ホーム / 로판 / 마기에 잠식된 대공 /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共有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作者: 유월
last update 公開日: 2026-08-13 08:24:54

“모르겠습니다.”

엘라의 대답이 떨어진 순간.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는 아침 햇살이 황궁의 첨탑 위로 막 번지고 있었다. 높은 창문을 통과한 빛이 길게 바닥을 가로질렀고, 잘 닦인 책상 위에는 새 교재와 잉크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황태자 전용 교실.

본래라면 테오도르 혼자 수업을 받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자리가 하나 늘었다.

테오도르의 바로 옆.

펠리시아 공작가의 둘째 영애를 위한 자리였다.

엘라는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어깨는 펴져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마치 방금 교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맞은편에 선 노교수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썼다.

“공녀.”

“네, 교수님.”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

노교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이름은 에드먼드 베르디안.

황실 제왕학 교수이자 제국 아카데미의 전임 학장이었다.

황제의 교육을 맡았고.

지금은 황태자 테오도르를 가르치고 있었다.

황실 최고의 학자.

까다롭고 엄격하며, 모르는 문제를 내는 것보다 모른다는 답을 더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이었다.

테오도르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엘라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엘라가 고개를 돌렸다.

테오도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라도 말해.”

“모르는데요.”

“생각나는 걸 말하면 되잖아.”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그럼 아버지가 말한 거라도.”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비슷한 거라도!”

“조용히 하십시오.”

“너 때문에 내가 더 떨리잖아.”

“왜 전하께서 떨립니까?”

두 사람의 속삭임이 생각보다 멀리 퍼졌다.

에드먼드 교수가 손에 든 지휘봉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탁.

“두 분.”

테오도르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

엘라는 교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공녀.”

“네.”

“내가 무엇을 물었는지 기억합니까?”

“황제가 반드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모른다고 답했군요.”

“네.”

“제국 최고 명문가의 영애가 그것도 모릅니까?”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네.”

또다시 망설임이 없었다.

에드먼드 교수의 눈가가 움찔했다.

테오도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엘라가 수업에 함께 들어온다는 사실이 무척 기대됐다.

지루한 제왕학 수업도 덜 졸릴 것 같았고.

교수에게 혼날 때도 혼자만 혼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시작한 지 채 십 분도 되지 않아 생각이 달라졌다.

엘라는 너무 당당했다.

모르는 것도.

교수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것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에드먼드 교수는 천천히 교실 앞을 걸었다.

“황제에게 필요한 덕목을 모른다면, 공녀는 왜 이 수업에 들어왔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게 아닙니다.”

“저도 그 이유밖에는 모릅니다.”

테오도르가 작게 신음했다.

‘망했다.’

오늘 안으로 엘라는 교실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그러면 다시 혼자 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건 싫었다.

테오도르는 얼른 손을 들었다.

“교수.”

“말씀하십시오, 전하.”

“제가 대신 답해도 됩니까?”

“공녀에게 한 질문입니다.”

“그래도 제가 알잖아요.”

에드먼드 교수의 시선이 테오도르에게 향했다.

“그럼 전하께서 먼저 답해 보십시오.”

테오도르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정함입니다.”

“그 이유는?”

“황제는 모든 백성을 똑같이 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막힘없는 답이었다.

에드먼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본에 적힌 답은 잘 외우셨습니다.”

테오도르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교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모든 백성을 똑같이 대해야 합니까?”

“……예?”

“굶주린 사람과 부유한 사람에게 같은 양의 빵을 나누는 것이 공정합니까?”

테오도르의 입술이 다물렸다.

“죄를 저지른 사람과 피해를 입은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도 공정합니까?”

“그건…….”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기사와 전투를 피해 달아난 기사에게 같은 훈장을 내리는 것도?”

테오도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교수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공정함이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운 답을 말하는 것과 그 뜻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테오도르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엘라는 옆에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에드먼드 교수가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공녀.”

“네.”

“이제도 모릅니까?”

엘라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아까와는 달리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공정함.

백성.

황제.

교수의 질문을 하나씩 떠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정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엘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책상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교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의외로 물었다.

“왜 모른다고 말합니까?”

“모르니까요.”

“틀린 답이라도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교수님께서 고쳐 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렇게나 말하면.”

엘라는 조금 고민했다.

“제가 진짜로 무엇을 모르는지 저도 모르게 되잖아요.”

에드먼드 교수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엘라는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엘라는 다시 잠시 생각했다.

어제였다면 곧장 아버지라고 대답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냥 제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교실 안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에드먼드 교수는 손에 든 지휘봉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좋습니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들었다.

엘라도 눈을 깜빡였다.

교수가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다면 오늘 수업의 시작은 거기서부터 하겠습니다.”

그는 칠판 한가운데 커다랗게 한 단어를 적었다.

통치.

“황제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테오도르가 다시 손을 들려 했다.

에드먼드 교수가 그를 막았다.

“이번에는 외운 문장으로 대답하지 마십시오.”

테오도르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럼 어떻게 대답합니까?”

“생각하십시오.”

“생각했는데 틀리면요?”

“고치면 됩니다.”

그 순간.

테오도르와 엘라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어제 응접실에서 엘라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틀리면 다음에는 다르게 하면 된다고.

엘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에드먼드 교수는 두 아이의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잘못된 답을 두려워하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내놓은 답은 배움이 아닙니다.”

그는 제국 지도를 펼쳤다.

황궁이 자리한 수도.

끝없이 넓은 서부 평야.

풍요로운 남부 항구.

산맥으로 둘러싸인 동부.

그리고 가장 위쪽.

하얀색으로 칠해진 북부.

엘라의 시선이 지도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통치란 이 넓은 땅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에드먼드 교수가 말했다.

“그렇다면 황제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나뿐일까요?”

테오도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닐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상황마다 필요한 게 다를 테니까요.”

“좋습니다.”

교수가 엘라를 바라보았다.

“공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엘라는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의 말을 듣고 나니 질문이 달라 보였다.

가장 중요한 덕목.

하나를 고르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꼭 하나여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황제 혼자 정하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교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엇을 말입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엘라는 지도 가장 아래쪽의 작은 항구 도시를 가리켰다.

“여기 사는 사람이 필요한 것과.”

손가락이 북부로 움직였다.

“여기 사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다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황제는 모든 걸 직접 볼 수 없잖아요.”

테오도르가 엘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합니다.”

엘라가 말했다.

“뭐가 필요한지.”

에드먼드 교수는 곧바로 칭찬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었다.

“백성이 거짓말을 한다면?”

엘라는 막혔다.

“귀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정보를 올린다면?”

“…….”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합니까?”

엘라는 답을 찾지 못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녀는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테오도르가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풋.

엘라가 그를 노려보았다.

“전하는 아십니까?”

“몰라.”

“그런데 왜 웃으십니까?”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서.”

엘라도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 따라 웃었다.

에드먼드 교수는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서 황제는 배워야 합니다.”

두 사람의 웃음이 멈췄다.

“사람의 말을 듣는 법.”

교수가 칠판에 적었다.

“거짓을 가려내는 법.”

두 번째 문장이 이어졌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는 법.”

세 번째.

“그리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책임지는 법.”

엘라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는 법.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교수님.”

“말하십시오.”

“황제도 자기 생각이 틀렸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테오도르가 먼저 대답했다.

“없지 않을까?”

교수는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황제한테 누가 틀렸다고 말해요?”

엘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황제에게 여러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황제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에드먼드 교수는 조용히 말했다.

“없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황제가 자신의 곁에 그런 사람을 두어야지요.”

테오도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한테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을요?”

“예.”

“기분 나쁠 것 같은데.”

“기분 좋은 말만 듣는 황제는 나라를 망칩니다.”

“…….”

테오도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엘라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너는 가만히 있어.”

“왜요?”

“너는 벌써 너무 많이 말하잖아.”

“전하께서 자꾸 틀리시니까요.”

“방금 나한테 틀렸다고 했어?”

“네.”

테오도르는 억울한 얼굴로 교수를 바라보았다.

“교수. 이런 사람을 곁에 둬야 합니까?”

에드먼드 교수는 안경 너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주 적합해 보이는군요.”

엘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도르는 절망했다.

첫 번째 수업이 끝났을 때.

엘라는 책상 위에 엎드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검술 훈련보다 더 힘들었다.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머리가 지쳐 있었다.

에드먼드 교수는 교재를 정리하며 말했다.

“십 분간 쉬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테오도르가 책상 위로 엎어졌다.

“힘들어.”

엘라도 곧장 따라 엎드렸다.

“저도요.”

“넌 왜 멀쩡한 척했어?”

“전하께서 먼저 엎드리시는지 보려고요.”

“왜?”

“저만 혼날까 봐요.”

테오도르가 고개를 돌려 엘라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런 생각을 해?”

“당연합니다.”

“안 무서워 보였는데.”

“교수님께 쫓겨날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모르겠다고 세 번이나 말했잖아.”

“모르는 걸 안다고 하면 더 혼날 것 같아서요.”

테오도르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맞네.”

두 아이는 나란히 책상에 엎드린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정원에는 시종들이 오가고, 멀리 기사들의 훈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테오도르가 물었다.

“엘라.”

“네.”

“정말 황제한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엘라는 잠시 생각했다.

“황제 폐하께서 정말 틀리셨다면요.”

“안 무서워?”

“무서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엘라는 턱을 책상 위에 괸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 말하면 더 큰일이 날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미움받을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떡해?”

엘라는 이번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미움받는 것.

그건 싫었다.

아버지에게도.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지만 좋아해 주기를 바라며 모르는 척하는 것도 이상했다.

“모르겠습니다.”

엘라가 말했다.

테오도르가 피식 웃었다.

“오늘 그 말 많이 한다.”

“진짜 모르니까요.”

“그럼 나중에 알게 되면 알려줘.”

엘라가 고개를 돌렸다.

“왜요?”

“나도 필요할 것 같아서.”

테오도르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아직 열 살인 아이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제국의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이었다.

“누가 나한테 틀렸다고 말했을 때.”

그가 조용히 말했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엘라는 잠시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게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응.”

“전하도 먼저 알게 되시면 알려주십시오.”

“내가?”

“같이 배우기로 했잖아요.”

테오도르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러다 천천히 웃었다.

“그래.”

두 아이는 다시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교실 문이 열렸다.

시녀 하나가 간식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엘라와 테오도르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간식이다.”

“빵입니까?”

“오늘은 레몬 크림 타르트입니다.”

엘라의 눈빛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황제의 덕목에 대해 고민하던 아이는 사라졌다.

“몇 개입니까?”

“두 분께 각각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엘라는 쟁반을 확인했다.

작은 타르트 두 개.

정확히 하나씩이었다.

테오도르가 제 몫을 빠르게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내 거 먹지 마.”

“저도 제 것이 있습니다.”

“어제도 그렇게 말하고 내 과자 가져갔잖아.”

“나눠 드렸습니다.”

“반을 가져간 다음에 반을 돌려준 거잖아.”

“결과적으로 같이 먹었습니다.”

“그건 나눈 게 아니야.”

엘라는 대답 대신 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과자와 새콤달콤한 크림이 입안에서 섞였다.

눈이 살짝 커졌다.

“맛있습니다.”

테오도르가 경계하듯 자신의 접시를 품 안쪽으로 당겼다.

“내 것도 똑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보고 있잖아.”

“궁금해서요.”

“뭐가?”

“전하의 것이 더 큰지.”

테오도르는 자기 타르트와 엘라의 타르트를 번갈아 비교했다.

“똑같아.”

“제 것이 아주 조금 작습니다.”

“기분 탓이야.”

“비교해 봐야겠습니다.”

“안 돼.”

두 사람이 접시를 사이에 두고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교실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에드먼드 교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첫 수업부터 예상 밖이었다.

황태자는 외운 답을 너무 믿고 있었고.

공녀는 모르는 것을 너무 당당하게 인정했다.

둘 다 고칠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같은 시각.

황제는 집무실에서 첫 수업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물었다.

에드먼드 교수 대신 수업을 참관했던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공녀님께서 첫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하셨습니다.”

황제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 아이가?”

“예.”

“에드먼드는 화를 냈나?”

“처음에는 표정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 뒤에는?”

시종장은 잠시 말을 골랐다.

“수업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졌습니다.”

황제는 소리 내 웃었다.

에드먼드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과 수업을 길게 할 리 없었다.

“테오도르는 어땠지?”

“공녀님을 돕기 위해 먼저 답하셨습니다.”

“그랬나?”

“하지만 외운 답이라는 지적을 받으셨습니다.”

황제의 웃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테오도르가 기분 나빠했겠군.”

“처음에는 그러셨습니다.”

“처음에는?”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두 분이 함께 질문하셨습니다.”

황제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무엇을?”

시종장은 기억을 더듬었다.

“황제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황제의 손가락이 책상 위에서 멈췄다.

시종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공녀님께서 황제 폐하께서 정말로 틀리신다면 무섭더라도 말씀드릴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말했나?”

“예.”

황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봄바람이 불어왔다.

열린 창문 너머로 연분홍 꽃잎 하나가 집무실 안까지 날아들었다.

황제는 그것을 손끝으로 집어 들었다.

“무섭더라도 말한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황제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충성스러운 신하.

유능한 관료.

오랜 친구.

그러나 황제라는 자리는 사람의 진심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틀렸다고 말해 주는 사람은 적었다.

황제는 문득 어린 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을 작은 아이를.

“폐하.”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지?”

“펠리시아 공작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친구가?”

“공녀님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황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황제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딸이 쫓겨날까 걱정했나 보군.”

“그런 듯합니다.”

“들여보내게.”

잠시 뒤.

집무실 문이 열리고 펠리시아 공작이 들어왔다.

황제는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

“자네 딸이 첫 수업부터 사고를 쳤다더군.”

공작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사고입니까?”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그게 사고입니까?”

“에드먼드 앞에서 세 번이나.”

공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쫓겨났습니까?”

“아니.”

“혼났습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네.”

황제는 웃으며 보고서를 공작에게 건넸다.

공작은 짧은 기록을 빠르게 읽었다.

처음에는 긴장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엘라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그건 알겠네.”

“대신 아는 것을 모르는 척하지도 않지요.”

황제가 피식 웃었다.

“그 점은 조금 걱정되는군.”

공작은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친구.”

“예.”

“자네 딸을 한 달만 빌리겠다는 말.”

“빌린다는 표현을 쓰지 마십시오.”

“부탁하겠다는 말.”

황제는 잠시 웃음을 거두었다.

“한 달보다 길어질 수도 있겠네.”

공작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왔다.

“폐하.”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야.”

“이미 표정은 결정하셨습니다.”

황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태자 전용 교실이 있는 동쪽 별궁.

그곳 창문 너머로 작은 두 아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서로의 타르트를 빼앗으려는 듯 쟁반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황제는 작게 웃었다.

“테오도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아서 말이네.”

공작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엘라가 전하를 바꿀 거라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둘이 함께 달라지겠지.”

공작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수업이 끝난 뒤.

엘라는 황궁 현관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 옆에 서 있었다.

“내일도 올 거지?”

“아버지께 여쭤봐야 합니다.”

“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면?”

“왜 안 된다고 하실까요?”

“오늘 교수한테 모르겠다고 세 번이나 했잖아.”

“그래서 배웠습니다.”

“그래도.”

테오도르는 괜히 바닥의 작은 돌을 발끝으로 밀었다.

“안 올 수도 있잖아.”

엘라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하.”

“왜?”

“오늘 수업이 재미있으셨습니까?”

“아니.”

“저도요.”

“그런데?”

“그래도 모르는 게 생겼습니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좋아?”

“내일 물어볼 수 있잖아요.”

엘라는 마차가 들어오는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하도 알려주시기로 했고요.”

“내가 뭘?”

“황제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요.”

테오도르는 잠시 멈칫했다.

“그건 아직 모르는데.”

“저도 모릅니다.”

엘라가 웃었다.

“그러니까 같이 배우면 되죠.”

그 순간.

펠리시아 공작가의 마차가 현관 앞에 멈췄다.

공작이 마차에서 내렸다.

엘라는 아버지에게 달려가려다 멈췄다.

다시 테오도르를 돌아보았다.

“내일 뵙겠습니다.”

테오도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응.”

“늦잠 주무시면 안 됩니다.”

“안 자.”

“주무시면 깨우겠습니다.”

“목검은 두고 와.”

엘라는 대답하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

테오도르가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차 문이 닫히기 직전.

엘라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뭘?”

“목검을 가져올지 말지요.”

마차 문이 닫혔다.

곧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다 뒤늦게 소리쳤다.

“가져오지 마!”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차는 이미 황궁의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내일도 온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일의 수업이 오늘보다 조금 덜 싫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에드먼드 교수는 황태자의 다음 수업을 준비하다가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엘라가 책상 위에 두고 간 메모였다.

삐뚤지만 또박또박한 글씨로 질문이 하나 적혀 있었다.

황제에게 틀렸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틀렸다면, 황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드먼드 교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웃었다.

첫 수업에서 모른다고 말했던 아이는.

수업이 끝날 무렵.

새로운 질문을 하나 남기고 갔다.

교수는 빈 교재를 펼쳤다.

그리고 다음 수업의 첫 문장을 적었다.

모르는 것은 배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この本を無料で読み続ける
コードをスキャンしてアプリをダウンロード

最新チャプター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빌리지 않아도 되는 힘

    백은샘의 흐름을 본떠 만든 세척 구조는 다음 날 아침부터 다섯 번의 반복 시험에 들어갔다. 전날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바로 현장 설계에 넣지 않기로 한 결정 때문이었다. 아르센은 같은 크기의 일반 마력석 세 개를 새로 준비했고, 에른은 각각 다른 산지에서 가져온 돌을 섞었다. 하나는 북부에서 흔히 쓰는 회색 마력석, 하나는 황실 기술단이 수도에서 가져온 표준석, 마지막 하나는 품질이 조금 떨어져 보조 장치에나 쓰던 갈색 마력석이었다.단테가 실험대 위 세 돌을 보고 물었다.“일부러 다른 걸 쓴 거야?”“네. 좋은 돌에서만 되는 구조면 북부 전체에 쓰기 어렵습니다.”아르센이 갈색 돌을 들어 보였다.“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실제 방어선에는 항상 최상급 마력석만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전쟁이 길어지거나 보급이 끊기면 이런 돌도 써야 합니다.”단테는 잠시 돌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재료가 있을 때만 안전한 체계는 결국 물자가 부족해지는 순간 누군가의 몸으로 부족분을 메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북부가 몇 번이나 그래왔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엘라는 안전선 밖에서 자료판을 받아들며 물었다.“오늘도 백은샘에서 가져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에른이 답했다.“없습니다. 어제 기록한 흐름 비율만 사용합니다. 7 대 3, 4 대 6, 5 대 5로 순차 변환하고 합류점에서 압력을 한번 낮춥니다.”“그 비율이 꼭 저 숫자여야 합니까?”아르센이 웃었다.“그걸 확인하는 게 오늘 시험 중 하나입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성공한 모양을 그대로 신앙처럼 반복하는 순간, 또 다른 고정된 답이 된다. 정말 중요한 건 백은샘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잔류 마기를 움직이게 했는지 찾는 일이었다.⸻첫 번째 반복 시험은 전날과 거의 같은 조건이었다.손상률 14퍼센트의 폐기 예정 전달석 안에 남은 오염을 3.6퍼센트까지 맞춘 뒤, 일반 마력을 세 갈래 흐름으로 흘렸다. 백은샘의 실제 마력을 가져온 것도 아니고, 신성력을

  • 마기에 잠식된 대공   흐름을 가져오지 않아도 됩니다

    백은샘을 직접 확인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오전 회의가 끝나기 직전이었다.처음에는 현장 조사를 나갈 계획이 없었다. 옛 남서 온실 아래 막힌 배수 지맥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확인했고, 그 끝에 현재도 남아 있는 백은샘이 있다는 것까지 찾았으니 다음 순서는 기록 조사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전날 단테가 먼저 ‘이건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한 뒤라, 서쪽의 맑은 지맥을 세척용으로 사용할 계획도 일단 보류된 상태였다.그런데 에른이 오래된 대공성 원예 기록 한 장을 가져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백은샘 주변 식생 기록입니다.”단테가 문서를 받아들었다. 봄철 개화 시기, 야생동물 관찰 기록, 샘물 온도. 얼핏 보면 마법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기록을 남긴 사람도 마법사가 아니라 백여 년 전 대공성의 정원 관리인이었다.엘라는 단테 옆에서 복제본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시선을 멈췄다.백은샘의 물은 한겨울에도 완전히 얼지 않으며, 샘 주변의 흰풀은 성내 서쪽 정원보다 보름가량 먼저 꽃을 피운다. 단, 샘물을 옮겨 심은 흰풀에는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물을 가져와도 안 됐네요.”엘라가 말하자 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확인할 가치가 있습니다.”단테가 물었다. “무엇을.”“따뜻한 물이 원인인지, 지맥 자체의 흐름이 원인인지요.”아르센이 지도 위 백은샘을 가리켰다. “만약 후자라면 우리가 필요한 건 샘의 마력을 가져오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흐름의 형태만 분석할 수 있다면요.”그 말에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선대 대공의 우회 마력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 선대의 마력을 계속 꺼내 쓰는 대신, 그들이 마기를 오래 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겼던 흐름의 패턴을 일반 마력석에 복사했다. 그렇다면 맑은 지맥도 마찬가지일 수 있었다. 지맥을 세척수처럼 끌어다 쓰지 않고, 그것이 잔류 마기를 밀어내는 방식만 배울 수 있다면 백은샘을 건드릴 이유가 없어진다.단테도 같은 데까지 생각이 닿은 듯 문서를 다시 봤다.“현장에서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시험은 중단됐다.전달석 잔류 오염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었다는 결과만 놓고 보면, 원래라면 연구실 분위기가 들떠도 이상하지 않았다. 3.8퍼센트까지 낮춘 뒤 밤새 자연 방출을 거쳤고, 다음 날 아침 0.9퍼센트. 숫자만 보면 효율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줄어든 마기가 회수석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부터 누구도 그 수치를 성과라고 부르지 않았다.에른은 연구실 바닥 전체에 측정침을 박았고, 아르센은 서쪽 정원 지맥과 대공성 지하 지맥을 각각 따로 표시했다. 기존 지도에는 두 흐름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실제 측정값은 달랐다. 아주 가느다란 지맥 하나가 연구실 아래를 지나 남서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 약해서 평소에는 감지하기 어려웠고, 서쪽의 맑은 흐름이 세척 시험으로 조금 활성화되면서 그제야 반응이 선명해진 것이다.단테는 지도 위에 새로 그어진 얇은 선을 한동안 내려다봤다.“끝은?”“아직 못 찾았습니다.”에른이 대답했다.“방향은.”“남서쪽입니다. 대공성 밖으로 나갑니다.”“거리.”“현재 확인한 건 약 600미터. 그 뒤로는 흐름이 너무 약해집니다.”단테는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여기까지?”에른이 잠시 멈췄다.예전 같으면 대공이 직접 더 확인하자고 했을 질문이었다.오늘은 의미가 달랐다.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우선 성 안 구간만 더 확인하고, 외부 추적은 기사단 지형 담당과 마렌 님 기록을 같이 보겠습니다.”“좋아.”단테는 더 말하지 않았다.엘라는 연구실 바닥에 표시된 가느다란 선을 보며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검은 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과 같은 방향감이 남아 있었다. 남서쪽. 희미하지만 분명한 감각.단테가 알아챘다.“아직 느껴져?”“조금요.”“아파?”“아닙니다.”“그럼.”그가 아주 짧게 말했다.“느낌 따라가지는 마.”엘라는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안 갑니다.”“바로 대답하네.”“저도 이제 압니다.”단테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뭘.”“궁금한

  • 마기에 잠식된 대공   맑은 길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북부 지맥에서 ‘맑은 가지’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오염된 지맥은 오히려 찾기 쉬웠다. 마기가 오래 머문 곳은 토양의 마력 밀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방어선과 연결된 지점에는 검은 침식 흔적이 남았다. 반면 깨끗한 지맥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물이 새는 곳은 수리 기록이 남지만, 잘 흐르는 수로는 굳이 장부 한쪽을 차지하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에른과 아르센은 아침부터 북부 전역의 지맥 지도를 겹쳐놓고 오염도가 낮은 구간을 추렸지만, 낮다는 것과 실제로 세척에 사용할 만큼 안정적인 흐름이라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후보는 일곱 곳입니다.”에른이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북부 대공성 회의실에는 단테와 엘라, 아르센, 마렌, 휴고, 세리아가 모여 있었다. 최근에는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사람 수부터 늘리지 않았다. 누가 필요한지를 먼저 정했고, 오늘은 지맥과 민간 수원, 단테와 엘라의 상태를 함께 봐야 했기 때문에 이 정도 인원이면 충분했다.아르센이 일곱 개의 점 가운데 세 곳에 표시를 그었다. “이 셋은 곧바로 제외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르덴 지하수와 너무 가깝고, 다른 하나는 여름 목초지 아래를 지나며, 마지막 하나는 현재 북부 기사단 보급로와 겹칩니다.”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넷.”“두 곳은 흐름이 너무 약합니다. 전달석 세척에는 쓸 수 있겠지만 실제 분산로 전체를 관리하기에는 부족합니다.”엘라가 물었다. “그럼 두 곳 남네요.”에른이 지도 서쪽과 북동쪽을 각각 짚었다. “하나는 대공성 서쪽 지맥. 다른 하나는 북동쪽 산림 아래를 흐르는 자연 지맥입니다.”단테의 시선이 서쪽에 멈췄다.엘라도 금방 알아봤다.“설화초.”“네.”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서쪽 정원 아래에서 발견했던 흐름과 같은 계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며칠 전, 눈 아래에서 가장 먼저 설화초가 올라오게 만들었던 따뜻한 지맥. 북문 계통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오염 반응은 거의 없었고, 대공성에서

  • 마기에 잠식된 대공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길을 택했습니다

    실제 오염 마기를 사용하는 첫 현장 시험은 설화초가 완전히 핀 날 오전 열 시에 시작됐다.대공성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단테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리아에게 상태를 확인했고, 전날보다 잠을 조금 덜 잤다는 사실까지 먼저 알렸다. 두통과 감각 이상은 없었고 마기 유입량 역시 최근 평균 범위 안이었다. 엘라는 그 옆에서 듣기만 했다. 이제 단테가 자기 상태를 말할 때마다 의미를 붙이거나 변화라고 짚어줄 필요는 없었다. 말을 하는 것도, 필요하면 멈추는 것도 어느새 현장 준비의 일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오늘 사용하는 오염 마기는 제9방어선에서 회수된 마력석에서 추출한 극소량이었다. 이전에 오염도 78퍼센트였던 돌을 제3감시탑의 기존 순환에 잠깐 연결해 31퍼센트까지 낮췄던 것과는 방식부터 달랐다. 그때는 이미 살아 있는 고대 흐름에 작은 돌 하나를 맡겨보는 시험이었다면, 오늘은 자신들이 새로 만든 네 개의 전달석과 두 개의 교대선을 거쳐 실제 오염 마기가 움직일 수 있는지를 처음 확인하는 자리였다.그래서 사람들은 어제보다 훨씬 말이 적었다.회백 능선 초입에는 길이 120미터의 시험 구간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 눈을 걷어낸 암반 사이로 네 개의 전달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설되어 있었고, 각 전달석 사이에는 두 줄의 얇은 마력선이 번갈아 주선 역할을 맡도록 연결돼 있었다. 그 끝에는 방출 장치 대신 밀폐형 회수석이 놓였다. 오늘은 환경으로 마기를 내보내지 않는다. 전달만 확인한 뒤 마지막에 다시 회수한다. 실제 분산 방출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아르센이 마지막 봉인을 확인하며 말했다.“오늘 목표는 세 개뿐입니다. 실제 오염 마기가 전달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지, 이동 과정에서 전달석에 얼마나 남는지, 한쪽 선을 중간에 끊었을 때 보조선으로 전환되는지. 그 이상은 보지 않습니다.”단테가 물었다.“끝까지 안정적이어도?”“끝냅니다.”이번에는 아르센이 먼저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단테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에른이

  • 마기에 잠식된 대공   꽃이 피는 데에는 이유가 많습니다

    현장 실증을 마치고 대공성으로 돌아온 단테는 곧장 서쪽 정원으로 가지 못했다.엘라가 말한 대로 먼저 세리아에게 상태를 확인받았고, 외부 지맥 노출 이후 유입량 변화와 감각 이상 여부까지 전부 검사했다. 다행히 수치는 안정적이었다. 전날보다 피로도가 조금 높았지만 두통도, 손끝 저림도 없었고, 마기 유입량 역시 위험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세리아는 기록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 저녁 업무는 줄이십시오.”단테가 바로 물었다.“얼마나.”“문서 결재는 세 건까지.”“다섯 건.”“세 건.”“네 건.”세리아가 아무 말 없이 그를 봤다.단테가 잠시 버티다가 시선을 돌렸다.“……세 건.”엘라는 옆에서 웃음을 참다가 결국 말했다.“많이 발전하셨습니다.”단테가 그녀를 봤다.“어디가.”“협상하셔도 결국 지키시잖아요.”“아직 안 지켰는데.”“지킬 거잖아요.”단테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세리아가 태연하게 정리했다.“이제 정원은 가셔도 됩니다. 다만 오래 서 있지는 마십시오.”그 말이 끝나자 단테가 거의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엘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꽃이 그렇게 궁금하셨습니까?”“너도 궁금하잖아.”“저는 인정했습니다.”“언제.”“계속요.”“못 들었는데.”“지금 들으셨네요.”단테가 피식 웃었다.둘은 함께 치료실을 나왔다.⸻서쪽 정원으로 가는 길은 이제 둘에게 제법 익숙했다.처음 북부에 왔을 때 엘라는 대공성의 회랑이 지나치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검은 돌벽, 높은 창문, 눈이 쌓인 안뜰.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같은 회랑도 조금씩 달랐다. 서쪽으로 가는 길에는 오후 빛이 길게 들어왔고, 겨울에는 다른 곳보다 바닥이 조금 따뜻했다. 정원으로 나가는 마지막 유리문은 손잡이 아래쪽에 오래된 흠집이 하나 있었다.단테는 문을 열기 전에 바깥부터 확인했다.“바람 거의 없네.”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오래 보셔도 되겠네요.”“세리아가 오래 서 있지 말랬잖아.”엘라는 잠시 그를 봤다.“정말 잘 들으십니다.

続きを読む
無料で面白い小説を探して読んでみましょう
GoodNovel アプリで人気小説に無料で!お好きな本をダウンロードして、いつでもどこでも読みましょう!
アプリで無料で本を読む
コードをスキャンしてアプリで読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