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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바구니 밑의 비밀과 트랜스포머 유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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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4-18 10:01:28

오후 2시, 셰어하우스 거실.

태준이 출근 전 남기고 간 화이트보드에는 붉은색 마카로 **[최우선 미션: 연희 소아과 방문 (기초 건강 검진 및 개월 수 파악)]**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체육관 박 여사님이 그러시더라. 애가 대충 7개월쯤 돼 보이는데, 이맘때 맞아야 할 접종이 한두 개가 아니래. 우리 며칠 전에 애 열났을 때 전전긍긍했잖아. 당장 병원 가서 의사한테 전체 싹 다 검사받으라고 하시더라고."

​강태의 말에 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태준이 형도 법적으로 나중에 우리가 임시 보호자 주장하려면, 병원 진료 기록 남겨두는 게 유리하다고 했고. 근데 막상 가서 의사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어떡해? 우린 애 생일도 모르는데."

​"모르면 항체 검사해서 처음부터 다시 맞추면 된대. 일단 가자."

​그때였다.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여름이의 첫 바구니(비 오던 날 아기가 담겨있던 그 바구니)를 버리려고 정리하던 유준이 갑자기 소리쳤다.

​"어? 형들! 잠깐만요. 이 바구니 바닥 깔개 쪽에 뭔가 만져지는데요?"

​"뭐?"

​유준이 낡은 바구니 바닥의 천을 들추자, 교묘하게 숨겨진 작은 지퍼가 나타났다. 유준이 떨리는 손으로 지퍼를 열자, 그 안에서 비닐 지퍼백에 꼼꼼하게 싸인 작은 수첩 하나가 툭 떨어졌다.

​[건강인 아기수첩]

​"이, 이거…!"

세 남자가 우르르 모여들어 수첩을 펼쳤다.

​아기 이름: 여름 (성은 적혀있지 않았다)

​생년월일: 2025년 8월 12일 (현재 정확히 생후 7개월)

​혈액형: O형

​접종 기록: BCG(결핵), B형 간염 1차 등 생후 4개월까지의 접종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도장은 전부 서로 다른 지역의 소아과였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키웠다는 증거였다.)

​"대박… 친모가 이거까지 다 챙겨서 보낸 거였어." 이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행이다. 혈액형이랑 생일, 과거 접종 기록 다 있네. 오늘 가서 밀린 거 맞히면 되겠다."

​강태가 안도하며 수첩을 챙겨 넣었다. 하지만 세 남자의 가슴 한편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아이의 기록만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엄마의 절박함이 묵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 감상은 나중에 하고 빨리 병원부터 가자. 유준아, 네가 아까 당근에서 주워 온 유모차 가져와!"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가운데, 세 남자가 거대한 검은색 물체 주변에 둥글게 모여 서 있었다. 마치 미확인 비행물체를 발견한 요원들처럼 심각한 표정이었다.

"유준아. 이게 유모차라고? 바퀴 달린 장갑차 아니야?"

이수가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바닥에 놓인 것은 유준이 '당근마켓 무료나눔'으로 주워왔다고 우기는 영국 최고급 명품 브랜드 유모차였다. (물론 300만 원이 훌쩍 넘는 신상이었지만, 이수와 강태가 그걸 알 리 없었다.)

"아, 요즘 애들 타는 건 다 이 정도 해요! 충격 흡수 서스펜션도 있고! 자, 강태 형. 3시에 초등부 수업 가셔야 하니까 빨리 펴서 병원 갑시다."

"오냐. 내가 힘은 좀 쓰지."

강태가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는 유도 기술을 걸듯 유모차의 손잡이와 본체를 꽉 쥐고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끼기긱!*

"어? 안 펴지는데?"

"형, 거기 말고 밑에 쇠 파이프를 당겨야 하는 거 아냐? 비켜봐, 내 공간 지각 능력을 보여주지."

이수가 합세해 바퀴를 발로 밟고 손잡이를 위로 치켜올렸다. 하지만 유모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수의 바지가 무릎까지 말려 올라가며 엉거주춤한 기마 자세가 연출되었다.

"아씨, 이거 변신 로봇이야?! 왜 합체가 안 돼! 부서지겠어!"

"형들,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요! 강태 형, 백초크 걸지 마요! 프레임 휜다고!"

결국 보다 못한 유준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그는 손잡이 중앙에 있는 작은 버튼을 톡 누른 뒤, 가볍게 위로 들어 올렸다.

*촤락- 철컥!*

단 1초. 유모차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완벽하게 펴졌다.

머쓱해진 이수와 강태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유준은 한숨을 쉬며 바운서에 누워있던 여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유모차에 눕혔다.

"자, 이제 진짜 출발합니다. 오늘 목표는 [연희 연합 소아청소년과]. 미션은 B형 간염 2차 예방접종. 다들 긴장 늦추지 마세요."

오후 2시 30분, 소아과 대기실.

파스텔톤 뽀로로 벽지가 발라진 평화로운 병원 로비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입구로 들어선 것은 산만한 덩치에 근육이 터질 듯한 반팔 티셔츠를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강태), 물감이 잔뜩 묻은 헐렁한 옷을 입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사내(이수), 그리고 명품 유모차를 한 손으로 여유롭게 끄는 묘한 분위기의 청년(유준)이었다.

대기실의 엄마들이 흠칫하며 아이들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저기… 접수하러 왔는데요."

가장 덩치가 큰 강태가 접수처 간판의 피카츄 스티커를 보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호사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문진표를 내밀었다.

"아, 네… 초진이시네요. 부모님 성함이랑 아이 주민번호 적어주세요."

세 남자가 접수대 앞에 나란히 머리를 맞댔다.

"야, 보호자 이름 누구로 적어? 태준이 형은 법정에 있는데."

"일단 오늘 당번이 나니까 서이수. 그리고… 여름이 주민번호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이수가 땀을 삐질 흘리며 간호사에게 속삭였다.

"저기… 저희가 애기 주민번호를 모, 모르는데. 그냥 맞추면 안 됩니까?"

간호사의 눈초리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유괴범이라도 본 듯한 시선에 유준이 재빨리 나섰다.

"아, 저희가 친척 삼촌들인데, 오늘 엄마가 바빠서 저희가 대신 데려왔거든요! 아기수첩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 아기수첩에 적힌 정보로 접수를 마쳤다. 대기실 의자에 일렬로 앉은 세 남자는, 다른 아이들이 주사를 맞고 울부짖으며 나올 때마다 마치 자신들이 군대 화생방 훈련을 앞둔 훈련병들처럼 침을 꼴깍 삼켰다.

"강태 형… 다리 좀 그만 떨어. 지진 난 줄 알았잖아."

"이수야. 나 주사 바늘 못 본다. 내 유도 인생에 제일 무서운 게 바늘이야."

"여름이 들어오세요."

진료실 문이 열리고, 네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연세가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세 남자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고 흠칫 놀랐다.

"허허, 아버님들이 세 분이나 오셨네. 아주 든든하겠어요."

"아버지는 아니고… 삼촌입니다." 강태가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의사가 능숙한 솜씨로 여름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귓속과 입안을 살폈다.

"음, 아주 건강하네요. 열도 없고, 발육도 상위 10%입니다. 삼촌들이 아주 잘 먹이셨나 봐요."

그 칭찬 한마디에, 세 남자의 가슴에 이름 모를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 '우리가 애를 잘 키우고 있구나!'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간호사가 은색 트레이에 무시무시한 주사기를 들고 나타났다.

"자, 허벅지 꽉 잡아주세요. 아기가 움직이면 바늘 부러집니다."

"헉!"

그 말에 강태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뒤로 돌아섰다. 이수도 차마 못 보겠다며 강태의 넓은 등판 뒤로 숨었다. 결국 유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여름이의 통통한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여름아, 괜찮아, 괜찮아…."

*따끔!*

의사가 재빠르게 주사를 찌르고 뺐다. 1초간의 정적.

여름이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입술이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앙-!!!"**

병원 건물이 떠나가라 우는 여름이의 울음소리에, 뒤돌아있던 강태가 울상을 지으며 달려왔다.

"아이고, 우리 여름이 아파서 어떡해! 선생님! 애가 너무 아파하잖아요! 이거 원래 이렇게 아픈 겁니까?!"

"형! 진상 보호자처럼 굴지 마요!"

유준이 강태를 말리며 재빨리 여름이를 안아 달랬다. 이수는 어디서 났는지 뽀로로 비타민 캔디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 왁자지껄하고 기이한 광경에 그저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오후 4시.

셰어하우스로 돌아온 세 남자는 마치 2박 3일 유격 훈련을 마친 사람들처럼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여름이는 열도 나지 않고 바운서에서 평화롭게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띠링-

그때, 태준에게서 단톡방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태준 (완벽주의자)]**: 병원은 무사히 다녀왔나? 열은? 몸무게는? 매뉴얼대로 특이사항 즉각 보고해라.

이수가 바닥에 누운 채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보고합니다. 몸무게 8.5kg, 발육 상태 상위 10퍼센트. 의사 쌤이 아주 잘 키웠다고 칭찬하심. 이상."

1분 뒤, 태준의 답장이 왔다.

**[이태준 (완벽주의자)]**: (이모티콘: 선글라스를 끼고 춤추는 고양이)

**[이태준 (완벽주의자)]**: 당연하지. 내 브리핑과 매뉴얼 덕분이다. 수고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소고기 쏜다.

"소고기?!"

바닥에 누워있던 세 남자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예방접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은 초보 아빠들의 얼굴에 피로보다 진한 뿌듯함이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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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나 다음 달 학원 모범 연주회에서 듀엣 연주하기로 했다? 피아노 한 대에 둘이 같이 앉아서 치는 거!" 평화로운 저녁 식사 시간, 여름이가 가방에서 악보집을 꺼내며 던진 환한 한마디에 식탁 위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네 남자의 손이 일제히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듀... 엣?" 강태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혹시 누구랑 치는데? 우리 여름이 혼자 치면 안 되는 거야?" "응! 같은 반 민준이라고 있는데, 키도 크고 피아노 진짜 잘쳐! 둘이 한 의자에 붙어 앉아서 네 손 연주하는 거야!" 여름이가 아무런 사심 없이 베시시 웃으며 자신의 밥그릇에 소시지를 올렸지만, 아빠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핵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한 의자... 붙어 앉아... 네 손..." 강태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흙빛으로 변했다. "어떤 놈이야, 그 민준이라는 녀석?! 감히 우리 딸내미 옆자리를 차지해?!" 태준이 서둘러 안경을 밀어 올리며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강태야, 정서적으로 침착해라. 피아노 포핸즈(Four Hands) 연주는 음악 교육학적으로 매우 흔한... 은 무슨, 피아노 의자의 평균 가로 길이는 65cm다. 두 사람이 앉으면 어깨와 팔꿈치가 동선상 10cm 이내로 밀착할 수밖에 없어!" 분석을 마친 태준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제가 그 민준이라는 친구 부모님께 연락해서 연주용 그랜드 피아노를 두 대 따로 기증하겠습니다. '투 피아노(Two Pianos)' 연주로 바쑤시죠." 유준이 수표책을 만지작거리며 진지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이수는 조용히 썰고 있던 대파를 칼로 '팍!' 하고 짓이기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오늘부터 연습실 간식은 내가 직접 챙긴다. 아주 마늘 향이 강한 갈릭 파스타와 매운 떡볶이로 준비해서, 감히 둘 사이에 달콤한 기류가 흐르지 못하게 하겠어." 그리하여 이튿날 오후, 피아노 학원 맞은편 카페 2층에는 검은 선글라스와 트렌치코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5화: 친자 확률 0%의 기적(?)과 물망초

    "왔다. 등기 우편."외출복 차림의 유준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하얀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봉투 겉면에는 붉은색 도장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서 재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순간, 거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러그 위에서 여름이와 놀아주며 딸랑이를 흔들던 이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팔굽혀펴기를 하던 강태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죽였다.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려던 태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유준에게 다가갔다."이리 줘."태준이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혼 소송에서 승소 판결문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4화: 체온계 38.5도, 그리고 경찰서 유턴 사건

    "형… 애 몸이 왜 이렇게 뜨겁지?"퇴근 후 셰어하우스 거실. 하루 종일 체육관에서 육아 전투를 치르고 온 강태가 울상이 된 얼굴로 여름이를 안고 있었다."뭐? 비켜봐."서류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태준이 달려와 여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불덩이였다. 평소라면 방긋방긋 웃어야 할 아이가 힘없이 축 처져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야, 체온계! 누가 체온계 좀 가져와!""우리 집에 그런 게 어딨어! 강태 형 단백질 보충제 스푼은 있는데!" 이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비켜봐요! 제가 아까 사 왔어요!"막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3화: 분유값 벌려면 일은 해야 할 거 아냐!

    아침 8시. 폭풍 같았던 '모닝 기저귀 사투'가 끝나고,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말끔하게 네이비 수트로 갈아입은 태준이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조여 매며 입을 열었다."자,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해 보자. 다들 오늘 일정 어떻게 되지? 나는 오전 10시에 중요한 이혼 소송 재판이 있어서 무조건 나가봐야 해."태준의 시선이 소파에 늘어져 있는 세 사람을 향했다."나도 오늘은 안 돼!"이수가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앞치마를 벗어 던지며 손을 저었다. "다음 주 갤러리 전시 기획 미팅 있어서 큐레이터 만나야 한다고. 애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2화: 기저귀는 어느 방향으로 채우는 건데?!

    오전 5시 30분.이태준의 아침은 언제나 완벽한 통제 아래 시작되어야 했다.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에 눈을 뜨고, 세안 후 피부 수분 유지를 위해 정확히 3초 안에 달바(d'Alba) 미스트를 뿌리는 것. 그것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승률 99% 변호사 이태준의 철칙이었다.하지만 오늘, 그의 완벽한 아침은 알람 시계 대신 고막을 찌르는 앙칼진 사이렌 소리에 무참히 박살 났다.**"으아아아아앙-!!!"**"아악! 내 귀!"태준이 침대에서 튀어 오르며 방문을 열어젖혔다. 거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밤새 한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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