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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신부대기실 사용 중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12:06:34

[채이]

일곱 달은 생각보다 짧았다. 예식장 사람한테 일곱 달은 식 백 건이다. 백 건을 치르고 나니 오월이었다.

십일월, 은비가 봄빛에서 결혼했다. 도경 씨가 찍은 신부 삼백 명 중 백이십 명이 왔다. 부케는 약속대로 정조준이었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무전기를 옆구리에 끼고 두 손으로 받았다. 은비가 버진로드 위에서 만세를 불렀다.

십이월 스무날, 봄빛 부부의 날. 사진 벽이 이백십 장으로 늘었다. 백 쌍 넘게 왔다. 촛불 예식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왔다. 할머니는 그날도 사진 속 신부를 가리키며 나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처음이라고 했다. 요양원에 들어간 뒤로.

그날 원장님이 등기부 한 장을 로비 사진 벽 한가운데 꽂았다. 할머니 결혼사진 바로 밑에. 건물주 변정숙. 삼십 년 할부. 첫 회는 복주머니로 갚았다. 민혁이 받아 갔다. 엄마가 자투리 비단으로 지은 복주머니 하나. 영수증에 바느질삯이라고 적어서.

일월, 신혼여행. 제주. 진우 씨 공방이 있던 마을. 백 실장님이 방을 두 개 잡았다. 제주 펜션 사건 이후 백 실장님의 신조가 됐다고 했다. 부부 출장에도 방은 두 개. 우리는 하나만 썼다. 나머지 하나는 사흘 내내 비어 있었다. 백 실장님은 청구서를 보고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고 했다. 안 보여 줬다.

삼월, 버팀이에 봉오리가 올라왔다. 이번엔 제철이었다. 두 사람이 물을 주는데도 헷갈리지 않았다. 봄인 줄 제대로 알았다.

그리고 오월. 셋째 토요일.

[채이]

오전 열 시. 봄빛 신부대기실.

문고리를 잡으려다 멈췄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은비였다.

"신부님. 들어오세요. 매니저가 문 열어 드릴게요."

문이 안에서 열렸다. 은비가 서 있었다. 검정 정장. 허리에 무전기. 가슴에 명찰. 봄빛웨딩홀 매니저 고은비. 그리고 허리에, 남색 파우치.

내 파우치였다.

"그거 내 거야."

"오늘은 내 거야. 너 신부야. 신부는 파우치 안 차."

"은비야, 지퍼 반쯤 고장 났어. 손으로 벌려야 돼."

"알아. 오 년 동안 봤어."

은비가 내 어깨를 잡고 거울 앞 의자에 앉혔다. 여덟 달 전 언니가 앉았던 의자. 열두 달 전 비어 있던 의자.

"무전기도 내놔."

"안 찼어."

"찼잖아. 시계 옆에."

손목을 봤다. 시곗줄에 안전핀 하나. 오늘도 꽂혀 있었다. 은비가 그걸 빼려다 멈췄다.

"……이건 둬. 대신 딸깍거리지 마."

드레스는 걸려 있었다. 상아색. 목선이 단정하고 허리선만 곱게 잡힌. 관장님과 엄마가 같이 골랐다. 갤러리 이층 방에서 드레스 사진 서른 장을 펼쳐 놓고 둘이 반나절을 싸웠다고 했다. 결국 둘 다 처음에 고른 걸로 정했다고. 관장님 옷 보는 눈과 엄마 옷감 보는 눈이 같은 옷을 골랐다.

가봉은 세 번 했다. 드레스 이모님이 허리에 손가락을 넣어 봤다. 하나도 안 들어갔다.

"딱이다. 오늘은 핀 안 꽂아도 된다."

[채이]

오전 열한 시. 신부대기실이 꽉 찼다. 열두 달 전 비어 있던 방이.

엄마와 관장님이 드레스 양쪽에 서서 밑단을 폈다. 둘이 동시에 폈다가 동시에 멈췄다가, 서로를 보고 엄마가 먼저 손을 뗐다. 관장님이 마저 폈다. 그다음 면사포는 엄마가 폈다. 두 사람 사이엔 이제 순서가 있다. 반나절 싸워서 얻은 순서.

언니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배가 조금 나왔다. 진우 씨가 그 옆에서 물컵을 들고 서 있었다. 한 시간째. 언니가 목마르다고 할 때를 기다리면서.

큰어머니가 내 머리를 만졌다. 실핀 스무 개. 은비가 올린 머리에 큰어머니가 핀 두 개를 더 꽂았다. 삐져나온 머리카락. 큰어머니는 그걸 못 참는다.

"양 갈래로 할 걸 그랬나."

큰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언니가 소파에서 웃었다. 나도 웃었다.

소율은 창가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니! 트럭 왔어. 버팀이!"

창밖을 봤다. 봄빛 앞. 진우 씨 트럭 옆에 준수가 커다란 화분을 내리고 있었다. 올리브나무. 제철 꽃이 가지마다 하얗게. 31층 거실에서 온 버팀이.

그가 새벽에 준수한테 부탁했다고 했다. 식장 입구에 세워 달라고. 1년 버티자고 이름 붙인 나무니까, 1년 된 날 보여 줘야 한다고.

준수가 화분을 봄빛 입구에 세웠다. 간판 아래. 봄 자 받침 불빛 아래. 버팀이가 봄빛 입구에 섰다. 이름이 두 개 나란히 섰다. 버팀이와 봄빛. 둘 다 버티는 이름.

[재헌]

오전 열한 시 십오 분. 신랑 대기실. 할머니가 먼저 왔다. 지팡이를 짚고. 소율 없이 혼자.

"앉아라."

내 대기실인데 할머니가 앉으라고 했다. 앉았다.

할머니가 손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나무 실패. 흰 실이 반쯤 감겨 있었다. 누렇게 바랜.

"오십구 년 전 폐백실. 네 처 할머니가 내 한복 꿰맨 실이다. 다 꿰매고 남은 걸 나한테 줬다. 새댁 한복 또 터지면 쓰라고."

실패를 내 손바닥에 올렸다. 가벼웠다. 오십구 년의 무게치고는.

"한 번도 안 썼다. 다시 안 터졌거든. 네 할아버지랑 사는 동안 내 옷은 한 번도 안 터졌다."

"……이걸 왜 저한테."

"네 처한테 주라고. 내가 주면 또 울 거다. 오늘 화장 번지면 안 된다."

할머니가 일어섰다. 문간에서 돌아봤다.

"그 실로 반지 감지 마라. 이번 반지는 딱 맞는다며."

"네. 딱 맞습니다."

"그럼 됐다. 그건 그 애 파우치에 넣어 둬라. 다음에 누구 옷 터지면 쓰게. 한복집 새댁 실이니까 한복집 손녀가 들고 다녀야지."

할머니가 나갔다. 실패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왼쪽. 명찰이 있던 자리. 명찰은 이제 그녀 거다.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늘부터 실패 자리다.

[재헌]

오전 열한 시 반. 신랑 대기실. 창가. 커프스 단추를 돌리고 있었다. 은색 네모. 흰 실 매듭. 열두 달째 그대로.

면도할 때 턱을 베지 않았다. 손이 떨리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침에 전기면도기를 사다 놓았다. 쪽지와 함께. 오늘은 베지 마세요. 신랑 사진에 남아요.

노크. 백 실장.

"부사장님. 아니, 대표님. 세 가지 확인드립니다."

열두 달 전과 같은 말이었다. 백 실장도 알고 있었다. 수첩을 펴는 손이 조금 느렸다.

"하나.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방금 다녀가신 것 압니다. 이번엔 앞줄에 앉으시겠답니다."

"둘."

"신부 측 부모님, 원장실에 계십니다. 소리 안 지르십니다. 하객 답례 복주머니 세고 계십니다."

"셋."

백 실장이 멈췄다. 열두 달 전처럼.

"……정말 하실 겁니까."

"이미 대답했잖아. 열두 달 전에."

백 실장이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이번엔 보여 줬다.

두 번째도 하겠다고 함.

노크 없이 문이 열렸다.

"재헌아, 신부는?"

형이었다. 회색 양복. 웃으면서 들어왔다. 눈까지.

"아직 준비 중이라던데. 신부가 좀 늦네?"

"축가 두 곡 들으시면 됩니다."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 내서. 열두 달 전 이 방에서 형은 기다리는 얼굴로 그 말을 했다. 오늘은 농담이었다. 같은 문장이 열두 달 만에 반대 뜻이 됐다.

"그래? 잘됐으면 좋겠다. 오늘 여기 한복이 좀 많아서."

형이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나가다 문간에서 돌아봤다.

"재헌아. 크레파스 빨간 거. 오늘은 네 거다."

뭔 소린지 몰랐다. 형이 나간 뒤 탁자를 봤다. 작은 상자 하나. 안에 빨간 크레파스 한 자루. 새것. 그리고 쪽지. 형 글씨.

오늘 동그라미는 네가 쳐라.

[채이]

열두 시 사십 분. 드레스를 입었다. 은비가 등 뒤에서 지퍼를 올렸다.

끝까지 올라가다 멈췄다. 은비 손이 굳었다.

"……어."

"왜."

"지퍼 고리가. 빠졌어. 손잡이 쪽이. 이가 아니라 고리가."

은비 얼굴이 하얬다. 열두 달 전 내 얼굴이었을 것이다. 거울 속으로 봤다.

"매니저님."

"응?"

"파우치."

은비가 허리의 파우치를 봤다. 반쯤 열린 지퍼. 손으로 벌렸다. 안에 안전핀 통. 그리고 안쪽 주머니. 열두 달 동안 따로 모셔 둔 일곱 개.

"일곱 개 중에 하나. 하나면 돼. 고리 구멍에 꿰어서 핀을 손잡이 삼아."

은비가 안쪽 주머니에서 핀 하나를 꺼냈다. 그 옆에 대추 한 줌이 보였다. 폐백 이모님이 고른 대추. 오늘 쓸 대추.

은비가 핀을 지퍼 고리 구멍에 꿰었다. 잠갔다. 핀을 잡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핀이 지퍼 손잡이가 됐다. 등 뒤, 목덜미 아래. 은색 핀 하나.

"……버티네."

"일곱 개 중 하나야. 버텨."

은비가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었다. 울면서. 매니저는 신부 앞에서 울면 안 된다고 내가 오 년 동안 말했었다. 오늘은 봐주기로 했다.

"나 오늘 처음으로 네가 왜 오 년 동안 이 파우치 안 풀었는지 알겠다."

노크. 원장님이었다.

"채이야. 아버지 오셨다."

문간에 아빠가 서 있었다. 양복. 삼 센티 늘린. 열두 달 동안 두 번 입은. 넥타이는 엄마가 매 준 모양이었다. 반듯했다.

그런데 소매 끝에 실밥이 붙어 있었다.

"……아빠. 실밥."

"새벽 네 시에 다렸다. 오늘 폐백 원삼은 내가 다려야지."

"양복 입고?"

"앞치마 위에 입었어. 앞치마 벗는 걸 깜빡했다."

아빠 양복 자락 밑으로 흰 앞치마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은비가 웃다가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원장님이 입을 막았다. 나는 웃다가 울었다. 화장 번진다. 은비가 면봉을 들고 달려왔다.

"울지 마. 울면 나도 울어. 화장 번져."

열두 달 전 내가 아빠한테 한 말이었다.

아빠가 앞치마 끈을 풀지 않았다. 그대로 두기로 한 얼굴이었다. 대신 팔을 내밀었다.

[채이]

오후 한 시 십이 분. 그랜드홀 문 앞.

면사포를 내렸다. 한 겹. 앞이 보였다. 이번엔 다 보고 싶었다.

문 너머에서 사회자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홀 사회자님. 식순표를 넘기는 소리. 이번엔 신부 이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은비가 무전기를 입에 댔다. 내가 오 년 동안 하던 그 자세로.

"준수야, 입장 음악 대기. 조명 한 단계 내리고."

은비가 나를 돌아봤다.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셌다. 소리 내서.

"삼, 이, 일."

은비 목소리가 떨렸다. 괜찮았다. 매니저도 떤다. 오늘 알았다.

"신부님, 입장하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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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 대타 신부   35화. 예비일 지정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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