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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냥냥이
재벌가에서 나고 자란 은미란에게 성수지 특유의 천박함이 한눈에 보였다.

아무리 예의를 차리고 환심을 사려 애써봐도 몸에 밴 옹색한 티를 숨기긴 무리였다.

은미란은 강유빈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성수지는 더더욱 가당치 않았다.

강유빈의 등장에 그녀는 순간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멍청한 년! 제 남자 하나 건사하지 못해서 저런 꽃뱀한테 안방까지 내줘?”

이에 박지호가 성수지를 몸 뒤로 숨기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수지 꽃뱀 아니에요. 우리 친구 사이니까 이모도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강유빈은 처음 박씨 저택을 찾았던 날을 떠올렸다.

집안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박지호는 부디 가족들과 부딪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미래를 위해서 꾹 참아야 한다고 말했었지.

하긴, 그때의 박지호는 이제 막 박씨 가문에 입성한 사생아였으니.

하지만 그는 어느덧 가문의 차기 가주로 흔들림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성수지는 겁먹은 척 박지호의 손을 움켜쥐었다. 눈동자엔 숭배에 가까운 동경과 열기로 가득했다.

마치 그를 신처럼 떠받들 기세였다.

“오빠... 귀찮게 해서 미안해.”

박지호의 내면은 묘한 희열로 차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강유빈을 살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런 감흥 없는, 그저 담담하고 건조한 그녀의 옆얼굴뿐이었다.

박지호는 혀를 찼다. 그녀를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일까, 성격이 날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안하무인 격이 되어갔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지 기분이 상했다 싶으면 입을 꾹 다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분이 풀릴 때까지는 절대 굽히지 않는 그 오기가 문제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런 고집을 부리는 건지.

대체 언제까지 저 버릇을 받아줘야 하는 걸까?

“빈아, 수지랑 잠시 앉아 있어. 금방 돌아올게.”

박지호는 성수지의 손을 놓고 서재로 올라갔다.

그 시각, 은미란은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귀티와 달리 눈매에는 상대를 향한 노골적인 경멸과 오만함만이 가득했다.

“유빈이 너 진짜 다시 보게 됐네. 우리 집안에 시집오려고 이런 수모까지 참는 거야?”

강유빈은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말씀 삼가세요. 저는 이만 할아버지 식사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차리는 감사 인사이자 이 가문과 인연을 끊기 위한 작별 의식이었다.

성수지가 본능적으로 따라오려다 눈알을 굴리더니 대뜸 걸음을 멈췄다.

나중에 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몸인데 가정부들이나 드나드는 부엌 따위는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강유빈이 세 번째 요리를 볶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귀싸대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더니 성수지의 비명까지 터져 나왔다.

강유빈이 뒤집개를 든 채 밖으로 나갔다.

그때 박지호가 그녀보다 빨리 2층에서 달려와 바닥에 늘어진 성수지를 품에 안았다.

“이모, 이게 무슨 짓이에요!”

박동건이 아버지 박재한을 부축하여 천천히 내려왔는데 두 사람도 표정이 싸늘했다.

은미란은 선물 상자를 바닥에 내던지며 쏘아붙였다.

“지호야! 내가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윗사람이야! 집까지 데려온 네 친구한테 밥 한 끼 대접하는 건 별일 아니지. 근데 지금 나한테 짝퉁을 선물해?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이 집안에서 무늬만 안주인이라고 조롱하는 거야 뭐야?”

박동건과 은미란은 정략결혼을 했었다.

애정 없는 부부 사이에 은미란은 딸 하나만 낳았는데 박동건이 밖에서 만난 내연녀는 하필이면 그를 위해 아들 박지호를 낳았다.

게다가 박지호는 승승장구하여 무영 그룹 총수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세간에서는 은미란이 결국 박씨 가문 안주인이라는 타이틀을 뺏길 거라며 그녀를 비웃곤 했다.

그 상황에 성수지가 짝퉁으로 그녀를 기만했으니 은미란이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얼굴이 퉁퉁 부은 성수지는 박지호의 품에서 벌벌 떨며 울먹였다.

“오빠, 나 안 그랬어. 저건 오빠가 나한테 준 선물이야. 제일 비싼 거로 골랐는데 가짜가 말이 돼?”

박씨 저택으로 온다는 말에 성수지는 꽤나 큰맘 먹고 보석함을 뒤졌다. 어떻게든 그들의 비위를 맞춰보려고 말이다.

강유빈은 이미 깨져버린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박지호의 금고에서 봤던 물건, 그가 경매장에서 낙찰받았던 거라 이 팔찌 말고도 티아라가 하나 더 있었다. 그때 박지호는 나중에 결혼할 때 쓰자고 하더니 이렇게 성수지에게 넘겼단 말인가.

하지만 바닥에 내팽개쳐진 팔찌는 누가 봐도 가짜였다.

박지호가 갑자기 머리를 홱 돌리고 강유빈을 째려봤다.

“네가 수지 보석함에 손댔어?”

강유빈은 기가 막혀 멍하니 있었고 성수지는 점점 더 세게 울어댔다.

“언니가 날 후원해서 대학 공부도 시켜주고 지호 오빠도 소개해줘서 너무 고마워. 내 모든 걸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언니는 내게 은인이야. 좋아하면 그냥 가져가면 되지 왜 가짜로 바꿔치기한 거야?”

강유빈은 분노가 차올라 치를 떨었다.

“오빠도 같은 생각이야?”

박지호는 성수지의 등을 토닥이며 차갑게 일축했다.

“됐어, 그만해. 할아버지 시장하시니까 얼른 음식이나 내와.”

그는 성수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에 강유빈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좋아, 그럼 경찰 불러. 이 정도 가격이면 충분히 입건할 수 있어.”

박지호의 안색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유빈아, 이리 와.”

그때 박재한이 입을 열며 살벌하던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강유빈은 초췌한 낯으로 앉아 있는 어르신을 바라보다 결국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군말 없이 다가가 박재한의 팔을 부축해 주방으로 향했다.

가정부가 재빠르게 상을 차렸고 강유빈이 직접 만든 몇 가지 요리는 유독 박재한의 앞쪽으로 놓았다.

“역시 나 생각해주는 건 우리 유빈이밖에 없다니까. 이 맛이 얼마나 그리웠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성수지가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

“할아버님, 어머님, 제가 경황이 없어 무례했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한 잔 올릴게요.”

그녀가 술을 마시려 하자 박지호가 손을 낚아챘다.

“의사가 술 금지랬잖아.”

성수지는 눈물 어린 표정으로 호소했다.

“너무 괴로워서 그래. 마음이 너무 괴로워...”

박지호는 고개를 번쩍 들고 강유빈을 쳐다봤다.

“빈이 네가 대신 마셔. 그리고 이 일은 여기서 끝이야.”

우월감으로 가득 찬 지배자처럼 미래의 가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과시하는 이 인간!

강유빈은 헛웃음을 삼켰다.

할아버지께 음식을 덜어주던 공용 젓가락을 내려놓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나 위 아파서 못 마셔.”

순간 박지호의 안색이 굳어졌다.

어젯밤 그녀가 위통을 호소했던 일이 뒤늦게 머리를 스쳤다. 함께 떠오른 건 과거 의사가 일러주었던 주의사항들이었다.

남자의 눈에는 이내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하지만 성수지는 이미 고개를 젖혀 잔에 담긴 와인을 단숨에 비웠다.

이어서 박지호의 품에 기댄 채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그 바람에 박지호도 복잡했던 사색에서 홀연히 빠져나왔다.

“괜찮아. 나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오빠만큼은 곤란한 상황에 빠트리고 싶지 않을 뿐이야.”

박지호는 곧장 사람을 시켜 삼계탕을 준비하게 했다. 안쓰러움에 남자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야, 강유빈! 네가 좀 참으면 안 돼?”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왜 굳이 본가에서 이 난리를 피우는 걸까?

박지호가 이미 수없이 당부했는데...

아버지가 명문가 딸과의 정략결혼을 강요했을 때도, 그는 온갖 압력을 견뎌내며 줄곧 강유빈을 지켜왔다.

그녀는 대체 왜 이렇게 미성숙하게 행동하는 걸까?

한편 그 한마디에 강유빈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그녀는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박지호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당했던, 목숨까지 내놓으려 했던 자신의 용기가 이제 와서 고작 참으란 이 한마디로 대체되다니.

그녀가 왜 참아야 할까?

“야, 박지호! 몰래 꿍꿍이를 품고 가짜 선물을 내민 건 내가 아니야. 한사코 술 마시고 사죄한답시고 일을 다시 들춰내는 것도 내가 아니라고. 너는 눈이 멀었니 아니면 귀가 먹은 거야?”

박지호는 그녀가 집안 어르신들 앞에서 이렇게 대들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

“풉!”

은미란의 가벼운 조소가 이 남자의 가장 아픈 구석을, 그의 치부를 건드리고 말았다.

사생아로 세상에 알려졌을 때의 끔찍한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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