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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uthor: 엣뀽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26 14:04:44

비록 돈도 없고 옷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거지였어도, 에르딘이 주는 밥에 혹하면 안 됐다.

마을로 들어온 남자는 신분을 밝히고 바로 영주의 성으로 향했다. 후겔 백작인지 뭔지,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치유술사를 데려와라. 따뜻한 목욕물과 식사도 바로 준비하도록.”

기이한 광경에 후겔 백작은 잠시 얼어붙었다.

꼬질한 공작도 공작이지만, 저 작은 메이드를 옆에 끼고 부축을 받다니. 황당한 것은 저 작은 메이드가 숨기지도 않고 얼굴을 죄 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공작이 너무 기대고 있지 않은가?

무슨 사이지…….

메이드도 극진히 모셔야겠다고 백작은 오해해 버렸다.

목욕이랑 식사라.

그래, 밥까지만 먹고 도망치자.

에르딘의 겨드랑이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빼려고 했지만, 그는 더욱 힘을 주어 서린을 눌렀다.

“자네는 마저 시중을 들도록.”

에르딘에게 피의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 작은 생물이 자신에게 수치를 준 만큼 최대한 괴롭혀 줄 생각이었다. 얼굴을 얼마나 더 구길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서린은 억울했다.

‘아니, 기사들도 많은데 왜! 나도 쉬고 싶은데! 에르딘 너 정말 못돼 처먹었구나. 나중에 두고 보자.’

둘의 생각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네.”

하지만 마음속과는 다르게 메이드로 돌아간 서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죽을 듯이 무거운데 계단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사리를 쌓는 기분으로 이놈을 침실까지 옮겼다.

치유술사가 올 때까지 서린은 그냥 구석에 서 있었다.

똥개 훈련이냐고.

똑똑.

치유술사가 오기 전, 후겔 백작이 인사차 방으로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백작은 간단히 목례한 뒤 방에 대해 설명하고 세레나의 근황을 전했다.

‘참나, 저건 또 언제 알아보라고 명령했대.’

헬바르크 대장 무리가 자신들을 쫓는 사이, 세레나의 마차는 오히려 안전해졌다고 한다. 무사히 귀환하여 지금은 황궁에 있다고 전했다.

뿌득.

이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삽시간에 방의 온도가 내려간 듯 서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황태자가 구했으니 거기 따라갈 수도 있지! 이 미친 집착남아!

다리만 아니었으면 바로 황궁으로 날아갈 기세였다.

살기를 풀풀 풍기는 에르딘을 뒤로하고 백작이 방을 도망치듯 나갔다.

치유술사 빨리 와 줘. 숨 막혀서 사람이 살 수가 없어.

서린은 기도했다.

세레나,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줘.

치유술사가 와서 다리를 보고는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이더니,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오오.

이 세계에 와서 마법은 처음 보는데.

신기해진 서린은 자신도 모르게 자라목이 되어 빼꼼 그 장면을 쳐다봤다. 다리가 순식간에 아물어 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마법만 있으면 경기 뛰다 전방 십자인대 끊어져도 다음 날 옥타곤 올라가겠는데?’

서린다운 생각이나 해 버렸다.

길고도 길었던 그의 다리 치료를 마치고, 드디어 목욕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에르딘은 확실히 서린에게 감정이 있는 게 맞았다.

악감정.

자신의 사용인이 있다며 백작가 시중인의 목욕 시중을 거부한 것이다.

꼬질꼬질한 서린이 씻겨 주면 씻겨 주나 마나 아니냐.

상사가 까라는데 까야지. 별수 있나.

한껏 얼굴을 구기고 목욕 시중을 들러 욕실에 들어섰다.

너무나 당연한 듯 양팔을 벌리고 목욕하는 에르딘의 뒷모습은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근육 맛집이시네요.

사심이 담긴 것은 아니고, 진짜 오랜만에 조각 같은 근육을 보자 서린은 눈이 돌아갔다.

자신도 모르게 목부터 팔까지 이어진 근육을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 보았다. 삼각근부터 팔까지 떨어지는 근육이 아름다웠다.

‘우와.’

“……아직도 죽고 싶은가 보군.”

깜짝이야.

맞다. 목욕 시중이지.

서린은 자신도 모르게 조각 같은 근육을 만지던 손을 화들짝 뗐다.

“죄송합니다. 삼각근이랑 상완 이두근이 너무 환상적이라 그만.”

뭐?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여자를 휙 돌아본 에르딘은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져 변덕을 부렸다.

“됐어. 그만 나가 봐.”

“예? 이제 안 만질게요.”

“지금 나가는 편이 좋을 거야.”

에르딘이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히익 소리를 내며 메이드는 도망 나갔다.

저를 남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변덕은 긴장이 풀려서 그러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속였다.

그에겐 세레나가 있으니.

목욕을 마친 에르딘은 식사를 위해 응접실로 향했다.

언제 씻었는지 자신의 메이드 또한 꼬질꼬질한 때를 벗고 해사하게 웃으며 에르딘에게 총총 다가왔다.

에르딘은 자꾸 어딘가 간지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서린은 완벽한 남자 에르딘을 보며 터질 듯한 기쁨으로 미소를 발사해 버렸다.

‘밥 어디서 먹는지 모르는데 잘됐다.’

에르딘을 따라가면 먹겠지 싶어 그의 뒤에 착 붙어 걸어갔다.

응접실에 도착한 둘은 만찬과 함께 준비된 스테이크 두 접시를 발견했다.

에르딘의 눈이 맞은편의 스테이크에 닿았다. 차갑게 눈동자를 가라앉힌 그가 물었다.

“저 접시 하나는 누구의 것이지?”

지목당한 사용인이 당황하며 서린을 쳐다봤다.

후겔 백작이 지시한 서린의 몫이었다.

“……이곳 백작저는 주인이 사용인과 겸상을 하나?”

공작의 으르렁거림에 사색이 된 사용인이 재빨리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빨리 치우겠습니다.”

이번엔 서린이 당황하여 스테이크 접시를 들었다.

“제가 치우겠습니다!”

그대로 접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걸 왜 치워! 내 뱃속으로 치워야지. 얄미워 죽겠어, 정말. 망할 계급제 사회 저주한다.’

궁시렁거리며 주방 구석에서 스테이크를 먹어 치우는 서린이었다.

이 정도면 서린도 공작이 일부러 자신을 저격하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좀 자고 내일 바로 도망쳐야겠다.

망할 계략꾼 같으니.

제일 치사한 게 먹는 걸로 그러는 거다.

서린은 서러워져서 스테이크를 일부러 더 크게 한입 먹어 버렸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서린은 날벼락을 맞았다.

자신을 데리고 황궁으로 가겠다는 공작의 말에 잠결에 일어나 백작저를 떠나야 했다.

그냥 혼자 다녀오시라고 했다가 칼을 뽑으실 뻔한 건 비밀이다.

말을 탈 줄 모른다니까 자신 앞에 턱하니 앉혀 놓고 마구잡이로 말을 몰았다.

서린은 엉덩이가 매우 아팠다.

설마 세레나가 황궁에 있다고 해서 지금 이 난리를 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꼭 나를 데려가야 하는 이유는 뭐지?

말없이 꼬박 하루를 달려 황궁에 도착한 그들은 곧바로 세레나를 만나러 입궁했다.

“델리아!!!! 살아 있었구나!”

세레나가 비명처럼 소리 지르며 서린을 껴안았다.

아, 그러니까 델리아가 세레나의 최측근(?)인 것 같다. 그러니까 머리도 땋고, 늦잠 자도 뭐라 안 하고 했구나.

나도 세레나를 힘껏 안아 주었다. 내 삶을 반겨 주는데 안 그럴 이유가 없잖아?

“세레나, 우리 할 말이 있지 않아?”

“좋아요. 내일 오전에 별채에서 티타임을 가지시죠.”

에르딘은 여전히 눈만 웃은 채 본론만 말했다. 하루 종일 보고 싶어서 달려온 남자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하루를 꼬박 달렸으면서 티 좀 내라고.’

반면 세레나는 단단해져 있었다. 그의 눈을 보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떨지 않았고,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서 서린만 ‘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왕이면 세레나 옆에 있는 게 목숨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델리아, 듣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늘은 나랑 같이 자자!”

“좋아요!”

세레나는 서린의 손을 잡아끌고 처소로 향했다. 그 모습을 에르딘이 기괴한 눈으로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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