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4장
다음 날, 등기소 앞에 엘레나는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당당하게 서 있었다. 두 손은 작은 가방을 꼭 움켜쥐고 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데미안이 오만한 태도로 서 있었다.
잠시 후 담당 직원이 이혼증명서 두 장을 들고 와 한 장씩 건넸다.
“이혼증명서입니다. 두 분은 이제 공식적으로 이혼하셨습니다.”
직원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엘레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받아 들었다. 반면 데미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혼증명서를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데미안이 비웃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엘레나는 고개를 돌려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물론이지.”
데미안이 팔짱을 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웃기지 마, 엘레나. 내 돈 없이는 살아남지도 못할 거면서. 내가 제안한 위자료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었잖아.”
엘레나가 비꼬듯 미소 지었다.
“어머, 이제 와서 걱정해 주는 거야?”
데미안은 불쌍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난 그저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너에겐 아무도 없잖아.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정말 세상이 네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해?”
엘레나는 작게 웃은 뒤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난 세상이 내 편이 되어 줄 필요 없어. 당신 돈 없이도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돼, 데미안 씨.”
데미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흥미롭군. 네가 내 위자료도 없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한번 지켜보지.”
엘레나는 가슴 앞에서 팔짱을 꼈다. 전남편의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데미안이 이번에는 더욱 깔보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제 어떤 남자가 너와 함께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
엘레나는 웃음을 참았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데미안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날카로웠다.
“넌 이제 매력도 없어, 엘레나.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잖아. 살도 쪘고, 예전처럼 아름답지도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아들을 낳아 줄 수도 없지.”
엘레나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점점 차갑게 식어 갔다.
“정말 웃기네요, 데미안 씨. 마치 내가 아직도 당신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하잖아.”
데미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엘레나는 차분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잘 들어요, 데미안 씨.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난 관심 없어. 아들을 갖고 싶다는 집착 하나 때문에 자신의 결혼을 배신한 남자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내가 울면서 당신에게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큰 착각이에요. 오히려 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감사한다고?”
데미안이 비웃듯 되물었다.
“모든 걸 잃은 게 감사해?”
엘레나는 작지만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아내를 한 번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남자였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으니까 감사한 거예요. 내가 무너질 것 같아요? 천만에요, 데미안 씨. 난 오히려 당신에게서 벗어나서 너무 행복해요.”
엘레나는 차갑게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당신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걸 요구했는지 알아요?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해야 했고, 완벽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돌봐 줄 보모 하나 제대로 고용해 주지 않았잖아요? 당신은 아들을 낳기 위해 나를 임신시키려고 나에게 손을 댔고, 내가 임신한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나를 버렸어요.”
데미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엘레나의 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만해, 엘레나.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어! 난 그저 네가 실패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을 뿐이야.”
그가 차갑게 중얼거렸다.
엘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난 당신이 나를 얕본 걸 후회하게 되는 날을 빨리 보고 싶네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엘레나는 몸을 돌려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등기소 밖으로 나온 엘레나는 차분하게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중요한 결심이 서 있었다.
이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데미안 랭커스터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그 인간의 그림자 속에서만 살아가던 여자가 아니라.
엘레나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를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
“엘레나?”
수화기 너머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레나가 작게 미소 지었다.
“안녕, 타마라.”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곧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엘레나! 정말 너야?!”
엘레나가 작게 웃었다.
“당연히 나지.”
“대체 어디 있었어?! 5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었잖아! 난 네가 영원히 사라져 버린 줄 알았어!”
엘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진 게 아니야, 타마라. 그냥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에 바빴을 뿐이야.”
타마라가 코웃음을 쳤다.
“대체 어떤 결혼 생활을 했길래 패션계의 퀸 엘리자베스가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거야?! 너를 찾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넌 전설이라고! 아직도 모두가 그 신비로운 디자이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하고 있어!”
엘레나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 돌아갈 거야, 타마라.”
타마라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결국 비명을 질렀다.
“정말이야?! 엘레나, 정말 돌아오는 거야?!”
엘레나는 타마라가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내 자리를 되찾을 거야.”
“세상에…… 농담하는 거 아니지, 엘레나?”
타마라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잠깐만, 이번에도 본명으로 돌아오는 거야? 아니면 계속 가명을 사용할 거야?”
엘레나는 잠시 생각한 뒤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퀸 엘리자베스로 남을 거야. 내가 진짜 누구인지 알기 전에, 세상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게 만들고 싶어.”
타마라가 킥킥 웃었다.
“역시 네 생각답네. 좋아. 그래서 계획은 뭐야?”
엘레나는 자동차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
“새로운 컬렉션부터 시작하고 싶어. 5년 동안 활동을 쉬었으니 뭔가 제대로 판을 뒤흔들 만한 게 필요해. 퀸 엘리자베스가 돌아왔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타마라가 기쁘게 웃었다.
“와, 정말 대단하다, 엘레나! 네가 다시 패션계를 뒤흔드는 거야! 벌써부터 기대돼!”
엘레나가 미소 지었다.
“타마라, 네 도움이 필요해. 최고의 팀이 필요하고, 자원도 필요해.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어.”
타마라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목소리에는 극도의 열정이 묻어났다.
“엘레나, 전부 나한테 맡겨. 내가 다 준비할게. 네가 준비됐다고 말만 해. 그러면 바로 우리 사람들에게 연락할게.”
엘레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굳은 결의가 가득했다.
“난 준비됐어, 타마라. 내 것을 되찾을 준비가 됐어.”
타마라가 흥분한 듯 웃었다.
“그럼 준비해, 퀸 엘리자베스! 세상이 네가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엘레나는 자신감 있게 미소 지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더 이상 여자가 억압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아내가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세상은 그녀가 정상에 우뚝 선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오직 자신의 이름으로.
“데미안! 날 얕본 걸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그리고 내 뱃속의 아이도 내가 지킬 거야.”
엘레나는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
제120장스트레스가 가득했던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네이선과 엘레나는 자신들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고요한 밤이었다. 그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 한가운데서 벽시계가 나지막이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엘레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구두를 벗어 던진 그녀는 무릎을 안아 올렸다.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모든 상황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다.네이선이 문을 조용히 닫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여보… 왜 이렇게 말이 없어?"엘레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당신도 알잖아, 네이선."네이선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할머니 말씀대로 하지 않을 거야. 당신도 알잖아, 그렇지?""하지만 그래야만 해요, 네이선," 엘레나가 속삭였다. "당신은 아이를 가져야만 해."네이선이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난 다른 여자의 아이 따위 필요 없어, 여보. 특히 신티아의 아이라면 더더욱.""신티아 때문이 아니에요. 당신을 위한 거라고요. 당신 가문을 위한 거란 말이에요. 당신은 유일한 후계자잖아. 난 당신에게 아이를 줄 수 없고.당신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상관없어! 난 오직 당신만 있으면 돼. 우리한테는 이미 아이가 넷이나 있잖아, 엘레나. 난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엘레나가 네이선을 등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네 명의 아이들은… 당신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이들이잖아, 네이선. 당신도 알고 있잖아, 안 그래? 그리고 이제 당신 가문에서도 그 문제를 따져 묻기 시작했어."네이선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섰다. "난 한 번도 그 문제를 따져 물은 적 없어, 엘레나. 날 밀어내지 마. 난 그러기 싫으니까!""난 그저 나 때문에 당신이 짐을 짊어지는 걸 원치 않을 뿐이에요," 엘레나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당신은 아이를 가져야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질 필요는 없잖아요…"네이
제119장"엘레나가 임신할 수 없다면, 네이선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수 있는 다른 여자를 찾아야만 한다." 할머니가 단호하게 선언했다.거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잠자코 있던 엘레나는 충격받은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그렇다, 엘레나와 네이선은 막 도착한 참이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엘레나는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물었다."내 말이 충분히 명확하지 않았더냐?" 노부인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이선 가문의 혈통에 관한 문제다. 네가 우리에게 훌륭한 증손주 넷을 안겨주긴 했다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 넷은 이 가문의 피가 섞이지 않았지 않느냐. 내 손자, 그리고 이 가문에는 후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네가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어머니, 그만하세요." 소니아 부인이 기가 차다는 듯 말을 잘랐다. "엘레나는 알바를 낳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요. 왜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예요?""네가 반대하는 건 안다, 소니아.하지만 이건 현실이야." 할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네이선의 피를 이은 아들이나 딸이 최소한 한 명은 있어야 해. 딱 한 명만 더. 그리고 엘레나가 할 수 없다면, 네이선의 아이를 낳아줄 의향이 있는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한다. 신분도, 그 어떤 연줄도 없이. 그저 하나의 거래로, 아이가 태어나면 이 가문에서, 여기서 거두어 키우면 되는 거야."네이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전 그런 제안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이기적으로 굴지 마라, 네이선. 너도 이 가문을 생각해야지. 넌 유일한 후계자다, 네이선. 그 책임감을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엘레나는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고 바짝 죄어왔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것이 단순히 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네이선 같은 대가문에서 사랑은 유일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때, 현관 초인종 소리가 響겼다. 하인
제118장좁고 답답한 방 안, 한 남자가 벽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움푹 패인 눈, 그리고 대중에게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훨씬 마른 체구. 그 남자는 바로 엘레나의 전남편이자, 엘레나를 감금하고 납치한 죄로 복역 중인 데미안이었다.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은 교도관이려니 생각하며 게으르게 한쪽 눈만 살짝 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닥을 울리는 여자의 하이힐 소리였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창살 앞에는 긴 검은색 코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우아한 자태를 풍기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신티아였다."오랜만이네요, 데미안 씨." 신티아가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데미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신티아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아실 필요 없습니다, 데미안 씨."데미안이 메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저를 찾아오신 목적이라도 있습니까?!""있죠." 신티아가 말했다. "복수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데미안 씨?!"데미안은 침묵했다. 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당신에 대해 전부 알고 있어요. 엘레나의 전남편이자 성공한 사업가였는데, 지금은…? 아이들도, 명예도, 그리고 엘레나까지 모든 걸 잃었죠." 신티아가 말을 이었다.데미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신티아가 비웃음을 지었다. "제안을 하나 하러 왔습니다.""무슨 제안입니까?""가까운 시일 내에 당신이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죠. 단, 조건이 있어요—서로 협력해서 엘레나와 네이선의 관계를 박살 내고, 엘레나를 네이선에게서 떼어놓는 겁니다."데미안은 침묵에 빠졌다. 그의 호흡이 점차 가빠졌다. "네이선이라니? 그 남자와 엮여서 풍파를 일으키겠다는 겁니까, Agassii?"신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네, 네이선은 거부예요. 영향력도 막강하죠. 그리고… 엘레나에게 미쳐있고요. 난 그 꼴을 못 보겠거든요
제117장신티아는 무릎까지 오는 타이트한 하얀 원피스를 차려입고 결점 없는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그녀의 손에는 네이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예전에 직장 동료였을 때 자주 찾던 고급 레스토랑의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가 담긴 커다란 상자가 들려 있었다.그녀의 고급 승용차가 네이선의 저택을 향해 부드럽게 달렸다. 이동하는 내내 신티아는 오늘 방문이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우연"처럼 보이도록 전략을 세우며 머릿속으로 대화를 되뇌었다."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렀을 뿐이야. 오랜 친구한테 음식을 챙겨주는 게 뭐가 잘못됐겠어?"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저택에 도착한 신티아는 당당하게 차에서 내렸다.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세게 뛰고 있었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단정했고 미소는 달콤했다. 노크를 하고 몇 초를 기다리자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렸고—그곳에 네이선이 서 있었다.신티아는 순간 숨이 턱 막힐 뻔했다.네이선은 타이트한 하얀 티셔츠에 집에서 입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키가 크고 건장한 그의 체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슴 근육은 완벽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고, 상완의 곡선은 보는 사람 누구라도 만져보고 싶게 만들고 있었다."어… 신티아?" 네이선이 놀란 톤으로 인사를 건븄다. "아침 일찍 웬일이야?"신티아는 즉시 최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나가는 길에 네 생각이 나서 들렀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좀 가져왔지. 너 아직 우리 예전에 다니던 곳 스테이크 좋아하지?"네이선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상자를 받아 들었다. "어… 고맙긴 한데,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네이선이 더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집 안쪽에서 네이선의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은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아직 조금 헝클어져 있었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었지만, 그 달콤한 미소는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좋은 아침이에요, 여보…" 엘레나가 인사를 건네며 옆에서 네이선의 입술에 가볍게 쪽 입을 맞춘 뒤 그의 팔을
제116장아침의 재회로 방 안은 여전히 온기로 가득했다. 네이선과 엘레나는 이제 나란히 누워 침묵 속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용했지만 그 정적은 더없이 편안했다."네이선… 내가 정말로 다시 임신하지 못한다면, 당신 실망할 건가요?"네이선이 즉시 고개를 돌리며 미간을 찌푸린 채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엘레나, 또 그 이야기야?"엘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이 이야기 많이 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자꾸만 생각이 나는걸요. 특히 어젯밤 신티아가—"네이선이 갑자기 엘레나의 몸을 끌어당겨 즉시 아내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고, 엘레나는 순식간에 말을 잃었다.깊고 따스한 키스에 엘레나의 몸이 굳어졌다.몇 초 후, 네이선이 얼굴을 살짝 떼어냈지만 여전히 이마를 엘레나의 이마에 댄 채 말을 이어갔다."잘 들어," 그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난 상관없어."엘레나가 커진 눈으로 네이선을 바라보았다."당신이 다시 임신할 수 없다고 해도,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왜 그런지 알아?" 네이선이 말을 이었다. "당신으로 이미 충분하니까. 당신, 그리고 당신의 네 아이들, 당신들이 이제 내 집이야. 난 아버지가 되기 위해 내 피줄이 꼭 필요한 게 아니야.""하지만—""하지만은 없어," 네이선이 말을 잘랐다. "당신의 그 네 아이들도 이제 내 아이들이야. 난 그 아이들을 사랑해.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나한테 모든 걸 주었어. 행복, 사랑, 그리고 가족까지."엘레나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려왔다. "내가 다시 임신하지 못해도 정말 상관없다는 거예요?"네이선은 엘레나의 뺨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을 닦아주었다. "여보… 당신이 내 삶에 단 한 가지를 더 주지 못한다고 해도, 난 여전히 당신을 선택할 거야."엘레나는 마침내 참아왔던 감정의 눈물을 터뜨렸다. 그동안 너무 오래 억누르고 있던 눈물이었다. 그녀는 네이선을 꼭 끌어안았다."나중에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워요," 엘레나가 오열했다. "당신이 후회할까
제115장아침이 다가오자 커튼 틈새로 햇살이 슬며시 스며들었다. 메인 룸 안은 여전히 정적에 싸여 있었다. 커다란 상아빛 침대 위, 네이선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잘생긴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누워 있었다.엘레나는 남편의 몸 위에 앉아 다소 헝클어진 긴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감돌았다."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네요, 네이선 씨." 엘레나가 남편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놀렸다.네이선이 픽 웃었다.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겠어?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내 아름다운 아내인데."엘레나는 네이선의 가슴 위에 두 팔을 얹었다. "남편분, 아직도 어리광 부리고 싶어요?""진심으로 그래." 네이선이 몸을 살짝 요동쳤다. "어젯밤엔 네이선 부인이 날 주도했잖아. 당신 남편은 그저 항복할 수밖에 없었지. 그러니까 오늘 아침엔 당신 위에서 남편이 움직이게 해줘, 여보."엘레나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은 교대도 해야죠. 평소엔 당신이 거칠게 굴잖아요. 너무 욕심껏 플레이하면서.""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그게 좋아." 네이선이 엘레나의 허리를 잡아당겨 그녀의 몸을 아래로 끌어당기며 대답했다. "당신이 내 위에서 플레이할 때가 진짜 좋더라고. 당신 파트너 예뻐해 주는 수완이 아주 대단해. 데미안 그 멍청한 놈은 다른 여자 때문에 당신을 버리다니 미친 게 틀림없어."엘레나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네이선을 바라보았다. "됐어요, 내 전남편 얘기는 하지 마요. 한 가지 알아둘 건, 내가 질투를 하긴 해도 침대에서 이러고 있을 땐 나도 어쩔 수가 없다는 거예요."네이선도 부드럽게 시선을 맞춰왔다. "그래, 여보. 그리고 난 그 누구도 우리 관계를 망치게 두지 않을 거야. 신티아라도 말이지."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티아랑은 확실히 거리를 둬야 해요.""알겠습니다, 명령 이행 준비 완료입니다, 네이선 부인."두 사람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아침의 따스함이 두 사람 사이의 끈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