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너무 위험한 여자 / 1. 언니가 죽었다.

Share

너무 위험한 여자
너무 위험한 여자
Author: 데이지

1. 언니가 죽었다.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5 10:02:44

비는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뛰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구급차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유리는 택시 창밖을 보며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단 한 문장이었다.

"가족분이시죠? 지금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유진. 유리는 그 이름을 입 안에서 여러 번 굴려보았다. 

살아 있는 동안, 언니의 이름을 그렇게 또박또박 마음속에 되새긴 적이 있었던가. 

지금은, 이름의 모양이 너무 선명해서 아팠다.

도착한 병원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응급실은 소란스러웠지만, 

그녀가 안내받은 복도는 정적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비닐 커튼이 희미하게 흔들릴 뿐, 

사람들의 말소리도 발소리도 공기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유리는 안내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문득 발끝이 멈췄다.

자동문 너머, 하얀 천 아래로 누워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시트가 걷히고, 언니의 얼굴이 드러났다.

조유진. 차가운 이마, 닫힌 눈, 말라버린 입술. 그토록 자주 웃던 입꼬리는 완전히 굳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얼굴이,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유리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목 안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이가 맞부딪혔다.

“가족분이시죠.” 의사의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조심스레 건네받았다. 

유진의 검사기록이었다. 그는 말을 고르듯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참… 이건, 꼭 전달드려야 해서요. 임신… 8주차였습니다.”

임신.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마치 바닥이 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두 귀가 순간적으로 먹먹해졌고, 의사의 입술만이 허공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무언가 말을 이어갔지만, 유리는 듣지 못했다.

언니는 아이를 갖고 있었다. 누구의 아이인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해한 사람처럼. 하지만 눈은 흐리지 않았다. 

그 감정은 눈물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었고,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장례는 빠르게 치러졌다. 유진의 삶은 화환 몇 줄과 헌화하는 몇 명의 손길로 정리되었다. 

사진 속 웃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유리는 어쩐지 언니가 자기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유리는 조용히 언니의 방으로 돌아왔다.

향이 빠진 립밤, 접힌 잠옷, 침대맡에 던져진 머리끈 하나까지 그대로였다. 

그 모든 일상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정작 주인은 사라져 있었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이불 자락을 잡았다. 

미세하게 남은 체온의 흔적을 붙잡는 듯, 느릿한 동작이었다.

책상 위엔 휴대폰이 있었다. 전원이 꺼져 있었고, 케이블도 빠져 있었다. 

평소에 유진이 쓰던 핸드폰과 다른 것이었다.

유리는 가만히 충전기에 꽂았다. 화면은 몇 초 후에 켜졌고, 밝아진 배경엔 낯익은 바탕화면이 드러났다.

잠금은 설정돼 있지 않았다. 유진이 마지막 순간까지 믿은 단 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유리는 문득 목이 조여 왔다. 

손끝이 화면을 밀었고, 메모 앱이 보였다.

[유리에게]

단 하나의 음성 파일이었다.

손가락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짧은 지연 후, 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친 숨이 먼저 들렸고, 이어져 나온 말은 짧고 날카로웠다.

'유리야…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서이현. 그 사람의 짓이야. 

 절대 그 사람과 엮이지마. 미안해. 언니가 너까지 위험하게 해서… 미안해…'

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유리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말들이 뼛속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정신은 또렷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으나, 손등에 땀이 배어 나와 있었다.

서이현. 그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낯설고, 낯선 만큼 불길했다. 

그 한 사람의 이름이 유진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현실 같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두려움과 단념, 

그리고 단 하나 남은 희망을 걸고 남긴 말. 유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조용하고, 길고, 무표정하게.

그날 밤, 유리는 처음으로 복수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감정이 아니었다. 선고였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너무 위험한 여자   168. 조유진은 여기서 마지막까지 버텼다

    햇살이 지면 너머에서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하늘은 흐릿했고, 구름의 무게가 낮게 깔린 오후의 공기는숨을 깊게 들이마실수록 가슴 안쪽까지 눅눅하게 젖어들었다.별장을 둘러싼 산자락에는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가늠할 수 없는 고요가 깃들어 있었고,그 고요는 마치 오래전 잊힌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는 말을 삼키고 있었다.이우는 발끝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무너진 담벼락과 나무 덤불 사이,유리가 발견한 손수건 근처를 중심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유리는 손수건을 곁에 두고, 손끝으로 가만히 흙을 헤집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은 채,마치 무언가가 손끝에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매우 천천히, 고요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녀의 손끝에 딱딱한 감촉이

  • 너무 위험한 여자   167. 끝까지 가겠다는 약속

    유리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그 손길은 어쩌면, 세상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고 믿을 수 있는 연결이었다.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이젠… 절대 혼자가 아니니까요.”그날 밤, 유리는 잠들지 않았다.책상 위에 펼쳐진 유진의 사진, 노트에 적힌 단서들,그리고 박소정이 남긴 증언을 정리하며 하나씩 조각을 맞춰나갔다.이우는 그녀 곁을 지켰다. 말없이, 끝까지.바깥은 조용했다. 그러나 유리는 알았다.이 고요함은 폭풍 전의 정적이라는 것을.그날, 언니가 흘렸던 눈물처럼 자신도 점점 더 감정의 벼랑 끝에 서고 있다는 걸.그러나 이번엔 그 끝에서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있었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야 할 진실이라는 이름으로.바람이 먼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오던 새벽,짙은 안개는 들판을 기어오르듯 스며들어 도시의 가장자리마저 무겁게 감쌌다.조유리와 서이우가 탄 차는 침묵 속에 목적지를 향해 느리게 나아가고 있었다.라디오도 꺼진 조용한 차 안, 창밖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이따금씩 두 사람의 침묵을 대신해주었다.유리는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무릎 위에 놓인 노트북,그 안에는 유진의 마지막 이동 경로가 기록되어 있었다.박소정이 말했던 ‘그날 밤’의 좌표. 그리고 ‘사라졌다’는 말 대신‘지워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그 마지막 장소.“많이 흐려졌네요.”이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유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짙게 내려앉은 안개는 언뜻 보면 풍경을 덮는 베일처럼 보이기도 했지만,그 안엔 숨기려는 무엇이 분명히 있었다.“혹시…”그녀가 입을 뗐다.“그곳에… 정말 뭐가 남아 있을까요?”이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의 손은 여전히 안정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흔들리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남아 있어요.”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흔적은 절대 사라지지 않거든요.”유리는 입술을 다물었다. 심장이 서서히 조여오는 느낌. 지금 이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과거의 가장 어두운

  • 너무 위험한 여자   166. 진실의 파편, 그리고 그날의 회상

    노트북을 내밀며 그녀가 음성 파일을 재생하자, 여성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그리고 음성이 멈췄을 때,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이건… 박소정이에요.”“박소정…이요?”이우가 되물었다.“그 사람, 유진과 같이 일했죠. 언니처럼 따라다녔고… 늘 유진 곁에 있었어요.”“지금은… 어디에 있나요?”유리의 질문에 여성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사고가 있었어요. 유진이 사라지기 몇 주 전, 소정도 갑자기 그만뒀어요. 연락이 끊겼죠.”유리는 손끝을 움켜쥐었다.

  • 너무 위험한 여자   165. 이 목소리는 언니가 아니었다

    낡은 책상, 오래된 커튼, 그리고 구석에 놓인 작은 녹음기 하나.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그러나 그 안에는 언젠가 있었던 무언가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남아 있었다.유리는 방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그리고 다시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이건 내가 선택한 거야.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 그러니까, 만약 내가 없어지게 된다면.”그 순간, 구석의 녹음기에서 전혀 다른 톤의 이어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넌 네 방식대로 살아.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남을게.”낯선 여성의 목소리.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어투.유리는 숨을 삼켰다.“이 목소리….”이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누구죠?”“……몰라요. 하지만,”유리는 말을 멈췄다.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조용히, 그러나 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그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그 음성이 그녀의 과거 어디쯤에 언제나 있었던 사람의 것이란 걸.그날 밤, 두 사람은 숙소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불 꺼진 방 안. 창밖엔 달빛조차 흐리지 못할 정도로 짙은 구름이 드리워 있었다.“모든 퍼즐이… 한 조각씩 보이기 시작했어요.”유리가 말했다.“하지만 그 조각들이… 내가 알던 그림이 아니라면요?”그 말에, 이우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감쌌다.“진실은… 언제나 낯설죠.”“그래도… 알고 싶어요.”“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진실 위에 서게 될 거예요. 울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방 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너머로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한때는 복수로 엮인 사이.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생의 가장 안쪽에서 숨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고요한 새벽, 도시의 끝자락에 부드럽게 깔린 안개는마치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시간의 잔해처럼 창가를 스쳐 흘렀다.방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희미한 노트북 화면의 푸른빛이 조유리의 옆얼굴을 서늘하게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다시,

  • 너무 위험한 여자   164. 무너졌다고 사랑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날 밤은 유난히 긴 그림자를 끌었다.도시의 불빛은 낮게 깔린 안개 사이에서 제 빛을 다하지 못했고,고요함은 오히려 누군가의 숨결처럼 무겁게 방 안을 감쌌다.조유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노트북 화면은 오래도록 켜진 채 조용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고,그녀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은 채,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마음은 이미 수없이 많은 문장을 그려냈다.하지만 그 모든 문장은 현실의 언어로 옮겨질 수 없을 만큼 무겁고 깊었다.USB에 담긴 새로운 자료들.그 안에는 유진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었다.감시용 카메라가 포착한 흐릿한 장면.그녀가 혼잣말을 하듯 무언가를 중얼이며 서성이는 뒷모습.

  • 너무 위험한 여자   163. 무너졌다고 사랑이 사라지진 않는다

    해가 완전히 기운 이른 저녁,붉은 노을은 유리창 너머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고 도시는 점점 어둠 속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창밖의 불빛들은 저마다 다른 진실을 품은 듯 반짝였고,그 불빛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지쳤거나, 포기했거나, 혹은 아직 기다리고 있는 눈빛.조유리는 조용히 커튼을 닫았다.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외부와 단절된 조용한 밀실이 되었고,그 정적 속에 그녀는 천천히 숨을 고르듯 앉았다.책상 위에는 며칠째 그녀가 들여다보는 보고서와 자료들이 조용히 겹겹이 쌓여 있었다.그 중 하나, 장상우가 넘긴 문건들 가운데 한 장의 문서가 유리의 시선을 끌었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