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청라 특수 교도소, 제7구역 메인 로비]
제한 시간 종료 30분 전.
교도소 내부를 가득 채웠던 광기 어린 비명은 잦아들었으나,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더욱 지독한 침묵과 경계였다. 생존한 죄수들은 무기를 반납함에 넣기 위해 로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다. 반납함 앞에서 마지막 기습을 당해 목의 ‘리미터’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눈동자를 충혈시켰다.
그 피 냄새 진동하는 인간 군상 사이로, 유령처럼 서늘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한도진이었다.
그의 수감복은 이미 원주인을 알 수 없는 선혈로 검붉게 찌들어 있었다. 한 손에는 무기고에서 확보한 전술 나이프가, 다른 한 손에는 철수의 유품인 끊어진 수갑 체인이 감겨 있었다. 도진의 시선은 단 한 놈, 철수의 머리를 가격했던 용태의 최측근 부하 ‘작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놈은 아직 식지도 않은 임철수의 시신 앞에서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피 묻은 쇠파이프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자신의 무용담을 떠들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봤냐? 형사 놈이라 그런지 맷집은 좋더만. 대가리가 깨져도 안 놓고 버티기에 그냥 확…….”
“그 쇠파이프.”
낮게 가라앉은, 그러나 로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도진의 목소리가 작두의 말을 끊었다. 작두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 도진의 눈동자엔 이미 살육의 공식이 완성되어 있었다.
“네 무덤 파는 도구로 써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슈슉!
인간의 반사신경을 비웃는 속도였다. 도진은 바닥을 차고 올라와 작두의 목에 수갑 체인을 와이어처럼 감아 올렸다. 놈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비명이 목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찰나, 도진의 전술 나이프가 놈의 가슴팍을 정교하게 파고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심장과 폐, 그리고 대동맥.
단 세 번의 자창으로 놈의 생명 줄기를 끊어버렸다. 주변에 있던 용태의 조폭들이 무기를 치켜들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도진은 쓰러지는 작두의 몸을 발로 차내며, 놈이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빼앗아 반납함에 던져 넣었다.
단 5초.
압도적인 살상력 앞에 로비에 모인 30여 명의 죄수는 숨을 멈췄다.
삐이이―!
교도소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6시간의 타이머가 마침내 ‘00:00:00’을 가리켰다.
“아, 안 돼! 제발!”
복도 구석, 끝까지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숨기려던 죄수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기계는 자비가 없었다.
펑!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놈의 목에 채워져 있던 리미터가 폭발했다. 선혈이 분수처럼 튀어 올라 천장을 적셨다. 도진은 그 끔찍한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피비린내를 심장 깊숙이 들이마시며 이 지옥의 감각을 각인시켰다.
천장에서 다시 우윳빛 수면가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일 차의 유희를 끝내겠다는 운영국의 신호였다.
안개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도진은 비틀거리며 철수의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차갑게 식어가는, 그리고 끝내 감기지 못한 철수의 눈을 도진이 거친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철수 형님…… 이제 시작이야.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내가 이 지옥을 그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줄게.”
같은 시각, 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져가던 서아란은 마지막 온 힘을 짜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피투성이가 된 채 키보드 위를 기어갔다.
“팀장님…… 약속 지켰어요…….”
아란이 기절하기 직전, 전력으로 누른 엔터(Enter) 키 하나.
그것은 박 대표의 보안팀이 필사적으로 막아 세웠던 방화벽에 생긴 아주 작은 ‘균열’을 파고들었다. 지금 당장 영상이 송출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 세계의 주요 플랫폼 속에 깊숙이 심어진 ‘타임밤(Time-bomb)’이었다.
[ D-Day : 48:00:00 ]
[ Project ‘ARENA’ Live Disclosure Countdown Started ]
전 세계의 유튜브 메인 페이지, 타임스퀘어의 광고판, 주요 언론사의 메인 홈페이지 구석에 아주 작은 검은색 카운트다운 숫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하지만 48시간 뒤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폭발시킬 복수의 도화선이었다.
강태식은 수면가스가 방 안을 가득 채울 때까지 도진의 곁을 지켰다. 전신에 수십 개의 자상을 입고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가스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도진의 몸을 받쳐 들며 낮게 읊조렸다.
“잘 버텼다, 한도진. 내일은…… 더 잔인해질 거다.”
태식의 거대한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1일 차 프로토콜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모니터 너머로 이 장관을 지켜보던 박현석 대표는 소름 끼치는 흥분감을 느끼며 와인을 들이켰다. 도진이 보여준 의외의 무력과 잔혹함이 오히려 판돈을 키우는 최고의 구경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한도진. 죽기 전까지 마음껏 발버둥 쳐봐. 그게 네 몸값을 더 올려줄 테니까.”
박 대표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모니터를 껐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방금 본 영상이 그의 생애 마지막 ‘안락한 유희’였다는 사실을.
1일 차 생존자 31명.
아레나의 공기는 이제 단순한 살기를 넘어, 거대한 복수의 향취로 변하고 있었다. 지옥의 라이브 쇼, 그 진짜 서막이 내일의 태양과 함께 타오를 준비를 마쳤다.
[오전 11:00 - 3층 식당가, 피의 식탁]최상층 안테나실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 3층 식당가는 이미 문자 그대로의 지옥도였다. 사방에는 찌그러지고 깨진 스테인리스 식판들이 비명처럼 나뒹굴고 있었고, 바닥은 타일 틈새까지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진득한 선혈로 가득했다. 비릿한 쇠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의 악취가 뒤섞인 그 지옥의 중심에, 연쇄살인마 ‘백도끼’가 버티고 서 있었다.그는 오늘의 웨폰 박스를 독차지한 듯, 양손에 묵직한 수납용 손도끼 두 자루를 들고 도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의 눈에는 인간의 이성 대신 광기 어린 즐거움만이 가득했다.“어이, 태화그룹 엘리트 팀장님. 어제 그 늙은 형사 피 맛은 어땠어? 내가 살짝 맛봤는데, 아주 달콤하더라고. 늙은 것들이 죽을 때 내뱉는 그 비릿한 단내가 사람을 아주 미치게 하거든.”백도끼가 낄낄거리며 도진을 향해 폭발적으로 돌진했다. 횡으로 사정없이 그어지는 도끼날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파찰음을 냈다.치익!도진의 수감복 셔츠가 찢어짐과 동시에 가슴팍에 긴 붉은 선이 그어졌다. 뜨거운 선혈이 솟구쳤지만 도진은 신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뜨거운 통증을 냉정한 이성의 기폭제 삼아, 백도끼의 팔목을 악착같이 낚아챘다.“그 더러운 주둥이부터 찢어주지.”콰드득!유도의 ‘곁누르기’에서 파생된 실전 타격이 백도끼의 옆구리에 정확히 꽂혔다. 갈비뼈가 무력하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텅 빈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놈은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백도끼는 통각을 상실한 듯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반대쪽 손에 든 도끼를 휘둘러 도진의 어깨를 그대로 찍어 눌렀다.콰직!날카로운 도끼날이 도진의 어깨뼈에 깊숙이 박혔다. 골막을 파고드는 극심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를 강타했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지만 도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도끼가 박힌 어깨를 내어주는 대신, 놈과의 거리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무거운 강철 식판을 움켜쥐었다.깡! 콰직! 퍽!식판의
[오전 09:30 - 중앙 통제실 하부 패널]“막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도진의 미간이 칼날처럼 깊게 파였다. 구석진 통신 배전반 뒤, 먼지 쌓인 틈새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서아란이 사색이 된 채 태블릿 화면을 도진에게 들이밀었다. 어제 도진이 목숨을 걸고 확보했던 찰나의 기회, 전 세계 플랫폼에 복수의 서막을 알리려던 라이브 카운트다운 영상은 이제 핏빛처럼 붉은 ‘ACCESS DENIED’ 메시지만을 비명처럼 뱉어내고 있었다.“박 대표 측의 전문 보안팀, ‘블랙 가디언’이에요. 놈들이 아레나 전용 위성망을 제외한 모든 외부 통신망을 물리적으로 절단해 버렸어요. 소프트웨어 해킹으론 답이 없어요. 지금 상태론 카운트다운 숫자만 무한 반복될 뿐, 실제 살육 현장의 영상은 단 한 프레임도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아란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젖어 있었다. 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박현석, 그 노회한 여우는 영리했다. 단순히 방화벽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청라 교도소라는 공간 자체를 전 세계로부터 격리된 ‘디지털의 무인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화면을 보며 그저 ‘서버 오류’ 정도로 생각하며 창을 닫아버릴 터였고, 도진 일행의 목소리는 이 콘크리트 벽 안에 갇혀 죽어갈 운명이었다.같은 시각, 태화그룹 최상층 집무실.박 대표는 최고급 시가를 태우며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모니터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승리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화면 속에는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도진과 아란의 고립된 모습이 찍히고 있었다.“한도진, 네가 쥐새끼처럼 시스템의 틈새를 파고들 줄 알았겠지. 하지만 이 판의 주인은 나다. 통신이 안 되는 라이브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쇼인가?”박 대표는 시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곁에 선 조 상무에게 차갑게 명령했다.“2일 차 게임 중에 저항하는 놈들은 즉시 처단해. 특히 한도진, 그놈은 손가락 하나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버려라. 사형수가 교도소에서 사고로 죽는
치익―.지독하고도 비릿한 수면가스가 걷히자마자 도진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폐부 깊숙이 박히는 냉기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지만, 도진은 이를 악물며 감각을 깨웠다. 어제 죽은 임철수 형사의 피가 검게 굳어 눌어붙은 수감복이 거친 사포처럼 살갗을 자극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자, 도진이 이 지옥에서 반드시 살아나가야 할 이유였다.도진의 눈은 어제보다 더 깊고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전략팀장의 치밀함뿐만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생존본능, 그리고 소중한 이를 잃은 자의 서늘한 광기가 공존하고 있었다.“팀장님, 정신이 좀... 드세요?”구석진 벽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서아란이 핼쑥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어제 무기고에서 겪은 충격 때문인지 그녀의 손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배식받은 것으로 보이는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이 들려 있었다. 도진은 말없이 빵을 받아 입에 넣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기계적으로 씹어 삼켰다. 근육을 움직일 최소한의 연료, 복수를 완수하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했다.“임 형사님은... 제가 환경미화원들이 오기 전에 수습해 두려고 했지만... 안 됐어요.”아란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교도소의 시스템은 잔인했다. 시신은 그저 치워야 할 오물에 불과했다. 도진은 운동장 한쪽으로 실려 나가는 검은색 시신 가방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 이곳은 인간의 존엄성이 완전히 삭제된 아레나였다.“언제까지 죽은 놈 가방만 보고 있을 거냐.”뒤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 강태식이었다. 그는 어제 수십 개의 칼날을 받아냈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다만 그의 눈가에는 임철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짙은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태식 씨, 몸은 괜찮습니까.”도진의 물음에 태식은 대답 대신 자신의 거대한 주먹을 쥐어 보였다.“내 몸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1일 차가
[청라 특수 교도소, 제7구역 메인 로비]제한 시간 종료 30분 전.교도소 내부를 가득 채웠던 광기 어린 비명은 잦아들었으나,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더욱 지독한 침묵과 경계였다. 생존한 죄수들은 무기를 반납함에 넣기 위해 로비로 모여들었다.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다. 반납함 앞에서 마지막 기습을 당해 목의 ‘리미터’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눈동자를 충혈시켰다.그 피 냄새 진동하는 인간 군상 사이로, 유령처럼 서늘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한도진이었다.그의 수감복은 이미 원주인을 알 수 없는 선혈로 검붉게 찌들어 있었다. 한 손에는 무기고에서 확보한 전술 나이프가, 다른 한 손에는 철수의 유품인 끊어진 수갑 체인이 감겨 있었다. 도진의 시선은 단 한 놈, 철수의 머리를 가격했던 용태의 최측근 부하 ‘작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놈은 아직 식지도 않은 임철수의 시신 앞에서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피 묻은 쇠파이프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자신의 무용담을 떠들며 낄낄거리고 있었다.“봤냐? 형사 놈이라 그런지 맷집은 좋더만. 대가리가 깨져도 안 놓고 버티기에 그냥 확…….”“그 쇠파이프.”낮게 가라앉은, 그러나 로비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도진의 목소리가 작두의 말을 끊었다. 작두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 도진의 눈동자엔 이미 살육의 공식이 완성되어 있었다.“네 무덤 파는 도구로 써라.”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진의 신형이 사라졌다.슈슉!인간의 반사신경을 비웃는 속도였다. 도진은 바닥을 차고 올라와 작두의 목에 수갑 체인을 와이어처럼 감아 올렸다. 놈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비명이 목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찰나, 도진의 전술 나이프가 놈의 가슴팍을 정교하게 파고들었다.서걱, 서걱, 서걱!심장과 폐, 그리고 대동맥.단 세 번의 자창으로 놈의 생명 줄기를 끊어버렸다. 주변에 있던 용태의 조폭들이 무기를 치켜들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도진은 쓰러지는 작두의 몸을 발로 차내며, 놈이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빼앗아 반납함에
퍼억!고막을 마비시키는 둔탁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좁은 복도를 가득 메웠다.무기고 문턱에서 도진의 등에 튀어 오른 것은 차가운 식은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금까지 곁에서 숨 쉬던 동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뜨겁고 진득한 피였다.“컥…….”임철수의 머리에서 검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진의 뒤통수를 노리고 휘둘러진 쇠파이프를, 철수가 제 몸을 던져 대신 받아낸 것이었다. 머리뼈가 깨지는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철수는 짐승 같은 괴력을 발휘해 공격한 놈의 허리를 죽기 살기로 껴안았다.“가…… 한 팀장……. 저 아이부터…… 제발……!”철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도진의 가슴을 난도질했다.그는 형사였다.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시민 '서아란'을 구해야 한다는 본능에 충실했다.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유일한 증인이자, 이 지옥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범죄자'가 아닌 '사람'으로 믿어준 유일한 조력자. 철수의 눈동자가 서서히 뒤집히며 고개가 꺾였다.철수가 끝까지 지키려던 도진의 수감복은 이제 원주인의 피로 완전히 젖어 들었다.뚝.도진의 머릿속에서 정교하게 유지되던 이성의 퓨즈가 끊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태화그룹 최고의 전략팀장으로서 유지해온 치밀한 계산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연민도 사라졌다.바닥에 떨어진 철수의 녹슨 수갑을 집어 든 도진의 눈이 검은 광기로 번뜩였다. 그건 더 이상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자신의 세계를 지탱하던 유일한 선의(善意)가 살해당하는 순간, 도진의 영혼은 완전한 악(惡)으로 침잠했다.“전부…… 죽인다.”도진의 움직임은 더 이상 '유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살육과 파괴만을 위해 설계된 잔혹한 사냥이었다.“이, 이 새끼가!”아란을 겁탈하려던 조폭 한 놈이 당황해 칼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도진의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도진은 놈의 손목을 낚아채는 동시에 철수의 수갑 체인을 놈의 목에 휘감았다.드드득!강철 체인이 살점을 파고들며 목뼈를 조였다.
로비의 공기는 비릿한 철분 냄새로 포화 상태였다.도진은 살귀의 손목을 낚아챔과 동시에 놈의 가슴팍 깊숙이 파고들었다. 전직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그의 몸에는 상대를 바닥에 꽂아 넣는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에, 그리고 핏줄 마디마디에 각인되어 있었다. 전략팀장 시절의 냉철한 두뇌가 '인체 파괴의 최단 경로'를 계산하면, 단련된 육체는 오차 없이 그 명령을 수행했다.콰드득!허공을 가르는 비명보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먼저였다. 도진의 전신 근육이 강궁의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고, 곧이어 유도의 정수라 불리는 '허벅다리걸기'가 작렬했다.살귀의 육중한 거구는 중력을 상실한 종이 인형처럼 공중에서 뒤집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혔다.커헉! 충격으로 녀석의 입에서 선혈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도진의 눈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감정 섞인 분노가 아니라, 방해물을 제거하는 기계적인 정교함만이 그곳에 있었다.도진은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어깨 위로 꺾어 올렸다. 관절이 한계를 넘어 비틀리는 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놈이 고통에 찬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도록, 도진은 안면을 향해 묵직한 주먹을 내리꽂았다.퍽, 퍼억!도진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튀어 오른 핏방울이 차가운 눈동자에 맺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주변을 에워싸던 죄수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0번 사형수. 단순히 머리만 좋은 줄 알았던 남자가 보여준 기괴할 정도의 냉정함과 폭력성에 압도당한 것이다.“아란아! 안 돼!”그때, 복도 끝 여사동 방향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해킹 실패 후 통신실을 빠져나오던 서아란이 세 명의 거친 죄수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어두운 무기고 안쪽으로 끌려가고 있었다.“비켜, 이 새끼들아!”도진이 아란을 구하기 위해 발을 뗐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어둠이었다. 연쇄살인마 백도끼. 그는 소리 없이 나타나 날카롭게 간 칫솔 칼을 휘두르며 도진의 급소를 노렸다. 뱀처럼 낮고 빠른 움직임이었다.스윽.도진이 간신히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