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누나와의 카카오톡 채팅창은 늘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메시지가 오는가 싶으면 멈추고, 다시 깜빡이다가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일주일, 열흘, 심지어 보름이 지난 뒤에야 연락이 오는 날도 있었다. 가끔은 간단한 안부만 오가는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이틀, 사흘 연속으로 만나기도 했다.
만나면 우리는 서로에게로 무너졌다.
누나의 방에서, 내가 사는 숙소에서, 차를 세워둔 어두운 주차장에서, 그리고 호텔 방 안에서.
누나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모텔만은 싫다고 했다. 꼭 고급 호텔이 아니더라도, 밝은 리셉션이 있고 복도에 카펫이 깔린 그런 숙소를 원했다. 나는 그 고집의 이유를 묻지
안개가 내렸다.낮 동안 습했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으면서, 골목이란 골목에 음습한 안개가 자욱이 깔렸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솜뭉치처럼 뭉개진 길을 나는 걷고 있다.이 길을 걷는 게 처음으로 편하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 남의 물건을 넣고 걷는 기분. 그나마 안개가 짙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 씁쓸하게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열한시가 가까운 시간깔린 안개 사이로 옅은 불빛이 번졌다. 꺼진 간판. 삼천포 미더덕. 그 아래 작은 불 하나 켜진 가게의 실루엣이 걸음마다 선명해졌다. 유리문 너머, 홀 가운데 앉은 여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여자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실루엣이 반가운 듯 일어나 다가왔다. 딸깍, 잠금쇠가 돌아가고 문이 열리는데.조개껍데기 발이 찰그랑, 울었다."준호씨~♡"금자였다.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니트에 평소에는 안 바르던 색의 립을 발랐고, 갈색으로 구불거리는 머리는 풀어서 한쪽 가슴 앞으로 넘겨져 있었다.장사할 때의 차림새가 아니었다.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을까."어제 일은 잘 됐어?"
술에 많이 취한 건 아니었다. 한동안 금자가 영업을 끝낸 뒤에도 만나는 바람에 잠이 부족했던 탓인지, 택시에서 "삼천포 미더덕이요" 해놓고 깜빡 잠들었던 것 같다.기사도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모양이다. 내비게이션에 뭐라뭐라 몇 번 찍는 것 같더니, 차는 결국 내비가 먼저 가리킨 또 다른 '삼천포 미더덕' 앞에 서 있었다.홀린 것만 같았다. 다른 동네인데 간판은 이상하리만치 비슷했다. 여섯 글자가 같았고 글씨체만 조금 달랐다. 배경에 색깔도 거의 같았다. 톤은 살짝 다른것 같기도…"뭐야. 분점이야?"그날따라 이유 없이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이 육감을 자극하고 있었다.문을 밀자 종소리가 났다. 조개껍데기가 아니라 딸랑거리는 종소리.홀 한가운데 테이블에 여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손님은 없었다. 금자와의 첫날이 오버랩됐다. 딱, 그 구도만.벽이라는 벽에 폴라로이드 사진과 손글씨 쪽지가 잔뜩 붙어 있는 것도 달랐다. 사진 한 장 없는 벽이 눈에 익숙했던 탓인지 그 소란이 나에게는 낯설었다."한 시간 뒤에 문 닫는데요…." 여자가 내 뒤를 슬쩍 살폈다. "아…, 혼자세요?""뭐, 간단하게 한잔만 하고 가겠습니다. 안주 되죠?"여자가 피식 웃으며 메뉴판을 가지러
금자는 나보다 거의 열 살이나 많았다. 그런데도 흥분할 때마다 “오빠”라는 말을 썼다. 그게 묘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그녀의 몸이 한층 더 세게 떨린다는 걸 나는 분명히 느꼈다.그녀가 아주 흥분할 때에만 “오빠”를 습관처럼 내뱉는 건지, 아니면 그때마다 진짜 기억 속 누군가를 떠올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그녀도, 나도, 이 관계가 이곳에서만 타오르는 불꽃 같은 이벤트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더 적나라하게 몸을 열어 보였다. 어차피 이 불꽃이 지나가면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금자는 내가 입으로 애무해 주는 걸 좋아했다.“안 된다”“부끄럽다”“하씨… 추접게 거길 왜…”그렇게 말하면서도 몸을 슬쩍슬략 비틀기만 할 뿐, 내 혀를 내심 기다리는 티가 났다. 물론 나는 그런 여자의 몸을 쫒아가며 빨아대는 게 좋았기에 우리는 잘 맞았다. 나는 내가 빨고 싶은 그녀의 구석구석을 다 빨았고, 그녀는 그걸 즐겼다.반대로 그녀는 남자에게 입으로 해주는 애무를 즐기지는 않았다.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금자가 내 바지를 내릴
해안도로에 올라서자 금자는 모자를 벗고 창문을 반 뼘 내렸다.“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크크”“동네가 좁아서 그렇다. 여기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평일 두 시의 도로는 비어 있었다. 죽방렴이 창밖으로 천천히 지나갔고, 여자는 그 심심한 바다를 잘도 오래 봤다. 신호에 걸렸을 때, 나는 기어 위에 있던 오른손을 그녀의 무릎으로 옮겼다.“어허이. 안돼.”말은 그렇게 하면서 여자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치우라는 소리도 없었다. 신호가 바뀌고 내가 손을 거두려 하자, 오히려 여자의 손이 위에 얹혀서 눌러두었다.“운전할 때는 앞이나 봐라. 엉큼하기는.”“손은? 괜찮고?”“손이 뭐…”기가 막혀서 웃음이 났다. 나는 그대로 손을 더 위로 올렸다. 무릎을 지나 허벅지 안쪽으로. 원피스 치마 자락이 자연스럽게 밀려 올라갔다. 금자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살짝 움켜쥐었지만, 막지는 않았다.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나는 액셀을 밟으며 손을 더 깊이 넣었다. 치마 밑, 팬티 가장자리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어제 카운터 너머에서 옆으로 밀어젖혔던, 레이스가 달린 그런 팬티였다. 이미 가랑이 쪽이 약간 축축했다.
“김 박사님 실험동에 계세요. 오늘 안들어오십니다.”“점심때도 안오시나요?”“네”이놈의 연구소는 여직원도 쌀쌀 맞았다. 나가도 할 일은 없었지만 여기서 비참하게 있기는 또 싫었다. 팀장에게는 대충 둘러댈 셈이다. 어차피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애시당초 없었다.사우나에 들렀다가 숙소에 들어갔다. 팀장의 카톡은 저녁에 왔다.[팀장님. 요지부동입니다.][박진우 팀장] 여기도 소장이 말은 해본다고 하는데 기대해보자. 오늘 못가고 내일 보자.그리고 열한 시 반, 나는 어제의 그 골목에 다시 서 있었다.불 꺼진 간판, 꺼지지 않은 불 하나. 어제와 같은 밝기로 홀의 절반만 살아 있었다.문은 어제처럼 잠겨 있었고, 나는 문을 미는 대신에 ‘똑똑똑’하고 문을 두드렸다.금자는 그 작은 소리에 휴대폰에서 고개를 돌려 문쪽으로 와서는 잠금을 풀었다. 조개껍데기 발이 찰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나를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오늘은 안주거리를 좀 챙겨놨어요.”
무궁화모텔 302호의 벽지는 꽃무늬였다. 그게 꽃무늬라는 걸 알아보는 데까지 한참이 걸렸다. 누워서 아무리 봐도 꽃이라 부를 만한 모양이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얼룩과 때를 피해 살아남은 구석에서야 꽃잎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눅눅한 이불에서는 지난 장마 냄새가 났다. 옆방 텔레비전 소리가 벽을 반쯤 통과해서 넘어왔다. 웃음소리만 들리고 무슨 말인지는 안 들리는 게 꼭 지금 내 처지 같았다.씻고 나와서 휴대폰을 열었다.[박진우 팀장] 나는 내일 일찍 나가야되니까, 자네는 연구소 한번 더 갔다와서 보고. 뭐라도 해봐.뭐라도, 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뭐라도 되는 게 없다는 뜻이니까.나는 천장의 꽃무늬를 보며 낮의 연구소를 되감았다. 서류를 몇 부씩 쌓아놓고 사는 박사의 얼굴. 순서를 어떻게 바꿉니까, 하던 억양 없는 목소리.찍어누르면 더 FM대로 갈 놈이라더니, 골프는 왜 치러 간다는 건지. 그 골프가 통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우리가 여기까지 내려올 일도 없었다.되감을수록 결론은 하나였다. 이건 내가, 아니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액정 위쪽의 숫자를 봤다.23:31.몇 시까지 하느냐고 물었을 때, 여자는 열한 시,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