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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별빛찬란
서다윤은 CCTV 화면을 통해 지승현과 안효민이 차례로 서재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점심에도 한 번 일을 치러 놓고 저녁이 되자 또 참지 못하고 찾아가는 걸 보니 중독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안효민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어 얼핏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승현의 앞에 도착해 겉옷을 벗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고, 안효민은 기다란 실크 소재의 천을 꺼내 지승현의 눈을 가렸다.

그다음 행동을 본 서다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승현이 향수 한 병을 집어 들어 안효민의 몸에 뿌렸다.

그 향수는 서다윤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서다윤이 직접 만든 향수이자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던 향수였기 때문이다.

서다윤은 같은 향의 향수를 여러 병 만들어 집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지승현이 그 향수를 챙겨가서 안효민에게 뿌린 것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두 사람의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서다윤은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안효민이 한 손으로 지승현의 목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지승현의 가슴을 매만졌다.

“우리 계속 이러다가 다윤 씨한테 들키면 어떡해?”

지승현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들키면 뭐 어때? 나는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 치료를 받은 것뿐인데.”

지승현은 안효민의 턱을 쥐고 말했다.

“나는 내 눈을 가리고 다윤이 향수 냄새를 맡으며 너를 다윤이로 상상해. 내가 이런 일들을 하는 건 전부 하루빨리 회복하기 위해서야. 잘못한 건 다윤이지. 다윤이가 나를 기쁘게 해주지 못하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너를 대역으로 삼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여자 마음은 그렇지 않은걸. 승현 씨는 나한테 손으로만 하라고 했지만, 다윤 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괴로워할 거야...”

“다윤이는 이해할 거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잘 달래주면 되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지승현의 말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너는 다윤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서 그래. 다윤이가 나를 짝사랑하던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선택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아? 다른 사람들은 내가 거절하면 금방 포기했지만, 다윤이는 내게 몇 번이나 거절당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한테 달라붙었기 때문이야.”

“너였으면 어떨 것 같아? 2년 동안 매달려서 겨우 얻은 사람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 다윤이는 평생 나를 떠날 수 없어. 걔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서다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지승현을 사랑해서 용기를 냈던 건데 그게 지승현에게는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서다윤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사랑이 지승현에게는 다른 여자 앞에서 자랑할 만한 전리품이었다.

서다윤은 두 눈에 눈물이 맺힌 채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습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했다.

서다윤은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온몸이 완전히 차갑게 굳어버렸다.

지승현과 안효민은 그 뒤로도 쭉 대화를 이어갔지만 서다윤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안효민이 지승현의 앞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 한 마리의 개처럼 보였을 때, 서다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

길고도 추운 밤이었다.

지난 6년보다도 훨씬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어 서다윤은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지승현과 안효민이 함께 다이닝룸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젯밤 욕구를 해소한 덕분인지 둘 다 안색이 좋아 보였다.

서다윤은 입맛이 없었다. 어젯밤 심하게 토했는데 오늘 아침 다시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되니 또다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서다윤이 아침을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지승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침 안 먹을 거야?”

“응.”

“어디 가?”

“출근하러.”

머릿속에 어젯밤 보았던 성인용품이 떠오른 지승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네 공방은 그냥 처분해. 향수를 만들고 싶은 거라면 집에서 해. 굳이 밖에 나갈 필요는 없잖아.”

지승현이 보기에 서다윤의 꿈은 쓸데없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지승현은 서다윤의 꿈을 무시했다.

서다윤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지면서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서다윤은 지승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내게 취미가 아니라 일이야.”

“네가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내가 너를 먹여 살리지 못할 것 같아?”

“그러면 안 선생님한테도 다른 일은 다 그만두고 너만 전담하라고 하지 그래? 그럴 만한 돈은 있을 거 아니야.”

지승현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너랑 안 선생님을 비교하는 거야? 안 선생님은 업계에서 유명한 심리상담가야. 상도 많이 받았고 어떤 학술대회에서든 이름만 나오면 다들 존경하는 사람이야.”

지승현의 목소리에 담긴 존경심이 곧 경멸로 바뀌었다.

“그런데 너는 뭐야? 네 그 조그마한 공방에 한 달에 손님이 두세 명이나 있긴 해? 네가 내 아내만 아니었어도 아무도 네가 누구인지 몰랐을 거야.”

옆에서 구경만 하던 안효민이 이때 가식적으로 서다윤의 편을 들었다.

겉으로는 서다윤을 두둔하는 듯했지만 눈빛에 어린 통쾌함은 전혀 감추지 않았다.

“승현 씨, 다윤 씨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안 되죠. 지금은 이룬 게 없어도 언젠가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지승현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마이너하고 수준 낮은, 어디 내놓기도 민망한 향수로 무슨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누군가 돈을 내고 구매해야 가치가 있는 거죠. 아무도 찾지 않으면 그건 자기만족일 뿐이에요.”

서다윤은 지승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는 너무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지승현이 달라진 게 아니라 서다윤이 드디어 콩깍지가 씌지 않은 시선으로 지승현을 바라보는 걸지도 몰랐다.

한 사람을 사랑할 때는 단점마저 장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되면 그 사람의 본모습이 그제야 드러나는 법이었다.

서다윤의 입가에 경멸의 미소가 걸렸다.

서다윤은 자신을 깎아내리는 지승현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말싸움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반격이었다.

“자기만족이라도 내가 즐거우면 됐지. 내 일에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서다윤은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기 아내한테 못되게 굴면 재물 운도 막힌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말 가려 가면서 하는 게 좋을 거야.”

평온한 얼굴로 그런 말을 남긴 뒤 서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점차 사라지는 서다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승현은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먼저 지승현을 좋아해 쫓아다닌 사람은 서다윤이었고, 그동안 지승현은 서다윤의 순종과 포용, 양보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서다윤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서서히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지승현은 그런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서다윤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지승현의 머릿속에 다시금 그 성인용품이 떠올랐다.

설마 다른 남자가 생긴 걸까?

어두운 얼굴로 다이닝룸에서 나온 지승현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다윤에게 사람 두 명을 붙여서 24시간 지켜보도록 하게 해. 절대 이성과 접촉하게 하지 말고, 혹시라도 낯선 남자가 서다윤의 공방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바로 제지해.”

“알겠습니다, 대표님.”

전화를 끊은 후 지승현의 얼굴에서 우려가 서서히 사라졌다.

대신 두 눈동자에 강한 소유욕이 불타올랐다.

‘서다윤, 나는 절대 다른 사람이 네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할 거야. 그 누구도 내 곁에서 너를 빼앗아 가게 두지 않겠어.’

그 뒤로 며칠 동안 일이 바빴던 탓인지 서다윤과 지승현은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다시 만났을 때 지승현은 서다윤이 쓰는 향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금세 발견했다.

저녁때쯤 지승현은 접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술을 조금 마신 지승현은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서다윤이 섹시한 실크 파자마를 입고 방 안의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걸 보았다.

달빛이 내려앉아 서다윤의 아름다운 몸 선을 언뜻언뜻 비추었다.

쇄골, 어깨선, 가녀린 허리, 모든 곳이 정성스럽게 빚어낸 예술품 같았다.

지승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곧바로 서다윤의 뒤로 걸어가자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며 낯선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지승현은 뒤에서 서다윤을 끌어안았다.

“향수 바꿨어?”

“응.”

“오늘 밤... 시도해 봐도 돼?”

지승현의 몸에서 욕망이 꿈틀거렸다.

술 때문인지, 서다윤이 너무 매혹적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고 싶었다.

서다윤은 천천히 발꿈치를 들더니 지승현의 귓가에 대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 나 생리 중이야.”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기분이 잡쳤다.

서다윤은 말을 마친 뒤 화장실로 향했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지승현은 방에 없었다.

어딘가를 힐끗 바라본 서다윤의 눈빛에 순간 치밀함과 서늘함이 떠올랐다. 이내 서다윤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CCTV를 확인했다.

서재 안으로 들어가는 안효민의 모습을 보자 서다윤의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

이제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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