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목연이 돌아간 뒤, 이겸은 회신을 들고 다시 서리의 처소를 찾았다.
다과 자리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북방의 답신이었다. 서리는 앞에 놓인 문서를 밀어두고 자리를 내주었다.
"매듭 말입니다."
이겸이 종이를 펼치며 말했다.
"실 끝을 안으로 감아 숨기는 그 마감."
"어느 쪽 것이었습니까."
"어느 쪽 것도 아니랍니다."
서리가 눈을 들었다.
"북방에서 물건을 몰래 넘기는 자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라더군요. 어느 세력의 표식도, 서로 알아보는 암호도 아니고요. 그저 짐을 오래 지고 다니는 자들이 손에 익힌 방법이라 합니다."
이겸이 종이를 서리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 물건들이 남쪽으로 흘러오면서, 묶는 법도 함께 내려왔다고요."
서리는 그 대목을 눈으로 훑었다. 북쪽 사람의 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그 물건이 지나온 길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면 그 꾸러미는,"
서리가 천천히 말했다.
"북방에서 온 자가 묶은 것이 아니라, 북방 물건이 오가는 자리를 거쳤다는 뜻이겠군요."
"그렇게 읽는 편이 맞을 겁니다."
"도성에도 그런 자리가 있습니까."
"있다고 합니다."
이겸이 종이 끝을 짚었다.
"북방 물건이 흘러드는, 관에 잡히지 않는 장이 선다고요. 다만 저쪽에서도 그 자리가 정확히 어디인지까지는 모른답니다."
서리는 잠시 그 문장을 들여다보았다.
"도성 안에서 그런 장이 서는데, 우리가 모른다는 게 이상하군요."
"아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별채 쪽으로 향했다.
—
포로는 요즘 살이 조금 붙어 있었다. 식구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눈치를 보는 기색도 줄었다.
"또 뭘 여쭤보시려고요."
"묻는 게 좀 다르다."
이겸이 앉으며 말했다.
"네가 쓰려던 것 중에 사람을 재우는 약이 없었지."
"그건 저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애초에 준비하지 않았다고."
"그건 됐고. 만약 썼다면, 그런 건 어디서 구하나."
사내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거야 뭐, 사는 데가 있죠."
"어디."
"저 같은 놈들이야 다 아는 데입니다."
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밤에 서는 장이 있어요. 관에 못 낼 물건들 오가는 데요. 약이든 뭐든, 돈만 있으면 대개 나옵니다."
서리가 물었다.
"어디에 서는 장인가."
"남문 밖입니다."
사내가 답했다.
"기와 굽던 옛터 있잖습니까. 거기 밤에는 사람이 제법 모입니다."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거기서 접선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겸이 말했다.
"했지요."
"그 자리에 장이 선다는 말은 왜 하지 않았나."
"안 물어보셨으니까요."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동안 누가 시켰냐, 어디로 데려가라 했냐, 그런 것만 캐물으셨지 않습니까. 장이 서든 말든 제 일이랑 무슨 상관이겠나 싶었죠. 그러니까 사람 눈에 안 띄는 자리로 부른 거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리는 그 대답을 곱씹었다.
"밤마다 서는가."
"아니요. 날이 정해져 있는데, 그건 아는 사람만 압니다. 저야 물건 살 일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
"제가 가겠습니다."
이겸이 말했다.
"백우와 몇을 데리고 밤에 들어가 보지요."
"저도 가겠습니다."
이겸이 서리를 보았다.
"저를 데려가려던 자들이 거기서 값을 받았습니다."
서리가 말했다.
"제 일을 남의 손에만 맡길 생각은 없습니다."
"위험한 자리입니다."
"위험한 자리라면 더욱요."
서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장이 선다면 물건이 오갈 텐데, 그런 자리에서 무엇이 이상한지는 제 눈이 더 빨리 알아볼 겁니다. 옷감이든 매듭이든, 값을 부르는 방식이든요."
이겸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반박할 말을 고르는 얼굴이었다가, 결국 고르지 못한 얼굴이 되었다.
"신분을 드러내는 것은 무엇도 가져가지 마십시오."
—
가마터의 밤은 낮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무너진 아궁이 사이사이에 좌판이 깔렸고, 등불은 낮게 갓을 씌워 발치만 밝혔다. 사람은 적지 않았으나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없어서, 웅성거림이 물 흐르듯 낮게 깔렸다. 어디선가 약재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왔다.
이겸과 서리는 옷차림을 낮추고 그 사이로 들어섰다. 굳이 무엇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상대의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고, 무엇을 하러 왔는지 묻지도 않았다.
서리는 그 사실을 걸으면서 알아차렸다. 이 자리가 안전한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수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리가 물었다."그런 밤이 여러 번 있었나.""두 번쯤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아예 자리만 두고 곧장 나왔고요.""값은 어떻게 받았나.""다음 날 성안 객주에서 받았습니다. 정해둔 말을 대면 셈해줬고요.""객주는 네가 무엇을 팔았는지 알고 있었나.""아닙니다. 그 말만 맞으면 돈을 내줬습니다.""웃돈은.""다음번에 갔을 때 자리에 나무패가 놓여 있으면, 그걸 객주에 가져갔습니다."사내가 손가락을 비볐다."그게 꽤 후해서요. 그 맛에 다녔습니다.""너 말고도 다니는 자가 있었나.""있었겠지요."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그런데 서로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날이랑 시각을 다 따로 잡아줬거든요. 저는 제 날에만 갔습니다."—"무엇을 팔았나."서리가 물었다.사내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늘어놓기 시작했다."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저잣거리에서 주워듣는 거니까요. 어느 집에 새 사람이 들어왔다더라, 어디는 사람이 바뀌었다더라, 그런 겁니다.""어느 집.""……영안궁 이야기를 꽤 물었습니다."방 안이 조용해졌다."자세히 말해봐라."이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영안공께서 자리보전하신 뒤로 궁에 사람이 얼마나 드나드는지, 새로 들어온 자가 있는지, 밤에 누가 지키는지— 그런 걸 물었습니다."사내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저야 뭐 담 너머로 들은 소리를 옮긴 거지요. 문지기들이 술자리에서 흘리는 말이나, 물건 대는 상인들한테 들은 것들이요.""그것뿐인가.""서가 이야기도 몇 번 팔았습니다."사내가 서리 쪽을 흘긋 보았다."장군댁이 그렇게 되고 나서 남은 재산이 어디로 갔다더라, 옛날 사람들이 아직 붙어 있다더라, 그런 뒷말이요.""언제부터.""글쎄요, 꽤 됐습니다."사내가 셈하듯 눈을 굴렸다."지난겨울 전부터니까…… 반년은 훨씬 넘었지요."서리는 무릎 위에 놓은 손을 조용히 겹쳤다.연택례에서 이름을 부른 것이 봄이었다. 그런데 이 사내가 영안궁과 서가에 관한 말을 팔기
창고를 비워둔 채 지켜보기로 한 것은 이겸의 뜻이었다.문을 도로 잠그고, 장도 원래 자리에 밀어놓았다. 안에서 무엇을 찾아냈는지 아무도 모르게 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장이 서는 날마다 사람을 몇씩 흩어 앉혀두었다.첫 장이 섰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두 번째 장이 선 밤, 백우가 처음으로 이름 없는 보고를 올렸다. 창고 앞을 두 번 지나간 사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건을 사지도, 누구와 말을 섞지도 않았다.세 번째 장에서, 그 사내가 다시 왔다."옷이 달랐습니다."백우가 고했다."지난번엔 짐꾼 차림이었는데, 이번엔 약재 사러 온 행색이었습니다. 들어온 길도 반대쪽이었고요.""확실한가.""걸음이 같습니다. 왼발을 조금 끕니다."백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그리고 창고를 오래 보지 않습니다. 대신 창고가 보이는 자리를 몇 번씩 지나갑니다. 좌판을 들여다보는 척하면서요."이겸은 곧바로 잡으라 하지 않았다."다음 장까지 두어라. 세 번이면 우연이 아니지."—네 번째 장이 선 밤, 사내는 또 왔다.이번에도 옷차림이 달랐고, 들어온 길도 달랐다. 다만 도는 자리는 같았다. 창고 뒤편으로 돌아 담이 무너진 틈을 한 번 들여다보고, 앞쪽으로 나와 좌판 두어 곳을 지나며 다시 그쪽을 살폈다. 그러기를 네 번쯤 되풀이한 뒤에야 자리를 뜨려 했다.백우의 사람이 그 앞을 막아섰을 때, 사내는 곧바로 몸을 틀어 달아났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뒷골목에서 붙잡혔고, 칼을 뽑거나 끝까지 반항하지는 않았다.—사내는 영안궁 별채가 아니라 도성 안의 조용한 자리로 옮겨졌다.나이는 마흔쯤, 몸집이 작고 눈이 빨랐다. 결박된 채 앉혀놓자 이겸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곧 시선을 내렸다. 상대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눈치였고, 그 가늠이 끝나자 어깨가 축 처졌다."살려주십쇼. 저는 사람 해치는 일은 안 합니다.""무슨 일을 하나.""……소식 나르는 일 좀 합니다."사내가 우물거렸다."누가 어디 갔다더라, 누구네 집에 누가 드나든다더라, 그
궁으로 돌아온 이헌이 왕후의 처소에 든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왕후는 수틀을 무릎에 둔 채였고, 곁에는 오래 부려온 상궁 하나가 서 있었다."아직도 그 아이를 찾고 있다지.""찾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왕후는 바늘을 한 땀 놓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태자의 이름으로 사람을 반년이나 움직였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밝혀질 것이 없으니 반년이 지나도 그 모양인 게지."왕후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고요했다."사적인 일에 사람을 계속 붙들어두면 말이 난다. 손을 떼어라. 정 마음에 걸리거든 내 쪽에서 사람을 붙이겠다."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헌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어릴 적부터 이런 말에 늘 눌려왔다. 어머니는 그를 막은 적이 없었다. 다만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를 언제나 먼저 정해두었다."오늘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이헌이 화제를 돌렸다."그 애가 마지막으로 다녀간 곳을 찾았습니다."왕후의 바늘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무엇을 알아냈느냐.""손수건이 두 장이었다 합니다. 짝이 되게 지은 것이라, 하나는 제가 받았고 나머지는 그 애가 지녔다고요."이헌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날 바깥에 사람이 와 있었답니다. 늘 걸어 다니던 아이가, 그날은 탈것에 올랐고요.""그것뿐이냐.""평소 다니던 길과 반대로 갔다 합니다."그때였다."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면, 그런 것들이야 흔하지요."상궁이 낮게 덧붙였다. 묻지도 않은 말이었다.이헌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럴듯한 소리였고, 지금 그의 머릿속은 다른 것으로 차 있었다."저쪽 길로 나간 것들을 마저 뒤지게 하겠습니다.""손을 떼라 하지 않았느냐.""떼지 않겠습니다."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알겠다고 답했을 것이다. 이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이 옳다는 것과, 그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물러나는 걸음이 문턱을 넘을 때까지, 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이 닫히고 나서도 왕후는 한동안
반년 동안 사람을 풀어 그 집안의 흔적을 쫓게 했다.친척을 찾아가게 하고, 연고가 있다는 고을에 사람을 보내고, 얼굴을 본 자가 있는지 묻게 했다. 그렇게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보고를 몇 달째 받던 어느 날, 엉뚱한 것이 하나 올라왔다.기름을 대던 상인이 값을 받으러 갔다가 집이 빈 것을 알고, 관아에 문의를 넣었다는 것이었다. 액수가 크지 않고 오래 거래한 집이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해가 바뀌도록 기별이 없어 그제야 찾아가 보았다고 했다.그 종이를 받아 든 이헌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반년 동안 그 집안을 아는 사람만 뒤지게 했다. 정작 그 집안과 값을 주고받던 자들은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었다.사람은 숨길 수 있어도 셈은 남는다."그 집과 거래하던 자들을 전부 찾아라."이헌이 일렀다."받을 것이 남았든, 맡아둔 것이 있든 상관없다. 값이 오간 자리는 하나도 빼놓지 마라."그렇게 해서 며칠 뒤에 올라온 것이 종이 몇 장이었다.값을 못 받은 포목상, 손질을 맡겼다가 주인이 끊긴 신발 가게, 심부름을 다니던 아이가 기억하는 마지막 걸음. 그 종이들이 가리키는 곳 가운데 하나가 도성 안쪽의 오래된 바느질방이었다.사람을 보내 캐물었으나 처음에는 소득이 없었다. 접수를 받던 자는 지난달에 그만두었고, 남은 이들은 손님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했다.다만 그중에 손수건 하나를 기억한다는 나이 든 여인이 있다는 보고가 뒤늦게 올라왔다.이헌은 그 여인을 부르게 했다.—자리는 도성 안쪽에 잠시 빌린 사랑채에 마련되었다.옷차림은 낮췄으나 굳이 감추지는 않았다. 마당과 문간에 사람이 서 있었고, 안내를 받아 들어온 여인은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몸을 낮추고 있었다."앉아라."여인이 조심스레 앉았다. 눈을 들지는 않았다.이헌은 품에서 그것을 꺼내 상 위에 놓았다.손수건이었다. 오래 접혀 있어 자국이 남았고, 가장자리가 조금 해졌다."이것을 아는가."여인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빛이 드는 쪽으로 기울여 보고, 뒤집어 안
"관에서는 모릅니까."서리가 낮게 물었다."모를 리가요."이겸도 낮게 답했다."나졸이 안 도는 건 아닐 겁니다. 다만 크게 터지지만 않으면 겉만 훑고 돌아가겠지요."—서리는 몇 군데 좌판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값을 묻고, 물건을 만져보고, 어디서 들어온 것이냐 물었다. 상인들은 대개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면 흘러나오는 것이 있었다.그사이 이겸은 말수가 적었다. 대신 시선이 계속 움직였다. 사람이 몰리는 자리와 비는 자리, 좌판이 놓이지 않은 통로, 담장이 무너져 밖으로 이어지는 곳. 서리가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겸은 반 걸음 뒤에 서서 등 뒤쪽을 보고 있었다.말을 맞춘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어긋나지 않았다.—좌판 하나를 지나던 서리의 걸음이 잠깐 멎었다.붉은 옥으로 깎은 머리꽂이였다. 등불 아래에서 옥이 짙게 가라앉은 빛을 냈다. 서리는 그것을 집어 들고 잠시 손안에서 돌려보았다.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이겸의 시선이 그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가, 서리를 따라갔다.—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통로가 좁아졌다.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리는 지점에서, 서리는 어느새 이겸의 안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짐을 진 사내가 지나가자 이겸이 반 발 앞으로 나섰고, 좌판 모서리가 튀어나온 자리에서는 손이 먼저 뻗어 왔다. 서리는 그 손을 잡고 몸을 돌렸다.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사람을 지키는 데 익숙한 것인지, 여인을 이끄는 데 익숙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서리는 문득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왜 그런 것을 따지고 있는지가 더 이상했다.그리고 한 박자 늦게, 다른 것이 걸렸다.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그 움직임에 맞춰 따라가 있었다. 손이 뻗어 오기 전에 이쪽 어깨가 먼저 기울었고, 발이 옮겨질 자리를 발이 먼저 알고 있었다.처음 하는 일이 이렇게 익숙할 수는 없었다.서리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다만 그 감각이 손끝 어딘가에 남았다.—수레꾼 몇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목연이 돌아간 뒤, 이겸은 회신을 들고 다시 서리의 처소를 찾았다.다과 자리에서는 꺼내지 못했던 북방의 답신이었다. 서리는 앞에 놓인 문서를 밀어두고 자리를 내주었다."매듭 말입니다."이겸이 종이를 펼치며 말했다."실 끝을 안으로 감아 숨기는 그 마감.""어느 쪽 것이었습니까.""어느 쪽 것도 아니랍니다."서리가 눈을 들었다."북방에서 물건을 몰래 넘기는 자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라더군요. 어느 세력의 표식도, 서로 알아보는 암호도 아니고요. 그저 짐을 오래 지고 다니는 자들이 손에 익힌 방법이라 합니다."이겸이 종이를 서리 쪽으로 돌려놓았다."그 물건들이 남쪽으로 흘러오면서, 묶는 법도 함께 내려왔다고요."서리는 그 대목을 눈으로 훑었다. 북쪽 사람의 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그 물건이 지나온 길의 흔적이었다."그렇다면 그 꾸러미는,"서리가 천천히 말했다."북방에서 온 자가 묶은 것이 아니라, 북방 물건이 오가는 자리를 거쳤다는 뜻이겠군요.""그렇게 읽는 편이 맞을 겁니다.""도성에도 그런 자리가 있습니까.""있다고 합니다."이겸이 종이 끝을 짚었다."북방 물건이 흘러드는, 관에 잡히지 않는 장이 선다고요. 다만 저쪽에서도 그 자리가 정확히 어디인지까지는 모른답니다."서리는 잠시 그 문장을 들여다보았다."도성 안에서 그런 장이 서는데, 우리가 모른다는 게 이상하군요.""아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요."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별채 쪽으로 향했다.—포로는 요즘 살이 조금 붙어 있었다. 식구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눈치를 보는 기색도 줄었다."또 뭘 여쭤보시려고요.""묻는 게 좀 다르다."이겸이 앉으며 말했다."네가 쓰려던 것 중에 사람을 재우는 약이 없었지.""그건 저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애초에 준비하지 않았다고.""그건 됐고. 만약 썼다면, 그런 건 어디서 구하나."사내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그거야 뭐, 사는 데가 있죠.""어디.""저 같은 놈들이야 다 아는 데입니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