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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친자 확률 0%의 기적(?)과 물망초

Author: 8489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18 09:34:19

"왔다. 등기 우편."

외출복 차림의 유준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하얀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봉투 겉면에는 붉은색 도장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서 재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순간, 거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러그 위에서 여름이와 놀아주며 딸랑이를 흔들던 이수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팔굽혀펴기를 하던 강태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죽였다.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려던 태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유준에게 다가갔다.

"이리 줘."

태준이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혼 소송에서 승소 판결문을 열어볼 때도 이토록 긴장한 적은 없었다. 네 남자가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태준의 손끝만 바라보았다.

"자, 다들 마음의 준비 해라. 누가 아빠로 나오든, 원망하지 말고 같이 책임지는 거다."

태준의 비장한 선언에 세 남자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찌익-*

서류 봉투가 뜯어지는 소리가 거실에 크게 울렸다. 태준이 안에서 네 장의 결과지를 꺼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첫 번째 장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첫 번째… 이태준."

태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이태준과 여름의 유전자 일치 확률… **0.00%.** 친생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

"후아-!!" 태준이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싸! 난 아니야! 난 결백하다고!"

"형, 다음! 다음 빨리!" 이수가 재촉했다.

"두 번째, 서이수. 일치 확률 **0.00%.** 성립 안 함."

"예스!! 내 예술혼은 아직 자유롭다!" 이수가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세 번째, 최강태… 일치 확률 **0.00%.**"

"…다행이네." 강태는 안도하면서도, 러그에 누워있는 여름이를 힐끗 보며 묘하게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나유준. 일치 확률 **0.00%.**"

네 번째 결과까지 발표되자, 거실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만세를 부르던 이수도, 안도하던 태준도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잠깐만… 넷 다 0퍼센트라고?"

태준이 황당하다는 듯 서류를 테이블에 내던졌다.

"그럼 그 쪽지는 대체 뭔데! [이 집 남자들 중에 아빠가 있다]며!"

"혹시… 친모가 이 집 주소를 착각한 거 아닐까요? 우리 옆집이나 뒷집 남자인데?" 유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아니면 친모 본인도 애 아빠가 누군지 헷갈려서 대충 찔러본 거 아냐?" 이수의 막말에 강태가 묵직한 쿠션을 집어 던졌다. "말조심해라. 애 듣는다."

태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이유가 어찌 됐든,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는 게 증명됐어. 그럼 우린 더 이상 책임질 이유가…."

"형들, 이것 좀 봐요."

유준이 재빨리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제가 어제 동네 편의점 싹 다 돌면서 사장님들한테 바나나 우유 사드리고 읍소해서 겨우 얻어온 CCTV 영상이에요."

*(물론 유준의 비서실장이 VVIP 인맥을 동원해 일대 방범 카메라를 싹 다 백업해 온 것이었지만, 유준은 철저하게 연기했다.)*

화면이 켜지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3일 전 밤의 셰어하우스 대문 앞이 보였다.

영상 속에는 노란색 우비를 푹 눌러쓴 체구가 작은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얼굴은 우비 모자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대문 앞에 바구니를 내려놓고도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우비 입은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아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돌아서기 전, 그 사람은 바구니를 향해, 그리고 셰어하우스를 향해 **바닥에 닿을 듯 깊게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절박했던 거야."

영상을 보던 태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악의적으로 버린 게 아니야.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진짜로 우리 중 한 명을 애 아빠로 믿고…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걸 맡긴 거지."

분위기가 숙연해진 가운데, 이수가 방에서 여름이의 배냇저고리를 들고나왔다.

"나도 알아본 게 있어. 어제 평창동에 있는 섬유 예술가 선배한테 이 자수 사진을 보여줬거든."

이수가 저고리 소매에 수놓아진 작은 꽃 모양을 가리켰다.

"이거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니래. '불리온 로즈 스티치'라는 엄청 까다로운 프랑스 자수 기법인데,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야만 나오는 모양이라네. 그리고 이 꽃의 정체… '물망초'야."

"물망초? 그게 뭐 어때서?" 강태가 물었다.

"꽃말.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거든. 친모는 자길 잊지 말아 달라고, 이 옷을 손수 지어서 입힌 거야."

거실에는 오직 여름이가 딸랑이를 흔들며 내는 '꺄르륵' 웃음소리만 울려 퍼졌다.

DNA 일치 확률 0.00%. 논리적으로 따지면 당장 경찰에 넘겨버리는 게 맞는, 남보다 못한 완벽한 타인.

하지만 CCTV 속 어깨를 들썩이며 절을 하던 엄마의 뒷모습과, 아이 옷에 새겨진 물망초의 의미를 알아버린 네 남자의 마음속에 이상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맘카페 아주머니가 그랬어."

강태가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원래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더 무거운 법이라고."

"무슨 소리야, 관장님. 우리가 얠 가슴으로 왜 낳아!" 태준이 펄쩍 뛰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여름이의 발그레한 볼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 부모 찾을 때까지만 데리고 있기로 합의했었잖아. 경찰서에서 찾든 우리가 찾든, 며칠 더 걸리는 것뿐이지." 유준이 능청스럽게 분유통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 당번 누구? 나유준표 특제 이유식 레시피 들어갑니다."

누구 하나 아이를 내보내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친자 확인 결과는 0%였지만, 네 남자와 여름이 사이의 '가족 확률'은 1%씩 조용히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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