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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서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25 21:27:31

덕배는 결국 차부터 뺐다.

시동을 걸어 꽃집 입구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에 차를 세운 뒤에도 속이 묘하게 긁혀 있었다. 처음부터 잠깐 세워둔 건 자기 잘못이 맞았다. 평소라면 욕 한마디 하고 차를 옮긴 뒤 끝냈을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아저씨라는 말 한마디에 괜히 시비를 걸었고, 그 결과 스무 살짜리 여자애한테 길바닥에서 한바탕 얻어맞듯 잔소리를 들었다.

“씨발, 스물이면 다냐.”

차에서 내린 덕배가 문을 닫았다.

그대로 가면 됐다. 이미 약속 시간도 미뤄진 상태였다.

그런데 꽃집 앞에서 기다리던 배송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

기사님한테도 사과하세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왜 저 말을 처듣고…….”

욕을 씹으면서도 발은 그쪽으로 향했다.

덕배가 다가오자 배송 기사가 먼저 긴장한 얼굴을 했다. 덩치부터 압도적인 데다 눈썹 위 흉터까지 있으니 좋은 인상을 주는 얼굴은 아니었다.

덕배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겼다.

“기사님.”

“예?”

“차 때문에 기다리셨죠.”

“아, 예. 조금…….”

“죄송합니다.”

짧고 분명했다.

꽃집 앞에서 화분을 정리하던 여름의 손이 멈췄다.

정말 할 줄은 몰랐다.

덕배가 기사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 돌아서는 순간 여름과 눈이 마주쳤다.

여름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방긋 웃었다.

조금 전까지 얼굴이 벌게져 바락거리던 사람과 같은 여자인가 싶을 만큼 순식간에 표정이 달라졌다.

“감사합니다.”

덕배가 걸음을 멈췄다.

“뭐가.”

“사과해주셔서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한 거야.”

“그럼 됐어요.”

여름은 정말 그걸로 끝이라는 듯 다시 화분을 들었다.

덕배는 오히려 맥이 빠졌다.

“야.”

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아까는 사람 잡아먹을 것처럼 지랄하더니 이제 끝이야?”

여름이 눈을 깜빡였다.

“사과하셨잖아요.”

“그래서?”

“잘못한 사람이 사과했고 차도 빼셨는데 제가 계속 화낼 이유가 없죠.”

덕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여자애는 성질이 더러운 건지 좋은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여름은 화분을 안고 꽃집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돌아봤다.

“그리고 아까 소리 지른 건 죄송해요.”

이번에는 덕배가 멈칫했다.

“……뭐?”

“저도 너무 크게 말했잖아요.”

여름은 제 잘못까지 정확히 잘라 말했다.

“근데 아저씨가 먼저 사람 약 올린 건 맞아요.”

덕배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

“야.”

“그건 사과 안 할 거예요.”

“서로 사과하는 분위기 아니었냐?”

“제 잘못만 사과한 건데요?”

여름의 얼굴에는 악의가 없었다. 정말 당연한 말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덕배가 한동안 쳐다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존나 희한하다.”

“가끔 들어요.”

“칭찬 아닌데.”

“알아요.”

여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덕배는 또 말문이 막혔다.

한마디를 던지면 예상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법이 없었다.

그때 꽃집 안에서 재희가 여름을 불렀다.

“여름아, 꽃 들어온다!”

“네, 사장님!”

여름이 바로 돌아섰다.

덕배의 시선이 멈췄다.

여름.

아까 이름을 물었을 때는 죽어도 안 알려주더니 사장이 너무 쉽게 불러버렸다.

덕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서여름?”

걸어가던 여름이 우뚝 멈췄다.

천천히 돌아본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선명했다.

덕배가 웃었다.

“이름 알아냈네.”

“엿들은 거잖아요.”

“들린 건데 뭘 엿들어.”

“잊어버리세요.”

“싫은데.”

“왜요?”

덕배는 대답 대신 여름을 한번 위아래로 훑었다.

“서여름.”

“부르지 마세요.”

“여름아.”

여름의 눈이 커졌다.

“왜 갑자기 반말로 이름을 불러요?”

“나 서른넷.”

“그래서요?”

“너 스물.”

덕배가 뻔뻔하게 턱을 까딱했다.

“열네 살이나 많은데 반말 좀 하자.”

여름이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까는 열네 살 차이 별거 아니라면서요.”

덕배의 입이 잠깐 닫혔다.

여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번에는 제대로 잡았다는 얼굴이었다.

“본인 필요할 때만 많아져요?”

“…….”

“되게 편리하시네요.”

덕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말 존나 얄밉게 한다?”

“아저씨한테 배웠어요.”

이번에는 덕배도 참지 못하고 웃었다.

“미치겠네, 진짜.”

여름은 그 틈을 타 꽃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덕배는 닫히는 유리문을 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

“아, 씨발.”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는 급히 차로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 여자애 하나 붙잡고 쓸데없는 말씨름을 하느라 미뤄놓은 약속까지 잊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차에 올라타자 곧바로 전화가 울렸다.

“예.”

- 배 이사님, 도착하셨습니까?

덕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십 분 안에 갑니다. 먼저 서류 확인하고 계세요.”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꽃집은 백미러 너머로 금세 멀어졌다.

덕배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저녁, CH건설 회의실에서 덕배는 낮과 전혀 다른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 숫자 누가 확인했어.”

테이블 위에 보고서가 떨어졌다.

담당자의 얼굴이 굳었다.

덕배가 손가락으로 한 항목을 짚었다.

“현장 보고랑 이쪽 자재 수량이 왜 달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다시가 아니라 지금.”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틀린 숫자 보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 아니잖아.”

조금 전 꽃집 앞에서 웃던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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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덕한 여름   61

    덕배는 여름과 민우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J&J 안에 서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두 사람의 뒷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또 거절당한 다이아 반지가 든 쇼핑백이 남아 있었다. “배 이사님.” 재희의 목소리에 덕배가 돌아봤다. “왜요.” “안 가세요?” “갑니다.” 대답은 했지만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재희는 작업대 위 꽃을 정리하며 슬쩍 그를 봤다. 가방부터 시작해서 구두, 팔찌, 오늘은 다이아 반지까지. 가격을 몰라도 비싼 물건이라는 건 포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여름은 단 한 번도 상자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덕배는 거절당하면서도 다음 날 또 뭔가를 사왔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 “뭡니까.” “여름이가 왜 안 받는지 아직도 모르세요?” 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 “비싼 거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재희의 손이 멈췄다. 잠시 뒤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모르시네.” “뭘요.” “비싼 게 싫은 게 아니라 이유 없이 받는 게 싫은 거예요.” 덕배가 쇼핑백을 한번 내려다봤다. “내가 주고 싶다는데.” “그게 배 이사님 이유고요.” 재희는 꽃 줄기를 정리하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여름이는 자기 이유가 없잖아요.” 덕배의 미간이 조금 좁아졌다. “선물 받는 데 걔 이유까지 있어야 합니까?” “여름이는 그래요.” 재희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만 사오세요. 저러다 진짜 화내요.” 덕배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맨날 화내는데요.” “그건 그렇네요.” 재희도 웃었다. 덕배는 결국 쇼핑백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차에 올라타 뒷좌석 문을 열자 기가 막힌 광경이 보였다. 가방. 구두. 팔찌. 그리고 반지. 나란히 쌓인 쇼핑백을 보던 덕배가 혀를 찼다. “씨발, 매장 하나 차리겠네.” 운전석에 올라탔지만 바로 시동을 걸지는 않았다. 재희가 한 말이 걸렸다. 여름이 왜 안 받는지는 알았다. 이제는.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바로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 배덕한 여름   60

    덕배가 현장에서 빠져나온 건 저녁 일곱 시가 가까워진 뒤였다. 예정보다 일이 길어졌다. 오전부터 붙잡고 있던 협력업체 문제가 오후까지 이어졌고, 마지막 확인을 끝내고 나서야 현장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차에 올라탄 덕배는 안전모를 뒷좌석에 던졌다. 그 옆에는 작은 쇼핑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반지였다. 가방도 안 받았다. 구두도 안 받았다. 팔찌도 안 받았다. 그런데 덕배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어디까지 안 받나 보자는 오기가 붙었다. 오늘 고른 건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매장 직원이 선물 받는 사람과 무슨 관계냐고 물었을 때는 대충 얼버무렸다.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 조절과 교환이 가능한 제품으로 골랐고, 이번에도 가격은 가장 높은 쪽이었다. 덕배는 시계를 확인했다. J&J 영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아직 있겠지.” 차를 출발시켰다. 꽃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일곱 시 이십 분이 넘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덕배는 쇼핑백을 집어 들고 차에서 내렸다.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아저씨?” 여름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덕배는 안으로 들어서다 걸음을 멈췄다. 평소와 달랐다. 앞치마도 없었다. 무릎 아래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밝은색 원피스를 입었고, 늘 풀어놓거나 낮게 묶던 긴 갈색 머리는 깔끔하게 올려 묶었다. 목선과 작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옅게 화장까지 한 것 같았다. 덕배의 시선이 말없이 위에서 아래로 한번 내려갔다. 여름이 자기 옷을 내려다봤다. “왜요?” 덕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 전 민우와 첫 데이트를 한다던 날에는 선크림만 바르고 갔다고 했다. 오늘은 누가 봐도 달랐다. “너 어디 가냐.” 여름이 거울을 보며 귀 옆 잔머리를 정리했다. “데이트요.” 덕배의 턱이 바로 굳었다. 알면서 물은 셈이었다. “그 새끼랑?” 여름이 돌아봤다. “민우 씨요?” “어.” “네.” 대답도 시원했다. 덕배는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

  • 배덕한 여름   59

    다음 날 아침, 덕배는 침실 한쪽에 놓인 쇼핑백 두 개를 보며 셔츠 단추를 채웠다. 가방. 구두. 둘 다 실패였다. 어젯밤 검색창에 "스무 살 여자 선물"을 쳐본 뒤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결과는 죄다 비슷했다. 가방, 향수, 주얼리, 화장품. 향수는 마음에 안 들었다. 여름에게서는 원래 꽃향기가 났다. 굳이 다른 냄새를 덮을 이유가 없었다. 덕배는 시계를 채우다 손을 멈췄다. 주얼리. “그래.” 가방도 아니고 구두도 아니다. 몸에 하고 다니는 건 다를 수 있었다. 어제 분명 아무것도 사오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밀어냈다. 점심 무렵 덕배는 주얼리 매장에 들어섰다. “선물 찾으세요?” “예.” “연령대가 어떻게 되실까요?” “스물.” 직원은 익숙하게 몇 가지 제품을 꺼냈다. 가느다란 목걸이와 귀걸이, 작은 펜던트가 달린 팔찌까지 차례로 놓였다. 덕배의 시선은 팔찌에서 멈췄다. 여름의 손목이 떠올랐다. 자기 팔에 붕대를 감아주던 작은 손. 꽃 줄기를 잡고 가위를 움직이던 가느다란 손목. 덕배는 팔찌 하나를 들어봤다. “이건 얼마입니까.” 직원이 가격을 설명했다. 덕배는 고개를 저었다. “더 좋은 거.” “조금 더 높은 라인으로 보여드릴까요?” “제일 좋은 걸로.” 잠시 뒤 다이아몬드가 작게 세팅된 팔찌가 나왔다. 화려하게 크지는 않았지만 가격은 앞서 본 것들과 확연히 달랐다. 덕배는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손목 사이즈는 아실까요?” 이번에는 덕배도 멈췄다. 발 사이즈는 물어봤다. 손목 둘레까지 물어보면 여름이 바로 눈치챌 게 뻔했다. “제일 작은 걸로 하면 안 됩니까?” “조절 가능한 제품이라 크게 문제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그럼 그걸로.” 결제는 또 빨랐다. 오후 세 시. J&J 문이 열렸다. 여름은 꽃바구니를 만들다가 고개를 들었다. 덕배를 발견했다. 그다음 그의 손을 봤다. 작은 쇼핑백. 여름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덕배는 아무

  • 배덕한 여름   58

    다음 날 오전, 덕배는 현장으로 향하다 백화점 앞에서 차를 돌렸다. 어제 산 가방은 여전히 뒷좌석에 있었다. 상자조차 열어보지 않고 거절당한 물건이었다. 보통이라면 다시 매장에 보내든 누구에게 줘버리든 했겠지만 아직 그대로였다. 덕배는 가방이 아니라 다른 게 문제였다고 결론 내렸다. 취향. 서여름이 가방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걸 사면 됐다. 덕배에게는 단순한 문제였다. 백화점에 들어선 그는 어제와 다른 층으로 올라갔다. 여성 구두 매장이 이어진 곳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문제는 이번에도 아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덕배는 매장 직원에게 곧장 물었다. “스무 살 여자들이 뭐 신습니까?” 직원이 잠시 당황했다가 웃었다. “찾으시는 스타일이 있으실까요?” “예쁜 거.” “평소 스타일은요?” 덕배의 미간이 좁아졌다. 여름이 뭘 입었더라. 청바지. 운동화. 꽃집 앞치마. 양로원에 갔던 날도 운동화였다. “편하게 입습니다.” “그럼 로퍼나 플랫도 괜찮고요. 조금 꾸밀 때 신을 거라면 이런 펌프스도—” 덕배는 직원이 보여주는 구두를 훑었다. 그러다 가장 비싼 쪽에 시선이 멈췄다. “이건.” “시그니처 라인입니다.” “이걸로.” “사이즈는 어떻게 되세요?” 덕배가 멈췄다. “……사이즈?” “네.”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덕배는 잠시 서 있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배덕배: 야.] 답장은 잠시 뒤 왔다. [서여름: 왜요?] [배덕배: 발 몇이냐.] 이번에는 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서여름: 제 발이요?] [배덕배: 그럼 내 발 물어봤겠냐.] [서여름: 235요. 근데 왜요?] 덕배는 화면을 확인하고 직원에게 말했다. “235.” 결제까지 끝낸 뒤에야 여름의 마지막 질문에 답했다. [배덕배: 그냥.] 쇼핑백을 들고 나온 덕배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에는 가방이 아니었다. 신발은 누구나 신는다. 게다가 예뻤다. 가격도 충분히 비쌌다. 이 정도면

  • 배덕한 여름   57

    회의를 끝내고 CH건설을 나온 덕배는 곧장 J&J로 향했다. 같은 날 오후였다. 뒷좌석에는 백화점에서 산 가방이 든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한 번씩 눈에 들어왔지만 덕배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늘 그랬다. 여자에게 선물을 고르는 데 오래 고민한 적도 없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사줬고, 직접 고르기 귀찮으면 가장 비싸거나 좋은 걸 골랐다. 상대는 좋아했고 덕배도 그걸로 끝이었다. 이번에도 다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J&J 앞에 도착한 그는 익숙하게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쇼핑백을 들고 문을 열자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어서 오세요.” 작업대에서 꽃을 정리하던 여름이 고개를 들었다. 덕배를 발견한 얼굴에 의아함이 먼저 떠올랐다. “아저씨?” “어.” “아까 갔잖아요.” “알아.” 점심 무렵 진 꽃을 맡기고 돌아간 사람이 몇 시간 만에 다시 나타났으니 이상할 만했다. 여름의 시선이 덕배 손에 들린 쇼핑백으로 내려갔다. “그건 뭐예요?” 덕배는 작업대 앞으로 걸어가 쇼핑백을 올려놨다. “너.” 여름이 눈을 깜빡였다. “저요?” “어.” “뭐가요?” “선물.” 덕배는 별일 아니라는 듯 턱짓했다. “열어봐.” 여름은 쇼핑백과 덕배를 번갈아봤다. 익숙한 명품 브랜드 로고였다. 표정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왜요?” 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 예상했던 반응과 달랐다. “뭐가 왜야.” “왜 저한테 선물을 줘요?” “주고 싶으니까.” “갑자기요?” “어.” 여름은 쇼핑백에 손도 대지 않았다. 덕배가 답답한 듯 직접 상자를 꺼냈다. “일단 봐.” “아저씨.” “왜.” “저 이거 안 받아요.” 덕배의 손이 멈췄다. “뭐?” 여름은 장난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안 받을래요.” “열어보지도 않았잖아.” “뭔지 대충 알 것 같은데요.” “가방이야.” “그러니까요.” 덕배의 미간이 천천히 좁아졌다. “가방 싫어

  • 배덕한 여름   56

    J&J를 나온 덕배는 차에 올라탄 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배고픈 줄도 몰랐다. 머릿속에는 조금 전 본 장면만 계속 걸렸다. 덮밥 두 개. 뮤지컬 티켓 두 장. 그리고 그걸 받아 들고 웃던 여름. 덕배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씨발.” 질투하는 건 이미 인정했다. 다른 새끼가 여름에게 들이대는 게 싫었다. 둘이 매일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이제는 뮤지컬까지 같이 보러 간다고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을 배덕배가 아니었다. 민우가 꽃을 사주고 밥을 사주고 공연을 보여주면서 점수를 따고 있다면 자신도 뭔가 하면 됐다. 덕배에게 여자 마음을 얻는 방법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수도 없이 봤다. 가방. 주얼리. 비싼 레스토랑. 갖고 싶다는 게 있으면 사줬고, 대부분 좋아했다. 돈은 많았고 그 정도 지출에 의미를 둔 적도 없었다. 신호에 걸린 순간 덕배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연락처를 내리다가 여자 하나를 골라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 함께 밤을 보낸 적 있는 여자였다. - 오빠? “어.” - 웬일이야? 먼저 전화도 하고. “물어볼 거 있어.” - 뭔데? 덕배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두드렸다. “요즘 여자들 무슨 가방 좋아하냐?”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 갑자기 가방? “어.” - 누구 사주게? “그건 알 거 없고. 요즘 제일 핫한 거.” 여자가 웃었다. - 나 사주려고? “너 말고.” - 너무하네. “빨리 말해.” 몇 가지 브랜드와 모델명이 줄줄이 나왔다. 덕배에게는 전부 처음 듣는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뭐가 제일 좋아.” - 나이대가 어떻게 되는데? 덕배가 잠깐 멈췄다. “스물.” 이번에는 전화기 너머가 더 오래 조용했다. - 오빠 양심 어디 갔어? 덕배의 얼굴이 바로 구겨졌다. “가방이나 처말해.” 여자가 한참 웃었다. - 알았어. 요즘 많이 찾는 게 있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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