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anda / 로판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 대공 전하가 왜 제 침대에 계십니까

Share

대공 전하가 왜 제 침대에 계십니까

Penulis: 유월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10 22:04:58

세레나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봐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거대한 검은 설표가 쓰러져 있던 자리였다. 은빛 마력선이 털 아래를 번져 가고, 몸이 경련하듯 굳더니 갑자기 눈앞을 덮은 빛이 터졌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진 뒤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남자.

아주 멀쩡하게 인간의 형태를 한, 지나치게 잘생긴 남자.

세레나는 자신이 아직 잠에서 덜 깬 건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했다. 그러나 손바닥 아래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과 단단한 가슴의 감촉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쿵.

쿵.

쿵.

심장박동도.

설표였을 때와 정확히 같았다.

세레나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의 손은 여전히 남자의 맨가슴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리고 손목은 남자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

“…….”

기묘할 정도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세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제 손부터 놓아주시겠습니까?”

남자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내 몸에서 손을 먼저 떼는 게 순서 아닌가.”

세레나는 아래를 봤다.

자신의 손.

남자의 가슴.

다시 남자의 얼굴.

“아.”

그제야 황급히 손을 떼려 했지만 손목은 여전히 붙잡혀 있었다.

“놓으셔야 뗄 수 있는데요.”

남자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

그는 마치 세레나가 일부러 말을 돌리는 것처럼 바라봤지만, 몇 초 뒤 손에서 힘을 풀었다.

세레나는 즉시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상황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남자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 곳곳에는 상처가 남아 있었고, 특히 왼쪽 옆구리에는 세레나가 조금 전 설표에게 감아 놓았던 붕대가 그대로 감겨 있었다.

크기가 달라졌을 뿐 위치도 같았다.

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

당황스러움보다 연구자로서의 집중력이 더 빠르게 돌아왔다.

“붕대.”

남자가 눈썹을 움직였다.

“뭐?”

“제가 감은 붕대가 그대로 있어요.”

세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상처 위치도 같고.”

“…….”

“그럼 신체 변화 과정에서도 외부 물질은 같이 축소되거나 형태가 유지되는 건가? 아니면 변신할 때 마력장이 주변 물질까지 끌어들여서—”

“지금.”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세레나는 멈췄다.

“그게 궁금한가?”

“네.”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세레나는 뒤늦게 그의 표정을 보고 조금 눈치를 챘다.

“……아니, 물론 그것만 궁금한 건 아닙니다.”

“그렇겠지.”

“어떻게 사람이 설표로 변했는지도 궁금하고요.”

남자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세레나는 그걸 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질문 순서가 잘못됐다.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 질문에 남자는 세레나를 오래 바라봤다.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으려는 것처럼.

“모르는 건가?”

“뭘요?”

“나를.”

세레나는 잠깐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높은 콧대와 날카로운 눈매. 회색에 가까운 푸른 눈동자. 검은 머리칼. 귀족으로 보일 만큼 단정한 이목구비와, 부상을 입고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분위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왕도 사교계에 거의 발을 들이지 않는 세레나에게 귀족들의 얼굴은 전공 밖이었다.

“유명하신 분입니까?”

남자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

세레나는 혹시 실례했나 싶어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왕도 사교계 쪽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

“…….”

“학술원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데.”

“아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모르면 됐다.”

“그럼 성함을—”

“라시엘.”

세레나는 펜을 찾을 뻔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라시엘.”

그녀가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됐다.

“성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에른하르트.”

세레나의 표정이 멈췄다.

이번에는 정말로.

몇 초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벽난로 안에서 나무가 타닥 하고 무너지는 소리만 들렸다.

세레나가 천천히 물었다.

“에른하르트……요?”

“그래.”

“그 에른하르트요?”

“에른하르트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군.”

세레나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그제야 퍼즐 조각들이 맞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대공가 기사단이 수십 명씩 나와 찾던 사람.

검은 머리.

중요한 사람.

에른하르트 대공령.

그리고 라시엘 에른하르트.

북부의 주인.

“……대공 전하?”

“이제 알아보겠나.”

세레나는 침묵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놀랍게도 신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었다.

꼬리를 잡았다.

귀 뒤를 긁었다.

가슴을 만졌다.

배 가까이 손을 넣어 상처를 확인했다.

‘착하다’고 했다.

까망이라고 이름 붙였다.

생선 준다고 달랬다.

무릎에 머리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대공가 기사단에게 대공 본인을 방한포로 덮어 숨긴 뒤 대형 마물 골격 표본이라고 거짓말했다.

세레나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

“왜 그러지?”

“잠시만요.”

“뭘.”

“제가 지금.”

세레나는 한숨을 삼켰다.

“살면서 저지른 실수 순위를 다시 매기고 있습니다.”

라시엘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이라고 보기엔 부족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결론은?”

“오늘이 압도적인 1위입니다.”

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가 아까 전하의 꼬리를—”

“말하지 마.”

즉답이었다.

세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

“그럼 까망이라고—”

“그것도.”

“착하다고—”

“세레나 브리엘.”

이번에는 이름까지 불렸다.

세레나는 바로 조용해졌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부분이 신경 쓰였다.

“제 이름을 알고 계셨네요.”

라시엘의 눈빛이 굳었다.

세레나는 곧바로 덧붙였다.

“아, 기사단이 말했을 때 들으셨겠군요.”

“……그렇다.”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생각했다.

기사단.

그때 이 남자는 완전히 설표였다.

그렇다면.

“전하.”

“왜.”

“설표 상태에서도 사람 말을 전부 알아들으시는 겁니까?”

라시엘이 침묵했다.

세레나의 눈이 반짝였다.

아까까지의 민망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 제가 했던 말도 전부—”

“전부 들었다.”

세레나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연구노트에 적어둔 기록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까망이’.

‘내 논문’.

‘성질 더럽고’.

‘꼬리는 예쁜데’.

그리고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말했다.

‘춥지?’

세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벽을 바라봤다.

라시엘이 물었다.

“왜 벽을 보지?”

“지금은 전하의 얼굴을 보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조금?”

“상당히.”

그는 이번에는 확실히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세레나가 그걸 봤다면 더욱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시엘도 오래 웃을 상태는 아니었다.

갑자기 숨이 거칠어졌다.

그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세레나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전하?”

라시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고 있었다.

“상처가—”

“괜찮다.”

“안 괜찮아 보입니다.”

세레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라시엘이 손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세레나는 이미 그의 옆구리에 감긴 붕대를 살피고 있었다.

붕대 가장자리가 붉게 젖어 있었다.

변신 과정에서 상처가 다시 벌어진 모양이었다.

“다시 출혈합니다.”

“이 정도는.”

“이 정도 아니에요.”

세레나는 단호했다.

“잠깐 누우세요.”

라시엘이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는데도 명령하는군.”

“환자는 환자니까요.”

“나는 환자가 아니다.”

세레나는 붕대를 바라봤다.

“피를 흘리고 있고 열이 있고 마력 폭주까지 일으켰는데 환자가 아니면 뭡니까?”

라시엘은 할 말을 잃었다.

세레나는 기다리지 않고 거실 한쪽의 긴 소파를 가리켰다.

“저기로 가세요.”

“…….”

“전하.”

“왜.”

“다시 설표로 변해서 쓰러지시면 제가 또 옮겨야 합니다.”

라시엘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지금 걸을 수 있을 때 움직이세요.”

이상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태도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못 보겠다고 벽을 바라보고 있었으면서, 상처를 발견한 순간 다시 연구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라시엘은 결국 소파 쪽으로 걸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몸이 흔들렸다.

세레나가 반사적으로 팔을 잡았다.

“조심하세요.”

라시엘의 몸이 순간 굳었다.

손목을 잡는 정도의 접촉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들끓던 마력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라시엘의 시선이 세레나의 손으로 향했다.

세레나는 그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앉으세요.”

그녀는 라시엘을 소파에 앉힌 뒤 약품함을 열었다.

라시엘은 손목에 남은 감각을 바라보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닿으면 가라앉는다.

설표의 몸일 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상태에서도.

이 여자의 접촉 자체가 자신의 마력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셔츠 같은 건 없나.”

라시엘이 물었다.

그 말에 세레나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정지했다.

지금까지 치료 생각에 잊고 있었다.

라시엘은 상체가 완전히 드러난 상태였다.

설표에서 인간으로 변했으니 당연했다.

아래쪽은 변신 당시 붕대와 마력이 어찌어찌 최소한의 형태를 만들어 준 듯했지만, 그것도 아주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세레나는 매우 빠르게 시선을 위로 올렸다.

“있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세레나는 침실로 들어갔다.

라시엘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까까지 몸 곳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던 여자가 이제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설표일 때와 인간일 때의 차이를 본인만 지나치게 크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세레나가 셔츠 한 벌과 얇은 바지를 들고 나왔다.

“연구소에서 현장복으로 준비해 둔 겁니다. 전하께는 조금 작을 수도 있어요.”

라시엘이 옷을 받았다.

손가락이 잠깐 스쳤다.

그 순간.

쿵.

마력핵이 반응했다.

라시엘의 시선이 낮아졌다.

세레나가 멈칫했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라시엘은 손을 거뒀다.

지금 확신하면 안 된다.

이 현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월식증에 이런 반응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읽은 가문 기록에는.

그렇다면 이 여자에게 무언가가 있다.

그 사실을 세레나가 먼저 알아채게 해서는 안 됐다.

그녀는 연구원이었다.

한 번 의문을 품으면 끝까지 파고들 사람이라는 건 이미 충분히 알았다.

“갈아입으세요.”

세레나가 돌아섰다.

“보지 않나?”

“당연히 안 봅니다.”

“설표일 때는 그렇게 잘 보더니.”

세레나의 등이 그대로 굳었다.

라시엘이 덧붙였다.

“가슴도 만지고.”

“전하.”

“꼬리도.”

“그건 연구였습니다.”

“그래.”

“정말로요.”

“알고 있다.”

“말씀하시는 방식이 전혀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라시엘이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세레나는 등을 돌린 채라 그것을 보지 못했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라시엘이 말했다.

“됐다.”

세레나가 돌아봤다.

셔츠는 예상대로 조금 작았다. 어깨선이 팽팽했고 목 부분도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이제 시선을 둘 곳이 생겼다.

세레나는 안도하며 약품을 들고 그의 앞에 앉았다.

“붕대 풀겠습니다.”

라시엘의 눈썹이 올라갔다.

“방금은 보지 않겠다더니.”

“치료는 다릅니다.”

“편리한 기준이군.”

세레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셔츠를 조금 들어 올리고 붕대를 풀었다.

다시 피부가 드러났다.

이번에는 연구자로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설표일 때와 달랐다.

같은 상처.

같은 위치.

분명 같은 존재인데.

손끝에 닿는 것은 털이 아니라 사람의 피부였다.

뜨겁고 단단한 복부.

상처 주변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까지 손끝에 그대로 느껴졌다.

세레나는 숨을 조금 느리게 내쉬었다.

집중하자.

상처.

치료.

그것만 보면 된다.

“아플 겁니다.”

“설표일 때도 말했지.”

“그때도 아프셨습니까?”

“당연하지.”

세레나의 손이 멈췄다.

“그런데 잘 참으셨네요.”

“…….”

“정말 착—”

세레나는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라시엘의 눈빛이 내려왔다.

“계속해 봐.”

“아닙니다.”

“아까는 잘만 하더군.”

“그건 설표였잖아요.”

“같은 존재다.”

세레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논리적으로는 맞았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전혀 아니었다.

“전하께서는 별 차이가 없으십니까?”

이번에는 라시엘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지.”

“설표일 때와 지금이요.”

세레나는 상처를 닦으며 물었다.

“몸이 변하잖아요. 감각이나 사고방식도 달라집니까?”

라시엘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왜 묻지?”

“연구—”

세레나는 멈췄다.

지금 이 남자는 자신이 연구 대상으로 삼아도 되는 마물이 아니었다.

북부 대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죄송합니다.”

세레나가 손을 거뒀다.

“습관적으로.”

라시엘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계속 물어도 된다.”

세레나의 눈이 올라갔다.

“정말입니까?”

“내가 대답할지는 별개지만.”

그래도 허락은 허락이었다.

세레나의 눈빛이 즉시 달라졌다.

라시엘은 속으로 후회했다.

너무 빨리 허락한 것 같았다.

“설표 상태에서도 자아가 완전히 유지됩니까?”

“대부분.”

“대부분?”

“시간이 길어질수록 흐려진다.”

세레나의 손이 멈췄다.

“기억도요?”

라시엘은 잠시 침묵했다.

“그래.”

세레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오늘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처음에는 거의 없었다.”

“제가 발견했을 때?”

“아마.”

“그럼 제가 꼬리를 잡았을 때는요?”

라시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아주 선명했다.”

세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하필 그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잠시 정적.

세레나는 새로운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전하.”

“말해.”

“이건 저주입니까?”

라시엘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질문이 너무 정확했다.

세레나는 그 반응만으로도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말하기 곤란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자연적인 변신으로 보기에는 마력 구조가 이상합니다.”

세레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전하가 설표였을 때 측정한 마력핵은 일반적인 마물과 달랐어요. 심장 주변을 감싸는 형태였고, 그 아래에서 인간의 마력 회로와 비슷한 흐름이 보였습니다.”

라시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걸 한 번 보고 알아냈다고?”

“정확히 알아낸 건 아닙니다.”

“그 차이가 있나?”

“많이 있죠.”

세레나는 진지했다.

“지금은 가설뿐입니다.”

라시엘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궁금증.

그리고 자신이 잘못 판단할까 경계하는 연구자의 신중함이 있었다.

“기록했나?”

“네.”

“어디에.”

세레나가 멈췄다.

“왜요?”

“그 기록을 폐기해.”

즉시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세레나의 얼굴에서도 조금 전까지의 당황스러움이 사라졌다.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필요 없다.”

“저에게는 필요합니다.”

“세레나.”

“제가 얻은 연구 자료입니다.”

라시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내 몸에 대한 자료다.”

세레나의 입술이 닫혔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

설표를 마물로 알고 있을 때는 연구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의 신체와 질병에 대한 정보.

그것은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세레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라시엘이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봤다.

“폐기하겠습니다.”

“……쉽게 받아들이는군.”

“전하가 사람인 걸 알았으니까요.”

세레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뭐지.”

“저는 이미 봤습니다.”

라시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가 본 것까지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전하의 동의 없이 발표하거나 외부에 알리지는 않겠습니다.”

세레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하다면 연구해야 합니다.”

“치료?”

“설표 상태가 길어질수록 기억이 흐려진다고 하셨잖아요.”

그 한마디에 라시엘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세레나는 놓치지 않았다.

“계속 진행되는 거죠?”

“…….”

“전하.”

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세레나는 억지로 캐묻지 않았다.

그 대신 마지막 붕대를 고정했다.

“끝났습니다.”

손을 떼려는 순간.

라시엘의 손이 세레나의 손목을 다시 붙잡았다.

이번에는 위협이 아니었다.

세레나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봤다.

“전하?”

라시엘도 자기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듯 손을 내려다봤다.

접촉이 끊기려는 순간.

다시 마력의 통증이 올라왔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붙잡았다.

손목을 감싼 세레나의 피부에서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마력의 흐름이 다시 잦아들었다.

확실하다.

세레나도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라시엘은 손을 놓지 않았다.

“잠깐.”

“네?”

“그대로 있어.”

세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태가 안 좋으세요?”

“확인 중이다.”

“뭘요?”

라시엘이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나는 잠시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른 손으로 마력 측정기를 집었다.

라시엘의 눈빛이 굳었다.

“뭐 하는 거지?”

“전하가 확인 중이라고 하셔서 저도 확인하려고요.”

“하지 마.”

이미 늦었다.

수정판에서 은빛 빛이 올라왔다.

세레나는 수치를 바라봤다.

그리고.

표정이 멈췄다.

“……이상하네.”

라시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마력 수치가 내려갔어요.”

세레나는 수정판을 다시 봤다.

“아까보다 훨씬.”

라시엘은 침묵했다.

세레나가 손목을 내려다봤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라시엘의 손.

다시 측정기.

그리고 다시 손.

설마.

세레나의 눈빛이 변했다.

“전하.”

라시엘은 이미 그다음 질문을 알 것 같았다.

“혹시.”

세레나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저를 잡고 있어서 그런 겁니까?”

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면 충분했다.

세레나의 눈이 커졌다.

“진짜로?”

연구자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라시엘은 불길함을 느꼈다.

“다시 해 보죠.”

“뭘.”

“놓아보세요.”

“싫다.”

세레나가 멈췄다.

“……네?”

라시엘 역시 자기 입에서 나온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상태가 다시 나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확인하는 겁니다.”

“확인할 필요 없어.”

“있습니다.”

“없다.”

“전하.”

세레나의 목소리가 아주 진지해졌다.

“접촉 여부에 따라 마력 수치가 달라진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놓으라는 건가?”

“네.”

라시엘은 손을 놓지 않았다.

세레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먼저 포기한 건 의외로 라시엘이었다.

그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세레나는 즉시 수치를 확인했다.

십 초.

이십 초.

그리고.

수정판 위의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요.”

라시엘의 턱이 굳었다.

세레나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제가 잡아볼게요.”

라시엘은 그녀를 바라봤다.

“전하 손.”

잠시 후 라시엘이 손을 내밀었다.

세레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맞닿았다.

라시엘의 손은 세레나보다 훨씬 컸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감쌌다.

세레나가 수정판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려간다.”

정말이었다.

마력 폭주 수치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세레나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이건 우연이 아닌데.”

라시엘은 수치가 아니라 세레나를 보고 있었다.

세레나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그의 손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다는 것도.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워졌다는 것도.

“왜 저한테 반응하는 거죠?”

그녀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력 속성이 상쇄되는 건가? 아니면 전하의 마력핵이 외부 안정화 마력에 반응하는 건가. 그런데 제 마력은 원래 안정화 계열이 아닌데…….”

세레나는 생각에 빠질수록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줬다.

라시엘의 시선이 두 사람의 손으로 내려갔다.

이상했다.

마력이 안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이 더 불쾌했다.

라시엘이 먼저 손을 뺐다.

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왜 놓으셨어요?”

“충분히 확인했잖아.”

“한 번 더 해야 합니다.”

“싫다.”

“조건을 바꿔서 측정해야죠.”

“세레나.”

“이번에는 손이 아니라 팔목만—”

“그만.”

세레나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라시엘은 그 얼굴을 보며 기가 막혔다.

“내가 사람이 된 뒤에도 연구 대상인가?”

세레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조금요.”

라시엘의 눈썹이 올라갔다.

“조금?”

“많이 궁금하긴 하지만.”

세레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동의 없이 연구하지는 않겠습니다.”

“대단한 배려군.”

“중요합니다.”

“그럼.”

라시엘이 등을 소파에 기대며 물었다.

“내가 동의하면?”

세레나가 멈췄다.

“네?”

“연구해도 된다고 하면.”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라시엘은 아직 자신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쩌면 필요해서였다.

이 여자가 자신의 마력 폭주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 원인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가까이 두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뿐이다.

“조건이 있다.”

세레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말씀하세요.”

“내 정체와 오늘 본 것 모두 외부에 알리지 마.”

“네.”

“연구 기록은 내가 허락한 것만 남긴다.”

세레나는 잠시 고민했다.

“원자료까지요?”

“그래.”

“그건 연구 윤리상—”

“그럼 하지 마.”

“……조율할 수 있습니다.”

라시엘의 눈에 미세한 만족감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있습니까?”

“내 허락 없이 몸에 손대지 마.”

세레나가 침묵했다.

몇 초 뒤.

“설표 상태에서도요?”

라시엘의 표정이 굳었다.

세레나는 매우 진지했다.

“연구상 필요한 촉진 검사가 있을 수도 있어서.”

“안 된다.”

“전부요?”

“전부.”

세레나가 미묘하게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귀 뒤도?”

“…….”

“그쪽 반응이 굉장히 명확했는데.”

라시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세레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창문이 덜컹거렸다.

세레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이 가까웠다.

“전하.”

“왜.”

“오늘은 여기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라시엘이 고개를 들었다.

“성으로 돌아갈 거다.”

“이 상태로요?”

“갈 수 있다.”

“못 갑니다.”

“세레나.”

“아까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셨습니다.”

“그건—”

“그리고 기사단은 아직 설원을 수색하고 있어요.”

세레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설표로 다시 변하면 어떡하시려고요?”

라시엘은 입을 다물었다.

정곡이었다.

세레나는 소파를 가리켰다.

“여기서 주무세요.”

라시엘이 소파를 바라봤다.

길이는 충분했지만 편하게 잘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세레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불편하시면 침대를 쓰셔도 되고요.”

라시엘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 돌아왔다.

세레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덧붙였다.

“저는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네 침대?”

“네.”

“…….”

라시엘의 표정이 묘해졌다.

세레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침대 쓰세요.”

“됐어.”

“상처에 소파가 더 안 좋습니다.”

“상관없다.”

“전하.”

“여기서 잔다.”

고집이었다.

세레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담요를 가져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라시엘의 어깨에 덮어 주려 했다.

라시엘이 손으로 막았다.

세레나가 멈췄다.

“왜요?”

“내가 한다.”

“아.”

아까 정한 조건이 떠올랐다.

허락 없이 손대지 않기.

세레나는 담요를 넘겼다.

“죄송합니다. 습관이 아직.”

“고쳐.”

“노력하겠습니다.”

세레나는 침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라시엘은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이상한 하루였다.

죽을 뻔했고.

수십 년 동안 숨긴 비밀을 처음 보는 여자에게 들켰으며.

꼬리를 잡혔고.

까망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그런데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따로 있었다.

마력이 안정되어 있었다.

세레나가 방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접촉했을 때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라시엘은 눈을 감았다.

이 여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왜 자신에게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세레나 브리엘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가라앉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세레나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긁는 소리.

그리고 낮은 숨소리.

처음에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툭.

무언가 침실 문을 건드렸다.

세레나는 몸을 일으켰다.

“전하?”

대답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멈췄다.

거실에 라시엘은 없었다.

대신.

문 바로 앞에 검은 설표가 앉아 있었다.

세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

“…….”

설표가 아주 천천히 꼬리를 바닥에 내렸다.

세레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설표의 귀가 뒤로 눕는다.

맞았다.

세레나는 아래를 보았다.

설표가 물고 있는 것이 있었다.

거실에 깔아 준 담요.

그것을 입에 문 채 침실 문 앞까지 끌고 온 모양이었다.

세레나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여기 계세요?”

설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주무신다면서요.”

꼬리가 한 번 움직였다.

세레나는 설표와 자신의 침대를 번갈아 봤다.

설마.

“……안에 들어오고 싶으십니까?”

설표가 가만히 있었다.

세레나의 입술이 떨렸다.

웃으면 안 된다.

상대는 북부 대공이다.

조금 전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연구 조건을 협상하던 남자다.

그런데.

지금은 커다란 검은 설표가 담요를 물고 침실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세레나는 결국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하.”

회색 눈동자가 그녀를 노려봤다.

“혹시.”

세레나가 최대한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혼자 주무시는 게 무서우십니까?”

설표의 털이 확 부풀었다.

세레나는 그날 두 번째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했다.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대공의 침실 아래에는 누군가의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북부 대공성에서 긴급 통신이 들어왔다.세린이었다.『세레나 님!』세레나가 바로 수정구를 열었다.“무슨 일입니까?”세린의 얼굴이 창백했다.『말씀하신 대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쪽 별관 아래에서 갑자기 반응이 시작됐어요.』“어떤 반응이죠?”『문이 생겼어요.』세레나의 손이 멈췄다.“누가 열었습니까?”『아무도요.』세린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돌렸다.동쪽 별관의 오래된 복도.그 끝.원래는 평범한 돌벽이어야 할 자리에.검은 문이 나타나 있었다.문 위에는 은빛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WHO WILL OPEN THE DOOR?」그리고.그 아래.새로운 문장.「THE KEY HOLDER HAS REFUSED」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마티아스의 6년 전 거부가.아직도 남아 있었다.그런데 문은 열리고 있었다.“세린, 모두 물러나세요. 절대 접근하지 마세요.”『네!』그 순간.문 아래에서 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SECONDARY ACCESS HOLDER DETECTED」세레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누구입니까?”세린이 화면을 확대했다.은빛 글자가 천천히 바뀌었다.「OBSERVER AUXILIARY ACCESS」「CURRENT CANDIDATE : SERENA BRIEL」세레나의 얼굴이 굳었다.자신의 이름.그러나.그녀는 지금 NODE XII에 있었다.대공성의 문 앞에 있지도 않았다.접근을 허락한 적도 없었다.그런데 시스템은 그녀를 보조 접근 후보로 지정하고 있었다.라시엘이 낮게 물었다.“네가 열쇠라는 건가?”세레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그녀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봤다.“정확히는 저를 열쇠로 사용하려는 겁니다.”그때.검은 문 위에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CANDIDATE CONSENT : NOT REQUIRED」세레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또.같은 방식이었다.권한이 있다는 이유로.그 사람의 선택을 건너뛰고.문을 열려고 한다.세레나는 즉시 렌에게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대공의 침실 아래에는 누군가의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어요.”「뭔데?」“세라가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이유를 알고 싶다고 하셨죠?”「응.」“혹시 세라가 당신에게 남긴 다른 말이 있습니까?”아래에서 한동안 아무 대답도 없었다.그러다.「하나 있어.」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무슨 말입니까?”「문을 열기 전에 대답을 들으라고 했어.」“누구의 대답이요?”「안에 있는 사람.」세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이해합니다.”「아니.」아래의 목소리가 조금 선명해졌다.「문 안에 있는 사람 말고.」세레나의 손이 멈췄다.“그럼.”「문을 열려는 사람.」잠시 침묵.「그 사람한테도 물으라고 했어.」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무엇을요?”「정말 열고 싶은지.」세레나는 잠시 생각했다.문 안의 사람이 나가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는 건 당연하다.그러나 문을 여는 사람에게도 선택이 필요하다.그 행위가 위험하다면.문을 여는 사람 역시 자기 의사와 책임을 알아야 한다.“세라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압니까?”「응.」“무엇입니까?”「옛날에는 문을 여는 사람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대.」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야 했고, 문을 열고 나면 그 안에서 나온 걸 책임져야 했대.」BRIEL.KALT.HOLDER.OBSERVER.역할.권한.의무.그 모든 것과 연결되는 말이었다.세레나는 천천히 물었다.“그러니까 문을 여는 사람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까?”「응.」그 존재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열쇠가 있다고 해서 열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세레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기록했다.다음 날 아침, 세레나는 마티아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심박 안정.체온 35.8도.KALT 유지선 반응은 전날보다 낮았다.다만 기억 연속성은 여전히 불안정했다.“오늘은 실제 분리 실험을 하지 않습니다.”마티아스가 고개를 들었다.“왜?”“어제 경계 고정 회로를 조사할 때 당신의 접근키가 자동으로 반응했어요. 먼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대공의 침실 아래에는 누군가의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루시가 옆에서 말했다.『그런데 240년 전 도면에 이상한 표시가 있어요.』작은 원형 문양이었다.원 안에 짧은 선 두 개.세레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자신이 예전에 본 표본 기록을 떠올렸다.검은 유리 같은 마력석.은빛 선.그리고 외부 마력을 받으면 같은 파형을 약화 없이 전달하던 구조.“렌, 7번 표본장의 검은 유리 표본과 비교해 주세요.”『응.』두 문양이 겹쳐졌다.형태 유사도 92.1%.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중계 장치 계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시엘이 물었다.“그럼 그 방 아래에서 수도 연구소까지 신호를 보냈다는 건가?”“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연결 경로가 확인되지 않았어요.”세레나는 세린에게 말했다.“지금은 공간을 열지 말고, 별관의 마력관 사용 기록만 확인해 주세요. 특히 제가 북부에 온 뒤부터요.”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기록이 나타났다.세레나가 북부에 도착한 날.동쪽 별관 마력관 사용량이 평소보다 3.8% 증가했다.그날 밤.검은 설표를 침대에 눕힌 직후.사용량이 다시 증가했다.그리고 라시엘이 인간으로 돌아온 새벽.별관 아래에서 아주 짧은 신호가 발생했다.「BOUNDARY RESPONSE DETECTED」세레나의 손이 멈췄다.“당시 저는 별관 아래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라시엘이 그녀를 바라봤다.“나도 몰랐다.”“그렇다면 그때 신호가 발생한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렌이 과거 기록을 더 확대했다.신호 발생 시각.라시엘의 인간형 복귀 시각과 거의 일치했다.그러나 정확히 같은 시각은 아니었다.경계 반응이 먼저 발생했고.그로부터 11초 뒤.라시엘의 형태가 안정됐다.세레나의 표정이 굳었다.“11초.”라시엘이 물었다.“그게 중요한가?”“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전하가 돌아온 결과로 신호가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순서가 반대예요.”그녀는 곧바로 다른 가능성을 적었다.별관 아래의 경계 기록이 라시엘의 변화를 도왔을 수도 있다.라시엘이 변하기 직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대공의 침실 아래에는 누군가의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북부 대공성 동쪽 별관의 지하에는 공식 도면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정확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록된 공간이었다.세레나는 NODE XII에서 전달받은 좌표를 세 번 확인한 뒤 북부 대공성의 건축 도면을 불러왔다. 동쪽 별관은 약 240년 전 증축됐고, 그 아래 지반은 자연 암반으로 표시돼 있었다. 지하실도, 배수로도, 비밀 통로도 없었다. 그러나 607년 전 관찰자 세라의 마지막 경계 흔적은 분명히 그 암반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더 이상한 점은 그 신호가 현재도 활성 상태라는 사실이었다.“렌, ACTIVE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부터 확인해 주세요.”『경계 기록이 지금도 응답하고 있다는 뜻이야.』“현재 살아 있는 사람이 응답하는 겁니까?”『그건 몰라.』“독립 자기 인식은요?”『아직 확인 못 했어.』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기록 장치가 자동으로 응답해도 시스템에는 ACTIVE라고 표시될 수 있었다. 누군가 그 기록을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과거의 신호가 다른 회로를 통해 반복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 세라가 살아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라시엘은 화면에 나타난 별관 도면을 한동안 바라봤다.“그 방이라면 기억한다.”세레나가 그를 돌아봤다.“제가 까망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사용했던 방이죠?”“그래.”“전하가 사람으로 돌아온 뒤 제 침대에 누워 계셔서 제가 굉장히 놀랐던 곳이기도 하고요.”라시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놀랐던 정도였나?”“제 연구 인생에서 가장 큰 혼란 중 하나였습니다.”“그런데 날 쫓아내지는 않았지.”“환자였으니까요.”“그 뒤에도.”세레나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그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죠.”“어떻게?”“환자가 자꾸 연구원의 허리를 잡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으니까요.”옆에서 장비를 정리하던 카른이 손에 든 금속 고리를 떨어뜨렸다.챙그랑.세레나는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카른 경, 괜찮습니까?”“예. 아주 괜찮습니다.”“안색이 좋지 않은데요.”“연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문을 열기 전에 물어야 할 것

    「누가 나를 여기 넣었는지부터 알려 줘.」NODE XII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문장은 짧았지만, 세레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찾아낸 기록은 대부분 누군가를 살리거나 되돌리겠다는 명목으로 작성돼 있었다. FIRST HEART를 복원한다는 명령도, 아르젠-1에서 사람을 꺼내겠다는 시도도, 오래된 역할을 후임자에게 넘기려던 규칙도 모두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사람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언제나 가장 나중에 확인됐다.이번에는 순서를 바꿔야 했다.세레나는 측정기를 내려놓고 닫힌 문을 향해 자세를 바로 했다.“질문을 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저희가 가진 기록만으로는 누가 당신을 이곳에 넣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모른다고?」“네. 당시 사용된 권한은 확인했지만 실제로 명령을 내린 사람과 당신을 옮긴 사람이 같은지도 모릅니다.”「그럼 왜 왔어?」세레나는 잠깐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온 이유는 최종 거부권을 확인하고, 루시안의 상태를 살피고, 마티아스가 NODE XII를 떠나지 못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COMPANION HEART XII의 마지막 반응을 추적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 아래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은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처음부터 당신을 찾으러 온 건 아닙니다. 이곳의 오래된 권한과 경계 기록을 조사하러 왔다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그럼 나를 꺼내러 온 것도 아니네.」“네.”「……이상하군.」“무엇이요?”「여기 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꺼내겠다고 했는데.」세레나의 눈빛이 달라졌다.“이전에 누군가 찾아왔습니까?”「여러 번.」“직접 만났습니까?”「아니.」“대화는요?”「나를 꺼내면 모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했어.」세레나는 즉시 렌을 바라봤다. 렌은 이미 NODE XII의 오래된 출입 기록을 검색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고개를 젓자 탐색 범위를 바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을 여는 방법이 아니라, 누가 이 존재를 어떤 목적

  •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남의 문을 열 수는 없습니다

    세레나는 화면에 떠오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처음에는 번역 오류를 의심했고, 두 번째에는 앞뒤 문장이 빠졌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조금 전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세라는 아르젠-1로 돌아가고 싶었다.그것은 기록에 남아 있는 사실이었다.그러나 세라가 돌아가기 위해 AMENDMENT 04를 잠갔다는 것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렌, 마지막 문장은 그대로 두고 승인 범위를 보여 주세요.”『승인 범위?』“세라가 무엇을 원했는지와 실제로 어떤 명령에 동의했는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방금 나온 건 승인 사유에 첨부된 문장이지, 실행 명령 전체가 아니잖아요.”렌의 빛이 잠시 흔들렸다.『맞아.』세레나는 관찰일지를 펼쳤다. 조금 전까지 자신도 세라가 스스로 만든 안전장치를 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록이 실제로 증명하는 건 그보다 좁았다. 세라의 이름으로 된 관찰자 인증이 있었고, 그 인증을 이용해 AMENDMENT 04가 잠겼으며, 세라가 아르젠-1로 돌아가고 싶다는 문장을 남겼다는 것뿐이었다.“당사자가 원한 것과 시스템이 실행한 일이 같다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라시엘이 옆에서 물었다.“그럼 세라가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건가?”“그럴 수도 있고, 일부에만 동의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정말 잠그는 데 동의했을 가능성도 남아 있어요. 지금은 어느 쪽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NODE XII 아래에서 전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세라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세레나는 닫힌 문을 바라봤다.“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그 사람이 얼마나 화냈는지 봤으니까. 아르젠-1에서 나왔을 때도, 자기 동의 없이 꺼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을 때도, 다시는 누구에게도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도 내가 옆에 있었어.”“그렇군요.”“그러니까 세라가 그 규칙을 없앴을 리 없어.”세레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차분히 대답했다.“그 기억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라가 그때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