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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새로운 세계

Author: ALL장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3 02:08:49

06.

이후로도 두 사람은 미래의 풍경과 소소한 일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중에 어디선가 나타난 작고 귀여운 다람쥐 한 마리가 해솔의 어깨를 재빠르게 타고 올라가더니 자연스럽게 산신의 어깨 위로 톡 옮겨 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고요한 산속의 적막을 깨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랑이님, 랑이님!”

“으악! 모, 뭐야, 다람쥐가 말해?!”

깜짝 놀란 해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랑이님, 큰일 났어요!”

산신은 제 어깨 위에서 삐약거리듯 쫑알대는 다람쥐의 진지한 보고를 차분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은 입을 떡 벌린 채 그 기이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놀라지 말거라. 이 녀석은 저 아래쪽 작은 동산을 수호하는 다람쥐란다. 아무래도 내 손길이 필요한 일이 생긴 모양이구나.”

랑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에 해솔은 이내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내렸다. 비록 산신과의 만남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낯선 세계에 홀로 떨어져 짓눌려 있던 마음이 묘하게 보듬어지던 시간이었다. 이 위안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끝난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저… 혹시, 나중에 여기에 다시 오면 산신님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해솔의 망설이는 물음에 랑은 그윽한 미소를 머금으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고말고. 나는 언제나 이 산자락에 깃들어 있단다. 네 이름이 해솔이지? 내 이름은 ‘랑’이다. 산에 올라 부르면, 언제든 너를 맞이하러 오마. 오늘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해솔아.”

“네… 저도 정말 즐거웠어요. 다람쥐님도 만나서 반가웠고요.”

산신 랑이 다시금 나직하고 신령스러운 어조로 인사를 건네자, 해솔은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도 배시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솔은 랑에게 다정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그의 어깨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다람쥐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다람쥐는 제 폭신한 꼬리를 꼭 붙잡은 채,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해솔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해솔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귀엽네요. 다람쥐님, 다음에 또 만나요!”

꾸벅 인사를 건넨 해솔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천천히 산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랑과 다람쥐는 멀어져 가는 해솔의 뒷모습을 가만히 담아두었다.

“세상에, 랑이님! 방금 저한테 고개까지 숙여 인사한 거 보셨죠?! 보셨죠? 저는 그동안 작고 귀여운 겉모습 때문에 인간들한테 무시당하기 일쑤였는데!”

다람쥐 석지는 랑의 머리 위로 올라앉아 꼬리를 팽팽하게 흔들며 신나게 쫑알거렸다. 랑은 석지의 호들갑에 나직하고 깊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참으로 따스하고 예의가 바른 아이더구나. 그나저나 석지야, 내게 급히 보고하려던 일이 무엇이냐?”

“아, 맞다! 큰일 났어요, 랑이님! 저희 동산 쪽에 사나운 삵 한 마리가 내려와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석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랑의 유려하던 표정이 단숨에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뭐라? 어서 그쪽으로 가보자꾸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랑의 신형이 일렁이며 은빛과 붉은빛이 섞인 거대한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석지는 랑의 머리 위 모피 사이에 재빠르게 몸을 파묻으며 그의 털을 꼭 잡았다. 두 신령한 존재는 바람을 가르며 문제의 장소를 향해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삵 소동을 말끔히 해결한 뒤, 랑은 다시 홀로 산 정상의 우뚝 선 바위 위로 돌아왔다. 서늘한 산바람이 그의 붉은 회색 털을 부드럽게 간질였고, 랑은 고요한 황금빛 눈동자로 발아래 펼쳐진 마을 풍경을 굽어보았다.

아늑한 들판 한가운데 정겹게 자리 잡은 마을.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게 커다란 저택이 바로 해솔이 머무는 곳이었다. 랑은 조용히 그 집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 마을에서도 유독 큰 저택인데… 이보다 하늘을 찌를 듯 커다란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단 말이지. 진정 우리 같은 존재들이 설 자리가 사라진 시대라니. 그래, 세월이란 모름지기 흐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황폐했던 먼지 땅에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 우리가 생겨났듯, 세월이 더 흘러서 때가 되면 우리 또한 조용히 바스러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겠지…”

나직하게 읊조린 목소리는 서늘한 산바람에 실려 아득히 멀리 퍼져나갔다. 랑은 한동안 말을 잃은 채 해솔의 기척이 느껴지는 저택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아이야… 너는 대체 어떠한 인연과 섭리로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냐.”

낮게 울리는 중얼거림과 함께 랑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너머로 번지는 황금빛 잔상은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해솔이라는 낯선 이방인이 이 세계에 발을 딛게 된 진정한 연유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랑의 가슴 한구석에는 이미 작고 낯선 파문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후로도 랑은 해솔이 머무는 저택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마침내 바람처럼 고요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해솔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적으로 흘러갔다. 본래 현실에서도 취준생으로 집에서 빈둥거렸기 때문에, 이 세계의 유유자적한 생활 방식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무작정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솔은 나중에 복학하게 될지 모를 미래를 대비해 시간을 알차게 쓰기로 마음먹고, 중·고등학교 과정의 기본 학문부터 차근차근 복습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교육 체계는 현대와 사뭇 달랐지만, 대한민국에서 수능 전쟁을 치러낸 짬밥 덕분에 해솔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개념을 잡아나갔다.

책장을 넘기며 묵묵히 문제를 풀고 정리하는 시간만큼은 그를 짓누르던 시대의 차이와 이질감을 잊을 수 있었다. 어쩌면 막막한 1950년대의 현실에 적응하려 애쓰는 것보다, 답이 명확히 정해진 공부에 몰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마음 편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해솔아, 내려와서 과일 먹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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