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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샹차이 다다
이튿날 아침 일찍, 노부인은 유씨를 불러 종선의 뜻을 전했다.

유씨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심 부인은 어떻게든 자신의 적녀를 종씨 가문의 정실부인으로 들여보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심명주를 첩으로 달라고 한다면, 자존심 강한 심 부인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노부인이 굳이 자신을 부른 이유도 뻔했다. 남의 원망을 살 만한 궂은일을 자신에게 떠넘기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낯으로 심 부인에게 그런 말을 꺼낸단 말인가. 누군가 제 딸을 첩으로 달라고 했다면 유씨 역시 분을 참지 못하고 펄쩍 뛰었을 것이다.

유씨가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명주는 엄연히 정실부인의 딸이지 않습니까. 그런 아씨를 첩으로 들이겠다는 건 모욕이나 다름없으니, 심 부인께서 허락하실 리 없을 듯합니다.”

노부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심명주는 그 집 부인의 친딸도 아니고 의붓딸이지 않느냐. 의붓딸 하나를 내주고 온 집안의 앞날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는 그쪽에서도 알아서 판단하겠지.”

“게다가 둘째의 첩으로 들어간다 해도 그 집 딸이 홀대받을 일은 없을 게다. 우선 네가 가서 뜻을 전해 보거라. 저쪽에서 거절하면 그만 아니겠느냐.”

노부인의 처소를 나서는 유씨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어머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부터 좋은 일은 아닐 거라 짐작했지만, 설마 이런 일을 시키실 줄이야.

유씨는 한숨을 내쉬며 하인에게 일렀다.

“내 명첩을 가지고 심씨 가문에 다녀오너라. 어머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어찌 되었든 한번은 찾아가 봐야겠지.”

*

종선이 돌아온 뒤로 종씨 가문에는 방문을 청하는 명첩이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대부분 조정의 관리들이 보낸 것이었다.

이번 소금세 비리 사건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었다. 종선이 도성에 돌아온 지 불과 며칠 만에 벌써 세 집안의 재산이 몰수되고 일가가 옥에 갇혔다. 그것도 모두 조정에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관리들의 집안이었다.

그러니 조정의 대신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언제 자신들에게도 화가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치 머리 위에 날카로운 칼이 매달려 있는 듯, 그들은 언제 그 칼날이 제 집안으로 떨어질지 몰라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특히 이번 사건에 연루된 관리들은 어떻게든 종선에게 선처를 구하려 애썼다. 그중에는 딸을 첩으로라도 보내겠다며 매달리는 자까지 있었다.

하지만 종선은 좀처럼 손님을 만나 주지 않았다. 도성으로 돌아온 뒤에도 줄곧 바쁜 나날을 보냈고, 종씨 가문 역시 별다른 잔치 하나 열지 않은 채 평소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김민희는 바깥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종선이 돌아왔든 말든 그녀의 일상에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평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작은 처소에 머물렀고, 바깥 소식은 이따금 월계에게 전해 듣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월계가 조정의 사정까지 알아 올 수는 없었다. 다만 종선이 조만간 부인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날도 들뜬 얼굴로 김민희에게 달려왔다.

그 말을 들은 김민희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이 혼처를 알아보는 자리였구나. 어쩐지 하인들이 죄다 그쪽으로 몰려가더라니. 그런데 심씨 가문의 아씨는 어떻게 생겼을까?”

문득 그날 정자에서 얼핏 보았던 아씨가 떠올랐다. 혹시 그 여인이 심씨 가문의 아씨였을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둘째 나리께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분명 미인이시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고우셔도 우리 아씨만은 못하실 거예요!”

김민희는 월계를 가볍게 흘겨보았다.

“괜히 나를 그분과 비교하지 마라. 하여간 말은 잘한다니까.”

하지만 월계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일개 시녀에 불과해 보고 들은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월계가 만나 본 여인 중 김민희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없었다.

함께 지낸 지도 벌써 몇 해가 흘렀건만, 월계는 여전히 김민희의 얼굴을 보며 넋을 잃곤 했다. 사람이 어쩌면 저리도 고울 수 있을까. 하늘도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뭘 그리 멍하니 있니? 이리 와서 먹 좀 갈아줘. 회옥 오라버니께 편지를 써야겠다.”

월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대답했다.

“네, 아씨. 금방 갈게요.”

사회옥은 현재 공부에서 종육품 관직을 맡고 있었다. 석 달 전에는 지방으로 파견되어 도로 공사를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이번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다면 한 단계 높은 관직으로 승진할 가능성도 있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꾸준히 서신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이어 왔다.

사실 김민희와 사회옥은 진작 혼례를 올렸어야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회옥의 부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적장자인 그가 상을 치러야 하는 바람에 혼례가 미뤄지고 말았다.

김민희는 줄곧 사회옥을 자신을 지켜 줄 든든한 방패막이로 여겨 왔다. 그렇다고 그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호감을 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두 사람은 한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지냈다. 그동안 사회옥은 김민희와 그녀의 남동생을 단 한 번도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형편이 허락하는 한 가장 좋은 것을 챙겨 주었다.

게다가 용모도 빼어났다. 옥처럼 맑고 수려한 외모를 지닌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귀공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민희는 사회옥의 성품과 됨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내와 혼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훗날 종씨 가문을 떠나게 된다면 사회옥도 함께 데려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다만 아직 사회옥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종씨 가문을 떠나야 할 마땅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밖에 따로 집을 마련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

온종일 바쁘게 움직인 유씨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청화의 부축을 받으며 처소로 돌아가던 중, 멀지 않은 곳에서 수상쩍게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청화가 곧바로 그쪽을 향해 호통쳤다.

“거기 누구냐!”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잔뜩 몸을 움츠린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가오자마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소인 복귀, 큰마님께 인사 올립니다! 꼭 아뢰어야 할 일이 있어 감히 찾아왔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유씨는 피곤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인데, 하인 하나의 사정까지 일일이 들어 줄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눈치 빠른 청화가 곧장 사내를 꾸짖었다.

“어느 처소의 하인이기에 감히 여기까지 들어온 것이냐? 지금이 몇 시인 줄이나 아느냐? 아무리 급한 일이라 해도 이 늦은 시각에 큰마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여봐라, 당장 이자를 끌어내거라!”

곁에 있던 나이 지긋한 하녀 둘이 곧장 다가와 사내의 양팔을 붙잡고 끌어내려 했다.

다급해진 사내가 목청껏 외쳤다.

“큰마님! 둘째 나리에 관한 일입니다! 그날 둘째 나리께서 사람을 잘못 알아보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씨가 멈칫하더니 사내를 돌아보았다.

“잠깐. 무슨 말인지 끝까지 들어 보자꾸나.”

유씨의 말에 하녀들은 사내의 팔을 놓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복귀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둘째 나리께서 돌아오신 날이었습니다. 소인이 청수헌 옆 연못가에서 깜빡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래도 심씨 가문의 아씨인 듯했는데…….”

복귀는 그날 자신이 보고 들은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유씨에게 털어놓았다.

종선이 나타나기도 전에 심명주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고, 결국 두 사람은 마주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종선이 정자에서 만난 여인은 다름 아닌 김민희였다!

유씨는 깜짝 놀라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게 정말이냐? 내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알고 하는 말이겠지?”

복귀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큰마님께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제 말에 단 한 마디라도 거짓이 있다면 벼락을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유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

“그런데 어찌 이제야 말하는 것이냐! 벌써 이레나 지나지 않았느냐!”

유씨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틀 전, 유씨는 이미 심 부인에게 심명주를 종선의 첩으로 맞아들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예상대로 심 부인의 얼굴은 그 자리에서 싸늘하게 굳어졌다. 후작가의 적녀가 남의 첩으로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 것이었다.

결국 혼담은 그대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어제는 노부인마저 그 일을 꺼내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정도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느냐며 유씨를 무능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게다가 여씨 첩실까지 이때다 싶어 유씨를 비웃고 나섰다.

유씨는 생각할수록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복귀가 진작 종선이 마음에 들어 한 여인이 심명주가 아니라 김민희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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