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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거절할 수 없는 배정

Author: 花柳響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2 00:12:32

 전담 배정?

 나를?

 그렇게 겁에 질려 도망치듯 빠져나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서린 씨만 맡기고 싶대요. 이용 요금도 크게 올리겠다고 했고, 서린 씨 수당도 상당히 붙을 거예요. 이런 조건은 정말 드물어요.』

“……거절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왔다.

“죄송해요. 그 집은…… 지금 저한테 너무 버거워요. 정말 못 하겠어요.”

『네? 왜요?』

“다른 곳이면 어디든 갈게요.”

 휴대전화를 쥔 손에 땀이 배었다.

“힘든 현장이어도 괜찮아요. 어떤 청소든 할게요. 그러니까 거기만 빼고…… 다른 곳으로 배정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필사적이었다.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도 그 사람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에 있기만 하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더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본능이 계속 경고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정 씨 목소리에서 영업용 밝음이 사라졌다.

『……서린 씨. 솔직히 말할게요. 이건 단순한 지명 요청 수준이 아니에요.』

 종이를 넘기는 마른 소리가 들렸다.

『그쪽에서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아주 강하게 요구했어요. 전담 배정이 안 되면 업체와 맺은 서비스 계약 자체를 재검토하겠대요. 회사 입장에서도 그렇게 큰 이용처를 놓치면…… 앞으로 서린 씨에게 지금처럼 배정을 계속 주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숨이 막혔다.

 거절하면 길이 끊긴다. 직접적인 해고 통보는 아니었지만, 말 뒤에 숨은 압박이 내 주변의 출구를 하나씩 닫았다. 태윤의 심기를 거스르면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생계줄까지 놓칠 수 있었다.

『그래도 조건은 정말 좋아요. 급여 산정도 다시 하고 특별수당도 붙일 거예요. 그리고……』

 미정 씨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계약 기간에는 강 대표님 댁의 배정 요청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조건이에요. 사실상 전속 하우스키퍼처럼 운영하는 거죠. 업체와의 이용계약 변경 서류, 서린 씨 쪽 근무조건 확인서는 곧 보내 줄게요.』

 도망갈 길을 막고 돈으로 붙잡는다.

 예전에 내가 오만하게 휘둘렀던 힘을, 이번에는 그가 나를 옭아매는 데 쓰는 것 같았다.

“콜록…… 으…….”

 등 뒤에서 어머니가 힘겨운 신음을 흘렸다.

 그 소리 하나로 망설임이 끊겼다.

 자존심을 지키며 함께 무너질지, 내 마음 하나를 꺾고 내일을 이어 갈지.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메마른 입술을 적시고 항복했다.

“그 배정, 받겠습니다.”

◇

 다음 날 오후.

 마음속의 망설임을 밟아 뭉개듯 다시 그 무거운 대문 앞에 섰다.

 흐린 하늘 아래, 어제 내린 비의 습기를 머금은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지금 방식으로는 치료를 이어 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전문의가 했던 말이 뱃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병은 가볍지 않았다. 장기 치료와 간병,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일부 검사와 처치까지 생각하면 손에 쥔 돈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면 적어도 어머니의 치료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그걸 위해서라면 내가 조금 망가져도 상관없었다.

 예전에 상처 입힌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의 생활을 뒤에서 받치는 사람으로 일한다. 어쩌면 당연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내가 받아야 할 벌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인터폰을 누르고 잠금이 풀린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서늘한 정적.

 다만 오늘은 한 가지가 달랐다. 현관 홀의 사이드테이블 위에 메모 한 장과 카드키가 놓여 있었다.

『오늘 업무: 1층 거실 마무리 청소, 2층 안방 침구 교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날카로운 필체였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프린트된 업무지시가 아니라 직접 쓴 글씨. 그것만으로도 귓가에서 명령을 듣는 듯 압박감이 밀려왔다.

“안방…….”

 메모를 든 손이 떨렸다.

 어제는 잠겨 있던 태윤의 가장 사적인 공간.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무방비한 시간이 쌓이는 곳.

 일이야. 그냥 침구를 바꾸는 것뿐이야.

 숨을 길게 내쉬며 스스로를 다잡고 카드키를 집었다.

 겁먹지 말자. 나는 청소하러 왔을 뿐이다.

 대리석 계단을 한 칸씩 오르며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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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락한 상속녀, 7년 만에 첫사랑의 전속 하우스키퍼가 되었다   제167화 두 줄의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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