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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유화
적어도 지금은 추씨가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추씨가 죽으면 두 아이를 바꿔치기한 죄는 영원히 증거도 없이 묻히게 될 것이다.

설충의 눈에 번뜩이던 살기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주저앉은 추 이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록 두 아이가 너를 살려달라 사정했지만, 네 죄는 가벼울 수 없다. 곤장 서른 대에서 열 대로 줄여주마.”

그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콧방귀를 뀌며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열 대라는 말에 추 이랑은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목숨만은 부지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 설은비를 바라본 그녀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설은영에게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표독스럽게 변했다.

설은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근함에 불편함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오라버니, 이쪽은 설 집사가 지키고 있을 테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죠.”

오늘은 강씨 부인이 입궁한 날이라 자리에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상황에서 설은비는 절대 먼저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설민준은 묵묵히 동생과 함께 자리를 떴다.

설은영은 측은한 눈길로 추 이랑이 곤장을 맞으며 비명을 지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끝난 후, 그녀는 분개한 추 이랑의 눈빛을 마주하고도 애틋한 눈길로 어멈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 당부까지 하고는 자리를 떴다.

망서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취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설은영의 목에 잔뜩 남은 뻘건 자국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씨,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그녀는 황급히 연고를 가져와 조심스레 그녀의 목에 발라주었다.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설은영이 덤덤히 물었다.

“아씨의 예상대로 그 어멈은 아직 경성에 있어요. 5년 전에 다시 돌아왔더라고요. 아씨가 지시하신 대로 사실만 확인하고는 바로 돌아왔어요.”

“그 사람은 지금도 산파로 일하고 있더군요. 아들과 며느리는 남쪽 성문 근처에 작은 찻집을 운영하고 있고요. 손자도 있는데 남성의 학당에서 글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취아는 설은영의 목에 부드럽게 약을 발라준 후, 가서 손을 씻었다.

“아씨, 이제 어쩌실 생각인가요?”

추 이랑이 악의를 품고 적녀인 아씨를 바꿔치기하고도 그동안 아씨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은 걸 생각하면 취아와 진주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특히나 운이 좋아 적녀가 된 설은비가 그동안 떵떵거리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설은영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기다려야지.”

설은영은 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덤덤히 말했다.

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사지가 절단되어 인간돼지로 살던 시간속에 그녀는 얼마나 죽음이라는 해방을 바라왔는지 모른다.

취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뭘 기다리신다는 건가요?”

더 기다리다가 그녀는 진국공부로 시집가게 될 것이다.

보기에 출세한 것 같지만, 그렇게 좋은 자리를 적녀인 설은비가 마다했을 리 없었다.

약간의 이익만 있었어도 절대 이 혼사는 설은영에게 차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설은영은 목안이 타는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취아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이고는 물러가라는 눈짓을 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인 강씨의 반응이었다.

청람원.

강씨는 오후가 되어 궁에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어멈으로부터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부인, 청하원 그분이 나으리께 훈계를 받았습니다.”

임씨 어멈은 강씨를 어릴 때부터 보필해 온 사람으로, 오늘은 저택에 남아 집안일을 처리하고 있었기에 오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강씨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곤장 열 대를 맞았지요. 그 사람은 둘째 아씨를 목 졸라 죽이려 하였습니다.”

임씨 어멈이 말했다.

강 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여자가 정녕 미친 겐가?”

망서관 아이가 죽는다면 설씨 가문은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오늘 조회 때 나으리께서는 폐하께 그 아이를 진국공부에 보내겠다고 아뢰었네.”

그런데 일이 정해지자마자 신부가 죽는다면…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멈, 좀 이상하지 않은가?”

강씨는 어제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뭔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감을 잠을 수 없었다.

임씨 어멈은 강씨를 부축해 자리에 앉히고는 찻잔에 차를 따랐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강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계속 말해 보게.”

임씨 어멈은 오늘 청하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이야기했다.

추 이랑이 처벌을 받은 건 강씨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만 곤장 서른 대에서 열 대로 준 이유가 딸이 사정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불만이 일었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차마 입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부인, 큰 아씨는 부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이는 기뻐해야 할 일이지요.”

“아씨는 아직 세상물정을 몰라서 복잡한 생존 법칙은 이해할 수 없으니, 부인을 곤란하게 하는 일을 가끔 하게 될 수도 있지요. 모녀지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꾸중하지 마시고 천천히 가르치셔야 합니다.”

임씨 어멈은 추 이랑이 부인 강씨의 눈엣가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큰 아씨가 어머니의 마음도 모르고 그런 사람을 나서서 구해주었으니 강씨가 서운해할만도 했다.

강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곧 혼인을 하게 될 텐데 아직도 집안 돌아가는 일을 모르면 나중에 크게 데일 텐데 말이야.”

한편, 진국공부.

폐하의 교지를 본 가면의 사내는 평온한 모습으로 의자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교지를 전하러 온 내관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내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 폐하의 명을 감사히 받들겠나이다.”

내관은 마침내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

“장군의 뜻이 그러하다면 소인은 바로 궁으로 돌아가 폐하께 그 뜻을 전하겠사옵니다.”

사내는 말이 없었고 그의 곁에 있던 호위가 앞으로 나섰다.

“정 내관, 제가 바깥까지 모시겠습니다.”

정 내관은 웃음을 지으며 호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진국공부는 황제가 과거 연씨 가문에 하사한 호화저택으로 지리적 위치나 차지하는 면적이 굉장했다.

다만 지금 가문에는 다리가 불구가 되고 얼굴도 망가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연준만 혼자 남았다. 수많은 황가의 자식들이 이 저택을 욕심내고 있었지만 감히 욕심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황제가 굳이 나서서 정혼을 해준 것도 결국은 연씨 가문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교지를 어루만지는 사내의 손끝이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공자님, 가서 좀 알아볼까요?”

한 중년 사내가 조용히 다가와 사내에게 물었다.

연준은 혼인을 원치 않았지만,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황제가 굳이 이런 식으로라도 그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수많은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기피의 대상이었다.

아마 마음이 있는 여인이 있다고 해도 집안에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연준이 죽는다면 연씨 가문은 더 이상 대를 이을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사내의 시선이 교지에 쓰여진 이름에 닿았다.

“자세히 알아보거라.”

“예, 공자.”

명을 받은 중년 사내가 자리를 떴다.

사내는 고개를 들고 먹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엔 폭풍우가 있을 모양이었다.

‘드디어 단잠을 잘 수 있겠군.’

“서재로 가자.”

소리를 들은 시종이 다가와 그의 의자를 밀고 서재로 향했다.

그는 혼인할 마음이 없지만 시집온 사람을 괴롭힐 정도로 악취미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어차피 황명이니 거절해도 소용없었다.

상대가 사고만 치지 않고 본분을 지킨다면 진국공부의 권세가 그녀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공허하지만 화려한 저택은 그녀 평생의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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