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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바구니 밑의 비밀과 트랜스포머 유모차

Author: 8489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4-18 10:01:28

오후 2시, 셰어하우스 거실.

태준이 출근 전 남기고 간 화이트보드에는 붉은색 마카로 **[최우선 미션: 연희 소아과 방문 (기초 건강 검진 및 개월 수 파악)]**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체육관 박 여사님이 그러시더라. 애가 대충 7개월쯤 돼 보이는데, 이맘때 맞아야 할 접종이 한두 개가 아니래. 우리 며칠 전에 애 열났을 때 전전긍긍했잖아. 당장 병원 가서 의사한테 전체 싹 다 검사받으라고 하시더라고."

​강태의 말에 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태준이 형도 법적으로 나중에 우리가 임시 보호자 주장하려면, 병원 진료 기록 남겨두는 게 유리하다고 했고. 근데 막상 가서 의사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어떡해? 우린 애 생일도 모르는데."

​"모르면 항체 검사해서 처음부터 다시 맞추면 된대. 일단 가자."

​그때였다.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여름이의 첫 바구니(비 오던 날 아기가 담겨있던 그 바구니)를 버리려고 정리하던 유준이 갑자기 소리쳤다.

​"어? 형들! 잠깐만요. 이 바구니 바닥 깔개 쪽에 뭔가 만져지는데요?"

​"뭐?"

​유준이 낡은 바구니 바닥의 천을 들추자, 교묘하게 숨겨진 작은 지퍼가 나타났다. 유준이 떨리는 손으로 지퍼를 열자, 그 안에서 비닐 지퍼백에 꼼꼼하게 싸인 작은 수첩 하나가 툭 떨어졌다.

​[건강인 아기수첩]

​"이, 이거…!"

세 남자가 우르르 모여들어 수첩을 펼쳤다.

​아기 이름: 여름 (성은 적혀있지 않았다)

​생년월일: 2025년 8월 12일 (현재 정확히 생후 7개월)

​혈액형: O형

​접종 기록: BCG(결핵), B형 간염 1차 등 생후 4개월까지의 접종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도장은 전부 서로 다른 지역의 소아과였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키웠다는 증거였다.)

​"대박… 친모가 이거까지 다 챙겨서 보낸 거였어." 이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행이다. 혈액형이랑 생일, 과거 접종 기록 다 있네. 오늘 가서 밀린 거 맞히면 되겠다."

​강태가 안도하며 수첩을 챙겨 넣었다. 하지만 세 남자의 가슴 한편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아이의 기록만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엄마의 절박함이 묵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 감상은 나중에 하고 빨리 병원부터 가자. 유준아, 네가 아까 당근에서 주워 온 유모차 가져와!"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가운데, 세 남자가 거대한 검은색 물체 주변에 둥글게 모여 서 있었다. 마치 미확인 비행물체를 발견한 요원들처럼 심각한 표정이었다.

"유준아. 이게 유모차라고? 바퀴 달린 장갑차 아니야?"

이수가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바닥에 놓인 것은 유준이 '당근마켓 무료나눔'으로 주워왔다고 우기는 영국 최고급 명품 브랜드 유모차였다. (물론 300만 원이 훌쩍 넘는 신상이었지만, 이수와 강태가 그걸 알 리 없었다.)

"아, 요즘 애들 타는 건 다 이 정도 해요! 충격 흡수 서스펜션도 있고! 자, 강태 형. 3시에 초등부 수업 가셔야 하니까 빨리 펴서 병원 갑시다."

"오냐. 내가 힘은 좀 쓰지."

강태가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는 유도 기술을 걸듯 유모차의 손잡이와 본체를 꽉 쥐고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끼기긱!*

"어? 안 펴지는데?"

"형, 거기 말고 밑에 쇠 파이프를 당겨야 하는 거 아냐? 비켜봐, 내 공간 지각 능력을 보여주지."

이수가 합세해 바퀴를 발로 밟고 손잡이를 위로 치켜올렸다. 하지만 유모차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수의 바지가 무릎까지 말려 올라가며 엉거주춤한 기마 자세가 연출되었다.

"아씨, 이거 변신 로봇이야?! 왜 합체가 안 돼! 부서지겠어!"

"형들,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요! 강태 형, 백초크 걸지 마요! 프레임 휜다고!"

결국 보다 못한 유준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그는 손잡이 중앙에 있는 작은 버튼을 톡 누른 뒤, 가볍게 위로 들어 올렸다.

*촤락- 철컥!*

단 1초. 유모차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완벽하게 펴졌다.

머쓱해진 이수와 강태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유준은 한숨을 쉬며 바운서에 누워있던 여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유모차에 눕혔다.

"자, 이제 진짜 출발합니다. 오늘 목표는 [연희 연합 소아청소년과]. 미션은 B형 간염 2차 예방접종. 다들 긴장 늦추지 마세요."

오후 2시 30분, 소아과 대기실.

파스텔톤 뽀로로 벽지가 발라진 평화로운 병원 로비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입구로 들어선 것은 산만한 덩치에 근육이 터질 듯한 반팔 티셔츠를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강태), 물감이 잔뜩 묻은 헐렁한 옷을 입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사내(이수), 그리고 명품 유모차를 한 손으로 여유롭게 끄는 묘한 분위기의 청년(유준)이었다.

대기실의 엄마들이 흠칫하며 아이들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저기… 접수하러 왔는데요."

가장 덩치가 큰 강태가 접수처 간판의 피카츄 스티커를 보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호사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문진표를 내밀었다.

"아, 네… 초진이시네요. 부모님 성함이랑 아이 주민번호 적어주세요."

세 남자가 접수대 앞에 나란히 머리를 맞댔다.

"야, 보호자 이름 누구로 적어? 태준이 형은 법정에 있는데."

"일단 오늘 당번이 나니까 서이수. 그리고… 여름이 주민번호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이수가 땀을 삐질 흘리며 간호사에게 속삭였다.

"저기… 저희가 애기 주민번호를 모, 모르는데. 그냥 맞추면 안 됩니까?"

간호사의 눈초리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유괴범이라도 본 듯한 시선에 유준이 재빨리 나섰다.

"아, 저희가 친척 삼촌들인데, 오늘 엄마가 바빠서 저희가 대신 데려왔거든요! 아기수첩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 아기수첩에 적힌 정보로 접수를 마쳤다. 대기실 의자에 일렬로 앉은 세 남자는, 다른 아이들이 주사를 맞고 울부짖으며 나올 때마다 마치 자신들이 군대 화생방 훈련을 앞둔 훈련병들처럼 침을 꼴깍 삼켰다.

"강태 형… 다리 좀 그만 떨어. 지진 난 줄 알았잖아."

"이수야. 나 주사 바늘 못 본다. 내 유도 인생에 제일 무서운 게 바늘이야."

"여름이 들어오세요."

진료실 문이 열리고, 네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연세가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세 남자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고 흠칫 놀랐다.

"허허, 아버님들이 세 분이나 오셨네. 아주 든든하겠어요."

"아버지는 아니고… 삼촌입니다." 강태가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의사가 능숙한 솜씨로 여름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귓속과 입안을 살폈다.

"음, 아주 건강하네요. 열도 없고, 발육도 상위 10%입니다. 삼촌들이 아주 잘 먹이셨나 봐요."

그 칭찬 한마디에, 세 남자의 가슴에 이름 모를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 '우리가 애를 잘 키우고 있구나!'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간호사가 은색 트레이에 무시무시한 주사기를 들고 나타났다.

"자, 허벅지 꽉 잡아주세요. 아기가 움직이면 바늘 부러집니다."

"헉!"

그 말에 강태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뒤로 돌아섰다. 이수도 차마 못 보겠다며 강태의 넓은 등판 뒤로 숨었다. 결국 유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여름이의 통통한 허벅지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여름아, 괜찮아, 괜찮아…."

*따끔!*

의사가 재빠르게 주사를 찌르고 뺐다. 1초간의 정적.

여름이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입술이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앙-!!!"**

병원 건물이 떠나가라 우는 여름이의 울음소리에, 뒤돌아있던 강태가 울상을 지으며 달려왔다.

"아이고, 우리 여름이 아파서 어떡해! 선생님! 애가 너무 아파하잖아요! 이거 원래 이렇게 아픈 겁니까?!"

"형! 진상 보호자처럼 굴지 마요!"

유준이 강태를 말리며 재빨리 여름이를 안아 달랬다. 이수는 어디서 났는지 뽀로로 비타민 캔디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그 왁자지껄하고 기이한 광경에 그저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오후 4시.

셰어하우스로 돌아온 세 남자는 마치 2박 3일 유격 훈련을 마친 사람들처럼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여름이는 열도 나지 않고 바운서에서 평화롭게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띠링-

그때, 태준에게서 단톡방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태준 (완벽주의자)]**: 병원은 무사히 다녀왔나? 열은? 몸무게는? 매뉴얼대로 특이사항 즉각 보고해라.

이수가 바닥에 누운 채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보고합니다. 몸무게 8.5kg, 발육 상태 상위 10퍼센트. 의사 쌤이 아주 잘 키웠다고 칭찬하심. 이상."

1분 뒤, 태준의 답장이 왔다.

**[이태준 (완벽주의자)]**: (이모티콘: 선글라스를 끼고 춤추는 고양이)

**[이태준 (완벽주의자)]**: 당연하지. 내 브리핑과 매뉴얼 덕분이다. 수고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소고기 쏜다.

"소고기?!"

바닥에 누워있던 세 남자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예방접종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은 초보 아빠들의 얼굴에 피로보다 진한 뿌듯함이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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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144화: 미확인 생명체의 침투 — 셰어하우스 영토 방어전

    9월의 어느 비 내리는 늦은 오후, 잿빛 하늘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가을비가 셰어하우스의 창문을 거세게 때리고 있었다. 마중을 나가려던 태준이 우산을 집어 드는 순간, 현관문이 덜컥 열리며 노란 우비를 입은 여름이가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아이의 품에는 흙탕물에 젖은 작은 종이상자 하나가 소중하게 안겨 있었다. "여름아,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그 상자는…." 태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상자 안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옹….'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고 처절한 생명의 구조 요청이었다. 순간, 거실에 흩어져 있던 네 남자의 시선이 일제히 상자로 꽂히며 셰어하우스에 [비상사태 1급 경계령]이 떨어졌다. "미확인 소형 생명체 발견! 체온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유준이 열화상 카메라 앱을 켜며 다급하게 외쳤다. "즉시 메디컬 베이스를 구축한다! 강태, 최고급 극세사 수건! 이수, 실내 온도 26도로 상향 조정!" 태준의 신속한 지휘 아래 요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상자 안에는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손바닥만 한 치즈 무늬 아기 고양이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고 연약한 녀석이 폭우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니." 강태가 커다란 손으로 행여 부서질까 아기 고양이를 조심스레 감싸 쥐고 따뜻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의경은 락토프리 우유를 체온과 동일한 온도로 데워 스포이트로 신중하게 급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구호 작전을 심기 불편하게 지켜보는 유일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셰어하우스의 서열 2위(1위는 당연히 여름이다)를 자부하던 반려견 두부였다. 자신의 구역에 갑자기 나타난 낯선 털뭉치에게 아빠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두부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다. '크르릉… 멍!' 두부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자, 우유를 먹던 아기 고양이 역시 하악질을 하며 솜방망이를 치켜들었다. "이런, 기존 세력과 신규 진입 세력 간의 심각한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10화: 핑크색 쿵 방지 쿠션과 VVIP의 비밀 영수증

    "거기, TV 장식장 모서리! 1mm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붙여! 애 이마 찢어지면 네가 책임질 거야?!"주말 아침, 이태준의 불호령이 셰어하우스를 뒤흔들었다. 한 손에 줄자를 든 태준은 마치 건설 현장 소장처럼 거실을 누비며 위험 요소를 색출하고 있었다.여름이가 '뒤집기'라는 신기술을 장착한 지 불과 3일. 얌전히 바운서에 누워있던 천사는 사라지고, 눈만 떼면 매트 밖으로 굴러가 바닥을 핥거나 테이블 다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직진형 굴삭기'가 탄생했다.결국 태준은 '제2차 베이비 룸 개조 작전'을 선포했다."아니, 형!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9화: 월드컵 결승전보다 짜릿한 180도의 기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4월의 주말 오후.평화로운 연희동 셰어하우스 거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거실 한가운데 깔린 뽀로로 퍼즐 매트 위. 그곳에는 엎드린 채 낑낑거리며 용을 쓰고 있는 생후 7개월 여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네 명의 성인 남자가 숨죽인 채 둥글게 포위하고 있었다.사건의 발단은 10분 전이었다.매트 위에서 모빌을 보며 놀던 여름이가 갑자기 한쪽 다리를 번쩍 들더니, 허리를 활처럼 휘며 몸을 옆으로 틀기 시작한 것이다."어? 어어?! 형들! 이거 봐! 여름이 몸이 반으로 꺾였어!"가장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7화: 완벽한 매뉴얼의 붕괴와 하얀 눈꽃 사태

    "주목."월요일 아침 7시. 이태준이 화이트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섰다.보드에는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마카가 어지럽게 교차된 **[여름이 특별 보호조치 4교대 로스터]**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흡사 대기업의 연간 프로젝트 브리핑을 방불케 하는 비주얼이었다."어제부로 우린 한배를 탔다. 육아는 곧 실전이고, 사고를 막기 위해선 완벽한 매뉴얼이 필수지. 내 지시대로만 움직이면 문제없을 거다."소파에 나란히 앉은 세 남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보드를 올려다보았다.아차, 정말 예리하신 지적입니다! 작가님 말씀이 백번 맞습니

  •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제6화: 우리가 이 미친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진짜 이유

    "스톱. 다들 멈춰."주말 아침, 거실 한가운데 선 이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각자의 일과를 준비하던 세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태준은 두통이 온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집안 곳곳을 가리켰다."어제 우리가 여름이를 당분간 보호하기로 합의했지? 그럼 환경부터 바꿔야 해. 여긴 지금 집이 아니라 신생아용 지뢰밭이라고."태준의 지적은 정확했다.거실 구석에는 서이수가 용접하다 만 날카로운 철제 조형물이 흉기처럼 솟아 있었고, 반대편에는 최강태가 굴려둔 20kg짜리 쇳덩이 덤벨들이 발가락 골절을 유도하듯 널려 있었다. 심지어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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