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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작가: 별빛찬란
두 사람은 어제와 똑같이 행동했다.

서다윤은 지승현이 안효민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휴대폰을 껐다.

어젯밤 이미 괴로울 정도로 토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

서재 안.

안효민은 지승현을 ‘정성껏’ 치료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해 참지 못하고 긁었다.

마치 몸 전체에 알 수 없는 벌레가 달라붙은 것처럼 가려움은 점점 심해졌고, 안효민은 결국 온몸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승현 씨, 나 너무 간지러워...”

지승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마음이 간질거려서 못 참겠어?”

안효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슴팍을 벅벅 긁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몸이 너무 간지러워. 간지러워 죽겠어.”

서재 안의 조명은 꺼진 상태였고 오로지 촛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은은한 불빛이 더 분위기 있었고 지승현은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안효민의 말을 들은 지승현은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고 조명을 켰다. 그 순간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승현 씨,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안효민의 눈처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위로 붉은 두드러기가 빼곡하게 생겼다. 얼핏 보면 수많은 불개미가 안효민의 피부를 물어뜯고 있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혹시 뭐 잘못 먹어서 알레르기가 생긴 거 아니야?”

지승현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야. 나 잘못 먹은 거 없어.”

안효민은 곰곰이 되짚어 보더니 불현듯 뭔가 떠오른 건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향수를 바라봤다.

“혹시 저 새 향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승현 씨, 다윤 씨가 무슨 좋은 걸 만들 수 있겠어? 분명 다윤 씨가 만든 싸구려 향수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긴 걸 거야!”

안효민은 미친 듯이 가려워 자기도 모르게 계속 몸을 긁었다.

붉은 두드러기는 점점 퍼져 나가 가슴뿐만 아니라 목, 심지어 얼굴에까지 생겼고 그 탓에 아주 끔찍해 보였다.

“가자.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

지승현은 서다윤이 만든 향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다급히 안효민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

그날 밤 서다윤은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

잠을 잘 자니 입맛도 돌아와서 아침 식사 때 평소보다 더 많이 먹었다.

서다윤의 예상대로 지승현과 안효민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러다 서다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공방으로 향하려고 할 때쯤에 안효민이 슬금슬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안효민은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서다윤은 안효민의 얼굴에 붉은 두드러기가 가득 생긴 걸 똑똑히 보았다.

서다윤은 일부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 안 선생님. 얼굴이 왜 그래요?”

안효민은 애써 입술을 달싹였다.

“저...”

“내가 어젯밤에 안 선생님에게 네가 만든 향수를 한 병 선물했어. 서다윤, 안 그래도 너한테 물으려고 했어. 대체 무슨 원료를 사용했길래 안 선생님이 이렇게 심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거야?”

안효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온 지승현이 대신 대답했다.

지승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서다윤에게 자신이 안효민에게 향수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정확한 처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향수의 성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증상만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 있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승현은 서다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서다윤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승현,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너 내 공방 무시했었잖아. 내가 만든 향수는 마이너하고 수준이 낮아서 어디 내놓기도 민망하다며. 그런데 그렇게 무시하던 향수를 상도 많이 받았고 어떤 학술대회에서든 이름만 나오면 다들 존경하는 대단한 안 선생님한테 준 거야? 지승현, 그건 안 선생님을 모욕하는 거잖아!”

지승현은 서다윤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뺨을 세게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효민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야만 했다.

“다윤 씨, 사실 어제 다윤 씨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길래 제가 승현 씨에게 한 병 선물해 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제가 향수 원료에 알레르기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고요.”

“그렇군요...”

서다윤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 안효민의 상태를 살펴봤다.

“어머, 정말 심각하네요. 아무래도 안 선생님은 체질이 좀 특이한가 봐요. 앞으로는 조심하시고 아무거나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 향수의 성분은...”

“아, 그건 잠시 뒤에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가져가서 의사에게 보여주고 어떤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네, 고마워요.”

서다윤은 안효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선생님께서 제 향수를 인정해 주셨잖아요. 안 선생님처럼 지위도 높고 명성도 있는 분이 유명 브랜드 향수는 마다하고 제가 만든 향수를 좋아해 주셨다니, 역시 안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저도 곧 빛을 발하게 될 모양이에요!”

말을 마친 서다윤은 옆에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승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렇지, 여보?”

지승현과 안효민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상쾌해진 서다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안효민은 굳은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원망스러운 듯 말했다.

“승현 씨, 다음에 또 다윤 씨가 만든 저급한 향수를 나한테 뿌릴 거야?”

지승현은 안효민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사실 지승현은 조금 의아했다. 그날 식사할 때 자신이 했던 말과 오늘 서다윤이 비꼬듯 했던 말을 떠올려 봤을 때 과연 단순한 우연이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이상한데. 설마 다윤이가 뭔가를 발견한 걸까? 그럴 리가 없잖아.’

서다윤이 지승현을 몹시 사랑한다고 해도, 그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뭔가 낌새를 눈치챈다면 절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서다윤은 그만큼 지승현을 사랑했으니 분명히 질투하며 한바탕 소란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지승현은 번호를 확인하고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큰일입니다. 오늘 아침 회사 주가가 하한가에 도달했습니다.”

...

동시호가가 진행되던 15분 동안, 서다윤은 자신의 여러 연계 계좌를 동원하여 청수 그룹의 주식 거래 화면에 정상적인 거래량을 훨씬 웃도는 매도 주문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개인 투자자들은 엄청난 매도 물량을 보고 회사에 중대한 악재가 터진 것으로 오해해 너도나도 따라서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매도 물량은 넘쳐났지만 매수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주가는 곧장 곤두박질쳤다.

이제 서다윤이 매도 주문을 취소하지 않는 한, 주가는 하한가에 도달해 그대로 묶일 터였고 누구도 그것을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다.

아내한테 못되게 굴면 재물 운도 막힌다는 걸 서다윤은 지승현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서다윤은 이후 기분 좋게 공방으로 향했다.

서다윤의 공방은 강을 따라 이어진 백 년 된 거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회색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작은 건물의 벽면에는 털마삭줄이 빼곡하게 타고 올라가 있었다.

문 앞에는 황동으로 된 명패 하나가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다윤 공방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공방 안은 그리 크지 않았다. 1층은 개인 조향실이었고, 2층은 향료 보관실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긴 머리를 느슨하게 뒤로 묶은 서다윤은 곧 구리로 만들어진 증류기 앞에서 꽃잎을 식힌 뒤 얻은 에센셜 오일과 플로럴 워터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한 달 뒤, 서다윤은 ‘향기를 찾아서’라는 이름의 국제 조향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대회의 주최 측은 국내의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 엘라이였다.

엘라이는 향수, 의류, 주얼리, 가죽 제품 등 다양한 사업을 아우르는 기업인데 그중에서도 향수 사업의 비중이 가장 컸다.

서다윤은 그 대회를 굉장히 중요시했다. 만약 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엘라이와 협력할 기회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도도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승현이 했던 말처럼 지승현의 옆에 서 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서다윤이 아니게 될 것이다.

비록 서다윤이 숨기고 있는 거물 투자자 제이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단숨에 유명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신분을 이용해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서다윤이 금융에 뛰어든 것은 지승현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서다윤에게 영광이 아니라 치욕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고, 한 가정을 파탄 내기도 하는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숫자가 싫기도 했다.

서다윤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지난 이틀 동안 쓰레기 같은 남자와 여자에게 복수하느라 이미 작업 일정이 조금 지연됐다.

앞으로 서다윤은 대회 준비에 온전히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모든 것을 떨쳐 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

저녁이 되어 서다윤은 공방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안효민의 딸 안지아가 그림 하나를 들고 서다윤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안지아는 고개를 치켜들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만약 안지아의 본성을 몰랐더라면 서다윤은 정말 깜빡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아줌마, 저 방금 닭을 한 마리 그렸는데 잘 그렸는지 봐줄래요?”

서다윤은 고개를 숙여 그림을 봤다.

그림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암탉 한 마리가 텅 빈 닭장 안에 웅크리고 앉아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빗대어 말하려는 것 같았다. 서다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안지아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암탉은 알을 낳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알을 낳지 못하는 암탉이에요.”

안지아의 의도를 알아차린 서다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효민은 남자를 유혹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었고, 아이를 부추기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능숙했다.

서다윤은 화내지 않고 몸을 숙여 안지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그림을 받아 들더니 몇 초 동안 진지하게 살펴본 후 웃으며 말했다.

“잘 그렸네. 아줌마도 닭을 그릴 줄 알아. 나도 한 마리 그려줄까?”

“좋아요.”

안지아는 흔쾌히 대답했다.

서다윤은 안지아가 들고 있던 연필을 들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간 뒤 아주 빠른 속도로 빈 공간에 살이 오른 암탉 한 마리를 똑같이 그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암탉의 엉덩이 밑에 알 하나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알껍데기는 검은색이었고 갈라진 틈에서는 고름 같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심지어 알 위에는 파리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서다윤은 웃는 얼굴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봤지? 네가 그린 건 알을 낳지 못하는 암탉이지만 내가 그린 암탉은 알을 낳았어. 하지만 이 암탉은 썩은 알을 낳았지. 그러니까 썩은 알을 낳은 암탉이야.”

비록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안지아는 서다윤이 절대 좋은 의도로 그런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서다윤이 자신을 썩은 알에 빗대어 욕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지아는 씩씩대며 그림을 들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서다윤은 그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다윤은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목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물 온도가 매우 적절해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동안 푹 잤을 것이다.

서다윤은 옷을 챙겨 입고 문을 열러 갔다. 문을 열자 밖에 서 있던 가정부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사모님, 큰일 났어요. 어서 마당에 나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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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지승현은 전화를 받았다.안효민의 전화였다. 그녀는 다급하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울먹였다.“승현 씨, 지아가 다쳤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머리가 찢어졌어. 지금 병원이야.”안지아가 다쳤다는 말에 지승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차 세워요!”“지금 어느 병원이야? 얼른 위치 보내줘!”지승현은 바로 곁에 자신의 진짜 아내가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듯했다.전화를 끊은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다윤아, 지아가 다쳐서 병원에 있대. 나 당장 가봐야 하니까 넌 그냥 택시 타고 들어가. 시간도 늦었으니 어차피 너도 나랑 같이 가고 싶진 않을 거 아냐.”‘그 아이가 너랑 무슨 상관인데?'서다윤은 비아냥거리며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이내 관두기로 했다.어차피 이제 27일만 지나면 완전히 남남이 될 사이인데 이제 와서 그와 이런 구차한 일로 입씨름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녀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차 문을 열고 내렸다.차는 단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그 흔한 걱정이나 당부의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그녀를 홀로 버려두고 쏜살같이 멀어져 갔다.서다윤은 텅 빈 도로 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다.이미 마음은 재가 되어 부스러진 지 오래였건만, 바짝 메마른 심장 깊은 곳에서 차가운 통증이 울컥 밀려왔다.그는 그녀에게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고 곧 비가 쏟아질 거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상간녀의 아이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팽개쳐 버렸다.가느다란 드레스 한 장만 걸친 그녀가 이 어둡고 바람 부는 밤길에 어떤 위험에 처할지는 안중에도 없었다.‘허허, 이게 정녕 내가 과거에 온 힘을 다해 결혼하려 했던 남자란 말인가?’차가운 빗방울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지만, 서다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혼이 나간 사람처럼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는 편이 나았다.헛된 미련에 홀려 이성을 잃었던 제 어리석은 머릿속을 깨끗

  • 독수공방의 여왕님   제25화

    서다윤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시선을 옮기니, 대략 스물넷 남짓으로 보이는 앳된 아가씨가 서 있었다.귀티 나는 딥그린 벨벳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목에는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았지만 귓가에는 앙증맞은 진주 귀걸이가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첫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볼수록 은은한 매력이 풍기는 얼굴이었다.부드러운 눈썹 아래로 크진 않지만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고 입꼬리를 올릴 때 살짝 지어지는 호선이 인상적이었다.“안목이 없으신 게 아니라, 애초에 이 브랜드를 알아볼 수준이 안되시는 것 같네요. 아틀리에 자크는 주로 유럽 왕실 전용으로 옷을 짓는 브랜드인데, 이곳 의상을 두고 저렴하다고 깎아내리시다니. 풋...”강하린이 입을 가리며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제가 보기엔 드레스가 저렴한 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으스대는 그쪽 안목이 참 저렴해 보이네요.”청천벽력 같은 노골적인 독설에, 잔뜩 치장한 영애의 얼굴이 순식간에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그럼에도 감히 말 한마디 받아치지 못한 채 입술만 바르르 떨 따름이었다.눈앞의 아가씨가 다름 아닌 조세혁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상대였기에 결국 여자는 무안함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트집을 잡던 여자가 사라지자 서다윤은 강하린을 향해 고마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아니에요. 저도 쥐뿔도 없으면서 남 깎아내리며 우월감 느끼는 부류들이 제일 꼴불견이더라고요.”서다윤은 그녀의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강하린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와, 언니. 몸에서 나는 향이 진짜 좋네요. 무슨 향수 쓰세요?”“이건 정말 대중적이지 않은 건데... 브랜드제품은 아니고, 제가 직접 조향해서 쓰는 거예요.”서다윤이 멋쩍은 듯 대답했다.“언니가 직접 향수를 만드신다고요?”강하린이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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