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명빈의 말에 희현의 안색이 몇 번이고 변하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저... 저는 작은아버지께 전화해서 상황을 말씀드렸어요.”“작은아버지께서는 그 사람들이 E국 사람일 리 없다고 하셨고요.”“저도 골격으로 국적을 감정하는 것에 대해 찾아봤는데, 아직은 실험 단계라 한계가 많고 완전히 정확한 것도 아니더라고요.”희현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분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고, 유해도 오랫동안 해외를 떠돌았어요.”“수많은 사람이 힘들게 노력해서 겨우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 거잖아요.”“그런데 오판 때문에 유해가 사료가 되어 짐승들에게 짓밟힌다면, 그분들의 영혼은 영원히 편히 잠들지 못할 거예요.”“정말 오판이었다면 열사분들은 돌아가신 뒤에도 이런 모욕을 받게 하는 거잖아요.”“그럼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급히 달려온 거예요. 그 유해들은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아요.”“설령 현충원에 안장하지 않더라도 따로 잘 보관하는 편이, 나중에 오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요.”“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나요?”명빈은 희현을 바라보며 물었다.“희현 씨, 왜 이렇게까지 흥분해요? 마치 유족들보다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희현은 남몰래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저도 직접 이 일에 참여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제 일처럼 느껴지죠. 그리고 실수가 생겨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까 봐 걱정되는 거죠.”명빈은 설득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희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막 명빈을 설득해 유해 처리 방침을 바꾸려던 순간, 남자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런데 오판이 아니라면요? 골격 감정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하지만 그 여섯 구의 유해는 E국에 있는 후손을 찾아내면, 정말 E국 사람인지 C국 사람이 아닌지 증명할 수 있겠죠.”“그럴 리 없어요!”희현이 단호하게 말하자 명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바라봤다.“
두 부녀가 떠난 뒤에야 명빈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러자 윤정겸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희현이 몸이 안 좋다던데 따라가서 한번 봐주는 게 어때?”명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차에 올라타자마자 희현은 명빈이 했던 말을 모두 임순청에게 전했다.임순청의 표정이 차갑게 굳더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골격 감정만으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어?”희현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요. 하지만 요즘 기술이 워낙 발전했으니까 가능할지도 모르죠.”상황은 두 사람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곧 임순청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했다.“너는 먼저 돌아가 있어. 내가 한번 방법을 찾아볼게.”그러자 희현이 곧바로 물었다.“무슨 방법이요?”“그건 신경 쓰지 마. 지금은 침착해야 해. 절대로 먼저 흔들리면 안 돼.”임순청이 당부하자 희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내에 도착하자 임순청은 희현을 먼저 내려주고는 기사에게 차를 몰아 서둘러 떠나라고 지시했다.하지만 희현은 임순청의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자신의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을 확인한 뒤 교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가로막혔고, 앞차에서 한 남자가 내려 공손하게 말했다.“아가씨. 임 사장님께서 먼저 돌아가 쉬시고,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희현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고 운전대를 꽉 움켜쥔 채 말했다.“난 괜찮으니까 비켜요.”남자는 공손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임 사장님께서 직접 해결하시겠다고 하셨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먼저 돌아가시죠.”희현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남자를 노려봤는데 눈은 충혈될 만큼 벌어져 있었다.“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내가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해요? 그 안에는 제 친아버지가 계세요!”“지금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된 뒤 사료에 섞이게 된다고요!”희현은
모레는 금세 찾아왔고 길일이었다.날씨는 맑았고, 타국에서 전사한 열사들은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왔다.타향을 떠돌던 지 스무 해 만에 영령들도 비로소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윤정겸과 강성에 있는 윤정겸의 형제들은 모두 현충원을 찾아 순국한 열사들의 유해의 비석 제막 및 안장식에 참석했다.현충원 안에는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바람 소리마저 엄숙하게 들렸고 군인들처럼 근엄한 기세를 풍겼다.희현과 임순청도 제시간에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검은 옷을 입어 엄숙한 분위기를 더했다.특히 희현은 모든 액세서리를 빼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누구보다도 단정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다.열사들의 유해 안장과 비석 제막이 시작됐다.비석에는 순국한 열사들의 이름과 생전의 공적이 새겨져 있었다.희현은 일부러 다가가 하나씩 살펴봤는데 모두 확인한 순간 여자의 안색이 달라졌다.곧장 명빈을 찾아간 희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물었다.“오늘 안장되는 분이 열 분인 것 같던데, 나머지 여섯 분은요?”명빈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아, 미처 말하는 걸 깜빡했네요. 그 여섯 분은 우리 나라 열사 분들이 아니었어요.”“아마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서 이번 안장 대상에서 제외됐고요.”희현은 급히 물었다.“신원 확인이 안 된 게 아니었나요?”명빈이 입꼬리를 올렸는데 그 목소리에는 새벽안개 같은 서늘함이 스며 있었다.“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골격 감정을 해 보니 그 여섯 사람은 애초에 C국 사람이 아니었어요.”“C국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우리나라 열사들일 수 있겠어요?”희현은 순간 얼어붙었다가 곧바로 다시 물었다.“그럼 그 유해들은 어떻게 처리했어요?”명빈은 또박또박 말했다.“가루처럼 잘게잘게 부숴서 사료에 섞은 뒤 돼지 먹이로 줄 예정이요.”희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리더니 목소리는 저절로 떨렸다.“설령 착오였다고 해도 그분들이 우리나라 열사들이 아니라면 E국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굳이
희현은 미소를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하루 종일 바빴더니 너무 배고파요. 파스타는 가장 큰 크기로 시키고, 여기서 제일 큰 킹크랩도 먹을래요.”명빈이 웃으며 말했다.“다 미리 주문해 놨어요. 마음껏 먹어요.”희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왜 저한테 이렇게나 잘해주는 거예요?”명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잘해주는게 싫어요?”희현은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웃었다.그때 식사를 하던 한 손님이 희현을 알아보고 다가왔다.“리키 미디어 임희현 본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희현은 부드럽게 인사했다.“같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상대는 들뜬 목소리로 묻자 희현은 고개를 돌려 명빈을 바라봤다.“괜찮을까요?”명빈은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희현 씨 덕분에 저도 같이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아보네요.”희현은 명빈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며 여성을 불러 곁에 섰다.여성은 휴대폰을 옆 사람에게 건네고, 희현과 명빈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명빈은 문득 예전에 인형 탈을 쓰고 석유를 웃게 해주려 했던 일이 떠올랐다.그때 길에서 만난 쌍둥이 아이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던 기억이었다.순간 명빈의 표정이 멍해졌고 사진 속 남자의 시선도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곧 희현은 여성에게 사진을 받아 명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우울한 왕자님처럼 나왔네요.”명빈은 웃으며 말했다.“사진 잘 나왔네요.”“그래요?”희현도 마음에 들었는지 곧바로 자신의 SNS에 올렸다.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시작한 뒤, 명빈은 그제야 희현의 SNS를 보게 됐다.명빈은 고개를 들어 미소 지으며 물었다.“즐거워요?”이에 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장님이랑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무슨 일을 하든 즐거워요.”명빈의 미소는 한층 더 눈부셔졌다.“모레 순국한 열사분들의 추모식이 현충원에서 열리는데 같이 갈래요?”희현은 당연히 가고 싶었지만 곧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가까운 친척이 없는 분들도 많
희유는 석유에게 오늘만큼은 가장 비싸고, 가장 맛있는 제대로 한 끼를 먹자고 했다.사랑은 잃어도 괜찮지만, 식욕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고 갔고, 차를 막 세우자 한 남자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두 분, 죄송하지만 이 자리는 저희 아가씨 전용 주차 자리라서요. 잠시만 다른 곳으로 옮겨주시겠어요?”희유가 미간을 찌푸렸다.“먼저 온 사람이 주차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 어디에도 표시가 없는데 어떻게 당신들 자리라는 거죠?”기사가 말했다.“이 자리는 정말 저희 아가씨 전용으로 지정된 주차 자리라서요.”희유가 막 반박하려던 순간, 익숙한 모습 하나가 뒤쪽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기사님, 무슨 일이에요?”희유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또 임희현이야? 어쩜 이렇게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걸까?’희현이 걸어오자 기사는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희현은 반쯤 내려간 차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석유의 차가운 옆모습을 보고 조금 놀란 듯 말했다.“어머, 하석유 부사장님? 정말 우연이네요.”그러자 희유는 차갑게 비웃었다. “가식도 정도껏 해야지.”석유는 다시 안전벨트를 매고 다른 주차 자리를 찾으려 했다.“다른 자리 찾으실 필요 없어요.”희현이 두 걸음 다가오며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이 주차 자리 때문에 석유 사장님께 실례를 저지른 적이 있었잖아요.”“그 뒤로 아버지가 이 자리를 임대해서 저한테 선물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정말 제 자리예요.”석유는 희현의 말에 담긴 이중적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그제야 석유는 이곳이 바로 처음 희현을 만났던 그 주차 자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세상일은 참 묘한 것 같았다.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과거와 다시 오버랩되는 게 마치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 같으니 말이다.그러자 희유가 차갑게 말했다.“임희현 씨, 너무 의기양양해하지 마세요. 얻는 것도 잃는 것도 한순간이니까요.”그러나 희현은 조금도 화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임순청은 원래 강성에 있는 윤정겸의 가족들을 모두 초대하려 했다.하지만 명우는 바쁘다며 바로 거절했고, 희유는 야근이 있다고 했으며, 명일은 출장 중이었다.명길은 아예 메시지조차 답하지 않았다.결국 윤정겸과 명빈만 함께 가게 되었고, 다행히 저녁 만남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임순청은 윤정겸을 극진히 예우하며 시종일관 공손하게 대했다.윤정겸 역시 매우 예의 바르게 이번 일에서 리키 미디어 가족이 도와준 것에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술이 몇바퀴 돌자 임순청이 입을 열었다.“제 동생에게 들었는데, 순국한 열사분들의 유해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 중에 현지에 남아 있던 군인들의 후손 두 명도 있었다고 하더군요.”“또 그 아이들이 E국에서 아주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귀국할 기회를 얻게 됐다고도 했어요.”윤정겸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죠.”임순청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라에서 반드시 잘 챙겨줘야 할 거예요.”그 말에 윤정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수소문해 본 결과 국내에는 가까운 친척이 더 이상 없었지만, 나라에서 일자리와 거주지를 모두 마련해 줄 거예요.”명빈이 궁금한 듯 물었다.“두 사람 다 국내에는 가까운 친척이 없는 건가요?”“그래.”윤정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한 사람의 아버지는 원래 고아였고, 다른 한 사람의 아버지는 외동아들이었어. 게다가 몇 해 전 조부모님까지 연달아 돌아가셔서 사실상 가족이 없는 셈이지.”“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임순청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곧 희현이 위로하듯 말했다.“이제는 안타깝지 않아요. 그분들의 아버지는 모두 영웅이셨고, 이제는 나라가 가족을 대신해서 챙겨줄 테니까요.”“맞아.”윤정겸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지.”임순청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국장님을 뵙게 된 건 제 평생의 영광이에요. 제가 다시 한잔 올릴게요.”윤정겸도 잔을 들어 임순청의 잔과 부딪쳤다.희현은 휴대폰을
“그만 싸워요!”“전부 손 떼라고요!”...강아심이 방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서로 말리느라 흩어져 있었다. 지승현은 벽에 기대고 있었고, 입술 끝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상태도 매우 초라해 보였다.같이 달려온 전기훈과 몇몇 손님들도 현장에 있었다. 전기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강아심은 승현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참으라고 하지 않았어? 왜 또 싸운 거야?”승현은 고개를 들고 웃으려 했지만, 아직 웃음이 나오기도 전에 아파서 신음을 냈다.“으읏! 괜찮아. 모범생 하는 게 이제 지겨워서, 한 번쯤
방 안은 모두 친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분위기가 가벼우면서도 즐거웠다. 임구택, 장시원, 노명성 등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희와 성연희 등이 모여 있었다. 연희는 한참 요요를 달래다가 우청아에게 물었다.“며칠 있으면 설인데, 장씨 저택에서 설을 보내려고?”모두 청아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우씨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청아는 원래 설을 혼자서 보낼 계획이었다. 청아와 시원이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에 잠깐 들르는 건 괜찮았다. 또한 설날처럼 전통적인 명절에는 장씨 저택처럼 대가족이 모이는
이에 남궁민은 진지하게 말했다.“매일 레이든의 그 음침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가장 큰 고통이죠.”이에 소희는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다.“...”남궁민의 얼굴을 보자 소희는 갑자기 심명이 떠올랐다.‘아니야, 심명은 이 사람보다 훨씬 귀여워!’오후에 소희는 장명양과 간미연과 연락을 했다. 그들에게 온두리에 머물며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소희는 이미 목표를 찾았고, 암살 계획을 세울 것이며, 후에 그들이 요하네스버그로 들어오도록 할 것이었다.하얀 독수리와 푸른 독수리가 번갈아 가면서 문자를 보냈다.[보
“또 물에 약을 뱉으려고?” 소희는 휴대폰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구택을 바라봤다. 방 안에는 단 하나의 스탠드 조명만 켜져 있었고, 흐릿한 조명은 구택의 깊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추자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반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반은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찬바람이 눈들을 유리창에 부딪히며 찬 기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계속 해독제가 효과가 없는 이유를 찾고 있었어. 임예현과 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