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내가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고 말하자 나리가 내 손을 보았다.
“놓친 전화라고 해왔죠?”
“네. 그게 덜 비겁하게 들려서요.”
“왜 안 받았는지는 나중에 들어도 돼요. 지금은 재민 씨 곁에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민이 손끝을 줄 위에 얹었다. 첫 소리가 막혔다.
“제 손이 아버지 손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아버지 손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나리가 말했다.
“그걸 엄마 앞에서는 왜 못 했을까요.”
줄을 누른 손가락 하나가 옆줄까지 덮고 있었다. 재민은 고개를 숙여 손을 고쳤다. 짧게 퉁겨본 뒤 다시 옮겼다. 어린아이처럼 자기 손등을 내려다봤다.
“이게 아닌데.”
그의 손이 움직이는 사이, 나는 사진틀을 식탁에 세웠다. 재민이 사진을 보았다.
“아버지는 손이 컸어요. 제 손등을 덮고 눌러주면 됐는데.”
그가 엄지를 기타 목 뒤로 옮겼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줄마다 조금씩 다른 떨림이 거실에 남았다. 재민은 다음 코드를 잡으려다 멈췄다.
부엌에서 냉장고가 낮게 울었다.
“엄마는 이 소리 나면 꼭 뭐라고 했어요. 시끄럽다고. 밥 먹을 때는 내려놓으라고.”
그는 다시 줄을 쳤다. 같은 소리가 조금 더 짧게 났다.
“그러면 아버지가 한 번만 더 한다고 하고.”
재민의 오른손이 공중에 멎었다. 피크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몸을 숙이려다 그가 먼저 손을 내미는 걸 보고 기다렸다.
피크를 집지 못한 재민은 미끄러지는 기타를 두 팔로 안았다.
“그때는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그가 부엌을 봤다. 싱크대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민은 숨을 들이마시려다 목 안에서 소리를 냈다. 턱이 기타 윗면에 닿았다.
“엄마.”
그 한마디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재민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닦은 자리로 다시 물이 흘렀다. 기타에 떨어지자 급히 소매로 문질렀다. 손이 바빠질수록 숨이 더 엉켰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는 우리에게 묻고 곧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이 기타 소리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도 기타를 사주셨네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저는 그게 자꾸 이해가 안 돼요.”
“싫은 소리였어도 아드님이 좋아하는 건 아셨을지 몰라요.” 나리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가 좀 편할까요?”
“그건 저희가 정할 수 없죠.”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 편해지고 싶다는 말도 미안해요.”
재민이 힘없이 내민 기타를 받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재민은 빈 무릎 위에 손을 놓았다.
“못 들은 척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미 들었던 말이었다. 이번에는 그 뒤에 말이 더 나왔다.
“돈 얘기만 하면 왜 못 알아듣냐고. 내가 그렇게 우습냐고.”
재민이 입을 벌렸지만 한동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리가 휴지를 가까이 놓았다. 그는 한 장을 잡아당기다가 여러 장을 함께 뽑았다.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우리는 기다렸다.
“미안하다, 재민아. 한 번만 다시.”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랬는데 내가 끊었어요.”
재민이 몸을 접자 나리는 무릎이 부딪히지 않게 의자를 물렸다. 나는 손을 거뒀다.
재민은 어머니 휴대전화를 찾았다.
“저 지금 말해도 돼요?”
나는 그가 누구에게 묻는지 몰라 고개를 들었다.
“엄마한테요. 대답이 안 온다는 건 알아요.”
“말씀하셔도 됩니다.”
“근데 자꾸 여러분이 듣는 게 신경 쓰여요. 제가 좋은 아들인 척하는 것 같아서.”
나리는 한 걸음 물러섰다.
“나가 있을까요?”
“아니요. 그냥 있어주세요. 누가 들으면 그날 못 했던 말이 정말 말이 되는 것 같아요.”
“들어드릴게요. 대답은 대신하지 않고요.”
재민은 화면을 켰다. 아까 자신이 보낸 문자가 떠 있었다. 검은 화면에 자기 얼굴이 비치자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때는 다시 전화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기다려 달라고요. 그날처럼 끊지 말아 달라고.”
그가 휴대전화를 빈 의자에 기대놓았다.
“내가 다시 하면 되는데.”
그가 말했다.
“한 번 더 말하면 됐는데.”
재민은 기울어진 화면을 손끝으로 바로 세웠다.
“엄마. 병원은…….”
그는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너무 크게 나온 첫마디를 도로 삼키듯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병원은 내가 같이 갈게.”
재민은 한 단어씩 말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어머니가 눈앞에서 입 모양을 따라오는 것처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회사에 말할게. 하루는 뺄 수 있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 어디 썼는지 안 말해도 돼. 아니, 말해줘. 내가 들을게.”
손바닥이 무릎을 더듬었다. 잡을 것이 없어 바지 천만 구겨졌다.
“천천히 해도 돼, 엄마.”
그 뒤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재민은 의자 끝으로 미끄러져 내려앉았다. 나리가 손을 내밀자 그 손목을 잠깐 잡았다 놓고, 바닥에 양손을 짚었다. 울음이 멎을 때마다 더 큰 숨이 들어갔다.
나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벨소리를 끄고 화면을 뒤집었다. 재민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빈 의자만 보고 있었다.
재민이 휴지를 쥔 손을 무릎에 놓았다.
“엄마한텐 바쁘다고 했어요. 그날 집에 와서 텔레비전이나 봤으면서.”
나는 위로할 말을 찾지 않았다. 그는 휴대전화가 있는 빈 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방에는 그가 끝내 말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었다.
한참 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화면은 꺼져 있었다.
재민이 화면을 켰다.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그는 엄지로 얼굴을 가렸다가 비켰다.
“기타 잘 골랐어.”
목이 쉬어 끝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 아직 이거 좋아해.”
그는 휴대전화를 쥔 채 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입을 막지 않았다.
나는 바닥의 피크를 주워 재민의 손바닥에 얹었다.
기타를 다시 올려주자 재민은 몸통의 물기부터 조심스레 닦았다. 그제야 줄 위에 손끝을 얹었다.
“틀리면 처음부터 할게.”
그가 말했다. 누구도 빨리 끝내라고 하지 않았다.
재민은 손을 오므리고 빈 부엌을 봤다.
“한 번만 더 칠게. 밥 먹기 전에.”
나리가 내 손을 봤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누가 왜 전화를 걸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놓쳤다'고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리 씨. 이번 주에 창고에 같이 가줄 수 있어요?”
“아버지 상자 때문에요?”
“네. 열지 못해도 그날 전화를 피했던 일부터 제 말로 기록하려고요.”
그녀는 오늘 저녁까지 다 끝내겠다는 약속을 요구하지 않았다.
“같이 가요. 대신 아버지 물건에 손대기 전에 어디까지 할 건지 정해요. 아프면 바로 멈추고요.”
“받지 않겠다는 건가요, 읽지 않겠다는 건가요?”내가 묻자 나리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아직 구분이 안 돼요. 소개한 분한테 확인해야겠어요.”그녀는 봉투를 열지 않고 빈 파일에 넣었다. 어제까지 꽃이 있던 자리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나는 병을 책상 안쪽으로 옮겼다. 나리가 꽃잎을 손으로 받쳐 파일에 눌리지 않게 했다.모임 담당자가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그는 우리가 분류해놓은 자료를 한 장씩 확인했다. 목록의 수량이 맞자 서명을 하고 자기 가방에 넣었다.“꽃 일은 잘 끝났습니까?”나는 앞으로의 배송은 받지 않기로 했고, 이미 받은 꽃은 의뢰인이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심한 얼굴로 창가의 꽃을 봤다.“형수님이 주셨나 보네요.”“네.”그는 모임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그 남편이 늘 농담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농담이었는지 물었다.“아내 앞에서는 배에 힘주지 말라고요. 혼자만 멀쩡하게 나오면 나중에 혼난다고.”남자는 자기 배를 두드렸다. 나리가 웃었다. 그는 사진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나는 그 말도 인계 목록 옆에 적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남자는 메모를 보고 사진은 가족에게도 나눠줘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찾으면 누구 것인지부터 확인하자고 이야기했다.담당자가 봉인된 편지를 가리켰다
딸은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왔다.우리가 서류를 챙겨 나가려던 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벌써 왔느냐며 일어났다. 딸은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캐리어 없다고 했잖아. 빌려왔어.”여자는 침실 쪽을 가리켰다. 딸은 바닥의 작은 가방을 보고 웃었다.“이걸로 가려고?”“왜. 다 들어가는데.”지퍼는 끝까지 잠기지 않았다. 딸이 옷을 한 장 꺼냈다.“이거 안 입잖아. 두고 가.”“거기 가서 추우면 입을 거야.”“바닷가라고 다 추운 건 아니잖아.”“바람 불면 추울 수 있지.”딸이 한숨을 쉬자 여자가 웃었다.“네가 어릴 때도 내가 그렇게 싸줬지.”“그때는 엄마가 알아서 해주니까 편했는데.”“이제는 내가 나갈 건데 왜 네가 내 옷을 골라.”딸은 꺼낸 옷을 접어 가방 위에 올려놨다.“엄마가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까 봐 그랬어.”“엄마도 그렇게 생각한 날이 있었어.”“지금은?&
여자의 집에는 작은 여행 가방이 열려 있었다.현관에서 발을 멈추자 그녀가 들어오라며 웃었다. 꽃다발은 이미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길이가 다른 병 세 개에 꽃이 나뉘어 꽂혀 있었다.“꽃병이 하나뿐이라서요.”그녀는 남편이 늘 마시던 음료수병도 쓸모가 있다고 했다. 병에 붙은 종이를 불려 떼다가 덜 떨어진 부분을 손톱으로 긁었다.나리는 식탁 위에 서류를 펼쳤다. 모임에 돌려줄 자료와 가족이 보관할 자료가 섞여 있는지만 확인하는 방문이었다. 여자는 남편이 쓰던 서랍을 열어 파일 두 개를 꺼냈다.“이름 적힌 건 제 것인지 모임 것인지 모르겠어요.”우리는 의뢰 목록과 파일 표지를 대조했다. 개인 편지처럼 보이는 봉투는 여자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안을 확인하고 여행 가방 옆으로 옮겼다.“옷이 다 안 들어가네요.”나리가 여행 날짜를 묻자 여자는 주말에 딸하고 하루 자고 올 거라고 했다. 딸이 숙소를 알아보는 중이었다.“아까 전화해서 그러더라고요. 나가고 싶으면 그때 얘기하지 그랬느냐고.”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자기도 말을 안 해놓고.”휴대전화가 울렸다. 딸이 보내온 숙소 사진이었다. 여자는 안경을 쓰고 사진을 확대했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과 하나 있는 방을 번갈아 보다가 답장을 썼다.각자 자는 방. 너 자면서 발로 차.
“그 말씀도 적혀 있습니까?”내가 묻자 주인은 서류를 다시 꺼냈다. 마지막 수정 날짜 옆에 수령인 의사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서명은 앞장의 서명보다 작았다.“제가 적고 확인받은 겁니다. 아까는 꽃 종류 바꾸는 얘기인 줄 알고 그쪽만 설명했네요.”나는 의뢰인에게 전화했다.“남편분이 꽃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그 뜻을 따라달라고 요청하셨어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그 말이 서류에 있나요?”“네. 수정한 날짜와 확인 서명이 있습니다.”“그것 좀 사진으로 보내줄래요?”“따님께 보여드리려고요?”입 밖에 내고 나서 질문을 후회했다.“아니요. 제가 보고 싶어서요.”“죄송합니다. 괜한 걸 여쭸어요.”“딸한테 보여줄지는 제가 정할 거예요. 남편이 마지막에 쓴 글씨를 다시 보고 싶어요.”“원본은 가게에 있고, 허락받은 부분만 촬영해 보내드리겠습니다.”“고마워요. 꽃은 안 받고 싶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나는 전화를 끊고 주인에게 사진 촬영 범위를 다시 확인
식당 문을 열자 나리가 먼저 창가 자리를 골랐다.나는 맞은편에 앉아 작업 가방을 내려놨다. 나리는 메뉴판을 펼쳤다가 내 가방을 봤다.“그건 의자에 올려놔요. 국물 튀어요.”나는 옆 의자로 가방을 옮겼다.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이 두 사람 몫의 전골을 권했다. 나리가 내게 매운 것을 먹는지 물었다.“같이 일한 지가 얼만데 그걸 몰라요?”“찬오 씨는 늘 아무거나 먹는다고 하잖아요.”그녀는 메뉴판을 내 쪽으로 돌렸다.“오늘은 골라봐요.”나는 맵지 않은 쪽을 짚었다. 나리는 그것과 공깃밥 두 개를 주문했다. 수저를 꺼내 내 앞에 놓으면서 웃었다.“이제 알았네요.”“매운 거 먹기는 해요.”“좋아하는 거 물었어요.”나는 물컵을 가져와 둘 사이에 놓았다. 그녀가 자기 컵을 당겼다. 사무실에서 매일 보던 손인데 작업 장갑 자국이 없으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야기가 끊겼다. 내가 오늘 주문서 이야기를 꺼내자 나리는 듣다가 물었다.“쉬는 날에도 그런 생각 해요?”“가끔요.”“가끔이 아닌 것 같은데.” 
전화 너머에서 딸이 숨을 들이마셨다.“나는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어.”“작년에는 좋았어.”여자가 말했다.“올해는 안 받고 싶었고.”딸은 그 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작년 사진을 보내줬던 일을 이야기했다. 꽃 옆에서 웃고 있었다고, 그 사진을 보고 주문한 거라고 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기억나. 네가 예쁘다고 했잖아.”“그런데 왜 지금은 싫어?”여자는 대답을 고르는 동안 꽃 줄기를 만졌다. 물기가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에 닦았다.“올해는 그날 집에 있기 싫었어.”나는 접수 용지를 내려다봤다. 배송 중단이라는 글자 옆으로 번진 점이 있었다.“친구들이랑 나가려고 했는데, 꽃 온다고 연락받고 기다렸어. 네 전화도 올 것 같아서.”“나 저녁에 전화했잖아.”“그러니까 기다렸다고.”목소리가 높아지자 여자는 말을 멈췄다. 꽃집 주인이 물컵을 놓았다. 그녀는 물을 마신 뒤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너한테도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해줘야 할 것 같았어. 아빠가 보내준 건데 웃어야지, 싶어서.&r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