엾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빔프로젝터 스크린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벽면을 가득 채운 사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전부 강도윤과 조채원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백두산에서 커플 스키를 타는 모습, 노을을 배경으로 얼하이 호숫가를 거니는 모습, 아기자기한 수향 마을에서 배를 타는 풍경들...“두 사람은 3년 전부터 이미 만나고 있었어. 작년 네 생일 때 도윤 오빠는 출장 간 게 아니었고 나랑 이진혁도 신혼여행을 간 게 아니었어.”한세아가 앞으로 다가와 벽 한가운데에 걸린 웨딩 사진을 가리켰다.“우린 모두 프랑스로 건너가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줬고 그들의 행복을 지켜봤어. 그 병원 소동 역시 도윤 오빠가 꾸민 일이야. 혹시라도 네가 채원이 존재를 알고 치료에 소홀할까 봐 그랬던 건데, 안 그랬으면 우리가 왜 이제껏 널 속였겠어?”나는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을 보듯 한세아를 바라보았다.어떻게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불과 얼마 전, 그녀와 내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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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다음 날,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강도윤이 급히 집으로 달려왔다.그러고는 이삿짐 더미 사이에 앉아 있던 내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이수진,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우리 집을 팔아치우다니, 너 미쳤어?”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마침내 폭발했다.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우리 집이라니, 그가 무슨 염치로 이 단어를 입에 올린단 말인가.“강도윤, 나를 바보로 만드니까 그렇게 재밌었어?”선명한 손자국이 뺨 위로 붉게 떠올랐음에도 강도윤은 화조차 내지 않았다.오히려 평소처럼 토라진 나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꼬리를 내렸다.“때리니까 화가 좀 풀려? 널 속인 건 내 잘못이야, 인정할게. 하지만 우리 벌써 7년이야. 우리가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사이야? 내 목숨도 네가 살려준 건데, 내가 널 두고 어딜 가겠어?”나는 그의 가식적인 변명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그러나 강도윤은 내 앞을 가로막더니, 이성을 잃은 듯 나를 제 품 안으로 꽉 끌어안았다.“채원이는 우리 회사 부회장님의 외동딸이야. 그분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나한테 채원이를 보살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거든. 내가 천벌 받을 짓을 해서 채원이와 엮인 건 인정해.""몇 번이고 관계를 끊으려 했지만, 채원이의 분리불안증이 너무 심해서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자해를 하니 도저히 모른 척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그는 내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수진아, 난 단 한 번도 너랑 헤어질 생각 한 적 없어. 너도 채원이도 다 착한 애들이고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야. 어느 누구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예전처럼 지내자, 어? 내가 할 도리 다 하고 네가 가질 것도 하나도 부족함 없이 다 채워줄게. 그러니까 제발...”나는 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너무 역겨워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하지만 강도윤은 내가 마음이 약해진 줄로만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하루 종일 바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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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수진, 자궁 내 임신 2주, 유산...]강도윤의 시선이 진단서 속 몇 단어 위에 굳어 버렸다.이내 시야가 아득해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현기증이 그를 덮쳤다.“누나가 임신을 했다고? 그럼 바닥에 있는 이 피는...”다가와 진단서를 확인한 이진혁의 얼굴 역시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려 갔다.그 말을 들은 한세아 또한 석상처럼 얼어붙은 채 바닥을 검붉게 적신,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피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손끝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 왔다.‘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죽인 건가? 그것도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남편의 누나를...’“나, 나도 아까는 너무 급해서 그랬어. 하준이가 사라졌는데 제정신일 수가 없잖아...”“임신했으면 왜 말을 안 한 거야? 아니, 아닐 거야. 누나는 의사잖아. 그렇게 쉽게 잘못될 리가 없어. 이 진단서도 분명 우리를 속이려고 조작한 가짜일 거라고!”아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조채원은 켕기는 것이 있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이진혁을 흘끗 쳐다보았다.그러고는 어색하게 말을 보탰다.“맞아요, 이 선생님은 실력이 대단하시니까 절대 나쁜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은 일단 서둘러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어요.”말을 이어가던 조채원은 모두가 뒤돌아선 틈을 타 슬그머니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USB를 가로채려 했다.하지만 이 모습은 거대한 충격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강도윤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과거 심정지가 와 제세동기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경험이 있는 강도윤은 온몸을 관통하는 전류가 어떤 느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이수진이 남겨둔 유산 진단서가 결코 가짜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또한 평소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 이수진이 그들에게 차례로 오해받고 수치까지 당한 뒤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곧장 조채원의 손에서 USB를 낚아채 컴퓨터에 연결했다.“도윤 씨, 안 돼!”조채원은 안색이 급변하며 USB를 빼앗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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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하준이가 정말 강도윤 친아들이야? 조채원, 나한테 똑바로 말해!”“도윤 씨 애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이진혁, 너랑 난 진작에 헤어졌어! 그날 밤 실수 하나 가지고 나랑 도윤 씨 사이를 찢어놓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나 이미 유전자 검사까지 해봤어! 하준이는 내 핏줄이라고! 조채원, 난 널 위해 우리 누나까지 배신했어. 그런데 이제 내 자식까지 뺏어가겠다고?”“우리 사귄 지 6년이야, 무려 6년 동안 사랑했다고! 조채원,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짧은 대화 몇 마디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얽힌 기만과 배신, 복잡한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화면 속 마지막 장면에는 이진혁이 힘으로 조채원을 제압한 채 복도 끝 창고로 밀어 넣는 모습이 비쳤다.밀실 안에서 뒤엉킨 두 사람의 욕망에 가려져, 정작 병실 안에서 울부짖는 아기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완전히 묻혀버렸다.아기가 울다 지쳐 호흡곤란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 근처를 지나던 간호사가 아이를 발견해 급히 응급실로 옮겼고 심폐소생술을 거친 끝에야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이진혁, 조채원. 너희 빨리 말해. 이거 다 거짓말이라고, 가짜라고 말하란 말이야!”한세아는 모니터 화면을 터질 듯 움켜쥐었고 날카로운 손톱이 노트북 테두리를 뚫고 들어갈 듯했다.“말해봐! 이거 다 가짜지? 이수진이 나 골탕 먹이려고 조작한 가짜 영상인 거지, 그렇지?”한세아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절규하듯 다그쳤다. 무너져 내린 절망이 그녀의 온몸에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하지만 그녀가 깊이 사랑했던 남자는 그저 우물쭈물할 뿐, 끝내 대답을 피한 채 차마 부정조차 하지 못했다.이진혁은 이 모든 광경이 CCTV에 고스란히 녹화되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긴 침묵 끝에 마침내 그의 목구멍에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미안해, 세아야... 영상, 진짜야.”뜻밖의 자백에 한세아의 눈동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희망의 빛이 산산이 부서졌다.동시에 조채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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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등 뒤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는 순간, 한세아는 비로소 이수진이 그때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진혁이는 우리 아버지의 매정하고 무책임한 면을 많이 닮았어. 세아 너, 절대 감정에 휘둘려서 행동하면 안 돼.”그제야 한세아는 이수진이 자신이 서둘러 이씨 가문에 시집오는 것을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그 안에 담긴 깊은 마음을 깨달았다.“세아야, 네가 네 사랑과 행복을 위해 선택하는 걸 내가 막을 수는 없어. 하지만 이것만은 꼭 말해주고 싶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 편이야. 설령 그 상대가 내 친동생이라고 해도.”하지만 그때의 한세아는 어리석게도 이수진이 자신의 절친이자 올케인 자신을 무시한다고만 생각했다.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이라며 자신을 비웃고, 감히 이씨 가문의 문턱을 넘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그렇게 마음의 병이 싹트기 시작해 그녀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오늘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하고 말았다.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 뒤의 상처가 뼈를 깎는 듯 아파왔지만, 가슴속 깊숙이 파고드는 허탈감과 슬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수진아, 내가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거실은 다시 기묘하고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제야 조채원은 뒤늦게 강도윤의 존재를 떠올렸다.“도윤 씨, 내 말 좀 들어봐...”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던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밀려오는 공포감에 조채원은 저도 모르게 이진혁을 밀쳐내고 강도윤을 찾아 밖으로 뛰쳐나갔다.하지만 문가에 다다르기도 전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가로막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타인에게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유산을 초래한 혐의로 체포합니다. 피해자분께서 제출하신 확실한 물증도 확보했습니다.”경찰이 내민 사진 속에는 그들이 나를 바닥에 짓누르고 상해를 입히던 끔찍한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집 안에 설치된 홈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된 결정적인 증거였다.“조채원 씨, 이진혁 씨, 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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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미안해. 내가 우리 첫 아이를 내 손으로 죽였어.”그는 손을 들어 제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미안해, 미안해, 수진아. 내가 죽일 놈이야, 내가 짐승만도 못한 놈이야... 나한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내가... 어떻게든 평생 너한테 속죄하면서 살게.”서늘한 노을빛이 창문 너머로 흘러들어와 강도윤의 처참한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그 모습을 바라보자, 문득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그때도 병원이었고 병실 안이었다.당시 그의 눈동자에는 슬픈 절망이 서려 있었고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힘없이 물었다.“선생님, 괜찮아요. 절 고치지 못하셔도 전 정말 원망 안 해요.”당시 나는 해외 파병 전투 부대 야전 병원 근무를 마치고 갓 귀국한 상태였다.젊음이란 때로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도 용기로 착각하게 만드는 법이다.난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큰소리쳤다.“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살려드릴게요.”그러나 강도윤의 심장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단순한 심장병이 아니었던 것이다.몇 번이고 울려 퍼지던 심정지 경보음과 정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바이탈 수치에, 수술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던 나의 자존심마저 산산이 무너질 것 같았다.나조차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가던 그때, 정작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시한부 환자인 그가 오히려 실없는 농담을 건네며 지친 나를 다독였다.저녁노을이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순간, 나는 메마른 고목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놀라운 생명력을 보았다.그의 눈동자에 깃든 생생한 빛과 안도감은 죽어가던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고 나로 하여금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어 끝내 기적을 만들어내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수술이 무사히 성공한 날,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마치 험난한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난 두 그루의 덩굴처럼, 단단히 얽힌 채로.이후 우리는 같이 홋카이도의 바다에서 물고기 떼를 구경하고, 스위스 설산에서 스키를 탔으며 남산사를 찾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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