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이서영은 이 순간에 이경이 나타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방금까지만 해도 분명 윤세현이랑 함께 있었는데.그 순간, 이서영은 문득 이경이 자신의 남자를 뺏으러 온 거라 직감했다.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윤세현을 뺏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백훈까지 탐내다니!그녀는 곧바로 남백훈의 팔을 꼭 붙잡고는 자신의 몸을 그의 팔에 밀착시켰다.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이경을 노려보며 말했다.“왜 온 거야?”마치 이경의 존재가 자신들을 방해한다는 듯한 태도였다.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자리를 떠났겠지만, 이경은 뜻밖에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뭐 하려는 거야?”이경이 잎사귀에 싼 구운 생선을 낮은 탁자 위에 올려놓자, 이서영은 경계하며 노려보았다.하지만 이경은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는 남백훈만 바라보았다.그의 이마에서는 여전히 피가 나고 있었다.“도와줄까?”이경이 물었다.“... 아파.”그제야 남백훈은 이서영을 살짝 밀어냈다.그러나 전혀 밀리지 않았다.너무나도 아팠던 남백훈은 이젠 힘을 쓸 수조차 없었다.바로 그때, 이경이 덥석 이서영의 팔을 잡았다.“뭐 하는 거야!”이서영은 비명과 함께 한순간에 밀쳐졌다.“너!”그녀는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이내 고개를 돌려 이경을 노려보며 화를 냈다.“너... 너 지금 남백훈을 유혹하는 거야? 내가 당장 오라버니를 찾아가서 고발할 거야!”“그래.”이경은 그저 무심히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안에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간단한 구급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나 오라버니한테 말할 거라고!”이서영은 계속해서 소리쳤다.그러나 이경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약병과 거즈를 꺼내 남백훈의 이마 상처를 소독하고는 수습해 주었다.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심각한 상처는 이마가 아니었다.그는 계속해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이경... 이 미친년아! 너 큰소리치지 마! 내가 당장 오라버니한테 말하러 갈 거라고. 지금 당장!”빌어먹을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이서영은 깜짝 놀랐다.왜 피하지 않은 거지?분명히 피할 수 있었잖아!남백훈을 보니, 그의 얼굴은 이미 피로 적셔 있었다.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올곧은 자세를 유지한 채,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이마에서 피가 나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저기, 너... 괜찮아?”마치 석화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이내 이서영은 쪼그려 앉았다.그녀는 혹여 그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그런데 쪼그려 앉자마자, 그의 흠 없는 얼굴이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세상에나, 이렇게 잘생긴 남자였나!어릴 적부터 윤세현만 좋아했던 이서영은, 윤세현 말고는 다른 남자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남백훈이 이렇게나 잘생긴 미남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윤세현과 비슷한 유형은 아니었고,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윤세현만큼 냉철하고 매력적이진 않았다.하지만 남백훈의 눈썹 사이로는 깊고 무거운 기운이 서려 있는 듯했다.그 기운은 얼마든지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부분이었다.여태 이서영이 본 모든 남자들 중에서, 윤세현은 단연코 가장 뛰어났다.하지만 이제 와 보니 남백훈 역시 윤세현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절세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그녀가 여태 본 모든 남자들 중, 윤세현을 제외한 이들 중에서는 윤신무와 남백훈의 얼굴이 가장 뛰어났다.그런 그를, 이서영은 방금 이경에게 떠넘기려 했다.순간 후회가 몰려든 이서영은 내심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괜찮아?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남백훈의 이마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모습에, 이서영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곧바로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를 살짝 닦아주려 했다.“남백훈, 나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왜 너를 다치게 하겠어? 단지...”“꺼져.”그녀의 손이 그의 이마에 닿으려는 찰나, 그는 냉정하게 말 한 마디만 내뱉었다.이서영은 그 순간, 그가 단단히 화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녀는 급
그는 언제나 현명해 보이던 사람들이 지금은 대체 왜 둘러앉아 하나같이 바보처럼 웃고만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평소에 그는 이런 사람들을 몹시 경멸했다.큰 전투를 앞두고도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떠들고 웃을 여유가 있다니.그런데 평소라면 냉정하고 무정하기 짝이 없던 윤세현마저도 지금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듯한 느낌이었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모두들 둘러앉아 먹고 떠들고 웃고 있을 줄이야.사실 그는 23년 동안 살아오면서 소위 ‘친구’라는 것을 한 번도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진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진심을 가질 용기도 없었다.그러니 당연히 친구도 없었던 것이다.함께 떠들고 웃을 동료는 더더욱 없었고, 함께 아이처럼 웃어줄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 역시 없었다.그런데 이들에게는 어떻게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거지?이 세상은 대체 왜 이토록 불공평한 거지?가슴이 쑤시기 시작한 남백훈은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이상하게도 오늘은 보름달 뜨는 밤도 아닌데, 그는 익숙한 고통을 느끼게 됐다.분명 아직 독이 도질 날이 되지 않았는데...그러나 정말 너무나도 아팠다.너무 아픈 나머지 그는 힘껏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었다.“남백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이경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건데?”순간 문발이 갑자기 확 젖혀지더니, 누군가가 난입했다.난입한 이는 남백훈을 가리키며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그 년 진짜로 버릴 셈이야? 정말 그 년을 좋아하면, 빼앗아 오든가!”“왜 그 년이 오라버니한테 붙게 만드는 거야? 네가 빼앗아 오란 말이야!”하지만 남백훈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은 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이서영은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매우 답답해하며 말했다.“그 미친년 정말 안 빼앗아 올 셈이야?”그녀가 이렇게까지 조급해하는 이유는, 방금 멀리서 윤
“문정수랑 칠조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이경은 문득 회상에 잠겼다.처음에는 문정수와 칠조 역시 그들의 곁에 있었다.함께 나들이도 가고 놀러도 다니고... 비록 당시 마음속에는 많은 음모와 비밀들이 자리 잡고 있긴 했지만, 놀러 다닐 때만큼은 진심으로 편안하고 즐거웠다.그때의 그 기쁜 감정은 진짜였다.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초아가 곁에 없게 됐다.“내가 문정수더러 칠조를 이 장군의 곁으로 데려가라 했어. 이 모든 게 다 끝나고 나면, 만나러 갈 수 있어.”윤세현은 가장 맛있는 생선 살점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그러니 걱정하지 마.”이경은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그 말은 곧, 이언도 이미 진성을 떠났다는 건가?사실 이 또한 이경이 걱정하던 일 중 한 가지였다.그런데 윤세현이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놓았다니.역시 곁에 있으면 정말 마음이 놓였다.“알겠어.”이경은 생선 살점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정말 달콤하네! 한 입 먹어 볼래?”“대체 뭐지?”연지는 그녀가 갖고 온 작은 병을 바라보며 냄새를 맡았다.“엄청 달콤한 냄새인데!”“꿀이야, 이 바보야! 설마 내가 정말 독약을 탔겠어?”이경은 작은 병을 들어 연지를 향해 던졌다.“바보야!”꿀이었다니.구운 생선에 꿀을 바르니 이렇게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날 줄이야!연지의 눈이 반짝였다.이런 조합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얼른 손을 내밀어 병을 받으려는 순간, 누군가 공중에서 그 병을 낚아채 버렸다.“먹어 볼게!”바로 꿀이었다니!사실 청지는 이경이 들고 있던 그 생선을 한참이나 탐내고 있었다.다만 구공주가 혹여 정말 독약이라도 넣었을까 봐 무서웠다.독을 다루는 고수는 곧 독을 쓰는 고수이기도 하니까.“이봐! 그건 공주 마마께서 나한테 주신 거거든!”연지가 빼앗으려는 순간, 남은 반 병의 꿀이 죄다 청지의 옷에 쏟아져 버리고 말았다.순간 화가 난 연지는 얼굴이 새파래졌다.“이 도둑놈아!”그러나 청지는 그런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
윤세현은 이경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앉았다.비록 두 사람의 행동에서 특별한 다정한 느낌은 없었지만, 참으로 자연스럽고 따뜻해 보였다.평온함 그 자체였다.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과는 떨어져 있는 듯했다.앞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두 사람이 함께라면 얼마든지 용기 내어 맞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남백훈은 그렇게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한편 청지와 연지는 물고기를 잡아 올린 후, 생선을 손질하고 화로를 만들기 시작했다.이내 이경은 작은 병 하나를 꺼내어 굽고 있던 생선 위에 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청지가 경계하며 물었다.“공주 마마, 이건... 약인가요?”연지는 그를 흘낏 보며 웃었다.“마마께서 우리한테 독이라도 탈까 봐 두려운 거야?”“너는 전혀 두렵지 않은가 보네.”이경은 손에 든 작은 병을 흔들며 웃었다.“독약이야. 먹으면 바로 환각을 느끼게 되고 기분도 좋아. 한번 먹어볼래?”순간 연지의 얼굴빛은 어둡게 변했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바로 물러섰다.공주가 정말 독약을 탄 건 아니겠지?환각을 느끼게 한다고?아니, 난 그냥 현실 그대로의 느낌을 원해.이경은 그를 무시하고는, 거의 다 구워진 생선 위에 병 속의 내용물을 부어 넣었다.타는 듯한 고소한 냄새가 나자 깜짝 놀란 연지는 나뭇가지를 바로 들어 올렸다.“탔어요!”“아니야, 겉 부분만 익었을 뿐이야. 괜찮아, 2분만 더 구워.”이경은 재빨리 그의 나뭇가지를 다시 눌러 내렸다.“이분이요?”연지는 2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그냥, 조금만 더 구우면 돼.”“아!”그제야 연지는 다시금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계속해서 구웠다.이내 이경이 말했다.“다 됐어! 얼른! 건져내!”연지는 깨끗한 나뭇잎으로 다 구워진 생선을 건져내 공손히 이경의 앞에 내밀었다.마치 본인은 전혀 탐내지 않는다는 듯.“마마.”“왜? 내가 정말 독약을 탔을 것 같아서 겁내는 거야?”이경은 곧바로 구운 생선을 받았지만, 아직 매우 뜨거웠다.저도 모르게 손
윤세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또한 자신이 왜 이런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지난 이틀 동안 굳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이경이 조금만 마음을 보이기만 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아파왔다. 심지어는 전보다 고통이 더 심했다. 그는 가슴을 짚고는 힘껏 눌렀다. 이경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자, 가슴속의 고통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정을 많이 줄수록, 중독은 더 심해지는 법이야.”정고.이름만큼이나 그 독은 매우 강했다.단지 정을 주지만 않으면, 윤세현은 평생 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나 반대로 정이 깊어질수록 정고가 발작하는 횟수는 늘어나게 되고, 그 강도 또한 강해질 것이다.처음에는 단순히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사랑의 싹이 트고 나서야 정고가 발작했었다.하지만 발작 횟수가 많아질수록, 마음이 조금만 흔들려도 정고는 크게 발작하며 몸 안에서 애끓는 듯한 고통을 일으켰다.“세자,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할 수는 없어.”남백훈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강가에 앉은 소녀를 함께 바라보았다.이경은 긴 장화를 벗고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유독 시력이 좋았던 두 남자는 먼 거리에서도 이경의 맨발에 맺힌 물방울마저 선명하게 보아낼 수 있었다.하얗고 부드러운 그 작은 발은 조금의 흠도 없었다.남백훈의 시선은 가라앉았다.비록 그는 정고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가슴 한편이 은근히 아파났다.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이내 그는 시선을 거두고는, 극심한 통증을 참느라 이마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윤세현을 바라보았다.“정말로 저 여자를 포기할 생각 없어? 내가 말했지. 포기만 하면 당신 몸에 있는 그 정고를 풀어줄 수 있다고.”“너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는데?”윤세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고는 가슴을 더욱 꽉 부여잡았다.더 이상 이경의 발을 바라보지 않으니, 가슴속의 고통이 겨우 참을 만하게 가라앉았다.“설령 내가 양보한다 하더라도, 저 여자가 네 여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넌 저 여자를 감당할 수 있기는 하냐
“저더러 공주님께 솜씨 좀 가르쳐 주라고요?”청지는 자신의 앞을 향해 걸어오는 아가씨를 보고는 크게 놀랐다. “그래.”이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단지 그에게 겁을 줄 생각뿐이었지만, 문백훈이 어떻게든 보답을 받아내라고 한 이상, 이경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걸어 그 보답을 받고 싶었다. “전에 청지 장군의 경공을 본 적 있어. 아주 내 마음에 쏙 들더라고.”마음에 쏙 든다는 말에, 청지는 저도 모르게 반걸음 물러나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이경은 그가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 건지 아예 모르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문정수는 세자를 맞이하게 됐다. 곧바로 그는 마중을 나갔다. “나으리, 공주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그러나 윤세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문정수는 아무 미동 없는 그의 태도가 의아했다. “방금 초아를 찾아가 직접 알아봤는데,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데다가 바람까지 맞게 되어 열도 난다고 하더군요...”“문정수 장군님, 밖에 웬 훤칠한 남자 한 명이 와있다고 하던데, 지금 공주마마의 마차 안에 타있다고 하더군요.”마침 그때, 유아가 이서영을 부축하고는 양막 아래에서 나왔다. 매우 창백한
오늘 밤, 이경은 화려한 옷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연회장에 들어섰다.장수들과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 듯했지만 수수한 옷차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누구보다 단아하고 청초했다.얼굴에는 진한 화장도 없었지만 또렷한 눈썹과 붉은 입술, 하얀 치아 그리고 맑고 깊은 두 눈은 마치 구름 사이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사람들은 그런 그녀가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화려한 장식도, 사치스러운 장신구도 없었지만 그 우아함과 기품은 도리어 더 눈길을 끌었다.하지만 초아는 속으로 조금 아쉬워했다. 분명히 이
윤세현은 그날 진정호의 부상을 걱정하느라, 현장에 있던 여자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그 탓에 이서영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경을 모함할 때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흘려보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일이 컸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임수연은 윤세현의 분노에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지만, 끝내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세자 저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송구하오나 그날 이서영 현주님이 모두 앞에서 감히 공주마마께 이런 더러운 누명을 씌웠사옵니다. 저 역시 어리석게도 그 일에 가담했던 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