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짧은 머리.
구겨진 셔츠. 입에는 테이프.서유진이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시온이 벌떡 일어나려 했다.
“저기 있잖습니까!”
“앉으십시오!”
임태건이 다시 끌어내렸다.
탕! 탕!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쳤다.
“와… 진짜 위험합니다…”
시온은 다시 엎드리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범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통령까지 왔군.”
변조기는 없었지만 익숙한 말투였다.
축제장 화면을 해킹했을 때 들었던 바로 그 인물.
한채린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너였군.”
남자는 기둥 뒤에서 웃었다.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실장님.”
“누굽니까?” 시온이 물었다.
한채린은 이를 악물었다.
“집무궁 전산보안팀 출신.”
모두가 놀랐다.
“3년 전 해임된 인물입니다.”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한 셔츠 차림.
안경. 차가운 미소.평범해 보였지만 눈빛은 달랐다.
차갑고 뒤틀린 눈빛.
“소개가 늦었네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제이드 리입니다.”
오민석이 속삭였다.
“드디어 본인이 나왔습니다…”
제이드는 총을 든 채 여유롭게 웃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무능한 백수가 대통령이라니.”
시온은 발끈했다.
“백수는 맞는데, 무능은 아직 모르죠.”
“오.”
제이드가 눈썹을 올렸다.
“생각보다 괜찮군요.”
“칭찬이면 감사합니다. 욕이면 반만 받겠습니다.”
오민석이 작게 말했다.
“각하, 이런 상황에서도 말이 나오십니까?”
“저도 제가 신기합니다.”
한채린이 차갑게 말했다.
“서유진을 풀어라.”
“싫습니다.”
“목적이 뭐지?”
제이드는 주변 서버 장비를 가리켰다.
“세상은 숫자와 정보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납치한 겁니까?” 시온이 물었다.
“사람들은 큰 사건이 있어야 진실을 보니까.”
시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 어렵게 하지 마시고, 그냥 관심받고 싶다는 겁니까?”
순간 제이드의 미소가 멈췄다.
오민석이 감탄했다.
“각하, 가끔 핵심만 찌르십니다.”
제이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입 조심하시죠.”
“아, 맞았군요.”
“각하.” 임태건이 낮게 경고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제이드는 곧 다시 웃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미소가 얇아져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선택하시죠.”
그가 작은 리모컨 같은 장치를 들어 보였다.
“이 서버실 전원 차단 장치입니다.”
경고음이 울렸다.
삐— 삐—
붉은 경고등이 천장 곳곳에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전산 요원이 당황해 외쳤다.
“센터 일부 구역 전원 제어권이 외부로 넘어갔습니다!”
“누르면 어떻게 됩니까?” 시온이 물었다.
한채린이 빠르게 답했다.
“국가 주요 데이터 일부가 손실됩니다.”
“백업은요?”
“있습니다. 하지만 복구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통신, 물류, 금융 일부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가 흔들린다는 거네요.”
“네.”
제이드는 웃었다.
“그리고 제가 총을 쏘면, 저 여자는 죽습니다.”
서유진이 눈을 부릅떴다.
테이프로 막힌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채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온은 그것을 봤다.
그녀가 흔들리고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대통령.”
제이드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렸다.
“국가 시스템을 지킬지.”
그는 총구를 서유진 쪽으로 옮겼다.
“친구 한 명을 구할지.”
회의실도 아니고, 생중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진짜 대통령의 자리였다.
시온은 숨을 삼켰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국가 시스템.
서유진. 한채린. 수많은 국민.무엇을 선택해야 하지?
그때 서유진의 눈이 시온과 마주쳤다.
그녀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자신을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한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처음으로 무너질 것 같았다.
시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이드 씨.”
“선택하셨습니까?”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됩니까?”
제이드는 피식 웃었다.
“시간 끌기입니까?”
“네.”
모두가 순간 멈췄다.
시온은 솔직하게 덧붙였다.
“근데 들켰으니까 질문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오민석이 거의 울먹였다.
“각하, 너무 솔직합니다…”
제이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좋습니다. 마지막 질문 정도는 들어주죠.”
시온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 진짜로 버튼 누를 생각 없죠?”
제이드의 미소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무슨 뜻이지?”
“누르면 끝이잖아요.”
시온은 천천히 말했다.
“서버가 꺼지면 당신도 더 이상 협박할 카드가 없어집니다. 서유진을 쏘면 도망칠 이유도 없어지고요.”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무서웠다.
하지만 말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누군가 보길 바라는 사람 같아요.”
정적.
제이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흥미롭군.”
“그러니까 원하는 걸 말하세요.”
시온은 떨리는 손을 감추며 말했다.
“사람 목숨 가지고 쇼하지 말고.”
그 순간.
제이드의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 어디 한번 보여주시죠, 대통령.”
그가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
“당신이 정말 둘 다 구할 수 있는지.”
삐이이이—
경고음이 더 크게 울렸다.
서버실 조명이 붉게 변했다.
제이드의 손가락이 버튼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통령 관저 지하 보안실.새벽 4시 38분.박은호가 복원한 문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세계평화프로젝트 1차 후보군 선별 보고서」강시온은 제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프로젝트.그 안에 왜 대통령 선발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다음 페이지를 열어 주세요.”박은호가 보안 키를 입력했다.짧은 경고음과 함께 삭제됐던 후보 목록이 나타났다.이름은 모두 지워진 채 번호와 평가만 남아 있었다.후보 11번.「위기 상황에서 조직의 이익을 우선함.」후보 27번.「높은 통솔력을 보이나 타인의 희생을 합리화함.」그리고 후보 42번.「타인의 생존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함.」강시온의 눈빛이 멈췄다.행사장 폭발 당시 부상자들에게 달려갔던 자신의 모습이 스쳤다.그에게는 선택이라기보다 당연한 행동이었다.박은호가 낮게 말했다.“42번 후보의 개인정보만 복구되지 않습니다.”“일부러 지운 겁니까?”“다른 후보들과 삭제 방식이 다릅니다. 기록 자체를 분리해서 관리한 것 같습니다.”복구 화면에 예상 소요 시간이 나타났다.「복구 예상 시간: 47분」박은호가 요원들을 돌아봤다.“완료되는 즉시 다시 모이겠습니다. 그동안 대기하십시오.”요원들이 보안실을 빠져나갔다.“대통령님도 잠시 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복구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박은호까지 옆 분석실로 향하자 보안실 안이 조용해졌다.강시온은 여전히 태블릿을 보고 있는 한채린을 돌아봤다.평소와 달리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었고, 화면을 넘기는
그 순간 요원이 외쳤다.“실장님. 같은 폴더에서 삭제된 기밀 문서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몇 개입니까?”“현재 확인된 것만 열두 건입니다.”열두 건.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았다.강시온이 말했다.“전부 복원하십시오.”“알겠습니다.”박은호가 요원들과 복원 절차를 확인하는 동안 한채린은 보안실 한쪽으로 물러났다.밤새 이어진 조사 때문인지 태블릿을 든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화면을 넘기려는 순간 손끝이 미끄러졌다.태블릿이 기울었다.강시온이 먼저 손을 뻗었다.한채린의 손등 위로 그의 손이 겹쳐졌다.두 사람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차가운 태블릿과 달리 맞닿은 손은 뜨거웠다.한채린이 고개를 들자 강시온의 눈이 바로 앞에 있었다.놀란 눈빛은 곧 걱정으로 가라앉았다.“괜찮습니까?”“괜찮습니다.”대답은 빨랐지만 한채린은 손을 바로 빼지 못했다.강시온의 시선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머물렀다.그는 태블릿을 받아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그제야 두 사람의 손이 떨어졌다.짧은 접촉이었는데도 손등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어제부터 제대로 쉬지 못했잖습니까.”“각하도 마찬가지입니다.”“저는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습니다.”그가 말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그러니까 한 실장님도 제가 걱정하게 해 주십시
대통령 관저 지하 보안실.새벽 4시 10분.5년 전 폐기된 구형 인증 카드가 투명 보관함 안에 놓여 있었다.박은호는 카드 표면의 미세한 흠집을 확대했다.“복제품은 아닙니다.”강시온이 물었다.“그럼 정말 관저에서 쓰던 카드라는 겁니까?”“예. 당시 출입 체계에 등록됐던 실물입니다.”한채린은 태블릿에 남은 폐기 목록을 빠르게 넘겼다.카드 번호.발급 부서.회수 확인자.모든 기록은 폐기 완료로 남아 있었다.“이상합니다.”한채린의 손가락이 멈췄다.“회수 확인 서명이 두 번 등록돼 있습니다.”박은호가 화면을 들여다봤다.“관저 보안팀과 대통령실 비서실입니다.”“같은 카드를 두 곳에서 폐기했다고 기록한 겁니까?”“네. 둘 중 하나는 거짓입니다.”박은호가 마지막 등록 정보를 불러왔다.사용 권한 승인자는 전임 대통령 비서실.하지만 이름은 삭제돼 있었다.“삭제 시점은 언제입니까?”“카드가 폐기됐다고 기록된 날입니다.”강시온은 보관함 속 카드를 바라봤다.지금 대통령실에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다.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어진 일이었다.그때 임태건이 들어왔다.“각하. 관저 야간 경호팀 전원 분리 조사에 들어갔습니다.”강시온의 표정이 굳었다.몇 시간 전까지 자신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들 가운데
박은호가 물었다.“마지막 접속 위치는 복원됐습니까?”요원이 다른 화면을 열었다.“현재 추적 중입니다.”빠르게 변하던 경유지 주소가 하나씩 사라졌다.World Harmony Fest 운영본부.대통령실.국회 내부망.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위치.요원이 화면을 확대했다.“찾았습니다.”강시온이 물었다.“어디입니까?”화면 중앙에 주소 하나가 떠올랐다.대통령실도.국회도.국가정보원도 아니었다.한채린은 그 장소를 알아보는 순간 손을 멈췄다.강시온도 곧바로 화면을 바라봤다.박은호가 낮게 말했다.“마지막 인증이 발생한 장소는.”짧은 침묵.“대통령 관저입니다.”분석실 안은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폐기된 인증 토큰.새 보안 체계.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기록이었다.박은호가 먼저 침묵을 깼다.“토큰 생성 기록 전부 확인하십시오.”요원들이 곧바로 움직였다.대형 모니터에 발급과 폐기, 재발급 기록이 차례로 올라왔다.모든 절차는 정상으로 보였다.한채린이 화면을 확인했다.“기록 자체가 조작된 것은 아닙니다.”박은호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다면 내부에서 권한 갱신 정보를 가져간 겁니다.”박은호는 대답 대신 다른 자료를 띄웠다.최근 6개월 기록이 펼쳐졌다.
국가정보원 지하 분석실.복원된 접속 기록이 대형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하나의 접속 경로가 세 개의 기관을 차례로 지나고 있었다.World Harmony Fest 운영본부.대통령실.국회 내부망.박은호가 기록을 시간순으로 다시 정렬했다.“같은 장비가 이동한 것은 아닙니다.”“접속 경유지를 바꿔 실제 위치를 숨긴 겁니다.”한채린은 태블릿으로 각 기관의 인증 기록을 대조했다.“접속 위치는 조작됐지만 사용된 권한은 실제 계정에서 가져왔습니다.”화면에 계정 정보가 나타났다.대통령실 보안 담당관.국회 전산 관리관.국가정보원 분석 요원.세 사람은 서로 아무 접점이 없어 보였다.강시온이 화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서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겉으로는 그렇습니다.”한채린이 세 계정의 접속 내역을 한 화면에 겹쳤다.“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박은호가 마지막 기록을 확대했다.“세 계정 모두 같은 날 대통령 전용 보고망에 접속했습니다.”강시온의 표정이 굳었다.“제게 올라오는 보고서를 볼 수 있었다는 뜻입니까?”“정확히는 각하께 전달되기 전 단계의 자료입니다.”한채린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최종 결재 전 보고서.공개되지 않은 이동 일정.경호 검토안.레오나르드는 사건 이후가 아니라,일정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한
잠시 후.외부 접속이 모두 끊어졌다.요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한채린은 태블릿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각하.”강시온이 그녀를 바라봤다.“지금까지 확인한 흔적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한채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실제 기록 사이에 조작된 기록이 섞여 있습니다.”“우리가 누구를 의심하는지 확인하려고요.”강시온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처음부터 다시 보면 됩니다.”강시온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누가 의심스러운지부터 정하지 말고.”“확인된 사실만 다시 보죠.”한채린의 시선이 잠시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강시온은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누군가를 먼저 적으로 정하지 않았다.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확인하려는 것.그의 단단함이 그녀의 마음을 조용히 건드렸다.복원된 파일들이 하나씩 화면 위로 돌아왔다.박은호가 최민규의 USB 자료를 열자 한채린이 수정 시각을 확인했다.“한 번에 만들어진 파일이 아닙니다.”World Harmony Fest 개막 전.폭발 직전.그리고 최민규가 숨진 뒤.세 차례에 걸쳐 수정돼 있었다.강시온의 표정이 굳었다.“최민규가 죽은 뒤에도요?”“그렇습니다.”박은호가 마지막 수정 기록을 확대했다.“마지막 파일은 최민규의 계정으로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