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전 6시 20분.
대통령 차량 행렬은 World Harmony Fest 본행사장 인근 수상 무대 공사장에 도착했다.
해가 막 떠오른 강변 위로 안개가 얇게 깔려 있었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미완성 무대, 공사용 크레인이 흐린 아침빛 속에 드러났다.겉보기엔 평범한 공사 현장이었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엘리아나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
강시온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차가운 철골 구조물.
바람에 흔들리는 안전 깃발. 강 위로 낮게 깔린 물안개.그리고 이상할 정도의 정적.
공사장 특유의 기계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없네요.”
한채린도 주변을 살폈다.
“야간 인력이 빠졌더라도 이 시간엔 교대조가 있어야 합니다.”
임태건이 짧게 말했다.
“유인 후 매복 가능성.”
함정일 수도 있었다.
오민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는 사무실 쪽 맡으면 안 되겠습니까? 왠지 의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안 됩니다.”
“예상했습니다…”
한채린은 빠르게 지도를 펼쳤다.
“공사 구역은 크게 세 곳입니다.”
“메인 무대, 자재 창고, 수상 연결 통로.”
“팀 분리합니다.”
임태건은 경호팀과 함께 자재 창고로.
한채린은 전산·정보팀과 메인 무대로.그리고 시온은 오민석과 함께 수상 연결 통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오민석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
“왜 제가 각하 팀입니까?”
“제가 정했습니다.”
“불안합니다…”
“저도요.”
수상 연결 통로는 강 위로 길게 뻗은 임시 철제 다리였다.
걸을 때마다 철판이 낮게 울렸다.
쿵. 쿵.
강 아래로는 흐린 물결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오민석은 난간을 꽉 붙잡았다.
“저 물 무서워합니다.”
“아까는 서버실 무섭다더니요.”
“전 세상이 다 무섭습니다.”
시온은 피식 웃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통로 끝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 보였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기다리는 것처럼.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간이 대기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책상.
의자. 공사 도면. 무전기.그리고 테이블 위.
푸른 보석이 달린 여성용 목걸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시온 눈빛이 흔들렸다.
“이거…”
오민석이 눈을 크게 떴다.
“엘리아나 님 것 아닙니까?”
시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봤습니다.”
분명 그녀가 여기 있었던 흔적이었다.
그 순간—
쾅!
뒤에서 컨테이너 문이 닫혔다.
“으악!”
오민석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천장 스피커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잘 찾아왔군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낮고 여유로웠지만, 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 나쁜 톤.
시온이 주변을 둘러봤다.
“엘리아나는 어디 있죠?”
“질문은 내가 한다, 대통령.”
벽면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 속엔 다른 장소에 갇혀 있는 엘리아나가 보였다.
손은 묶여 있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당당했다.
시온을 보자 그녀가 살짝 웃었다.
“또 늦었네요.”
시온이 황당한 얼굴이 됐다.
“왜 자꾸 저를 혼냅니까?”
엘리아나는 웃음을 참는 듯 입꼬리를 눌렀다.
“생각보다 느리십니다.”
“저 나름 엄청 빨리 온 겁니다.”
“변명은 안 멋있어요.”
“이 상황에서 멋있어야 합니까?”
“조금은요.”
오민석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납치 상황 맞습니까…”
스피커 속 남자가 낮게 웃었다.
“당신은 흥미로운 사람이야.”
“정치도 모르고, 권력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좋아하지.”
“그래서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모니터 화면이 둘로 나뉘었다.
왼쪽은 엘리아나.
오른쪽은 공사장 메인 전력 제어실.
복잡한 전력 장치와 과부하 경고창이 떠 있었다.
“30분 뒤, 이곳 메인 무대 전력이 폭주한다.”
동시에 한채린 무전이 들려왔다.
“각하! 메인 전력 계통에 이상 신호 발견!”
스피커 속 목소리가 웃었다.
“공사장은 불타고, 축제는 끝난다.”
오민석 얼굴이 새하얘졌다.
“왜 맨날 선택하게 만듭니까…”
“방법은 간단하다.”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지금 여기 남아 사람을 찾을지.”
“아니면 전력 제어실로 가서 사람들을 살릴지.”
또 선택이었다.
시온은 이를 악물었다.
보안실의 모니터가 하나둘 꺼졌다.박은호는 마지막 로그를 확인한 뒤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현재 기술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한채린은 태블릿에 떠 있는 복원 목록을 다시 훑었다.남은 로그에는 손상된 문장과 끊긴 숫자만 반복될 뿐이었다."외부에서 다시 신호가 감지되거나 삭제된 파일 일부가 복원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박은호의 말에 강시온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더는 무리하지 마십시오.""예."회의는 끝났다.자신을 오래전부터 지켜본 흔적은 확인했지만, 왜 선택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보안실 문이 닫히자 복도에 고요함이 내려앉았다.강시온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한채린은 아무 말 없이 버튼을 눌렀다.잠시 뒤 문이 열렸다.두 사람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평소와 달리 누구도 먼저 업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강시온은 내려가는 숫자만 바라봤다.한채린은 그의 지친 옆얼굴을 잠시 살폈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말했다."관저 정원으로 가시겠습니까?"강시온이 고개를 돌렸다."거긴 이 시간에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잠시 망설이던 그가 작게 대답했다."...좋습니다."머리를 비우고 싶었다.관저 뒤편 정원.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없었다.나무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고 분수에서는 잔잔한 물소리가 흘렀다.강시온은 벤치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통령이 된 이후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폭발과 암살 위협보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오늘처럼 자신의 존재
무슨 행동을 말하는지, 누가 어디서부터 자신의 삶을 지켜봤는지 알 수 없었다.평범했다고 믿었던 십일 년이 누군가에게는 평가 기록이었다.손끝이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한채린이 그의 옆에 놓인 의자를 당겼다.“앉으십시오.”“괜찮습니다.”“각하께서 괜찮다고 하는 날도 대부분 안 괜찮습니다.”조금 전 강시온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다.강시온이 그녀를 바라보자 한채린은 화면을 향한 채 덧붙였다.“지금은 서 계실 이유가 없습니다.”그는 더 고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한채린은 생수병의 뚜껑을 열어 그의 앞에 놓아 주었다.그리고 박은호가 다음 기록을 복원하는 동안에도 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강시온은 물병을 들다 그녀의 손에 남아 있는 손난로를 보았다.돌려받지 못한 물건 하나가 한채린도 자신의 걱정을 받아들였다는 대답처럼 보였다.굳어 있던 그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한채린은 모니터만 바라본 채 손난로를 더 깊이 감싸 쥐었다.강시온이 물병을 내려놓았다.재킷 소매 끝이 책상 위의 물방울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다.한채린이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두 번 접었다.강시온은 말없이 팔을 내어 주었다.“이런 것까지 한 실장님 업무입니까?”“각하께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부분은 제 업무가 됩니다.”“그럼 너무 많을 텐데요.”“알고 있습니다.”한채린은 비틀린 단추까지 바로 채운 뒤 손을 거뒀다.접힌 소매의 양쪽 길이는 정확히 같았다.
관저 식당을 나선 시각은 오전 6시 28분이었다.강시온은 복도 끝에서 걸음을 멈췄다.뒤따르던 발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한채린은 태블릿으로 오전 일정을 수정하면서도 오른쪽 손목을 몇 번이나 주무르고 있었다. 밤새 화면을 넘긴 탓인지 손가락의 움직임도 평소보다 둔했다.강시온이 손을 내밀었다.“주십시오.”“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정입니다.”“확인하려는 게 아닙니다. 보안실까지 제가 들겠습니다.”한채린이 태블릿을 놓지 않자 기기 가장자리에서 두 사람의 손이 겹쳤다.차갑게 식은 손등이 닿았다.강시온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손이 왜 이렇게 차갑습니까?”“밤을 새우면 이 정도는—”“원래 그렇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그는 태블릿을 받아 든 뒤 재킷 주머니의 손난로를 건넸다.“각하께서 사용하십시오.”“저는 지금 머리가 더 차가워져야 합니다.”한채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손난로를 돌려주지 않았다.강시온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보안실을 다녀온 뒤에는 쉬세요.”“일정부터 확인하겠습니다.”“그 말을 거절로 알아듣겠습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강시온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오늘만 한 실장님 일정도 공동 관리하시죠.”한채린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의 옆에 섰다.그 순간 태블릿 화면 상단에 긴급 보안 호출이 떠올랐다.발신자는
화면 아래 새로운 평가 문장이 나타났다.「공감 능력 우수」「타인 우선 선택 확인」「예상 행동과 일치」강시온의 시선이 멈췄다.“예상 행동이라.”“내가 이렇게 행동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박은호는 다음 기록을 확대했다.「후보 42번은 극한 상황에서도 타인의 생존을 우선 선택한다.」「위기 상황에서 사적 이익보다 공동체를 우선한다.」「세계평화프로젝트 적합도 상승」보안실 안이 조용해졌다.강시온은 화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후보 42번.’머릿속에서 그 숫자가 계속 맴돌았다.“42번이라면….”“나 말고도 후보가 있었다는 뜻이군요.”박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현재 복원된 자료만 보면 그렇습니다.”“최소 마흔두 명 이상이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리고 각하는 그 마지막 후보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강시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오래전부터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지켜봤고,그 끝에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 대상으로 선택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남아 있었다.‘왜 하필 나였을까.’그 순간.박은호의 눈빛이 달라졌다.복원된 문서 아래쪽에서 잠겨 있던 항목 하나가 새롭게 활성화되고 있었다.파일명은 단 하나.「후보 42번 선정 사유」
대통령 관저 지하 보안실.새벽 5시 31분.「강시온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시킬 것.」화면에 떠오른 마지막 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강시온은 몇 번을 다시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이 그 침실에서 눈을 뜨기 전부터.누군가는 강시온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만들기로 결정해 두었다.“취임시킨다는 표현.”한채린이 태블릿 화면을 확대했다.“단순히 각하께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예상했다는 뜻은 아닙니다.”박은호가 문서의 원본 코드를 확인했다.“각하를 그 자리에 앉히는 과정까지 계획했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강시온은 모니터에서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그럼 내가 눈을 떴을 때 대통령이었던 것도.”말을 끝내지 못했다.그날 아침까지도 자신이 왜 대통령 관저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누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앉혔는지도 알 수 없었다.그래도 대통령이 된 뒤 내린 결정만큼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모든 시작이 누군가의 계획이었다면.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선택도 정말 자신의 것이었을까.한채린은 대답 대신 보안실 한쪽에 놓인 커피를 가져왔다.밤을 새운 날에는 단맛이 강하면 속이 불편하다는 말을 한 번 했을 뿐인데, 그녀는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드십시오.”“지금 커피가 넘어갈 것 같지 않습니다.”“그래도 드셔야 합니다.”한채린은 종이컵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지금 판단을 흔들려는 사람이 원하는
한채린이 급히 일어나자 담요가 미끄러졌다.“…제가 잠들었습니까?”“조금요.”“그리고 제가 각하께….”“복구가 끝났답니다.”강시온이 단말기를 들어 보이며 자연스럽게 말을 끊었다.“바로 가겠습니다.”한채린은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태블릿을 잡는 손은 평소보다 빨랐다.애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지만, 살짝 붉어진 귀 끝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강시온은 그것을 모른 척했다.그녀를 더 당황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강시온이 구겨진 어깨를 펴려다 멈췄다.한채린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실장님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강시온은 작게 웃으며 먼저 휴게 공간을 나섰다.잠시 후.두 사람이 보안실로 돌아오자 박은호와 요원들도 자리에 모여 있었다.모니터에는 새로운 문장이 떠 있었다.「대상자 확인 완료. 대통령 취임일과 연동한다.」강시온은 문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문서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작성돼 있었다.“취임일과 연동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취임과 동시에 별도의 기록이 활성화되도록 설정한 것 같습니다.”“제가 대통령이 될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네요.”박은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적어도 취임과 이 프로젝트가 연결된 것은 분명합니다.”박은호가 구형 인증 카드를 판독기에 올렸다.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