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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강유영은 속이 울렁거려 빨리 그를 피해 도망치려고 했다.

“강 소저, 내 소저를 눈여겨본 것은 출신 따위를 따져서가 아니오. 설령 양녀라 한들, 진국공부의 양녀이니 여느 평범한 양녀들과는 다른 법이지. 그러니 그리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시오.”

주지상은 더 이상 가식을 떨지 않았다.

점차 본색을 드러내며 앞을 가로막는 그의 웃음은 정말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제가 국공부의 양녀라는 것을 아시는 분이 어찌 이러십니까?”

강유영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억지로 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어찌 저의 뜻을 무시하고 무례하게 구십니까? 훗날 진국공부의 어른들을 어찌 감당하시려고요?”

그녀는 예전에 조원철이 가르쳐준 병법서의 내용을 떠올렸다.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할 때는 세력으로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진국공부의 위세를 빌려 주지상에게 압력을 가해야 할 때였다.

“감당이라니, 무엇을 말이오?”

주지상은 발로 문을 차서 닫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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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74화

    임소아는 용모도 반반하고 부지런했다. 어디로든 시집을 보내면 은자 몇 푼은 거뜬히 챙길 수 있었다. 영혼 혼례만큼 큰 돈은 아니더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이대로 경성 사람들을 따라가게 두면 동전 한 닢 건질 수 없었다.임소아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으니 임대산 부부가 어떤 부류인지 잘 알았다.그녀는 두 사람이 개과천선하리라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이렇게 하지요. 내가 당신들에게 은자를 조금 줄 테니……."강유영은 임소아가 가엾기도 했고, 임대산 부부의 속셈이 돈이라는 것도 대강 짐작했다.더 이상 저들과 옥신각신하고 싶지 않았다."아씨께서 우리 소아를 몹시 아끼시는 모양입니다. 저희가 돈을 바라고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아씨께서 은자를 내주시면 훗날 소아에게 잘해주시지 않겠나 싶어서……."임대산은 머쓱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오직 은자였다. 은자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소아를 천민으로 신분을 바꿔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도망칠 염려도 없으실 테지요."유씨도 재빨리 거들며 아부를 떨었다.임소아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두 사람이 돈을 노리고 찾아왔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양민인 신분을 천민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노비로 팔아넘기겠다는 뜻이었다."아씨, 저 사람들에게 은자를 주지 마십시오."임소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다부지게 말했다."전 어릴 적부터 동네 사람들의 적선으로 자랐습니다. 저들은 제게 밥 몇 술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습니다. 저들이 절 키웠다고 할 수 없으니 떠나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그녀는 강유영에게 은자가 넉넉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금수만도 못한 자들에게 단 한 푼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강유영은 은표를 꺼내려던 손을 멈추고 임소아를 바라보았다."이 망할 년이……!"유씨는 참지 못하고 험한 말을 내뱉었다."입 다물어!"임대산이 아내를 다그쳤다. 경성에서 온 대인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73화

    영혼 혼례의 악습을 근절한다는 공시가 붙었고 조원철의 상처도 거의 다 아물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병주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저희가 다 잘못했습니다. 대인, 제발 자비를 베푸시어 누이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십시오…….""그렇습니다. 소아는 우리 동생 아닙니까. 동생을 집에 데려가려는 것뿐입니다……."문밖에서 임대산 부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라버니와 형님이 왔어요."옷을 개던 임소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옷가지가 침상 위로 떨어뜨렸다.그들은 또다시 임소아를 잡아가러 온 것이다."임소아는 자발적으로 우리 아씨의 시녀가 되기로 했다. 이제 너희와는 상관없는 몸이니 당장 돌아가거라."청류는 성가신 얼굴로 차갑게 대꾸했다."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소아는 버젓한 양민인데 어찌 남의 집 시녀로 들어간단 말입니까?"임대산은 불복하면서도 감히 목청 높여 반발하지는 못했다."시녀가 되든 말든 오라버니인 서방님의 허락이 있어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닙니까? 경성에서 오신 귀한 분들이라면서 앞뒤가 이리 꽉 막히셨습니까……."유씨 역시 주눅이 들었지만 끝내 굽히지 않았다.주유재에게 받은 은자는 이미 관아에 빼앗긴 뒤였다.공들여 키운 임소아를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오늘 기필코 임소아를 데려가든가, 아니면 돈이라도 뜯어낼 심산이었다. "소아야, 따라 나오렴."강유영은 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임소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불안한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조원철은 밖으로 나서진 않았으나, 공문을 내려놓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우리 아씨 곁에 있는 자들은 모두 양민이다. 임소아는 이미 열다섯이 넘어 성인이 되었으니, 제 의지로 아씨 곁을 모시겠다는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청류는 방문 앞을 굳건히 지키며 부부의 진입을 막았다."청류."강유영이 그를 불렀다."예, 아씨."청류는 강유영을 보자 싱긋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마침 나오셨군요, 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72화

    강유영은 조원철의 곁에 서서 올곧은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단호하고 당당한 음성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강유영은 마음 깊이 그에게 감복했다.과거 사람들에게 조원철이 강직하고 공명정대한 관리라는 말을 익히 들었다.오늘은 그 소문이 사실임을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백성들은 조원철의 말을 듣고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나직하게 수군거렸다."영혼 혼례는 죽은 이를 위로한다는 명분일 뿐, 실상은 산 자의 미련이자 탐욕의 도구에 불과하다."조원철은 목소리를 높였다."혼례를 치르겠다고 무덤을 파헤치거나 힘없는 여인을 납치하는 자들도 있다. 주유재처럼 사리사욕을 위해 남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며 집에 불까지 지르는 자마저 나타났다. 저기 저 잿더미와 억울한 화재민들을 보아라. 죽은 자식 장가보내겠다고 재산을 탕진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느냐. 살아생전 혼인도 못 해본 여인들이 죽어서도 억지로 혼례를 치러야 했다. 심지어 산 채로 순장되는 비극마저 벌어지고 있었지. 이것이 정녕 망자의 평안을 비는 길이더냐!"백성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조원철의 말에 깊이 공감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원통함이 서렸다.조원철은 주위를 둘러보며 동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굳건한 어조로 말했다."오늘 주유재의 끔찍한 악행이 낱낱이 밝혀졌다. 이 황당한 영혼 혼례도 마땅히 여기서 멈춰야 한다! 죽은 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산 자는 삶을 소중히 여기며 바른 도리를 행해야지, 귀신에 기대어 스스로 무덤을 파서는 안 될 것이다!"강유영은 조원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거대한 산처럼 굳건하고 위엄이 넘쳤다.무수히 많은 백성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참된 관원이었다."대인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영혼 혼례는 사람 잡는 악습입니다!""우리 옆집도 아들 혼례 치러주겠다고 멀쩡한 딸을 팔아넘겼소!""이 끔찍한 악습을 당장 뿌리 뽑아야 합니다!"조원철의 말에 수많은 백성들이 깨달음을 얻었다. 감복한 백성들은 영혼 혼례를 향해 혐오와 통탄을 쏟아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71화

    주유재는 크게 놀라 고함을 지르며 주 부관을 압박했다."잡아라."조원철은 단호히 지시를 내렸다.청류가 손짓하자, 수하 두 명이 다가가 주유재의 양팔을 붙잡아 바닥에 꿇렸다. 그들은 곧바로 주유재의 입을 틀어막았다.주유재는 읍읍거리며 반항했지만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주 부관은 바닥에 꿇어앉은 채 진실을 털어놓았다.그는 주유재가 조원철 일행을 눈엣가시로 여긴 일부터, 방화를 지시한 과정, 그리고 주태복을 살해해 입막음하려 한 사실까지 숨김없이 고했다.방우겸은 창백해진 얼굴로 바들바들 떨었다.그는 병주로 부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주유재에게 푼돈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관할 지역에서 이렇게 큰 사고가 일어났으니 분명 그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다."방 지부는 어찌 생각하느냐."조원철의 시선이 다시 방우겸에게 향했다.방우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조금 전 내뱉었던 사고라느니 대의라느니 하던 변명들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그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여기서 또다시 상황을 무마하려 든다면, 그것은 방화를 묵인한 공범이 되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주유재! 이 천하의 몹쓸 놈! 이토록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끝까지 발뺌을 하다니. 여봐라! 주유재는 살인 및 민가에 방화를 저지르는 등,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 당장 포박해라! 주씨 집안 사람들도 모조리 하옥시켜라! 판결은 며칠 후에 다시 내리겠다!"방우겸은 평소와 다르게 단호하게 호통치며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포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주유재와 주 부관을 묶어 끌고 갔다."저놈은 목을 베어야 해! 천하의 몹쓸 놈!""집안 재산을 다 몰수해라!""우리 집을 물어내라!"분노한 백성들은 목청껏 소리쳤다.방우겸은 조원철을 보며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대인, 소관이 잠시 눈이 멀어 간악한 놈에게 속을 뻔했습니다. 조 대인께서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진실을 밝히지 못했을 겁니다. 염려 마십시오. 이 방화 사건은 소관이 철저히 파헤쳐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70화

    죽다 살아난 주태복은 오직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고 목숨을 부지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단숨에 자초지종을 진술했다."난 그런 적이……."주 부관은 변명하려 했지만, 이미 하얗게 질린 얼굴이 당황한 그의 내면을 폭로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주 부관!"주유재는 고함을 내지르며 주 부관의 말을 끊었다.주 부관은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라 얼빠진 표정으로 주유재를 쳐다보았다."이 천하의 몹쓸 놈! 아들의 영혼 혼례를 조용히 치를 방도를 찾아보라 했거늘, 감히 불을 질러 수많은 백성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어? 대체 누구 지시로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냐!"주유재는 턱을 치켜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백성들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듯 굴었다.강유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응시했다.주유재의 뻔뻔함에 기가 찼다.이 모든 불행의 원흉인 주제에 이제 와서 꼬리를 자르고 주 부관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감, 어찌 이러십니까! 전부 대감께서 시키신 일이 아닙니까! 전 그저 대감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그제야 주 부관도 상황을 파악했다. 주유재는 가문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그는 이대로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내가 언제 그런 짓을 시켰단 말이냐! 오랜 시간 내 곁에 일한 놈이라 충직하다고 믿었거늘, 뒤로 이런 흉악한 짓을 벌일 줄이야! 네 안위도 안중에 없다면 네 부모와 처자식의 덕이라도 쌓아야 할 것 아니냐. 어찌 이리 악독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작은 잘못이라면 내 어떻게든 무마해 주었겠지만, 이토록 끔찍한 죄는 나도 덮어줄 수 없다!"주유재는 짐짓 근엄하고 통탄스러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예, 제가 미쳤습니다! 제가 돌았나 봅니다! 태복이를 시켜 집에 불을 지르게 한 것은 다 제 짓입니다……."주유재의 말을 들은 주 부관은 제 뺨을 세차게 후려치며 호소했다.부모와 처자식을 위험에 빠지게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169화

    "태복아?"주유재의 뒤에 서 있던 주 부관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그는 바로 주 부관에게 의지하러 온 먼 친척 조카였다.주 부관은 주태복을 시켜 밤에 불을 지르게 했다. 다른 일들도 주유재의 뜻대로 배해 두었다. 주태복을 처리하러 보낸 자들이 어설프게 일을 처리했을 리 없었다.이치대로라면 주태복은 이미 목숨을 잃었어야 했다. 헌데 어찌 살아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주유재는 주 부관의 외침을 듣고 표정이 굳었다.그는 주태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주 부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부관 저 멍청한 놈, 이럴 때 놈의 이름을 부르면 어쩌자는 것인가. 모른 척 잡아떼면 발뺌하기 쉬웠을 것을.'하지만 주유재도 처음에 잠시 당황했을 뿐,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주 부관이 주태복을 아는 것이지, 자신은 그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니 이 일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두 사람, 아는 사이요?"방우겸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그는 대강 짐작한 바가 있었다.이 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었다.강유영은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탄로 날 위기에 처했으니, 이제 서로 물어뜯을 것이다."모르는 자입니다."주유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직접 만난 적이 없으니 그의 대답은 당당했다.주 부관은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자신이 말실수를 하여 주태복의 이름을 불렀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한들 아무도 믿지 않을 터였다."숙부님! 숙부님이 제게 불을 지르라 시키지 않았습니까! 불을 지르면 은자 백 냥을 주겠다며 선금 오십 냥까지 주셨으면서, 일이 끝나자마자 절 죽이려 사람을 보내다니요!"주태복은 주 부관을 보자마자 분통을 터뜨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그가 고개를 들자 목덜미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보였다. 누군가 목을 졸라 기절시킨 뒤 물에 던진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조원철의 수하들에게 구출된 것이다."무슨 헛소리냐! 네가 내 친척이긴 하나, 난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화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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