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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귀비의 서명

Author: STARGIL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4 21:12:49

“훔친 쪽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설연은 귀비에게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상대가 높은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이 종이를 넘기면, 자신과 무강을 노린 사람에게 가는 길도 끊긴다.

귀비가 수레 발판에 발을 디뎠다. 곁에는 절에 올릴 향 상자가 묶여 있었다.

“공방에 불이 났다기에 오던 길을 돌렸더니 도둑이 있었구나.”

백현이 꺼진 등잔을 보았다. 불은 아직 나지도 않았다. 누군가 불이 날 것을 미리 알고 귀비에게 전갈을 보낸 셈이었다.

설연은 황제가 준 검은 패를 꺼냈다.

“대군을 습격한 자가 이 출입패를 갖고 있었습니다. 황명으로 출처를 찾고 있습니다.”

상궁이 패 뒷면을 읽고 귀비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비는 물러서지 않았다.

“장부를 보라는 허락으로 내 사람을 묶었느냐?”

“저를 칼로 찌르려 해서 막았습니다. 관청 사람이 오면 넘기겠습니다.”

설연은 주문서를 펼쳤다. 귀비가 가져가려 손을 내밀자 한 걸음 물러섰다.

“읽으십시오.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백현이 헛기침했다. 웃음을 참는 소리였다. 귀비의 시선이 잠깐 그에게 갔다가 종이로 돌아왔다.

“낡은 패 두 개를 바꾸라 했을 뿐이다.”

“여기에는 열두 개 값을 치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백현이 다른 종이를 들었다. 귀비가 장석을 보았다.

“열 개는 어디 있지?”

장석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귀비는 그제야 설연을 다시 보았다. 자기 명령으로 꾸민 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얼굴이었다.

설연이 말했다.

“모르셨다면 그렇게 적어 주십시오. 주문한 것은 두 개라고.”

“네가 내게 서명을 요구하느냐?”

“패를 보냈다는 오해를 풀 기회이기도 합니다.”

백현이 말을 받았다.

“물론 저희가 잘못 보았다면, 열두 개 모두 마마의 물건이라고 적어도 됩니다.”

귀비가 부채를 접었다. 장석이 다급히 무릎으로 기어 나왔다.

“마마, 소인은 시키신 대로—”

“내가 열두 개를 시켰느냐?”

장석의 입이 닫혔다. 귀비는 상궁에게 붓을 가져오게 했다. 자기가 주문한 것은 둘이며, 추가 제작과 반출은 허락한 적 없다는 글에 서명했다.

백현은 먹이 마를 때까지 꼼꼼히 기다렸다. 귀비가 노려보자 종이를 살짝 흔들었다.

“귀한 서명이 번지면 안 되니까요.”

귀비는 돌아서기 전에 설연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지?”

“이 조사에 필요한 질문입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귀비는 수레에 오르며 말했다.

“다음에는 네 주인과 함께 와라.”

설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강은 주인이 아니었다. 원수였고, 지금은 자신이 살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마다 상처 입은 얼굴부터 떠올랐다.

수레가 사라지자 백현이 문설주에 기댔다.

“다리가 이제 떨리네.”

“아까는 잘 서 있더니.”

“귀비 앞에서 떨면 예의 없어 보일까 봐 참았지.”

설연이 잠깐 웃었다. 장석은 웃지 못했다. 귀비가 자기를 두고 갔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는 눈이었다.

“날 형조에 보내면 죽습니다.”

“그럼 누가 열 개를 가져갔는지 말해.”

설연은 그의 앞에 앉았다. 장석이 주변을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최명석 쪽입니다. 관노청 수레를 보내 가져갔습니다.”

침실 문밖에서 시신을 찾던 남자였다. 설연은 곧장 믿는 대신 다시 물었다.

“그 말이 맞다는 증거는?”

“수레에 실은 물건 번호를 압니다. 날짜도요.”

백현이 적고 공방 주인에게 확인했다. 대금 종이의 추가 수량 옆에는 관노청에서 보았던 ‘일괄 처리’ 도장이 있었다. 패를 옮긴 수레와 아이를 실은 수레가 같은 곳을 드나든 흔적이었다.

사람을 죽은 것으로 적어 팔던 자들이, 가짜 패도 옮겼을까. 확인할 일이 생겼다. 귀비가 모른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다른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거리 경비가 도착하자 백현은 장석과 칼, 불을 놓으려던 장치를 넘겼다. 누가 무엇을 보았는지도 남겼다. 설연은 증거를 넘겨주기 전에 적어 둘 것은 따로 적었다.

“이제 칠 년 전 장부를 찾자.”

그때 골목 끝에서 길드의 심부름꾼이 달려왔다. 백현이 약재상에 맡긴 쪽지를 받고 형조 기록을 확인한 아이였다.

“찾았어요. 그런데 먼저 가져간 사람이 있어요.”

설연이 종이를 받았다. 가족이 잡혀간 달의 인원 기록이었다. 오늘 새벽, 무강의 집사가 가져갔다고 적혀 있었다.

무강은 분명 별채에 누워 있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이 찾을 기록부터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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