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마음에 안 드시면 바꿔드리려고요.”
악기점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재민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가 다시 댔다.
“엄마가요?”
“옛날에 좋아하던 걸 지금도 좋아할지는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직접 쳐보고 다른 걸 고를 수도 있게 해달라고.”
“그것 때문에 꼭 와서 쳐보라고 하신 거예요?”
“예. 소리가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재민은 기타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저는 무슨 노래를 정해두셨나 했어요. 아버지가 치던 거.”
내가 영수증 파일을 챙기자 재민이 일어났다. 나리는 부엌 수도와 창문을 확인하고 현관으로 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악기점 주인은 점심을 먹으려 문을 닫다가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먼저 식사하세요. 기다릴게요.”
나리가 말하자 재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가게 안에서 먹는다며 뒤쪽 커튼을 쳤다. 우리는 진열대 앞의 좁은 의자에 앉았다.
재민이 벽의 기타 그림을 보며 말했다.
“저는 학원에 가면 늘 늦게 들어갔어요.”
그는 문턱의 벗겨진 칠을 내려다봤다.
“앞에 악기점이 있었거든요. 들어가보진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했어요. 엄마한테 들켰을 때 아버지랑 똑같다고 혼났어요.”
재민의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는데, 엄마는 제가 음악 하면 밥 못 먹을까 봐 겁났나 봐요. 저는 아버지 흉보는 줄 알았고.”
재민은 휴대전화에서 자신이 보냈던 매물 사진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아래에 붙은 자기 말까지 보여줬다.
아버지 거랑 똑같지. 나중에 여유 생기면 하나 살까.
어머니의 답장은 며칠 뒤에 와 있었다.
요즘도 이거 치고 싶니.
재민이 자기 답을 손가락으로 가렸다가 비켰다.
그냥 해본 말이야.
“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화면을 끄려는데 나리가 물었다.
“정말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재민은 기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뇨. 사놓고 안 치면 돈 아까울까 봐. 엄마가 또 뭐라고 할까 봐.”
그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재민은 무릎을 쓸고 등을 폈다.
주인이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천을 걷고 기타 줄을 맞췄다. 재민은 일어서지 않았다. 주인은 연주용 의자를 끌어오다 그대로 멈췄다.
“오늘 안 쳐도 됩니다.”
그 말에 재민이 주인을 봤다.
“그러면 못 바꾸는 거 아니에요?”
“집에서 생각해보고 연락 주세요. 상태 그대로면 약속한 기간 안에 바꿔드릴게요. 어머님하고 얘기해둔 게 있어요.”
재민은 교환 조건을 읽고 기타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손가락이 줄 위를 지나갔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나는 긴 상자를 펼쳤다. 나리는 빈틈에 넣을 종이를 접었다. 둘이 상자 바닥을 붙잡을 때 손등이 닿았다. 내가 먼저 비키자 한쪽이 기울었고, 그녀가 웃음을 참으며 내 손을 도로 불렀다.
“같이 들어야죠.”
평소에도 하던 일이었다. 나는 괜히 모서리 위치를 다시 맞췄다.
주인이 서랍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이건 어머님이 같이 넣어달라고 하신 거예요. 물건 가져가실 때 드리려고 따로 뒀습니다.”
재민이 받았다. 봉투에는 아들 이름만 적혀 있었다. 두툼한 편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뚜껑 안쪽에 끼워놓으려다 주인에게 물었다.
“언제 주셨어요?”
“마지막으로 오신 날이요. 잔금 보내고 들르셨죠.”
재민은 봉투를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주인은 기타를 덮을 천을 다시 펴주었다.
“잘 골라주신 건가요?”
그가 묻자 주인이 몸통의 작은 흠을 가리켰다.
“새것 같지는 않아요. 대신 손봐서 치는 데는 문제없게 했습니다. 어머님도 흠은 보셨어요.”
재민은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엄마가 비싼 걸 잘 못 사요. 어디 긁혔다 그러면 꼭 그걸 고르시고.”
“이건 소리 듣고 고르신 게 아니라 사진부터 보셨어요. 아드님이 찾던 게 맞냐고.”
주인이 사진을 주문서와 함께 돌려줬다. 재민은 사진이 구겨지지 않게 상자 맨 위에 얹었다.
밖의 비가 굵어졌다. 나는 상자를 들고, 나리는 우산을 펼쳤다. 재민이 차 문을 열어줬다. 기타를 뒷좌석에 눕힌 뒤 나리가 내 어깨를 털었다.
“그쪽으로 우산 좀 당기라니까.”
“상자가 길어서요.”
그녀는 내 소매를 봤다. 수건을 꺼내주며 앞자리로 가라고 했다. 차 안의 난방이 켜지고 창문에 김이 서렸다.
집에 돌아와 거실 한가운데 기타를 놓았다. 재민은 상자를 벽으로 밀고 의자에 앉았다. 케이스를 사올 걸 그랬다고 중얼거렸다. 아직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재민은 부엌이 보이는 쪽으로 의자를 옮기고 기타를 세웠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손톱으로 접힌 끝을 벌렸다가 종이가 찢어질 것 같자 가위를 찾았다. 나리가 가위를 건네고 맞은편 바닥에 앉았다.
봉투에서 메모지 한 장이 나왔다. 재민은 두 손으로 종이를 잡았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짧네요.”
재민이 말하고 다시 읽었다. 종이를 무릎에 놓았다가, 이번에는 소리 내 읽었다.
“이번에는 네가 골라도 돼.”
그가 기타를 끌어당겼다. 사진 속 아버지처럼 무릎에 올리고 왼손을 줄 위에 얹었다. 손가락 세 개가 자리를 더듬었다.
기타 줄이 소매에 스쳐 짧은 소리가 났다.
“하나만 쳐볼게요.”
재민은 빈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아는 걸로.”
재민의 손가락이 첫 줄 위에서 멈췄다. 부엌 쪽을 본 채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노래보다 먼저요.”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엄마가 다시 말해달랬는데 제가 전화를 끊었거든요.”
나리도 주인 없는 부엌을 바라봤다. 재민은 기타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끝까지 말해볼게요. 듣는 사람이 없어도요.”
그 말이 내 속의 오래된 부재중 전화 한 통을 건드렸다. 아버지에게서 걸려왔던 마지막 전화. 3년 전 나는 화면을 보고도 받지 않았다.
“찬오 씨, 얼굴이 왜 그래요?”
나리의 물음에 나는 재민 쪽을 봤다. 지금 그의 말을 끊을 수는 없었다. 그가 기타의 첫 음을 찾는 동안 잠깐 기다렸다가, 나리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제 아버지도 마지막 날 전화를 하셨어요.”
“받으셨어요?”
“아니요. 아버지 물건도 아직 못 열었습니다.”
“그 상자 말하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이 젖었다. 그 상자를 열면 아버지가 마지막에 누구를 만났는지라도 알 수 있을까. 물건에 남은 짧은 순간만 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안에 전화의 이유까지 들어 있을 것처럼 굴었다.
“이 일 끝나면요.”
나리가 말했다.
“그날 전화 얘기, 저한테 해줄래요?”
“네. 그런데 한 가지는 지금 말할게요.”
“뭔데요?”
“못 받은 전화가 아니에요. 아버지 이름을 보고도, 끊길 때까지 기다렸어요.”
“받지 않겠다는 건가요, 읽지 않겠다는 건가요?”내가 묻자 나리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아직 구분이 안 돼요. 소개한 분한테 확인해야겠어요.”그녀는 봉투를 열지 않고 빈 파일에 넣었다. 어제까지 꽃이 있던 자리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나는 병을 책상 안쪽으로 옮겼다. 나리가 꽃잎을 손으로 받쳐 파일에 눌리지 않게 했다.모임 담당자가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그는 우리가 분류해놓은 자료를 한 장씩 확인했다. 목록의 수량이 맞자 서명을 하고 자기 가방에 넣었다.“꽃 일은 잘 끝났습니까?”나는 앞으로의 배송은 받지 않기로 했고, 이미 받은 꽃은 의뢰인이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심한 얼굴로 창가의 꽃을 봤다.“형수님이 주셨나 보네요.”“네.”그는 모임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그 남편이 늘 농담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농담이었는지 물었다.“아내 앞에서는 배에 힘주지 말라고요. 혼자만 멀쩡하게 나오면 나중에 혼난다고.”남자는 자기 배를 두드렸다. 나리가 웃었다. 그는 사진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나는 그 말도 인계 목록 옆에 적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남자는 메모를 보고 사진은 가족에게도 나눠줘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찾으면 누구 것인지부터 확인하자고 이야기했다.담당자가 봉인된 편지를 가리켰다
딸은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왔다.우리가 서류를 챙겨 나가려던 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벌써 왔느냐며 일어났다. 딸은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캐리어 없다고 했잖아. 빌려왔어.”여자는 침실 쪽을 가리켰다. 딸은 바닥의 작은 가방을 보고 웃었다.“이걸로 가려고?”“왜. 다 들어가는데.”지퍼는 끝까지 잠기지 않았다. 딸이 옷을 한 장 꺼냈다.“이거 안 입잖아. 두고 가.”“거기 가서 추우면 입을 거야.”“바닷가라고 다 추운 건 아니잖아.”“바람 불면 추울 수 있지.”딸이 한숨을 쉬자 여자가 웃었다.“네가 어릴 때도 내가 그렇게 싸줬지.”“그때는 엄마가 알아서 해주니까 편했는데.”“이제는 내가 나갈 건데 왜 네가 내 옷을 골라.”딸은 꺼낸 옷을 접어 가방 위에 올려놨다.“엄마가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까 봐 그랬어.”“엄마도 그렇게 생각한 날이 있었어.”“지금은?&
여자의 집에는 작은 여행 가방이 열려 있었다.현관에서 발을 멈추자 그녀가 들어오라며 웃었다. 꽃다발은 이미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길이가 다른 병 세 개에 꽃이 나뉘어 꽂혀 있었다.“꽃병이 하나뿐이라서요.”그녀는 남편이 늘 마시던 음료수병도 쓸모가 있다고 했다. 병에 붙은 종이를 불려 떼다가 덜 떨어진 부분을 손톱으로 긁었다.나리는 식탁 위에 서류를 펼쳤다. 모임에 돌려줄 자료와 가족이 보관할 자료가 섞여 있는지만 확인하는 방문이었다. 여자는 남편이 쓰던 서랍을 열어 파일 두 개를 꺼냈다.“이름 적힌 건 제 것인지 모임 것인지 모르겠어요.”우리는 의뢰 목록과 파일 표지를 대조했다. 개인 편지처럼 보이는 봉투는 여자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안을 확인하고 여행 가방 옆으로 옮겼다.“옷이 다 안 들어가네요.”나리가 여행 날짜를 묻자 여자는 주말에 딸하고 하루 자고 올 거라고 했다. 딸이 숙소를 알아보는 중이었다.“아까 전화해서 그러더라고요. 나가고 싶으면 그때 얘기하지 그랬느냐고.”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자기도 말을 안 해놓고.”휴대전화가 울렸다. 딸이 보내온 숙소 사진이었다. 여자는 안경을 쓰고 사진을 확대했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과 하나 있는 방을 번갈아 보다가 답장을 썼다.각자 자는 방. 너 자면서 발로 차.
“그 말씀도 적혀 있습니까?”내가 묻자 주인은 서류를 다시 꺼냈다. 마지막 수정 날짜 옆에 수령인 의사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서명은 앞장의 서명보다 작았다.“제가 적고 확인받은 겁니다. 아까는 꽃 종류 바꾸는 얘기인 줄 알고 그쪽만 설명했네요.”나는 의뢰인에게 전화했다.“남편분이 꽃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그 뜻을 따라달라고 요청하셨어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그 말이 서류에 있나요?”“네. 수정한 날짜와 확인 서명이 있습니다.”“그것 좀 사진으로 보내줄래요?”“따님께 보여드리려고요?”입 밖에 내고 나서 질문을 후회했다.“아니요. 제가 보고 싶어서요.”“죄송합니다. 괜한 걸 여쭸어요.”“딸한테 보여줄지는 제가 정할 거예요. 남편이 마지막에 쓴 글씨를 다시 보고 싶어요.”“원본은 가게에 있고, 허락받은 부분만 촬영해 보내드리겠습니다.”“고마워요. 꽃은 안 받고 싶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나는 전화를 끊고 주인에게 사진 촬영 범위를 다시 확인
식당 문을 열자 나리가 먼저 창가 자리를 골랐다.나는 맞은편에 앉아 작업 가방을 내려놨다. 나리는 메뉴판을 펼쳤다가 내 가방을 봤다.“그건 의자에 올려놔요. 국물 튀어요.”나는 옆 의자로 가방을 옮겼다.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이 두 사람 몫의 전골을 권했다. 나리가 내게 매운 것을 먹는지 물었다.“같이 일한 지가 얼만데 그걸 몰라요?”“찬오 씨는 늘 아무거나 먹는다고 하잖아요.”그녀는 메뉴판을 내 쪽으로 돌렸다.“오늘은 골라봐요.”나는 맵지 않은 쪽을 짚었다. 나리는 그것과 공깃밥 두 개를 주문했다. 수저를 꺼내 내 앞에 놓으면서 웃었다.“이제 알았네요.”“매운 거 먹기는 해요.”“좋아하는 거 물었어요.”나는 물컵을 가져와 둘 사이에 놓았다. 그녀가 자기 컵을 당겼다. 사무실에서 매일 보던 손인데 작업 장갑 자국이 없으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야기가 끊겼다. 내가 오늘 주문서 이야기를 꺼내자 나리는 듣다가 물었다.“쉬는 날에도 그런 생각 해요?”“가끔요.”“가끔이 아닌 것 같은데.” 
전화 너머에서 딸이 숨을 들이마셨다.“나는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어.”“작년에는 좋았어.”여자가 말했다.“올해는 안 받고 싶었고.”딸은 그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작년 사진을 보내줬던 일을 이야기했다. 꽃 옆에서 웃고 있었다고, 그 사진을 보고 주문한 거라고 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기억나. 네가 예쁘다고 했잖아.”“그런데 왜 지금은 싫어?”여자는 대답을 고르는 동안 꽃 줄기를 만졌다. 물기가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에 닦았다.“올해는 그날 집에 있기 싫었어.”나는 접수 용지를 내려다봤다. 배송 중단이라는 글자 옆으로 번진 점이 있었다.“친구들이랑 나가려고 했는데, 꽃 온다고 연락받고 기다렸어. 네 전화도 올 것 같아서.”“나 저녁에 전화했잖아.”“그러니까 기다렸다고.”목소리가 높아지자 여자는 말을 멈췄다. 꽃집 주인이 물컵을 놓았다. 그녀는 물을 마신 뒤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너한테도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해줘야 할 것 같았어. 아빠가 보내준 건데 웃어야지, 싶어서.&r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