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봄 기운이 만개한 5월의 어느 토요일, 동네 구민회관 소강당은 알록달록한 풍선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늘은 캠핑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여름이의 생애 첫 피아노 학원 발표회 날이었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은은한 분홍빛 튜튜 드레스에 앙증맞은 화관을 쓴 여름이가 쑥스러운 듯 걸어 나왔다. "아빠들... 나 어때? 조금 어색하지?" 그 순간, 대기실복도는 일순간 거대한 통곡의 장으로 변했다. 190cm 거구의 강태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어떡해, 우리 딸 너무 예뻐! 나중에 시집보낼 때 나 진짜 죽는다!"라며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태준은 안경을 차마 올리지도 못하고 자꾸만 김이 서리는 렌즈를 연신 닦아내며 입술을 깨물었고, 이수는 손에 든 대형 꽃다발을 꼭 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코를 훌쩍였다. 유준은 8K 초고화질 캠코더를 든 손을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카네기 홀이다... 여긴 구민회관이 아니라 카네기 홀이야..." 마침내 무대 조명이 켜지고, 여름이가 수줍게 걸어 나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지자, 객석 맨 앞줄을 점령한 네 남자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똠, 똠, 똠, 똠... 여름이가 두 달 동안 피나게 연습한 '작은 별'과 '할아버지의 11일 시계' 연주가 소강당 안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약간의 박자 실수가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앙증맞은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무사히 곡을 마쳤다. 여름이가 연주를 마치고 일어서서 인사하는 순간, 네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객석은 네 아빠의 폭풍 같은 눈물과 박수 소리로 뒤흔들렸다. 하지만 진짜 대소동은 발표회가 모두 끝난 직후에 벌어졌다. 원장 선생님이 "오늘 참가한 어린이들을 위해 학부모님 한 팀의 깜짝 축하 무대가 있겠습니다!"라고 안내하자, 갑자기 정장 차림의 네 남자가 무대 위로 당당하게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의 주말, 셰어하우스 마당에는 엄청난 크기의 캠핑 장비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봄을 맞아 "아빠들이랑 숲속에서 밤하늘 별 보면서 자고 싶다!"라는 여름이의 한마디에 네 아빠가 각자의 방식대로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형들, 진짜 캠핑은 자본과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입니다." 유준이 해외에서 특송으로 공수한 초대형 스마트 에어텐트를 리모컨으로 꾹 누르자, 텐트가 스스로 바람을 푹푹 흡입하며 5분 만에 웅장한 '2층 궁전'으로 변신했다. 내부에는 가죽 소파, 위성 인터넷,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에 빔프로젝터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옆에서 뼛속까지 야생파인 강태가 코웃음을 쳤다. "에이, 저런 게 무슨 캠핑이야! 완전 호텔을 통째로 옮겨왔네. 캠핑은 모름지기 흙바닥에서 땀 흘리고,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야생의 맛이지!" 강태는 비장하게 부시크래프트 전용 나이프와 장작을 꺼내 들며 '인간 대 자연'의 서바이벌을 선언했다. 한편, 태준은 안전모와 방충 스프레이, 구급상자를 완벽하게 갖춘 뒤 캠핑장 지도와 비상 연락망을 체크하고 있었고, 이수는 이동식 냉장고 3개에 최고급 한우 토마호크와 특제 수제 소스를 가득 채워 넣고 있었다. 마침내 산속 캠핑장에 도착하자, 두 아빠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빠, 불은 언제 켜져? 고기 배고파!" 여름이의 말에 강태가 팔뚝 핏줄을 세우며 부싯돌을 팍팍 튀겼다. 하지만 습기를 머금은 장작은 연기만 폴폴 피워 올릴 뿐, 30분이 지나도록 불씨가 살아나지 않았다. 강태의 얼굴은 그을음으로 칠칠하게 범벅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강태 형, 고생하지 말고 이 최첨단 원터치 파이어 토치를 쓰시죠." 유준이 비웃으며 가스 토치를 꺼내 들자, 강태는 "사내 자식이 자존심이 있지!"라며 이빨을 악물고 연신 부싯돌을 그어댔다. 결국 보다 못한 이수가 "애들 배고프다. 비켜라."라며 이수 표 특제 숯불을 3초 만에 지펴내어 강태의 야생 자존심은 가볍게 무
"아빠, 나 다른 친구들처럼 피아노 학원 다니고 싶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온 여름이의 한마디에 식탁 위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딸의 첫 '예술 교육' 선언에 네 아빠의 머릿속 센서가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당장 독일에서 스태인웨이 앤 선즈 그랜드 피아노 하나 주문할게. 거실에 두면 딱이겠네." 유준이 태연하게 수표책을 떠올리자, 태준이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제지했다. "유준아, 과유불급이다. 지금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체계적인 커리큘럼이야. 바이엘과 체르니 중 어느 과정을 채택하는지, 연주회 주기는 어떻게 되는지 면밀히 분석해야 해." 태준이 즉시 노트북을 켜고 동네 피아노 학원 리스트와 평가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강태는 가슴을 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니, 우리 여름이 가녀린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다가 무리 오면 어떡하냐? 그리고 원장 선생님 인성이 제일 중요하지! 애들한테 소리 지르는 사람 아니어야 해!" 이수는 허허 웃으며 야무진 수제 쿠키를 상자에 담았다. "첫 방문인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원장님이랑 선생님들 드실 간식 챙겨놨으니까 같이 둘러보러 가자." 다음 날 오후, 동네 상가 피아노 학원 밀집 지역에 거대하고 훤칠한 사내 넷이 등장했다. 첫 번째 클래식 전문 학원. 태준은 안경을 번뜩이며 학원 이력서와 방음 시설의 데시벨 측정을 꼼꼼히 확인했고, 강태는 의자가 너무 딱딱해서 여름이 엉덩이가 아프지 않을지 손으로 일일이 눌러보았다. 유준은 "연습실 전 소음 차단 공사와 최신형 에어컨 교체를 지원하겠다"며 자본주의적 제안을 던져 원장 선생님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결국 여름이가 선택한 곳은 알록달록한 체리 그림이 그려진,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피아노를 치는 따뜻하고 정겨운 동네 학원이었다. 며칠 뒤, 첫 수업을 마치고 온 여름이가 거실 한가운데 놓인(유준이가 층간소음 방지용으로 몰래 설치한 최고급 디지털 피아노) 의자에 수줍게 앉았다. "아빠들! 나 오늘 배운 거 보여줄
오전 7시 30분,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는 마치 군대의 새벽 비상 소집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터질 듯한 근육 위에 야광 형광 조끼를 꽉 끼게 껴입고, 손에는 경찰용 LED 야광봉을 쥔 강태가 신호등 앞에 우뚝 섰다. 그 뒤로는 스톱워치를 들고 신호 주기를 정밀 측정한 태준과, 도로변 불법 주정차 차량을 일절 허용하지 않겠다며 사비로 초고선명 LED 가변 표지판을 도배한 유준이 배수진을 쳤다. 교문 앞에서는 이수가 추운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수제 꿀유자차를 보온병에 담아 나눠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작전명 '어린이 보호구역 철통 방어'. 오늘 단 한 대의 차도 스쿨존 속도위반을 허용하지 않는다!" 강태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비장하게 선언했다. 마침내 아이들의 등교가 시작되자 강태의 폭주가 개막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 강태는 호루라기를 삐익-! 소리가 나게 불며 항공모함 유도 요원처럼 절도 있고 화려한 손짓으로 차량들을 가로막았다. 190cm 거구의 형광빛 거인이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막아서자, 출근길 승용차들은 감히 정지선을 1cm도 넘지 못하고 덜컥 멈춰 섰다. 심지어 정지선을 슬그머니 넘어서려던 배달 오토바이 한 대는, 맹수 같은 눈빛으로 야광봉을 치러 든 강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횡단보도 10미터 전부터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정지했다. "선생님! 서행입니다, 서행! 스쿨존 제한 속도는 시속 30km입니다!" 강태가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고도 압도적인 경고를 날리자, 운전자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차선을 물러섰다. 그 광경을 보며 친구 지훈이와 함께 걸어오던 여름이는 순간 자리에 얼어붙었다. 도로 한가운데를 지배하는 형광 조끼의 강태, 옆에서 카메라로 불법 주정차를 채증 중인 태준, 커피 차를 대동해 학부모들에게 음료를 돌리는 유준, 아이들에게 "천천히 걸어가라"며 유자차를 쥐여주는 이수까지. "여름아... 너네 아빠들 진짜 무슨 특수
3월의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쬐는 새 학기 첫 주.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여름이가 가방 속에 들어있던 가정통신문 한 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4학년 학부모 총회 및 학부모회 임원 선출 안내] 통신문을 확인한 순간, 네 남자의 눈동자에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 "드디어 때가 왔군." 태준이 안경을 지체 없이 밀어 올렸다. "초등학교 4학년은 아이의 학업 성취도와 교우 관계가 정립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학부모 총회 참석은 선택이 아닌 필수지." "무슨 소리! 당연히 내가 가야지!" 강태가 가슴을 팡팡 쳤다. "내가 학교 앞 교통지도 맡아서 우리 여름이랑 동네 아이들 안전을 철통 방어할 거라고!" 유준은 턱을 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형들, 그렇게 세련되지 못하게 싸울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학교 발전기금을 기부하고 교실마다 최고급 공기청정기와 전자칠판을 세팅하면 학부모회장 자리는 자연스럽게..." "너 또 자본주의로 폭주하지 마라." 이수가 조용히 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 마음을 얻는 건 정성이 담긴 음식이야. 당일 학부모회 간식은 내가 수제 핑거푸드로 완벽하게 차려낼 테니까." 결국 대망의 학부모 총회 당일, 네 남자는 그 누구도 양보하지 못한 채 '4인 단체 출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결정을 내렸다. 교실 문이 열리고, 맞춤 정장을 깔끔하게 입은 태준과 유준, 넓은 어깨를 자랑하는 강태, 그리고 묵직한 포스를 풍기는 이수가 차례로 들어서자 교실 안은 일순간 적막에 싸였다. 학부모 총회에 시원시원한 피지컬의 건장한 남성 넷이 세트로 등장했으니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임원 선출 시간이 되자, 네 아빠들의 은밀한 존재감 경쟁이 시작되었다. 태준은 특유의 논리정연한 언변으로 학교 교육 과정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다정한 질문을 던져 담임선생님의 감탄을 자아냈고, 유준은 은근슬쩍 학급 학습 자재 지원을 약속해 학부모들의 환호를 받았다. 압권은 '녹색어머니/아버지회' 선출 시간이었다. 강태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시골집 마당, 잠에서 깬 여름이가 마루에서 기지개를 켜다 자지러지게 기뻐하는 소리를 질렀다. "아빠! 이것 좀 봐! 진짜 조그맣고 귀여운 강아지가 있어!" 할머니 집 툇마루 밑에서 꼬리를 털털 털며 나온 것은 누런 털이 덥수룩하고 발바닥이 꼬질꼬질한 시골 길강아지였다. 누룽지를 닮은 구수한 털 색 때문에 여름이는 녀석에게 즉석에서 '누룽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녀석은 처음 본 여름이의 손길에도 기분이 좋은지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돌아갔다. 할머니는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동네 돌아다니는 들개 새끼인데, 며칠 전부터 우리 집 툇마루 밑에 굴을 파고 살더구나. 가여운 놈이지." 그 말을 들은 여름이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네 아빠를 향해 필살의 '초롱초롱 광선'을 쏘아 보내는 여름이. "아빠… 우리 누룽지 서울 집으로 같이 데려가면 안 돼? 불쌍하잖아…" 태준이 미간을 짚었다. "여름아, 집에는 이미 두부랑 치즈가 있잖아. 갑자기 새 식구가 들어오면 두부랑 치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구." 원칙주의자 태준이 설득에 나섰지만, 이미 유준은 휴대폰으로 '최고급 출장 애완동물 검진 및 예방접종'을 예약하고 있었고, 강태는 누룽지를 한 손에 가볍게 들고 "크으, 녀석 뼈대가 튼튼한 게 장군감이네!"라며 볼을 비비고 있었다. 결국 서울로 돌아오는 유준의 차 뒷좌석에는 여름이의 품에 안긴 누룽지가 당당히 탑승해 있었다. 문제는 셰어하우스에 도착한 직후였다. 대문이 열리고 누룽지가 마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 셰어하우스의 기존 터줏대감인 순둥이 골든리트리버 '두부'와 까칠한 고양이 '치즈'가 정색을 하며 달려 나왔다. "왈! 왈!" 두부가 덩치에 걸맞게 위엄을 과시하며 짖어대자, 꼬질꼬질한 시골 똥강아지 누룽지는 주춤하기는커녕 '컹!' 하고 짧게 맞받아치며 두부의 코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더니 두부의 전용 고급 수제 간식 그릇으로 직행해 냠냠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거기, TV 장식장 모서리! 1mm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붙여! 애 이마 찢어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주말 아침, 이태준의 불호령이 셰어하우스를 뒤흔들었다. 한 손에 줄자를 든 태준은 마치 건설 현장 소장처럼 거실을 누비며 위험 요소를 색출하고 있었다.여름이가 '뒤집기'라는 신기술을 장착한 지 불과 3일. 얌전히 바운서에 누워있던 천사는 사라지고, 눈만 떼면 매트 밖으로 굴러가 바닥을 핥거나 테이블 다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직진형 굴삭기'가 탄생했다.결국 태준은 '제2차 베이비 룸 개조 작전'을 선포했다."아니, 형!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4월의 주말 오후.평화로운 연희동 셰어하우스 거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거실 한가운데 깔린 뽀로로 퍼즐 매트 위. 그곳에는 엎드린 채 낑낑거리며 용을 쓰고 있는 생후 7개월 여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네 명의 성인 남자가 숨죽인 채 둥글게 포위하고 있었다.사건의 발단은 10분 전이었다.매트 위에서 모빌을 보며 놀던 여름이가 갑자기 한쪽 다리를 번쩍 들더니, 허리를 활처럼 휘며 몸을 옆으로 틀기 시작한 것이다."어? 어어?! 형들! 이거 봐! 여름이 몸이 반으로 꺾였어!"가장
오후 2시, 셰어하우스 거실.태준이 출근 전 남기고 간 화이트보드에는 붉은색 마카로 **[최우선 미션: 연희 소아과 방문 (기초 건강 검진 및 개월 수 파악)]**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체육관 박 여사님이 그러시더라. 애가 대충 7개월쯤 돼 보이는데, 이맘때 맞아야 할 접종이 한두 개가 아니래. 우리 며칠 전에 애 열났을 때 전전긍긍했잖아. 당장 병원 가서 의사한테 전체 싹 다 검사받으라고 하시더라고."강태의 말에 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태준이 형도 법적으로 나중에 우리가 임시 보호자 주
"주목."월요일 아침 7시. 이태준이 화이트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섰다.보드에는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마카가 어지럽게 교차된 **[여름이 특별 보호조치 4교대 로스터]**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흡사 대기업의 연간 프로젝트 브리핑을 방불케 하는 비주얼이었다."어제부로 우린 한배를 탔다. 육아는 곧 실전이고, 사고를 막기 위해선 완벽한 매뉴얼이 필수지. 내 지시대로만 움직이면 문제없을 거다."소파에 나란히 앉은 세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보드를 올려다보았다.아차, 정말 예리하신 지적입니다! 작가님 말씀이 백번 맞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