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혁은 능글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손목의 자국은, 주하의 손가락이 닿자 왜인지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자극이 되어버렸으니까. 그게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것에 놀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에 해. 저녁에."
"...네.""왜. 뭔데."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도혁의 얼굴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님.'이라고 적혀 있어서 주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그 시선을 살짝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서요."
방금까지 능글거리면서 웃던 사람이, 이런 말에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주하는 허, 하고 소리를 내며 손목을 놓
도혁은 또 등장한 수갑을 잠시 바라보았다. 진짜 수갑을 가져올 땐 언제고 오늘은 또 특이하게 생긴 수갑이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분홍색의 수갑. 털이 잔뜩 달려있어서 야시시하게 느껴지는 그런 물건이었다. 뭐, 그렇다고 그게 정말 야하게 보여서 흥분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주하가 수갑에 꽂힌 이유가 조금 궁금했을 뿐. 물론 이유를 알게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얌전하고 순순하게 손을 모아서 내밀었다. 주하는 별말 없이 수갑을 그의 손목에 채우기 시작했다. 손목에 따뜻하게 감싸지는 느낌이 조금 특이했다. 차가운 금속과는 확실히 달랐다. 벌써부터 손목에 땀이 차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손목을 움직여보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수갑보다는 헐거워 보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부러질 것 같지도 않았다. 있는 힘껏 어디 내려치지 않는 한 충분히 그를 묶어놓을 정도는 되는 느낌."진짜 수갑은 손목에 자국이 너무 많이 남길래 아플까 봐."주하는 묻지도 않은 걸 말하며 수갑을 내려다보았다. 도혁은 눈을 깜빡거리며 그런 주하를 보았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수갑을 구해왔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솔직히 그의 몸은 그런 붉은 자국 정도론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녀가 제 몸을 아껴주려고 이런 선택을 한 거라니. 갑자기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수갑을 보고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특이한 일이었다."왜 갑자기 서는데.""음, 저도 모르겠어요."도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 대답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주하를 보고 발기하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말했다간 주하가 질색팔색 하겠지만.도혁은 수갑을 찬 손목을 위로 들며 자연스럽게 침대 위에서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이어질 일이 무엇일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하가 쇼핑백에서
"애인이니까 남자 친구라고 한 거지. 그럼 뭐라고 해.""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소개해 주실 거예요?""다른 사람?""그냥, 뭐, 다른 사람."주하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얼굴로 보아도, 도혁은 더 이상의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는 도혁을 보고서 손을 휘휘 저었다. 여기서 할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 누가 언제 다가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됐고, 내 거나 봐. 설명 해줄게.""네."대답이 빨랐다. 도혁은 금세 주하의 등 뒤에 붙어 작품 앞으로 갔다. 주하는 조금 전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도혁도 내내 서 있으면서 이미 거의 다 외워버린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듣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주하는 그런 도혁을 신경 쓰는 건지 아는 건지, 이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더 열심히 말했고, 작업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도 덧붙였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시작했는데 말하다 보니 자꾸 설명할 것이 생겼다."그래서 여기에는 이 재료를 쓴 거야.""네."주하는 설명하다 말고, 가볍게 대답하는 도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도혁은 그런 주하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을 그는 참 좋아했다."...듣고 있어?""네. 듣고 있어요.""...나만 보고 있었던 거 아니야?""같이 보고 있었어요."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빠른 대답이었는데도 주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자신의 뒤에 있다 보니 그가 딴짓한 것이 눈에 보인 것도 아닌데 괜히 의심이 들었다."내가 무슨 얘기 했는데.""저 오늘 같은 설명만 10번 넘게 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발표해 드릴 수도 있는데."주하는 저도 모르게 '아.'하고 짧게 말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가
"미안해. 오래 기다렸지.""아뇨. 좋은데요."뭐가 좋다는 거야? 주하가 그런 얼굴로 쳐다보았는데, 도혁은 뭐라 설명할 말이 없었다. 좋지 않은 게 없었으니까.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 도혁도 한 번 본 적 있는 그녀의 동기가 쭈뼛거리며 나타났다."안녕하세요... 그때 감사했습니다.""네."도혁은 짧게 목례하며 대답했다. 인사치레 같은 것은 없었다. 주하는 어쩔 수 없이 괜히 평소보다 더 반갑게 인사했다."아. 소정아. 네 과제 좋더라.""아, 아냐. 뭘. 네 과제가 훨씬 좋지. 우리 과탑인데. 다들 네 것 궁금해했어. 다들 좋다고 하더라."주하는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어느 날부터는 학교에 가지 않고 도혁의 집에서 마무리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의 과제는 주하도 이제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처음 전해 들은 것이라서 괜히 멋쩍었다. 그래도 반응이 생각보단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은 조금 놓였다. 지난 학기부터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결과물이니까."그, 남자친구... 맞지?"소정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도혁에게도 아주 잘 들렸다. 그는 소정이 주하의 가까이에 다가가자마자 조금 가늘어진 눈으로 소정을 보다가, 그 소리에 눈을 착하게 떴다. 주하는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맞아. 남자 친구."도혁은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있었다. 숨이 잠시 멎은 것 같기도 했다. 남자 친구. 주하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면 그냥 시답지도 않은 단어였을 것이다. 그에겐 그 어떤 감흥도 주지 않을. 어린애 장난같이 유치한. 하지만 주하의 입에서 나오니 무게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이 남자 친구라는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소개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곱씹어보게 되어서 그랬
"아닙니다.""...아니긴 뭘 아니야.""몸은 어쩔 수 없어요. 주인님이 만지면 이렇게 돼요."도혁은 능글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손목의 자국은, 주하의 손가락이 닿자 왜인지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자극이 되어버렸으니까. 그게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것에 놀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저녁에 해. 저녁에.""...네.""왜. 뭔데."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도혁의 얼굴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님.'이라고 적혀 있어서 주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그 시선을 살짝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서요."방금까지 능글거리면서 웃던 사람이, 이런 말에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주하는 허, 하고 소리를 내며 손목을 놓았다. 그냥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휙 도혁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반보 뒤에 따라붙든지 말든지.-금요일, 졸업 전시회에 가기 위해서 새로 산 세미 정장을 입고 주하는 거울 앞을 한참 서성였다. 도혁은 늘 정장 차림이라 눈에 익숙할 법도 한데, 직접 입으니 영 어색해서 자꾸 옷매무새를 다듬게 되었다. 몸이 불편하기도 했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새삼스레 정장이 제 옷처럼 잘 어울리는 '어른 남자'가 제 옆에 늘 있는 게 의식이 되기도 했다. 누가 봐도 빌려 입은 것 같은 주하와는 달라서 그런지."잘 어울려요. 출발해야 하잖아요, 이제."도혁은 그런 주하를 달래듯 말하며 시계를 힐끔 보았다. 약속에 늦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거울 앞에 한참을 있으니 도혁이 더 신경이 쓰였다. 분명 늦으면 스스로 제일 많이 자책할 사람인걸 아니까.".
"...김치찌개 먹어야겠다."한참 만에 그런 결론을 내리며 주하가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음식을 가져오는 건 도혁이었다. 그는 느긋하게 가서 쟁반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김치찌개는 주하의 앞에 놓고, 우동은 자신의 앞에 놓았다."한입 먹을래요?""응. 너도 김치찌개 먹어봐."주하는 도혁이 덜어준 음식을 냉큼 받아먹었다. 도혁은 예의상 그녀의 김치찌개를 대충 한 입 떠먹었다. 주하는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시작했다. 중간부터는 도혁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의 음식을 넘봤다. 물론 도혁은 우동을 반쯤 밀어준 지 오래였다. 그는 어차피 오늘도 주하를 보느라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빨리 먹어."주하는 눈가를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도혁은 그제야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는 건, 배가 꽤 찼다는 신호라는 걸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거의 식사가 끝나간다는 뜻이니 속도를 맞추어 먹기 시작하면 그만이었다.주하는 음식을 거의 흡입하는 도혁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손목에서 찰랑거리는 팔찌를 바라보았다. 주하가 도혁에게 용서해 주겠다고 선언한 다음 날, 그녀는 그에게 '내가 선물해 준 생일 선물은 왜 안 하고 다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직접 받은 선물이 아니라서 열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는 밝게 웃거나 감동을 받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조용히 제 팔에 액세서리를 차곤 지금까지 풀지 않고 있었다. 늘 긴 옷을 입고 있는 탓에 이렇게 식사를 할 때에나 가끔 소매 사이로 보여서, 괜히 눈에 띄면 보고 있게 되곤 했다."그..."그의 손목에는 팔찌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팔찌 아래에 붉은 자국이 살짝 보였다. 도혁은 주하가 입을 열자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곤 자기 손목을 내려다봤다. 이건 어젯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 때문에 생긴 자국이었다. 넥타이로는 안 되겠다며
"네. 배고프죠? 식당으로 바로 갈까요?""응. 가자."주하는 자신의 뒤에 딱 붙어 서서 걷는 도혁을 등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반보 뒤에서 걸었다. 따뜻한 체온이 뒤에서 은은하게 퍼졌다. 옆에서 걷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사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중요한 건 마음이 통하는 것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뒤에서 걷는 게 싫었던 때도 있었다는 건 영원히 비밀이었다."일은 잘 되어가?""뭐. 대충은요."일부러 각자의 일상을 존중하는 의미로 일을 하러 보내기도 하는 건데, 도혁은 영 관심이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었지만 다른 것에는 관심이 너무 없으니까 좀 신경이 쓰였다. 지금의 여유로움이 평생 가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그가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금요일에 졸업 전시회 있는데... 같이 갈래?""어? 저도 가도 돼요?"도혁이 살짝 놀라며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꽤 위험하게 뒤로 걸으며 주하를 바라보았다. 나란히 걷는다는 선택지는 도저히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하를 보며 뒤로 걷거나, 주하의 뒤에 딱 붙어 걷거나. 도혁은 둘 중 하나만을 골랐다. 주하는 그가 걸려 넘어질 만한 것은 없는지 눈으로 대충 살펴보곤 대답했다."응. 개인별로 초대장이 나오거든. 나도 두 장 있어.""가족들 안 부르고요?""멀어서 굳이? 졸업식에도 안 부를 거야."주하의 부모님은 그녀가 뭐든지 알아서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졸업 작품을 보러 지방에서 올라오실 생각은 없으실 것이 뻔했다. 게다가 전시회가 평일이라 각자의 일이 있으시기도 하고. 완성된 건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더니 '멋지네. 너무 고생했어.'하고 답장이 온 게 끝이었다. 
"어때? 가족 때문에 빚이 좀 있긴 한데, 학교 선생님이야. 괜찮아."도대체 뭐가 어떻냐는 건지. 도혁은 술병을 빼앗아 자신이 따르고, 병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단숨에 한 잔을 다 마셨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어제와 같은 상태가 될지도 몰랐다."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스타일로 준비를 해본 건데?"하지만 도혁의 옆에 앉은 사람은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여기서 소개팅하겠다는 건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술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하룻밤. 그
도혁은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몰라 저장도 못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취할 정도로 마신 건 아니라지만, 아침이 되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실 무슨 생각으로 번호를 받아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대체 그 여자랑 뭘 하겠다고. 짧은 해프닝으로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어제를 기점으로 성욕이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형님! 계십니까? 들어가도 됩니까?""왜."그는 곧장 씻으러 가려다가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데.""그럴 리가."괜히 한 번 도발해 본 거였는데 태연한 척 받아치는 목소리가 사실 조금 멋은 없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기 때문이었다. 긴장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그래요?"그 말이 마치 엄청난 도발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버틸지 보겠다는 듯이. 도혁은 조금 오기가 생겼지만, 술이 조금 들어간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성생활과는
"뭐, 근처에도 방은 많으니까요."이 근처엔 널린 게 모텔방이었다. 도혁은 주하의 말에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날 때부터 도련님이라 이런 곳에 가본 적은 없었다. 물론 갑자기 둘이 택시 타고 호텔을 찾아가는 건 좀 웃긴 것 같기도 했다."흠.""손으로만 해줄 테니까 가려면 가고요.""뭐?"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저보다 2배는 큰 남자를 보면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가 싶다가도, 무슨 자신감인지 궁금하기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