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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두 번째 계약

Author: 8489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8 15:41:41

서하는 쿠션 벽 위에 멈춰 있는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

원수의 아들. 원수의 집. 원수의 피가 흐르는 손.

그런데 이 손은 오늘 밤 세 번이나 그녀를 붙잡아 주었다. 금고 앞에서, 커튼 뒤에서, 그리고 이름을 말하던 순간에.

서하는 그 손을 잡았다.

"조건이 있어요."

"역시."

도현이 웃었다.

"말해 봐요. 이번엔 을이 조항 추가할 차례니까."

다음 날 아침, 서하는 계약서 뒷면에 새로 조항을 적었다.

[두 번째 계약]

[제1조. 목표는 강태식이다.]

[제2조. 얻은 정보는 모두 공유한다.]

[제3조. 상대의 복수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펜을 잠깐 멈췄다가, 마지막 줄을 또박또박 적었다.

[제4조. 갑도 을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도현이 그 문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싫어요?"

"아뇨."

도현이 펜을 받아 들었다.

"대신 대답하지 않을 권리는 그대로죠?"

"……그건 그대로예요."

"그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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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20화. 초기 자본

    성수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서하는 휴대폰을 세 번 떨어뜨렸다.[상자 무사해요?]답은 1분 만에 왔다. 백 실장이었다.[무사합니다. 금고 안에 있습니다. 이사님도 지금 오고 계십니다.]그제야 숨이 쉬어졌다.간판 없는 사무실 문을 열자, 백 실장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서하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벽면 책장 뒤의 금고로 걸어갔다."비밀번호는 이사님이 사모님께도 알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백 실장이 번호를 불러 주었다. 금고 문이 열렸다.상자 여섯 개가 그대로 있었다. 빨간 '폐기' 테이프도 그대로였다. 서하는 맨 위 상자를 열어 아버지의 팩스를 확인했다. 받침을 크게 쓴 글씨. '보류' 도장.그대로였다.서하는 금고 앞에 주저앉았다.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사모님, 괜찮으십니까.""……회장님이 알아요. 상자 여섯 개라고, 정확히 말했어요."백 실장의 얼굴이 굳었다.서하는 상자를 다시 닫으려다 손을 멈췄다. 상자 옆, 금고 안쪽 칸에 검은 바인더 한 권이 꽂혀 있었다. 등에 흰 글씨가 적혀 있었다.[Blue Harbor Capital — 투자 원장]블루하버의 장부였다.서하는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바인더를 꺼냈다. 명함에 적힌 직함이 떠올랐다. Chief Financial Officer. 연봉 1원짜리지만, 이 회사의 재무 책임자는 자기였다.첫 장을 넘겼다. 강진물산 지분 매집 내역이 날짜별로 빼곡했다. 18개월 동안 조금씩, 들키지 않게. 역시 도현다운 장부였다.그리고 맨 앞, 설립 당시의 자본 구성 페이지.[초기 자본 (Seed Capital)] [출처: 싱가포르 소재 개인 신탁] [출자자: 비공개] [관리: 백○○]서하의 눈이 그 줄에 잠깐 머물렀다.싱가포르 개인 신탁. 출자자 비공개.6년 전, 스물다섯 살의 혼외자가 펀드를 세웠다. 강씨 집안에서 받은 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서 왔을까."실장님. 이 초기 자본, 출자자가 누구예요?"백 실장이 헛기침을 했다."그건…….""그건 백 실장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19화. 채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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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17화. 레미콘

    새벽 1시 20분. 신도시 강진건설 현장.멀리서부터 불빛이 보였다. 투광등 수십 개가 공사장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고, 진입로를 따라 레미콘 트럭이 줄지어 서 있었다. 거대한 드럼이 느릿느릿 돌아가는 소리가 밤공기를 울렸다."벌써 시작했어요."도현이 차를 세웠다. 가장 앞쪽 동의 거푸집 위로 펌프카 붐대가 뻗어 있었고, 회색 콘크리트가 쏟아지고 있었다.서하는 차에서 뛰어내렸다."누구십니까! 여긴 관계자 외……."안전모를 쓴 50대 남자가 막아섰다. 가슴팍에 '현장소장 박근철'이라고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강진건설 재무 총괄 윤서하입니다."박 소장의 얼굴이 굳었다."……총괄님께서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타설 멈춰 주세요.""그건 못 합니다. 본사 지시입니다. 공정이 밀려서 야간 타설로…….""누구 지시요? 문서로 주세요."박 소장이 입을 다물었다. 문서가 있을 리 없었다.서하는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옆 동으로 걸어갔다. 아직 콘크리트가 들어가지 않은 거푸집 안쪽이 드러났다. 철근이 절반도 채 엮여 있지 않았다."도현 씨. 찍어 줘요. 시간 나오게."도현이 이미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찰칵, 찰칵. 텅 빈 거푸집, 듬성듬성한 철근, 화면 구석에 찍히는 날짜와 시각."총괄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박 소장이 따라붙었다. 뒤로 인부 몇이 모여들기 시작했다."저희도 먹고살자고 하는 겁니다. 오늘 밤 안에 못 부으면 본사에서…….""소장님."서하가 돌아섰다."철근 배근도 안 끝난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으면, 감리 검측 없이 타설하는 거예요. 불법이에요. 나중에 이 건물이 무너지면 누가 책임지죠? 본사요? 아니면 오늘 밤 여기 서명한 소장님이요?"박 소장의 입술이 달싹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펌프카는 멈추지 않았다. 트럭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현장소장 하나 설득해서 멈출 판이 아니었다.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트럭 옆면에 적힌 글자를 보았다.[대성레미콘]서하는 휴대폰을 꺼내 민수아에게 전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16화. 오 상무

    손전등 불빛이 서하의 얼굴에서 수레 위 상자로 옮겨 갔다. 빨간 테이프 위의 '폐기' 두 글자가 번들거렸다."총괄님. 대답을 안 하시네요."오 상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쥔 손이 보였다. 버튼 하나면 정 실장에게 연결될 것이다.서하가 입을 열기 전에 도현이 먼저 움직였다. 수레 앞을 막아서듯 한 걸음 나섰다."오 상무님. 형님 기자회견, 보셨죠?"오 상무의 눈썹이 꿈틀했다."……그게 무슨 상관입니까.""입찰은 아버지가 따 오라고 했어요. 형은 시킨 대로 했고요. 그리고 사흘 만에 버려졌어요. 기자회견장에 아버지 얼굴은 없었죠."도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아들도 사흘인데, 상무님은 며칠일 것 같아요?"불빛이 흔들렸다.서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떨리던 목소리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회의실에서 숫자를 말할 때의 목소리였다."상무님. 미청구공사 2,400억 장부, 작성자가 누구죠?""…….""재무본부장 오기택. 결재란에 상무님 서명이 세 군데 들어가 있어요. 저는 아직 한 군데도 안 했고요."서하가 상자에 손을 얹은 채 오 상무를 똑바로 보았다."분식이 터지면 1순위는 장부를 만든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 회사는 7년 전에도, 사흘 전에도 똑같이 했어요. 위에서 시키고, 아래를 잘랐죠."서하는 상자를 톡 두드렸다."이 안에 그 증거가 있어요. 7년 전에 정 실장님이 도장 찍고, 실무자들이 뒤집어쓴 기록이요."엘리베이터 안이 조용해졌다. 문이 닫히려다 오 상무의 구두에 걸려 다시 열렸다."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아뇨."서하가 고개를 저었다."보험을 권해 드리는 거예요. 금요일에 제가 서명을 거부하면, 그 장부엔 상무님 이름만 남아요. 그때 상무님 편에 서서 '위에서 지시했다'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하실 거예요."오 상무는 한참 동안 서하를 바라보았다. 뿔테 안경 너머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리고 있었다.손전등이 천천히 내려갔다."……저는 오늘 밤 이 층에 오지 않았습니다."그가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15화. 지하 3층

    목요일 밤 11시 40분. 강진건설 본사 지하 3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형광등 절반은 꺼져 있었고, 복도 끝에 철문 하나가 보였다.[문서고 — 관계자 외 출입 금지]"CCTV는 민 대리가 20분 동안 녹화 화면으로 돌려놨어요."도현이 손목시계를 보았다."지금부터 18분."서하는 열쇠를 꽂았다. 손이 떨려서 한 번 헛돌았다. 도현이 말없이 그 손을 감싸 쥐고 함께 돌렸다.철컥.문서고 안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천장까지 닿는 철제 선반마다 누렇게 바랜 상자들이 빼곡했다."연도별로 정리돼 있을 거예요. 7년 전, 하도급 거래."두 사람은 휴대폰 불빛으로 선반 이름표를 훑으며 달렸다. 3년 전, 5년 전, 6년 전.7년 전.서하가 걸음을 멈췄다.선반이 비어 있었다. 상자가 있던 자리에 먼지 자국만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옮겼어요."심장이 내려앉았다. 늦었다. 폐기는 내일 아침이라고 했는데. 이미 가져갔다면."서하 씨. 저기."도현이 문서고 안쪽을 가리켰다. 화물용 출입문 앞에 바퀴 달린 철제 수레 세 대가 서 있었다. 수레마다 상자가 가득 실려 있었고, 상자마다 빨간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폐기]서하는 가장 가까운 상자의 테이프를 손톱으로 뜯었다. 서류 뭉치가 쏟아졌다.[서하건설 하도급 대금 지급 보류 결재]맨 위 서류의 결재란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정명수.서하는 숨을 들이켰다. 원본이었다. 복사본이 아닌, 7년 전 그날 이 회사가 아버지의 목을 조르며 찍은 도장.결재 서류 뒤에 누렇게 바랜 팩스 한 장이 스테이플러로 붙어 있었다. 손글씨였다.[대금 지급을 다시 한번 요청드립니다. 협력 업체 직원들 월급날이 모레입니다. 부탁드립니다. — 서하건설 윤정호]서하는 그 글씨를 알았다. 받침을 유난히 크게 쓰는 버릇. 어린 서하의 알림장에 사인해 주던 글씨.그 팩스 위에도 정명수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보류.'서하의 시야가 흐려졌다. 도현이 옆에서 조용히 휴대폰 불빛을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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