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윤...순간 임슬기의 머릿속에 눈을 감고 있는 진승윤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도 그녀를 보호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조금 전 김현정에게 진승윤을 물었을 때 김현정은 대답하지 않았다.설마... 진승윤이 진짜로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임슬기, 네가 화근이야! 바람피우는 건 둘째치고 네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죽게 만들잖아. 그러고도 얼굴을 들고 다닐 양심이 있어?”“닥쳐!”임슬기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연다인을 노려보다가 손을 뻗어 연다인을 세게 밀어냈다.그러고는 손등에 꽂혀 있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고요?”“내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특별히 확인했어요. 누군가 황동혁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 같아요.”김현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황동혁은 가슴이 앞 좌석에 눌러서 심한 내출혈이 있긴 했지만 살아날 가능성은 있었어요.”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임슬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온몸이 축 처졌다.“하, 연다인이에요! 황동혁의 입을 막기 위해 사람을 시켜 일부러 죽인 거예요.”간신히 몸을 일으킨 임슬기는 창백한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죽은 자만이 비밀을 평생 지
임슬기의 말이 떨어지자 방안은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임슬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배정우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과연 그녀를 한 번이라도 믿어줄까, 조금이라도 믿어줄까?임슬기는 너무 궁금했다.“그럼 진승윤 때문에 밤새 원성시로 간 거야?”이 질문에 임슬기는 순간 당황했다.“배정우, 나를 위해서 황동혁을 찾으러 간 거야. 황동혁이 내 결백을 증명할 수 있고 연다인이 범인인 것을 지목할 수 있으니까. 나는 당연히 가야 했어.”“임슬기, 너는 다인이가 그렇게 싫어?”싸늘한 배정우의 목소리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임슬기는
김현정은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치운 뒤 침대 위의 임슬기를 바라보았다.가냘픈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걸 보니 또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김현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방을 나가려 했다. 임슬기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가에 다다랐을 때 임슬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현정아.”그 한마디에 김현정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둘이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임슬기가 그녀를 이렇게 친근하게 부른 건 처음이었다.그게 얼마나 가슴을 울렸던지 김현정은 조심스레 몸을 돌려 임슬기를 바라보았다.임슬기는 이
임슬기가 들어오자 진승윤은 바로 전화를 끊고 눈빛을 가라앉히며 부드럽게 말했다.“슬기 씨, 왜 여기까지 왔어요? 푹 쉬어야 할 텐데.”임슬기는 순간 멈칫하다가 가볍게 웃었다.“저보다 승윤 씨가 더 심한데요? 제대로 쉬셔야 하는 건 승윤 씨죠.”진승윤이 원래 온화한 성격이라는 걸 알지만 아까 그토록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라 놀라웠다.김현정은 임슬기를 의자에 앉힌 후 가져 온 국을 내려놓고 조용히 말했다.“전 과일 좀 사 올게요.”“그래, 빨리 와.”김현정은 웃으며 문을 닫았다.“걱정 마세요.”방 안에는 두 사람만
임슬기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어떤 일이 있어도 연다인의 뜻대로 되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다.진승윤이 국을 다 마신 뒤 두 사람은 몇 마디 더 나누고 나서야 임슬기는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임슬기는 장승태가 죄를 인정하리라 기대하지도 않았고 더더욱 그가 연다인을 지목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쪽에서 얻을 수 있는 단서는 없다고 생각했다.결국 오정태의 시신을 되찾으려면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바로 그때 임슬기의 휴대폰이 울렸다.[그
‘연다인을 처리하겠다고?’솔깃한 제안이었지만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다시 배신할 수 있는 법이다.임슬기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송재현, 난 널 믿지 않아.”한때 임슬기는 이 어린 시절 친구를 진심으로 믿었다. 송재현이 자신을 다시 디자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힘든 시기를 함께 버텨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송재현은 몇 번이고 그녀를 배신했다.그날 밤 호텔에서 송재현이 자신을 깎아내리고 모든 죄를 덮어씌우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그녀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를 쉽게 용서할 만큼 너그럽지도 않았다.“슬기야
‘죽어도 싸다고?’그 말에 임슬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침대 위에서 장승태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죽어 마땅한 건 너야! 날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리고, 집사님까지 죽였어!”그러나 이성은 그녀에게 장승태가 지금 죽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죽으면 연다인을 고발할 사람이 사라지니까.“이 사람 어떻게 할래요? 슬기 씨 손에 맡길게요.”임슬기는 이를 악물고 핏발 선 눈으로 장승태를 노려보았다.지금 당장이라도 오정태의 복수를 위해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우선 가둬둬요. 내일 바로 경찰서에 갈 거예
‘진성한?’임슬기는 얼떨떨했다.“그게 어떻게 너희 아버지랑 관련 있어?”진승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전에 파티장에서 우리 아버지 널 따로 불러냈었지?”“응.”“그 사람, 절대 신사 같은 인물 아니야.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전부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넌 그 사람 눈에 발목 잡는 존재였을 뿐이야.”진승윤의 눈빛 속에 이전과는 다른 차가움이 스쳤다.“방해가 된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없애버려.”이미 직접 전화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 위선적인 인간을 진승윤은 끝내 믿을 수 없었다.임슬기도 진
육문주의 발걸음이 멈췄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날 밤, 연다인이 김현정이 마시던 술에 약을 탔어요.”말을 끝낸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배정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그건 그 여자가 직접 인정한 말이에요.”그렇게 말한 육문주는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여러 해를 함께한 사이였기에, 그는 이 일에 배정우가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임슬기가 그렇게까지 의심하고 원망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그래서 그 역시 배정우를 위해 변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배정우의
배정우는 권민에게 임종현을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지시한 뒤 자리에 남았다.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있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는 곁에 놓인 양동이를 들었다.차가운 물 한 통을 그대로 퍼부었다.남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들자마자 배정우의 핏기 어린 눈빛과 마주쳤다. 그 순간 겁에 질려 온몸을 떨며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뭔가 말하려 입을 벌렸지만, 끝내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배정우는 이 남자와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일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칼을 꺼내 남자의 목에 갖다 댔다.“말해. 누가 시킨 거야? 목적이
임종현은 그 남자가 당장이라도 끔찍한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아 목이 터질 듯한 절규가 가슴 깊은 데서부터 쏟아져 나왔다.“누나! 임슬기, 정신 차려. 제발 눈 좀 뜨라고!”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임슬기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다해 오른손을 겨우 들어 임종현에게 신호를 보냈다.무언의 손짓이었다. 마치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그리고 임슬기는 힘겹게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입 모양으로 말했다.‘기회 봐서 너라도 도망쳐’임종현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굳어버렸다.연다인이 했던 말. 임슬기는 임씨 가문의 죄인이라는
연다인은 임슬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걸 보곤 그녀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걸 단숨에 눈치챘다.“임슬기, 너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 배정우도 꼭 봤어야 하는데.”임슬기는 고개를 돌려 연다인을 외면했지만 눈물은 마치 연다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듯 흘러내렸다.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임슬기는 울지 않았다.하지만 배정우가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는 걸 들은 순간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애써 괜찮은 척해봤지만 17년을 사랑한 그 남자가 자신의 원수에게 자길 죽여달라고 했다는 걸 들었을 땐 결국 무너져버리고 말았다.임슬기는 자
“혼자 와. 한 시간 줄게. 안 오면 지금 당장 임종현 한쪽 팔부터 박살 낸다.”속으론 수상하다고 느꼈지만 종현이를 걸고 도박을 할 순 없었다.임슬기는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임종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임슬기는 열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계속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뿐이었다.이쯤 되자 임슬기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결국 임슬기는 어쩔 수 없이 강재호를 불러 김현정 곁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강재호는 도착하자마자 급히 나가려는 임슬기를 덥석 붙잡았다.“임슬기 씨, 어디 가세요?”강재호가 보기에도 어딘가
“슬기 언니, 매일 내 곁에 있지 않아도 돼요. 주말엔 종현이 데리고 잠깐 놀러 다녀와요.”임슬기는 김현정을 흘낏 쳐다보며 말했다.“네가 자꾸 나 보내려고 하니까 더 마음이 쓰여. 종현이도 이제 중3이라 주말에도 공부하느라 바쁠 거야.”김현정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정말이예요. 슬기 언니, 나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짓 안 해요.”“밥 먹자, 반찬 다 식겠다.”그 말에 김현정은 고개를 숙이고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임슬기는 몰래 그녀를 흘낏 바라보곤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최근 들어 밤마다 피투성이가 된 김현정이 욕조에
아파트.연다인이 막 집에 들어서자마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들뜬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 앞에 선 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어버렸다.“배정우, 너 여기 왜 왔어?”“내 집인데, 내가 오면 안 돼?”연다인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네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정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네가 김현정한테 그런 짓을 한 거야?”“무슨 짓?”연다인은 잽싸게 그의 팔을 감싸며 새침하게 말했다.“배정우, 설마 너도 날 의심해? 날 믿는다고
배정우는 날카로운 눈을 가늘게 뜨며 흥미롭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지금 질투하는 거야?”...질투?임슬기는 한동안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예전 같았으면 분명 질투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한없이 차분했다.굳이 말하자면 남은 감정이라곤 혐오뿐이었다.“배정우 씨, 참 재밌네요. 다른 건 몰라도 세상에 두 다리 달린 남자는 널렸어요. 내가 연다인이 남자를 가졌다고 부러워할 이유라도 있어요?”배정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임슬기의 손목을 움켜쥐고 그대로 끌어당겨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