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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아이
도깨비의 아이
Author: 쌍춘

1화

Author: 쌍춘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4-14 13:14:27

비가 세차게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병원 장례식장 한켠, 하얀 형광등 아래에 아홉 살짜리 소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누가 입혀 주었는지 모를 검은 옷은 소매가 손등을 다 덮을 만큼 컸다.

소년의 이름은 독고춘.

제단 위에는 영정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사진 속의 아빠와 엄마는 작년 가을 동네 사진관에서 찍던 날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독고춘은 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하얬다.

향냄새와 육개장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어른들은 저마다 바쁘게 오갔지만, 아이 곁에 와서 앉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복도에서는 어른들이 목소리를 낮춰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애는 누가 데려가는데."

"애 엄마 쪽은? 홍 씨네 연락해 봐."

"거긴 연락할 데가 없대. 원래 친정이 없었다잖아."

어른들이 말하는 '애'가 자신이라는 것쯤은 독고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말들이 들리지 않는 척 무릎을 끌어안았다.

───

불과 하루 전 아침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독고춘은 눈이 반쯤 감긴 채 현관 앞에 서서 출근하는 부모를 배웅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바로잡아 주었고, 아빠는 구두를 신으며 연신 시계를 흘끔거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어깨와 아빠의 등 뒤에서 검은 연기가 실처럼 가늘게 풀려나와, 두 사람의 몸을 천천히 감고 있었다.

"엄마… 아빠…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와."

부모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우리 춘,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얼른 들어가서 좀 더 자렴."

엄마의 손이 머리를 한 번 쓸고 지나갔지만, 잠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가슴 한가운데가 서늘했고,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가지 말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달에도 배가 아프다고 떼를 썼다가 아빠를 지각하게 만들어 한참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또 혼이 날까 봐, 독고춘은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녀올게. 학교 끝나면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 먹고."

현관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몇 시간 뒤, 두 사람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내가… 말렸더라면…"

독고춘은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연기를 본 사람은 자신뿐이었는데, 고작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바로 그때였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장의 영정에서 푸른 불꽃이 하나씩 피어올랐다. 불꽃은 제단을 내려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독고춘의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독고춘은 겁먹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두 손으로 감싸 쥐었는데도 뜨겁지 않았다.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처럼, 엄마가 이불을 덮어 줄 때처럼 그저 따뜻하기만 했다.

'걱정하지 마라, 춘아.'

'넌 혼자가 아니야. 엄마가 곁에 있을게.'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손바닥을 타고 가슴으로 곧장 흘러드는 목소리였다.

그제야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빠… 엄마…"

독고춘은 불꽃을 끌어안은 채 울고 또 울었고, 하얀 방 안은 아이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

얼마나 울었을까.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난 후,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비 냄새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여인의 옷자락에는 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기이할 만큼 고운 얼굴의 여인은 독고춘의 앞으로 다가와, 품에 안긴 두 개의 불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그들을 보내 주지 않겠느냐, 아이야."

독고춘은 고개를 저으며 불꽃을 더 꼭 끌어안았다.

"싫어요."

"그리 오래 붙들고 있으면 저들이 길을 잃는단다."

꾸짖는 것도 달래는 것도 아닌, 그저 조용한 목소리였다. 불꽃은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독고춘의 품을 빠져나가 여인에게 안겼다.

여인은 불꽃과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던 그녀가 이윽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리하마."

누구에게 하는 대답인지 알 수 없었다.

두 불꽃은 독고춘의 곁으로 돌아와 뺨을 스치듯 한 바퀴를 돌더니, 팟 하고 사라졌다. 여인이 눈을 뜨고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래야 네 부모의 마음이 편할 게야."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홀린 듯 그 손을 잡았다. 방금 전의 불꽃처럼 따뜻한 손이었다.

여인이 독고춘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서자, 다투던 어른들이 일제히 말을 멈췄다. 누구냐고,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물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아무도 두 사람을 막아서지 않았다.

독고춘은 걸어가다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영정 속의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

깊은 산속,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오래된 한옥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쉽게 걷히지 않는 곳이었다. 지붕에는 이끼가 얹혀 있었고, 마당 옆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낮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여인이 알려 준 것은 '명옥'이라는 이름 하나뿐이었다.

첫 겨울에는 장작을 패다가 도끼 자루에 손바닥이 다 까지기도 했다. 처음 지은 밥은 새카맣게 탔지만 명옥은 말없이 그 밥을 다 먹어 주었다.

엄마 아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머리맡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주었고, 마당에 떠다니는 푸른 불꽃과 검은 연기가 무엇인지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언젠가 한 번은 독고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너는 내 후손이란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도 명옥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독고춘은 어느 해 봄 다친 다람쥐 한 마리를 주워다 기르기도 했다. 산 아래로 내려갈 일은 없었고,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끔 산 아래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날이면 대문을 열어 주고 마당을 쓸었을 뿐, 안채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이야, 오늘은 제법 쌀쌀하구나. 방이 차지 않게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매일 새벽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고 밥을 짓는 사이,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었다.

명옥은 늘 한복 차림이었고, 깊고 고요한 눈에는 어딘가 쓸쓸한 빛이 어려 있었다.

독고춘은 가끔 그런 명옥을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하지만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명옥이 말하고 싶어 하는 날이 오면, 그때 들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스무 해가 흘렀다.

아홉 살의 소년은 스물아홉 살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산에 들어온 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키와 몸집뿐이었다.

명옥의 얼굴은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스무 해 전 처음 보았던 그 고운 얼굴 그대로였다.

그리고 낙엽이 조금씩 떨어지는 어느 가을.

안개가 유난히 짙게 내려앉은 날, 두 여자가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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