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현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지금 그녀와 중상을 입은 고우섭은 이 외딴곳에 떨어졌고 유세용은 음흉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고우섭은 지서현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이혼한 주제에 저런 소리를 하다니,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고우섭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지서현은 매서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입 닥쳐!”그리고는 그의 상처 부위를 꾹 누르며 비꼬듯이 말했다.“어떻게 안 죽었고 살아있대!”“아! 아파!”고우섭은 아픔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소리쳤다.“지서현, 진짜
지서현은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고우섭을 바라보았다.“고우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고우섭은 사과하려던 말이 목구멍에 걸린 듯했다.지서현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사과해도 소용없어. 난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고우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해성의 작은 악동이었다. 형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이렇게 막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서현의 당돌한 태도에 고우섭은 얼굴이 굳어졌다.“고우섭, 얼른 눈 감
지서현은 방을 나섰다.유세용은 지서현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깊은 밤이 되었다. 고우섭은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지서현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유세용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자신이 기혼자라고 밝혔음에도 유세용은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여전히 흑심을 품고 있었다.지서현은 잠들 수 없었다. 자신과 고우섭이 위험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지서현은 혼자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산골 마을의 밤은 정말 고요했다. 고요하고 신비로웠다.눈이 내린 산골 마을은 차갑고 적막해서 마치 세상의 끝에 와 있는
지서현이 고개를 들자 고우섭이 보였다.쭉 혼수상태였던 고우섭이 인기척에 깨어나 곧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유세용을 지서현에게서 떼어냈던 것이다.욕정에 눈이 먼 유세용은 뒤에서 누가 공격해올 줄은 몰랐기에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고우섭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지만 눈빛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는 지서현을 보며 물었다.“괜찮아?”지서현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그제야 고우섭은 유세용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짐승 같은 놈!”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유세용의 얼굴 또한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너희 둘 여기 떠내려왔을
“밖에 약초가 좀 있는 것 같아. 잠시 후에 내가 나가서 약초를 좀 캐올 테니 넌 쉬고 있어.”지서현은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올 때 지형을 살펴봤었는데 약초가 있었다. 유세용의 기억을 잃게 할 약초를 좀 뜯을 수 있었다.지서현이 몸을 웅크리고 약초를 캐고 있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우섭이었다.고우섭이 따라온 것이다.지서현은 의아하게 물었다.“왜 따라왔어? 피 많이 흘렸으니 어서 쉬어.”고우섭은 서서 지서현의 작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시골 아줌마 옷을 입었어도 숨길 수 없는 미
고우섭은 여자 친구도 많이 사귀어 봤고 허리를 감싸 안는 것보다 더한 스킨십도 해봤다.그러나 갑자기 지서현을 안자 그의 심장은 부자연스럽게 빨리 뛰기 시작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허둥지둥 지서현을 흔들었다.“지서현, 왜 그래?”그때 그는 지서현의 이마가 뜨겁고 몸 온도도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아챘다.그녀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말 설상가상이었다.지서현은 천천히 눈을 뜨고 일어서며 말했다.“난 괜찮아.”“괜찮긴 뭐가 괜찮아. 열이 이렇게 나는데. 걸을 수 있겠어? 내가 안아서 데
지서현은 그의 품에서 떨고 있었다.고우섭은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꽉 안았다.“지서현, 조금만 참아. 꼭 버텨야 해.”...지서현이 사라지자 하승민은 인력을 더 투입해 그녀를 찾았다.곧 조 비서는 CCTV 영상을 가져왔다.“대표님, 찾았습니다. 지서현 씨와 고우섭 씨가 차례로 요트에 탑승했습니다.”하승민은 영상을 확인했다. 고우섭이 요트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지서현은 이미 요트 안에 있었다.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어둡게 흐려졌다.“우섭은 왜 갑자기 강해도에 온 거지?”고우섭이 갑자기
하승민은 조비서와 사람들을 데리고 평서촌으로 들어갔다. 몇몇 마을 주민들이 보이자 그는 바로 다가가 물었다.“안녕하세요, 혹시 오늘 두 사람이 이 마을에 들어오는 걸 보신 적 없으세요?”주민들은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당신들 누구죠? 여긴 왜 온 건데요?”하승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사람을 찾고 있어요.”그러자 주민들은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우리 마을에는 들어온 사람 없어요. 외지 사람은 사절이니까 빨리 나가요.”말을 마치자 몇몇 주민들이 하승민 일행을 몰아내려 했다.“저기...”조 비서가 뭔가 말하려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
하승민은 고개를 들었다. 지서현이 보였다.지서현이 동연당 병원에 온 것이다.그때 그의 팔에 지유나가 매달렸다.“서현이는 왜 왔을까? 승민 오빠, 나 쟤 보기 싫어. 쟤만 보면 심장이 아파.”하승민은 지서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유나의 손을 풀었다.“그럼 돌아가자. 내가 차를 가져올게.”말을 마친 하승민은 밖으로 나갔다.그 후로 지유나는 계속 하승민에게 매달렸고 하승민도 그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지서현과도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유나는 하승민이 자신에게 차가워졌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이제 하승민에게는
이윤희가 회상했다.“나도 기억나. 동연당이 4월 11일에 외국에서 상장했잖아. ‘411 전설'이라고 불렸지.”지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지유나는 손에 든 약을 보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동연당 설립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승민 오빠는 그 사람 알아?”사실 지유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지만 하승민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다. 그녀는 속으로 지서현에게 이 모든 걸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하승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한 번 만난 적 있어.”하승민은 동연당 설립자와 정말 한 번
“잠깐만!”지서현이 지유나의 욕설을 끊었다.“유나야, 착각하지 마. 어젯밤에 내가 하 대표님을 유혹한 게 아니야. 오히려 필사적으로 저항했어. 하지만 하 대표님이 내가 열 때문에 힘이 없는 틈을 타서 날 겁탈한 거 있지!”‘뭐라고? 하승민이 강제로?’지유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승민은 주변에 여자가 넘쳐나는 사람이었다.게다가 자신이 몇 번이나 유혹했지만 그는 항상 일이 바쁘다거나 기분이 아니라는 핑계로 거절했었다.그런 그가 지서현이 아픈 틈을 타 겁탈했다고?지유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말도 안 돼. 거짓
“우섭 씨,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내가 당신까지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난 우섭 씨, 형수예요. 이렇게 의심받으니 너무 속상하네요. 우섭 씨는 정말 변했어요. 왜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왜 요트에서 서현이를 처리하지 않았냐고요.”지유나는 영리하게 감정에 호소하며 선수를 쳤다. 고우섭은 요트에서 지서현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에 표정이 흔들렸다.“형수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우섭 씨, 우리는 같은 편이에요. 서현에게 우리 사이를 이간질당하면 안 돼요.”...
지서현과 고우섭은 하승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승민 쪽 사람들이 마을을 포위해서 안전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하승민은 뭐 하러 갔는지 올 줄을 몰랐다.“형은 왜 아직도 안 와?”그때, 하승민의 훤칠한 모습이 나타났다.“형, 어디 갔다가 이제 와?”고우섭이 물었다.하승민은 대답 없이 손에 묻은 피를 휴지로 닦았다.지서현은 그의 손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이때 조 비서가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이제 돌아가시죠.”하승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과 함께 요트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승민 오
하승민은 품 안의 여자를 바라보며 가늘게 뜬 눈으로 말했다.“정분을 나눈 여자는 동생 아니야?”너무 뻔뻔했다.지서현이 발길질하자 하승민은 몸을 뒤집어 그녀를 아래에 깔았다.“한 번 더 할까?”지서현은 그의 눈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그는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다.이 남자의 체력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지서현, 아침에 해본 적은 없잖아.”지서현의 조그맣고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미친놈!’그녀는 그를 힘껏 밀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하승민은 얇은 입술을 끌어올려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