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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

Author: 사흘부탁
사랑의 손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에 글씨가 번졌다. 그녀는 눈물을 닦은 다음, 메모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랑은 태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줄곧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 내가 조금 기분 상하게 했다고, 배로 돌려주다니.’

손에 들어간 힘에 수표가 꼬깃꼬깃해졌다. 점차 냉정해진 그녀는 바로 수표를 가방에 넣었다.

‘난 억지를 부릴 자격이 없어. 그 누구보다도 이 돈이 필요하니까.’

...

사랑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다.

덕훈은 제시간에 사랑에게 전화를 하며, 건강검진 하러 가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일깨워 주었다.

사랑은 전화를 끊은 다음,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을 때, 그녀는 돈을 써서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

그 사람이 나오자, 사랑은 택시를 타고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보고는 며칠 후에야 볼 수 있었다.

의사는 사랑의 배를 만지더니, 임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랑이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태경의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 다 받았어?]

“네.”

태경은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묻지 않았다. 얼마 뒤면 덕훈이 그녀의 건강검진 보고서를 그의 사무실로 보낼 것이다.

간단하게 물어본 다음, 태경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이때 사랑이 그를 불렀다.

“대표님.”

태경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강 비서, 또 무슨 일 있어?]

사랑은 자신이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했다.

“수표는...”

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무슨 뜻이죠?”

태경은 목소리가 담담했고,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

[내가 분명하게 쓴 것 같은데?]

그는 펜을 돌리며 쌀쌀하게 말했다.

[네가 받아야 할 보수.]

사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태경은 계속 말했다.

[어젯밤 강 비서의 서비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

그는 이런 말을 할 때도 무척 담담했다.

모욕인지 아닌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지만, 이는 여전히 날카로운 바늘처럼 사랑의 심장을 찔렀고, 무수한 상처를 만들었다.

태경에게 있어 사랑은 그저 돈 받고 자는 여자에 불과했다. 다른 여자와 달리, 그녀는 돈을 받고 싶으면 몸을 팔아야 했다.

사랑은 가끔 태경에게 묻고 싶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동정하면 안 되는지.

하지만 태경은 감정이 없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끊을게요.”

태경은 생각에 잠긴 듯 끊긴 전화를 바라보았다. 오후가 되자, 그는 덕훈에게 병원에서 보낸 건강검진 보고서를 프린트한 다음, 자신의 데이블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덕훈은 쩔쩔매면서도 빠르게 이 일을 처리했다.

“사모님의 건강검진 보고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주 건강하십니다.”

태경은 나른하게 두 페이지를 넘기며, 산부인과 검사 결과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보고서를 다 본 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덕훈에게 나가보라고 했다.

사랑은 휴가를 낸 다음 날, 병원에서 보낸 결과지를 받았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초음파 사진까지 봤다. 아직 작은 태아라서 모양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결과지를 가방에 넣자, 사랑은 마음이 또 어수선해졌다. 지금 그녀는 후회할 수 없었다.

짧은 휴가를 보낸 후, 사랑은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현미는 얼른 그녀를 끌고 한바탕 불평을 꺼내놓았다.

“대표님 요 며칠 비서실의 모든 사람들을 지적하신 거 알아? 분위기가 얼마나 싸한지, 우리 다 죽을 지경이야.”

사랑은 이상하다고 느꼈다.

“대표님 기분이 안 좋은 신 건가?”

현미는 주위를 살피며 사랑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대표님의 첫사랑이 귀국했다고 들었어. 몸이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야.”

사랑은 잠깐 멍해졌다.

‘강세영이 돌아왔다고? 난 왜 소식을 못 들었지?’

세영의 몸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사랑은 세영도 싫어했지만 세영의 어머니 엄수인을 더욱 싫어했다. 엄수인의 핍박을 받아 사랑의 어머니가 별장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죽으면 오히려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남청연은 식물인간이 되어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 사랑한 남자에게 속아 모든 것을 빼앗기고,당당하게 집에 찾아온 내연녀에게 굴욕을 당했다면, 나도 아마 살아갈 희망을 잃었을 거야.’

사랑은 차갑게 대답했다.

“아.”

저녁에 사랑은 태경과 함께 자선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 차에 앉자, 그녀는 태경의 기분이 확실히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위기는 차가웠고, 압박감이 느껴졌다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때, 사랑은 그제야 생각이 나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 오늘 밤 술 안 마시면 안 될까요? 몸이 좀 불편해서요.”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내 뱃속의 아이를 잘 보호해야 해.’

고개를 든 태경은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말투가 무척 딱딱했다.

“강 비서, 내가 왜 강 비서를 데리고 왔을 것 같아? 그냥 내 곁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

사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요 며칠 몸이 확실히 좀 불편하거든요. 병원에서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어요.”

태경은 설령 화가 났더라도, 절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했다.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

“네 건강검진 결과 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차가 호텔 앞에 세워졌다.

태경은 내리지 않고, 갑자기 사랑의 턱을 쥐었다.

“아니면, 강 비서는 몸값을 올리고 싶어서 그래? 매달 수천만 원 용돈을 줘도 술 한 잔 못 마시는 거야?”

그에게 잡힌 턱이 아팠다. 태경이 이렇게 통제력을 잃을 때는 거의 없었다.

‘강세영의 병세가 또 악화됐나 봐. 그래서 지금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구나.’

사랑은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

“몸값을 올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녀의 눈물이 그렁한 눈을 바라보며 태경이 답했다.

“그럼 강 비서는 토하는 척, 술을 못 마시는 척하지 마. 임신한 것도 아닌데.”

사랑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바로 부인했다.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

“난 강 비서를 믿어. 약속을 잘 지키고, 규정을 어기지 않으니까.”

사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네.”

차에서 내리자, 사랑은 태경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자선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은 대부분 재벌이나 권세가였다. 태경은 재벌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손에 권력까지 쥐고 있어, 그에게 아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랑과 태경은 결혼한 일을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었기에, 이 자리에서 아무도 사랑이 태경의 아내라는 것을 몰랐고, 여전히 그녀를 태경의 비서로 여겼다.

질리면 버리고, 자고 나면 지루해지는 장난감. 몇 달 뒤면 태경은 또 다른 여자로 바꿀 것이다.

사랑도 태경이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회에서, 태경의 친구는 다시 한번 사랑에 대해 물었다.

“네 그 예쁜 비서가 네 아내라고 하는 사람이 있던데? 정말이야?”

잠시 침묵한 다음, 태경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강 비서 스폰서지.”

사랑은 그의 대답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구정헌은 웃으며 사랑의 예쁘고 매혹적인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럼 네 비서 며칠 좀 빌려줄래? 나도 한 번 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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