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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형님, 형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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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28 15:41:26

"우리, 어디서 뵌 적 있던가요?"

유라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서하는 그 손을 보았다. 7년 전, 수능 날 아침 떨리는 서하의 손을 잡아 주던 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장례식장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던 손.

서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글쎄요. 제가 워낙 흔한 얼굴이라서요. 그런 말 자주 들어요."

"그래요? 이상하다. 분명히 어디서……."

"형수님."

도현이 서하의 허리에 가볍게 팔을 두르며 끼어들었다.

"제 약혼자를 그렇게 뚫어지게 보시면 제가 질투 나잖아요."

"어머, 도련님도 참."

유라가 손을 입가에 대고 웃었다. 하지만 서하는 보았다. 웃는 동안에도 유라의 눈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들어가요. 아버님이랑 재현 씨가 기다리세요."


저택 안은 서하가 사진으로 외워 둔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차가웠다.

거실 벽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중앙에 앉은 강태식, 그 옆에 선 장남 강재현, 그리고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는 강 회장의 본처.

그 사진 어디에도 강도현은 없었다.

서하는 무심코 옆을 보았다. 도현은 사진을 보지 않았다. 마치 거기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것처럼.

"왔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서른다섯, 강진그룹 부회장 강재현이었다.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값비싼 시계, 그리고 동생을 향한 노골적인 무시가 밴 얼굴.

"드디어 아버지 조건 맞추려고 아무나 데려왔구나. 이번엔 어디서 주웠어? 클럽? 아니면 요트?"

"형도 참. 회계사예요. 형 회사 장부 보면 기절할 만큼 똑똑한."

"하."

재현이 그제야 서하를 위아래로 훑었다. 물건의 값을 매기는 눈이었다.

"회계사라. 돈 냄새 잘 맡겠네."

서하는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이런 시선쯤은 7년 동안 질리도록 받아 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서하입니다."

그때, 2층 계단 위에서 느릿한 발소리가 들렸다.

"손님 앞에서 말조심해라, 재현아."

모두가 일어섰다.

강태식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7년 전보다 머리가 조금 더 희어졌을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곧은 허리. 온화한 눈매. 그리고.

"네가 우리 도현이가 데려온 아가씨구나."

그 미소.

서하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등 뒤에 감춘 손이 떨렸다. 심장이 귀 바로 옆에서 뛰는 것 같았다.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드리워지던 검은 우산. 감기 들겠구나.

'웃어. 웃어, 윤서하.'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한서하라고 합니다."

서하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7년 동안 거울 앞에서 연습한 가장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태식은 잠시 서하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앉거라.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꾸나."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서하는 안도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이 남자는 자신이 무너뜨린 사람의 딸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만찬은 길고 조용했다. 은식기가 도자기에 닿는 소리만 이따금 울렸다.

"부모님은 뭘 하시나?"

강 회장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첫 번째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지방에서 지내시고요."

"저런.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셨고?"

"작은 건설 하청 일을 하셨어요."

거짓말과 진실 사이, 가장 아슬아슬한 대답이었다.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는 오히려 쉽게 들통난다. 서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건설이라."

강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건설 쪽이 참 험하지. 하청은 더 그렇고. 고생 많았겠구나."

"……네."

"회계사라고 했지. 그럼 하나 물어보자꾸나."

강 회장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식탁의 공기가 달라졌다. 재현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지난달 우리 강진건설이 신도시 수주를 따냈다. 시장 반응이 어땠는지 아나?"

면접이었다. 며느리 면접.

서하는 잠깐 도현을 보았다. 도현은 태연하게 스테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가는 사흘 동안 8퍼센트 올랐다가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서하가 입을 열었다.

"수주 규모는 컸지만, 시장은 공사비를 어떻게 조달할지 의심하고 있어요. 강진건설 부채비율이 이미 업계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되니까요. 게다가 이번 수주 금액이 경쟁사보다 12퍼센트 낮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적자 시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거기까지 말하고서야 서하는 아차 싶었다.

너무 많이 말했다. 강진건설 부채비율을 소수점까지 외우고 있는 회계사는 흔하지 않다.

재현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강진건설은 그가 직접 맡고 있는 계열사였다.

"……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제가 잘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을 했네요."

서하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한참의 침묵 끝에, 강 회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허허. 똑똑하구나."

그는 다시 포크를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아가. 똑똑한 며느리는 피곤한 법이란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식탁의 누구도 웃지 않았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이었다.

"서하 씨, 이거 드셔 봐요. 제가 오늘 아침에 직접 구웠어요."

유라가 하얀 접시 하나를 서하 앞으로 밀었다. 윤기가 흐르는 과일 타르트였다.

그 위에 얇게 저민 복숭아가 꽃잎처럼 겹겹이 올려져 있었다.

서하의 손이 멈췄다.

복숭아 알레르기.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복숭아 음료 한 모금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그날 밤새 옆을 지켜 준 사람이 유라였다.

"저 복숭아 타르트 진짜 잘 만들어요. 그렇죠, 재현 씨?"

"응. 먹어 봐요, 제수씨. 아내 솜씨가 꽤 괜찮아."

모든 시선이 서하에게 쏠렸다.

먹으면 목이 부어오른다. 이 자리에서 쓰러지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이유를 말해야 한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고.

그리고 그 순간 유라는 확신하게 될 것이다.

유라는 턱을 괸 채 서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다정하고, 조용하고, 잔인한 웃음이었다.

'시험하는 거야.'

서하는 천천히 포크를 들었다.

방법이 없었다. 한 입만. 한 입이면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가서 토해 내면 된다. 가방 안에 약이 있으니까.

포크 끝이 타르트에 닿으려는 순간.

쨍그랑.

붉은 와인이 식탁 위로 쏟아졌다. 넘어진 잔에서 흘러내린 와인이 서하 앞의 접시를, 복숭아 타르트를 흠뻑 적셨다.

"아, 이런."

도현이었다. 그는 태연하게 쓰러진 잔을 바로 세웠다.

"손이 미끄러졌네. 죄송해요, 아버지."

"도현아!"

재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너는 이런 자리에서까지……."

"형수님, 죄송해요. 아침부터 고생해서 만드신 걸."

도현은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유라를 보며 웃었다.

"다음에 또 만들어 주세요. 그땐 제가 두 조각 먹을게요."

유라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가정부들이 서둘러 식탁을 치우는 동안, 서하는 무릎 위에서 포크를 쥔 손을 천천히 풀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옆을 보았다. 도현은 냅킨으로 손을 닦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저택을 나서는 길, 정원의 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아까."

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부러 그런 거예요?"

"뭘요?"

"와인."

도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갑은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죠."

"……."

"그리고 한서하 씨 얼굴이 그랬거든요."

도현은 차 문을 열어 주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복숭아를 무슨 독약 보듯이 보던데."

서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차에 올라 문이 닫히자,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표정만 보고 알았을까.

창밖으로 멀어지는 저택을 보며, 서하는 처음으로 옆자리의 남자가 두려워졌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 평창동 저택 2층 서재.

강태식은 창가에 서서 멀어지는 차의 불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오랜 수행비서인 정 실장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둘째가 데려온 그 아가씨."

"네, 회장님."

"강진건설 부채비율을 나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더군."

강 회장은 찻잔을 들어 향을 맡았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뒤,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눈이 낯이 익어."

"……."

"그 아가씨, 뒷조사해.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정 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강태식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정원의 어둠 너머, 차의 불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7년 전, 빗속의 장례식장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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