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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화 [밤에 서는 장] -2-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4 12:26:02

"관에서는 모릅니까."

서리가 낮게 물었다.

"모를 리가요."

이겸도 낮게 답했다.

"나졸이 안 도는 건 아닐 겁니다. 다만 크게 터지지만 않으면 겉만 훑고 돌아가겠지요."

서리는 몇 군데 좌판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값을 묻고, 물건을 만져보고, 어디서 들어온 것이냐 물었다. 상인들은 대개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면 흘러나오는 것이 있었다.

그사이 이겸은 말수가 적었다. 대신 시선이 계속 움직였다. 사람이 몰리는 자리와 비는 자리, 좌판이 놓이지 않은 통로, 담장이 무너져 밖으로 이어지는 곳. 서리가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겸은 반 걸음 뒤에 서서 등 뒤쪽을 보고 있었다.

말을 맞춘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어긋나지 않았다.

좌판 하나를 지나던 서리의 걸음이 잠깐 멎었다.

붉은 옥으로 깎은 머리꽂이였다. 등불 아래에서 옥이 짙게 가라앉은 빛을 냈다. 서리는 그것을 집어 들고 잠시 손안에서 돌려보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이겸의 시선이 그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가, 서리를 따라갔다.

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통로가 좁아졌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리는 지점에서, 서리는 어느새 이겸의 안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짐을 진 사내가 지나가자 이겸이 반 발 앞으로 나섰고, 좌판 모서리가 튀어나온 자리에서는 손이 먼저 뻗어 왔다. 서리는 그 손을 잡고 몸을 돌렸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사람을 지키는 데 익숙한 것인지, 여인을 이끄는 데 익숙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리는 문득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왜 그런 것을 따지고 있는지가 더 이상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다른 것이 걸렸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그 움직임에 맞춰 따라가 있었다. 손이 뻗어 오기 전에 이쪽 어깨가 먼저 기울었고, 발이 옮겨질 자리를 발이 먼저 알고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 이렇게 익숙할 수는 없었다.

서리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다만 그 감각이 손끝 어딘가에 남았다.

수레꾼 몇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서리는 마른 약재를 한참 뒤적였다. 값을 몇 차례 묻고 손끝으로 결을 확인한 끝에 한 꾸러미를 골라 돈을 내려놓았다.

수레꾼이 돈을 세는 동안, 서리는 맞은편 창고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저곳은 비어 있습니까. 물건 둘 자리를 찾고 있어서요."

나이 든 수레꾼이 창고 쪽을 힐끗 보았다.

"다른 데를 알아보시오."

"임자가 따로 있습니까."

"그렇다고들 하지요."

말이 거기서 끊겼다. 서리는 재촉하지 않고 돈 몇 닢을 더 밀어놓았다. 수레꾼은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손바닥으로 천천히 덮어 끌어갔다.

"밤에 혼자 드나드는 자가 있소. 짐을 들이거나 내는 건 거의 못 봤고."

"요즘도 옵니까."

"근래에는 못 봤소."

수레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빈자리라는 뜻은 아니오."

"그런데도 아무도 쓰지 않는군요."

옆에 앉아 있던 사내가 서리를 한 번 훑어보았다.

"이 바닥에선 남이 먼저 차지한 자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소. 그 이상은 묻지 마시오."

서리는 더 캐묻지 않고 꾸러미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이 밝은 뒤, 백우가 사람을 데리고 그 창고를 다시 살폈다.

"주군."

백우가 돌아와 고했다.

"바깥에서 재어본 것과 안에서 재어본 것이 맞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설 만큼은 비는 듯합니다."

이겸이 직접 창고로 들어섰다.

문과 창은 모두 닫혀 있었다. 그런데 안쪽 벽에 붙은 큰 장 뒤에서, 아주 옅게 공기가 도는 기척이 있었다. 이겸이 벽을 손등으로 두드리자 소리가 한 자리에서만 달랐다.

"옮겨라."

장을 밀어내자, 뒤에 문이 드러났다.

안은 좁았다. 사람 하나가 겨우 서서 몸을 돌릴 만한 자리였다.

그리고 비어 있었다. 안에는 이곳의 쓰임을 짐작하게 할 만한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리가 등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빛이 벽을 훑는 순간, 위쪽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 가까운 벽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한두 번 불을 켠 자국이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서 오래, 여러 밤에 걸쳐 등잔을 피운 흔적이었다.

바닥은 한 곳만 반들거렸다. 오래 앉거나 선 자리였다. 문 안쪽 손잡이도 그 부분만 색이 옅었다.

"물건은 하나도 없군요."

백우가 말했다.

"없는 게 아니라, 치운 겁니다."

서리가 등불을 조금 들어 벽을 비췄다.

"치우고 나서 장을 도로 붙여놓았고요."

이겸이 그을음을 손끝으로 문질러보았다.

"밤마다 이곳을 쓴 모양입니다."

이겸이 말했다.

"한두 번 드나든 자리는 아니군요."

서리는 좁은 벽 사이에 서서 그 말을 곱씹었다. 밖에서는 밀매품이 오가고, 그 소란 한복판의 벽 뒤에서 누군가는 밤마다 등을 켰다. 무엇을 하던 자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좁은 자리를 두고 떠나면서, 그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짐작할 만한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물건을 가져가는 것과, 그 자리가 무엇에 쓰였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곳을 오래 썼고, 떠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까지 지웠다.

서리는 그을린 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디선가 이미 본 적 있는 솜씨였다.

"사람 하나가 사라진 게 아니군요."

서리가 낮게 말했다.

"그 사람이 지나온 자리까지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을린 벽을 한동안 더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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