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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지옥의 조력자: 증명의 시간

Author: nawoohj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11:45:54

청라 특수 교도소의 아침은 기계적인 수감자 분류와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해풍으로 시작되었다.

이곳의 시간은 밖의 세상과는 다르게 흘렀다. 초 단위로 승부를 보던 태화그룹의 전략팀장 시절, 도진에게 시간은 곧 돈이었으나 이곳에서의 시간은 곧 ‘생존의 유통기한’이었다. 입소 사흘.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진은 특유의 관찰력으로 이 거대한 콘크리트 미궁의 생리를 완벽히 파악해냈다.

교도관들은 신념 대신 돈과 권력에 매수되어 눈을 감는 법을 먼저 배웠고, 죄수들은 각자의 죄질과 이익에 따라 하이에나처럼 무리를 지었다.

그중에서도 도진이 주목한 곳은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이자 고압의 스팀이 시야를 가리는 ‘중앙 세탁실’이었다.

치익-!

세탁실 내부를 가득 채운 희뿌연 증기 사이로 도진이 땀에 젖은 수감복을 세탁기에 밀어 넣었다. 거친 쇳소리가 진동하는 가운데, 도진은 옆자리에서 묵묵히 시트를 정리하는 사내를 곁눈질했다.

임철수. 전직 강력계 형사이자, 지금은 아동 성범죄자라는 누명을 쓰고 이곳에 들어온 사내. 하지만 도진은 알고 있었다. 그가 누명을 쓴 진짜 이유는 1년 전, 박현석 대표의 비자금 수사팀에 소속되어 핵심적인 증거를 수집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도진과 철수의 첫 만남은 사흘 전, 입소 첫날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도진은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때, 구석에서 조폭 무리에게 둘러싸인 채 린치를 당할 뻔한 철수를 목격했다. 교도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돌려 자리를 피했다. 명백한 '사주'에 의한 공격이었다.

조폭 하나가 너클을 낀 주먹을 휘두르려던 찰나, 도진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식판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하수의 방식이 아니었다. 도진은 철수의 어깨를 짚으며, 오직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사건번호 2024-고합-402, 박현석의 비자금 세탁 장부. 그거 제가 만들었습니다.”

철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자신을 사형수로 만든 그 지옥 같은 사건, 모든 진실의 열쇠인 '장부'의 설계자가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온 것이다. 철수가 경악에 차 굳어버린 틈을 타, 도진은 달려드는 조폭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메쳐버렸다.

콰당!

유도의 '손기술'이 작렬하며 조폭의 머리가 시멘트 바닥에 처박혔다. 도진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젓가락을 집어 들어 놈의 목울대에 갖다 대며 차갑게 경고했다.

“운영국에 전해라. 아직은 이 고기를 상하게 할 때가 아니라고.”

그것이 두 남자의 ’피의 계약'이자, 도진이 이 지옥에서 처음으로 확보한 조력자와의 만남이었다.

다시 현재, 중앙 세탁실. 자욱한 스팀이 두 사람의 대화를 외부로부터 차단해주었다. 철수는 능숙하게 거친 무명 시트를 접으며 정면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한 장부... 그게 사실이라면 박현석이 자네를 살려둘 리가 없는데.”

“그래서 여기 보낸 겁니다. 밖에서 죽이면 뒤처리가 귀찮으니까, ‘아레나’라는 합법적인 도살장에서 죽이려고요.”

도진이 뜨겁게 달궈진 스팀 다리미를 셔츠 위로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다리미 아래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박 대표가 구축한 '라이브 서버' 주소, 알아냈습니까? 형사 시절의 인맥이든, 이곳의 통신 보안망을 뚫든.”

철수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가족을 위협받고 이곳에 들어온 그에게 도진의 제안은 너무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도진의 눈동자에 서린 서늘한 확신이 철수의 무너진 정의감을 다시금 자극했다. 철수가 이내 결심한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도소 관리동 통신망을 타고 다크웹으로 연결되는 백도어가 있어. 놈들은 이걸 'VVIP 도박판'으로 부르더군. 전 세계 부호들이 사형수들의 생사에 돈을 거는 거지. 한 팀장, 아니 한도진... 자네 몸값이 지금 역대 최고치야.”

철수의 목소리에 깊은 분노와 자괴감이 서려 있었다.

“사망 정배당률 1.2배. 놈들은 자네가 1일 차 프로토콜이 시작되자마자 30분도 못 버티고 죽는 쪽에 돈을 걸고 있어.”

누명을 쓴 형사와 버려진 사냥개. 목적은 달랐지만, 그들의 심장에는 똑같이 박현석이라는 거대한 악을 향한 칼날이 돋아나고 있었다.

도진은 다리미를 내려놓고 철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도박판... 제가 직접 판을 키워보려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철수의 투박한 손이 멈칫했다.

“판을 키우다니? 무슨 소리야.”

“놈들이 설계한 대로 죽어주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놈들이 자네의 정의를 짓밟고 나의 완벽함을 비웃었으니, 우리도 그들이 가장 아끼는 것을 건드려야죠.”

도진의 눈에 비릿한 광기가 스쳤다.

“전 세계 부호들이 모인 그 도박판을, 박현석의 파멸을 생중계하는 '단두대'로 만들 겁니다. 666 프로토콜이 시작되는 날, 우리는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설 겁니다.”

증기 사이로 두 남자의 시선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부딪혔다.

철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눈앞의 사내라면, 태화그룹의 모든 판을 설계했던 이 전략가라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얼 하면 되지?”

철수의 짧은 질문은 동맹의 수락이었다. 도진은 세탁실 구석의 감시카메라를 슬쩍 훑으며 대답했다.

“먼저, 이곳에서 가장 입이 가벼운 간수 한 명을 포섭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레나 법안의 허점... '생존자 전원 사면' 조항을 건드릴 준비를 하죠.”

복수를 위한 지옥의 동맹이 맺어지는 순간, 세탁실의 고압 스팀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압력솥처럼, 청라 교도소를 뒤흔들 거대한 폭풍의 전조였다.

박현석이 설계한 아레나. 하지만 그 안에서 한도진은 자신만의 새로운 경기 규칙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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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광장, 오후 2시]대한민국의 심장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점심시간을 갓 넘긴 직장인들의 발걸음과 횡단보도를 가득 메운 인파, 그리고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차량의 행렬.하지만 거대한 빌딩 숲 사이, 세종대왕상을 마주한 대형 LED 전광판에 ‘뉴스 특보’ 자막이 핏빛으로 뜨는 순간, 도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였다.[...결국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강력범죄 포화 상태 해결을 위한 '특수 교도소 내 특별 생존 프로토콜', 일명 '아레나 법'이 가결되었습니다.]전광판 위로 ‘서바이벌’, ‘합법적 살인’이라는 단어들이 기괴하게 점멸했다. 화면 속 앵커의 목소리는 단호했으나, 그 내용은 인륜을 저버린 광기에 가까웠다.겉으로는 교도소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고 강력범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상은 달랐다. 그것은 태화그룹 박현석 대표를 필두로 한 기득권층이 설계한 ‘합법적 살육장’의 탄생이었다. 그들에게 감옥은 이제 교화의 장소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눈엣가시들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비공개 소각장이자, 죽음을 구경하며 배팅하는 잔혹한 유희장일 뿐이었다.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경악했고, 누군가는 환호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광기의 법안이 가장 먼저 누구의 목을 겨누게 될지.[태화그룹 본사 32층, 전략기획팀장실]통유리창 너머로 아수라장이 된 광장을 내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태화그룹의 전략기획 팀장, 한도진.명문대 최연소 졸업, 입사 5년 만의 초고속 승진. 세간에서 '황태자'라 불리는 그가 기획한 사업 중 실패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다크 네이비 수트와 단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머리카락 아래,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국가가 범죄자들을 사냥터에 몰아넣는다는 기괴한 뉴스보다, 자신을 둘러싼 이 기묘한 정막이 더 불길했다. 3개월 전, 박 대표의 은밀한 비자금 세탁 경로를 거부했던 날부터 전략팀 주변의 공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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